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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혁 선생님의 Beatles 미국 발매 음반 해설

http://www.youtube.com/watch?v=bB_SyQUVKzg&search=beatles

 

[MV] Beatles - It Won't Be L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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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혁의 비틀즈 미국 발매 음반 해설 - 1 (오류 수정 포함) | 비틀매니아 연구방

2005.07.17 04:37
서강석(lennon71) http://cafe.naver.com/thebeatlemania/598 이 게시물의 주소를 복사합니다

신화속에 살아있는 록큰롤의 가장 위대한 이름

The Beatles

 

'퀘리멘'에서 '조니와 문독스', 그리고 '실버 비틀즈'로 이어졌던 틴에이지 시절

 

 존 레논(40.10.9-리버풀 울튼 태생), 폴 매카트니(42.6.18-리버풀의 알러튼태생), 조지 해리슨(43.2.24-리버풀의 웨이버트리 태생), 링고 스타(40.7.7-리버풀의 딩글 태생).

 

 언제 들어도 신비로운 전설속의 인물들이 되어 버린 비틀즈는 틴에이지시절에 퀘리멘(Quarry Men)이라는 트리오로(존-폴-조지) 출발하였다. 50년대말에는 피트 베스트(드럼)과 스튜 서트클리프(리듬기타)를 맞아들이면서 그룹이름을 조니와 문독스로 바꾸어 5인조의 진용을 갖추었다. (옮긴이주 : 비틀즈의 출발을 퀘리멘으로 보는 것은 정확하지만, 트리오로 출발했다고 표현하는 것보다는 "존 레논이 결성한 퀘리멘에 폴과 조지가 가입하였다."는 표현이 더 정확함. 또한 Johnny And Moon Dogs로 활동할 시기에 피트와 스튜는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으며, The Silver Beatles로 바꾼 후 가입하였다.)

 

 이들이 비틀즈의 전신인 실버 비틀즈로 다시 이름을 개명한 것은 1960년이었다. 당시 영국 그룹들의 전진기지였던 함부르크에서 명성을 날리던 토니 셰리던의 백업 그룹으로 실버 비틀즈는 출범하기시작했다. 비록 보잘 것없는 백코러스나 반주로 참여했지만 이렇게 해서 실버 비틀즈는 토니 셰리던과 함께 공식적인 첫 싱글 'My Bonnie'를 1960년대에 취입,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당시의 진귀한 트랙들은 비틀즈가 스타덤에 오른 후인 1965년에 독일의 폴리돌 레코드사에서 'The Beatles With Tony Sheridan'이란 타이틀로 공개한 편집음반에서 노출되었으며 이 음반은 국내에서도 라이센스로 출반되었다. 대부분 토니 쉐리던의 리드보컬에 가리워져 비틀즈의 진면목을 찾아낼 수 없지만, 비틀즈의 역사를 더듬어보는데엔 진귀한 음반이 아닐 수 없다. 특히 'Ain't She Sweet'에서는 존 레논의 리드 보컬을, 'Cry For A Shadow'에서는 조지 해리슨(당시 17세)의 탁월한 리드기타를 들을 수 있다.

 

 

 

Side A

Side B

1. Ain't She Sweet

1. Sweet Georgia Brown

2. Cry For A Shadow

2. The Saints

3. When The Saints Go Marchin In

3. Ruby Baby

4. Why

4. My Bonnie

5. If You Love Me, Baby

5. Nobody's Child

6. What'd I Say

6. Ya Ya Part 1

 

 1961년으로 접어들며 토니 셰리던의 백업그룹에 염증을 느낀 열정적 성격의 스튜 서트클리프가 실버 비틀즈를 떠났다. 그는 이듬해인 62년 4월 10일에 뇌출혈로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고 만다. 61년 2월에 리버풀로 돌아온 실버 비틀즈는 캐번 클럽에 일자리를 얻어 고정출연하던 중, 레코드가게를 운영하던 브라이언 엡스타인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그는 곧 비틀즈의 매니저가 되었다.

 

 브라이언의 노력으로 실버 비틀즈는 EMI 그룹의 오디션에 통과하게 되는데, 당시 오디션을 담당했던 프로듀서 조지 마틴은 드럼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한가지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래서 피트 베스트는 눈물을 머금고 그룹을 떠나야했으며, 그의 빈 자리를 링고 스타(본명 리차드 스타키)가 메꾸게 되었다. 링고는 로리스톰과 허리케인즈라는 그룹의 일원으로 함부르크에서 활동할 때 실버 비틀즈와 가깝게 지내던 사이었다. (옮긴이주 : 피트 베스트를 축출당한 것은 조지 마틴의 드럼 연주비판보다는 나머지 세 명의 멤버(특히 폴과 조지)의 반대가 결정적인 이유였다.)

 

 존 레논(리듬기타-하모니카-피아노-리드보컬), 폴 매카트니(베이스-피아노-밴조-트럼펫-리드보컬), 조지 해리슨(리드기타-시타-피아노-하모니-보컬), 링고 스타(드럼-하모니-보컬)로 짜여진 최종 라인업은 그제야 'The Beatles'로 그룹이름을 확정짓고 프로듀서 조지 마틴의 지휘아래 만 1년여의 피나는 연습에 들어가게된다.

 

 1962년 10월에 탄생된 상큼하기이를데없는 데뷔 싱글 'Love Me Do'와 63년 1월에 공개한 두 번째 싱글 'Please Please Me', 그리고 동년 4월에 등장한 영국 시장 데뷔 앨범등으로 비틀즈는 단숨에 유럽을 점령하고 만다.

 

타임-뉴스위크-뉴욕타임즈등을 오르내리며 등장한 'Meet The Beatles'

 

 'Please Please Me'와 데뷔 앨범이 싱글과 앨범 차트를 석권(영국 차트에서 동시에 1위)하면서 비틀즈의 열기는 미국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미국땅에 가장 먼저 상륙한 비틀즈의 작품은 세 번째 싱글은 'I Want To Hold Your Hand'였다. 이 곡은 64년 1월 18일자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라섰으며, 뒤이에 이 곡이 담긴 세계 시장 데뷔 앨범 'Meet The Beatles'는 2월 12일자 앨범 차트 1위에 오르는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옮긴이주 : 미국에서 최초로 발매된 비틀즈 앨범은 Vee-Jay社의 Introducing The Beatles이며, 당시 반응은 전혀 없었다.)

 

 

 

발매일 : 63.7.22.

Side A

Side B

1. I Saw Her Standing There

1. P.S. I Love You

2. Misery

2. Baby It's You

3. Anna (Go To Him)

3. Do You Want To Know A Secret?

4. Chains

4. A Taste Of Honey

5. Boys

5. There's A Place

6. Love Me Do

6. Twist And Shout

 

 

 

발매일: 64.1.20.

Side A

Side B

1. I Want To Hold Your Hand

1. Don't Bother Me

2. I Saw Her Standing There

2. Little Child

3. This Boy

3. Till There Was You

4. It Won't Be Long

4. Hold Me Tight

 

5. I Wanna Be Your Man

 

6. Not A Second Time

 

 비틀즈 최초의 전미 순회 공연은 64년 2월에 개시되었는데, 가는 곳마다 문전성시를 이뤘음은 물론이고 주요 매스컴의 헤드라인을 독점하고 있었다. 'Meet The Beatles'의 폭발적 인기로 이들은 채 3개월이 못되어 2집 'The Beatles' Second Album'을 공개하는 놀라운 창작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담겨있는 'She Loves You'와 앨범 자체가 역시 동시에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옮긴이주 : 비틀즈의 첫 미국 방문이 2월이며, 최초의 전미 순회 공연은 64년 8월 19일부터였다.)

 

 

발매일 : 64.4.10.

Side A

Side B

1. Roll Over Beethoven

1. Long Tall Sally

2. Thank You Girl

2. I Call Your Name

3. You Really Got A Hold On Me

3. Please Mr.Postman

4. Devil In Her Heart

4. I'll Get You

5. Money

5. She Loves You

 

  뿐만 아니라 전미 순회 공연의 벅찬 스케줄속에서도 틈틈이 영화 'A Hard Day's Night'을 촬영했으며, 사운드트랙은 64년 6월에 영화와 함께 3집으로 공개되었다. 그 사이에 이미 영국에서 싱글로 발표되어 정상에 올랐던 'Can't Buy Me Love'와 데뷔곡 'Love Me Do'가 지각수입되어 각각 No.1에 올랐다. 이어서 'A Hard Day's Night'이 다섯 번재로 싱글 차트 정상에 오른 것은 64년 7월 18일이었다. (옮긴이주 : 영화 A Hard Day's Night의 촬영은 64년 3월 2일부터였으며, 이 기간은 첫 미국 순회 공연(8월 19일~9월 20일)기간과 전혀 겹치지 않는다. 또한 촬영장소는 영국이었다.)

 

 

 

발매일 : 64.6.26

Side A

Side B

1. A Hard Day's Night

1. I Should Have Known Better

2. Tell Me Why

2. If I Fell

3. I'll Cry Instead

3. And I Love Her

4. I Should Have Known Better    (instrumental)

4. Ringo's Theme(This Boy)

    (instrumental)

5. I'm Just Happy To Dance With You

5. Can't Buy Me Love

6. And I Love Her

   (instrumental)

6. A Hard Day's Night

     (instrumental)

 

4집 'Something New'를 포함해 무려 6장의 앨범이 쏟아져나온 1964년

 

 

 1~3집을 불과 반년만에 공개하여 석장 모두 앨범 차트 1위(싱글은 다섯 곡이 1위)에 랭크시키는 불가사의를 이뤄낸 비틀즈는 64년 7월에 4집 'Something New'를 공개(앨범 2위)했는데, 여기엔 'I Want To Hold Your Hand'를 독일어로 부른 'Komm, Gib Mir Deine Hand' 트랙을 비롯하여, 'And I Love Her'와 'If I Fell'등의 주옥같은 발라드가 듬뿍 담겨있다.

 

 

발매일 : 64.7.20.

Side A

Side B

1. I'll Cry Instead

1. Tell Me Why

2. Things We Said Today

2. And I Love Her

3. Any Time At All

3. I'm Happy Just To Dance With You

4. When I'm Get Home

4. If I Fell

5. Slow Down

5. Komm, Gib Mir Deine Hand

6. Matchbox

 

 

 64년 11월에는 'The Beatles Story'라는 타이틀의 5집이 등장했는데 이 앨범은 극성팬들을 위해 히트곡들은 물론 인터뷰,사진등을 엮은 더블 앨범으로 선보였다. (앨범 7위). 그로부터 불과 한달후에 6집 'Beatles '65'가 여섯 번째 No.1 싱글 'I Feel Fine'을 담고 (앨범은 네 번째 No.1 획득) 등장했다. 여기엔 그밖에도 'I'll Follow The Sun', 'Mr.Moonlight', 'Rock And Roll Music', 'She's A Woman'등 우리귀에 친숙한 작품으로 그득하다. 이로써 비틀즈는 세계 시장에 데뷔한 64년 한 해에 무려 여섯 장의 앨범을 공개하여, 6곡의 No.1 싱글과 4장의 No.1 앨범, 6연속 골드 앨범과 4곡의 골드 싱글(I Want To Hold Your Hand-Can't Buy Me Love-A Hard Day's Night-I Feel Fine)을 기록하는 불가사의를 이뤄낸 바 있었다.

 

 

 

발매일 64.11.23.

Side A

Side B

1. On Stage With The Beatles

1. A Hard Day's Night - Their First Movie

2. How Beatlemania Began

2. Paul McCartney

3. Beatlemania In Action

3. Sneaky Haircuts And More About Paul

4. Man Behind The Beatles - Brian Epstein

4. The Beatles Look At Life

5. John Lennon

5. "Victims" Of Beatlemania

6. Who's A Millionaire?

6. Beatle Medley

7. Beatles Will Be Beatles

7. Ringo Starr

8. Man Behind The Music - George Martin

8. Liverpool And All The World!

9. George Harrison

 

 

 

2. I'm A Loser

2. I'll Be Back

3. Baby's In Black

3. She's A Woman

4. Rock And Roll Music

4. I Feel Fine

5. I'll Follow The Sun

5. Everybody's Trying To Be My Baby

 

'Eight Days A Week'를 담고 65년 6월에 조용히 등장한 'Beatles VI'

 

 64년말에 선보였던 'Beatles '65'는 이듬해를 겨냥한 앨범 타이틀이었으며, 65년 3월엔 초기 작품들을 모은 'The Early Beatles-앨범 43위'가 7집으로 등장했고, 동년 6월엔 8집 'Beatles VI'가 'Eight Days A Week'를 담고 선보였다. 앨범 타이틀이 통산 여덞번째로 공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VI'라는 순서를 매긴 이유는 'A Hard Day's Night'과 'The Early Beatles'를 이레큘러(irregular)앨범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발매일 : 65.3.22.

Side A

Side B

1. Love Me Do

1. Please Please Me

2. Twist And Shout

2. P.S. I Love You

3. Anna (Go To Him)

3. Baby It's You

4. Chains

4. Taste Of Honey

5. Boys

5. Do You Want To Know A Secret?

6. Ask Me Why

 

 

 'Beatles VI'에는 이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준 록큰롤의 천재 버디 홀리의 고전 'Words Of Love'가 곱게 채색되어 있으며, 마이크 스톨러가 작품을 쓴 로커빌리의 고전 'Kansas City'라든가, 역시 비틀즈에게 영향을 준 50년대의 스타 래리 윌리엄즈의 대표작 두 곡 (Bad Boy와 Dizzy Miss Lizzy)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리바이벌과 오리지널이 절반씩 섞여있는 'Beatles VI'에서, 존과 폴이 주도해 오던 작곡 솜씨를 거들기 시작한 조지의 'You Like Me Too Much'가 향후 그의 번뜩이는 재능의 포문을 열어주었다. ('Beatles VI'는 다섯 번째 No. 1앨범)  'Bealtes VI'는 바로 이전 앨범인 'Beatles '65'로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실험의 연장선 위에 있는 앨범이다.

 

 

발매일 : 65.6.14.

Side A

Side B

1. Kansas City

1. What You're Doing

2. Eight Days A Week

2. Yes It Is

3. You Like Me Too Much

3. Dizzy Miss Lizzy

4. Bad Boy

4. Tell Me What You See

5. I Don't Want To Spoil The Party

5. Every Little Thing

6. Words Of Love

 

 

'Help' 그리고 새로운 도약을 증명해보인 위대한 앨범 'Rubber Soul'

 

 

 65년 4월엔 바하마군도의 휴양지 내소에서 두 번째 앨범 'Help!'의 활영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이 영화의 사운드 트랙이 통산 9집으로 영화와 함께 공개된 것은 65년 8월이다. 'Help!'가 여섯 번째 No.1 앨범이 된 것은 말할 나위없지만 여기에서 두 곡의 No.1 (Ticket To Ride와 Help!)까지 배출해냈다. 이것으로 비틀즈가 인도음악에 심취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가 부여되고 있는 사운드 트랙이다.

 

 

발매일 : 65.8.13.

Side A

Side B

1. James Bond Theme [instrumental] / Help

1. Another Girl

2. The Night Before

2. Another Hard Day's Night [instrumental]

3. From Me To You Fantasy [instrumental]

3. Ticket To Ride

4. You've Got To Hide Your Love Away

4. The Bitter End [instrumental]

  / You Can't Do That [instrumental]

5. I Need You

5. You're Gonna Lose That Girl

6. In The Tyrol [instrumental]

6. The Chase [instrumental]

 

 앨범의 마지막에 실려있는 'The Chase'에서 인도 음악을 완전히 도입했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영화 음악을 담당했던 켄 돈의 연주곡과 비틀즈이 노래가 반반씩 섞여있는 사운드 트랙이며, 영화의 감독은 'A Hard Day's Night'에 이어 리처드 레스터가 담당했다. (옮긴이주 : The Chase는 비틀즈와 전혀 상관없는 곡으로, 인도음악을 완전히 도입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며, 인도 음악의 영향이 최초로 드러난 것은 Norwegian Wood에서 조지 해리슨이 시타를 연주하였을 때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세계 시장 데뷔 첫 해인 64년에 무려 6매의 앨범을 공개했던 비틀즈는 이듬해인 65년에도 4매의 앨범을 선보여, 불과 2년만에 열 장의 앨범을 탄생시키는 믿기지 않는 기록을 수립해냈다. 사운드 트랙 'Help!'가 공개된 지 4개월인 65년 12월에 열 번째 앨범 'Rubber Soul'이 등장했는데,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초기 비틀즈의 가장 완벽했던 앨범으로 평가하고 싶은 명반이다.

 

 'Rubber Soul'은 단 한 곡의 싱글 커트도 없이 일곱 번째 No.1의 자리에 앉았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Michelle'을 비롯하여 조지의 시타 솜씨가 무르익어감을 감지할 수 있는 'Norwegian Wood', 폴의 퍼즈 베이스가 인상적인 'You Won't See Me', 링고의 또 다른 재주인 해먼드 오르간 솜씨를 들을 수 있는 'I'm Looking Through You', 프로듀서 조지 마틴의 피아노 어시스트가 결들여진 'In My Life'등등 어느 곡하나 나무랄데 없는 주옥같은 작품들로 채색되어 있다. 또한 지금도 턴테이블위에 올려 놓으면 가슴깊이 파고드는 존 레논의 마력적인 음성이 콧날을 시큰하게 해주는 'Girl'을 빼놓을 수 없으리라......

 

 

발매일 : 65.12.6.

Side A

Side B

1. I've Just Seen A Face

1. It's Only Love

2. Norwegian Wood

2. Girl

3. You Won't See Me

3. I'm Looking Through You

4. Think For Yourself

4. In My Life

5. The Words

5. Wait

6. Michelle

6. Run For Your Life

 

'페퍼상사...'의 폭풍 전야를 암시한 도발적인 사운드 'Revolver'

 

 

 흔히 많은 평론가들로부터 비틀즈는 '3박자(예술성-음악성-상업성)을 갖췄던 불후의 그룹이었다'라는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데, 앞서 다각도로 분석한 기록만 보더라도 도저히 다시 이루어낼 수 없는 불가사의가 많았다. 2년동안 열매의 앨범을 공개한 후 66년으로 접어든 비틀즈는 통산 11집으로 기록되는 'Yesterday & Today'를 6월에 선보였는데 여기에선 세 곡이 (Yesterday-We Can Work It Out-Nowhere Man) 골드싱글을, 두 곡이 No.1 (Yesterday-We Can Work It Out)을, 네 곡이 Top5 (Yesterday 1위-We Can Work It Out 1위 -Nowhere Man 3위-Day Tripper 5위)에 각각 랭크되는 해프닝을 연출한 바 있었다.

 

 

발매일 : 66.6.20.

Side A

Side B

1. Drive My Car

1. And Your Bird Can Sing

2. I'm Only Sleeping

2. If I Needed Someone

3. Nowhere Man

3. We Can Work It Out

4. Dr. Robert

4. What Goes On

5. Yesterday

5. Day Tripper

6. Act Naturally

 

 

 아마도 'Rubber Soul'과 함께 전반기 비틀즈의 대표 앨범이자 불후의 명반으로 평가받아야 마땅할 12집 'Revolver'가 선보인 것은 66년 8월이었다. 'Rubber Soul'과 'Revolver'가 안고 있는 공통점은 단 한 곡의 싱글 커트도 하지 않았다는 점인데, 상업성보다는 예술성과 음악성을 중시했다는 결론을 얻어 낼 수 있다. 차이점은 'Rubber Soul'이 초기 비틀즈를 대변하는 아름다움의 극치였다면 'Revolver'는 후기 비틀즈로의 환상적인 변신을 시도했다는 점일게다. (옮긴이주 : 영국에서는 66년 5월 8일 앨범 Revolver와 싱글 Eleanor Rigby를 동시에 발매했다. 미국에서도 늦게나마 66년 8월 8일 Yellow Submarine/Eleanor Rigby 싱글을 발매하였다.)

 

 또 한 가지 존과 폴이 거의 모든 곡을 소화해냈던 초기의 형태에서 벗어나 4인이 고루 역량을 발휘하여 더욱 원숙해진 화합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Revolver'는 크게 평가받고 있다. 그 예로 조지의 리드 보컬이 무려 세 곡 (Taxman-Love You To-I Want To Tell You)이나 실려 있는데 물론 세 곡 모두 조지의 자작곡이다. 게다가 링고의 해학이 번뜩이는 'Yellow Submarine'까지 곁들여있는데 이 곡은 2년후 비틀즈의 세 번째 영화이자 동명 타이틀의 만화영화의 원동력이 되어지기에 이른다.

 

 그밖에도 비발디를 연상시키는 완벽한 소품 'Eleanor Rigby'라든가 조지 마틴의 보컬 더빙 솜씨가 듣는 이를 사로잡는 'Good Day Sunshine' 그리고 바늘같이 예민하게 삽입된 브래스 섹션이 일품인 'Got To Get You Into My Life'등등 모두가 개성있는 작품 세계를 표출시켜 주었다. 또한 존 레논의 두 개의 넘버 'She Said She Said'와 'Tomorrow Never Knows'는 레논이 시작한 '약물 실험'의 결과로 탄생된 곡이며 위대한 앨범인 '페퍼상사...'에서 꽃핀 사이키델릭의 승리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전율의 작품은 'Here There And Everywhere'이리라.....

 

 

 

 발매일 : 66.8.8.

Side A

Side B

1. Taxman

1. Good Day Sunshine

2. Eleanor Rigby

2. For No One

3. Love You To

3. I Want To Tell You

4. Here There And Everywhere

4. Got To Get You Into My Life

5. Yellow Submarine

5. Tomorrow Never Knows

6. She Said She Said

 

 

(이 글은 팝컬럼리스트 전영혁님이 음악잡지에 기고한 글을 옮긴것이며, 오류 부분은 옮긴이주에서 수정하였으니 참고하시기바랍니다.)

 

재킷, 사운드가 사이키델릭의 교과서였던 '페퍼상사의 고독씨 클럽'

 

 

발매일 : 67.6.2.

Side A

Side B

1.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1. Within You Without You

2.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

2. When I'm Sixty-Four

3.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3. Lovely Rita

4. Getting Better

4. Good Morning Good Morning

5. Fixing A Hole

5.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 Reprise

6. She's Leaving Home

6. A Day In The Life

7. Being For The Benefit Of Mr.Kite

                                                               .

 

 이미 지난호에 소개한 바 있는 1~12집에 이어 비틀즈의 농축된 재능이 하나의 불가사의를 이루어낸 13집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가 등장한 것은 67년 6월이었다. 이 화제의 명반은 비틀즈로서는 10번째로 (4,5,7집을 제외한)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앨범 차트(1~200위)에 무려 113주간이나 랭크되어 이들 최고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마릴린 몬로를 비롯하여 밥 딜런, 말론 브랜도등 전설적인 스타들의 수많은 몽타주를 배경으로,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로 분한 4인의 라인업이 튜바와 트럼펫등을 들고 있는 이 앨범은 더욱 화제가 되었다. 전위 예술의 1인자로 평가받고 있는 앤디 워홀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는 'A Day In The Life'와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등에서 우리는 사이키 아트의 전형을 찾아볼 수 있다.

 한편 레너드 번스타인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비틀즈의 명작이라고 토로한 완벽한 실내악 'She's Leaving Home'이 듣는 이를 전율의 도가니로 안내해주고 있다.

 

24페이지짜리 팜플렛이 내장된 사운드 트랙 'Magical Mystery Tour'

 

 

발매일 : 67.11.27.

Side A

Side B

1. Magical Mystery Tour

1. Hello Goodbye

2. The Fool On The Hill

2. Strawberry Fields Forever

3. Flying

3. Penny Lane

4. Blue Jay Way

4. Baby You're Rich Man

5. Your Mother Should Know

5. All You Need Is Love

6. I Am The Warlus

.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충격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이번엔 비틀즈의 유일한 TV영화 사운드트랙인 'Magical Mystery Tour'가 통산 14집으로 67년 11월에 공개되었다. 이 앨범속에는 극중의 주요 장면과 봅 깁슨의 재치있는 만화로 엮은 스토리가 무려 24페이지에 걸쳐 삽입되어 있어 그동안 비틀즈를 아껴준 팬들에 대한 서비스를 겸했던 딜러스 음반이었다.

 이 앨범은 'Hello Goodbye', 'Penny Lane', 'All You Need Is Love'등 세 곡의 No.1 싱글을 배출해냈으며, 앨범 역시 11번째 No.1을 기록했다. 뿐만아니라 타이틀트랙 'Magical Mystery Tour'의 자유분방함, 'The Fool On The Hill'이 전달해주는 환상적 분위기, 'Your Mother Should Know'의 상큼함, 'Strawberry Fields Forever'에 내재해있는 찬란한 슬픔등이 앨범을 마력적으로 감싸고 있다.

 

비틀즈의 내면세계가 심화되어 표출된 'White Album'

 

 

발매일 : 68.11.25.

Side A

Side B

1. Back In The U.S.S.R.

1. Martha My Dear

2. Dear Prudence

2. I'm So Tired

3. Glass Onion

3. Blackbird

4. Ob-La-Di, Ob-La-Da

4. Piggies

5. Wild Honey Pie

5. Rocky Raccoon

6. The Continuing Story Of Bungalow Bill

6. Don't Pass Me By

7.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7. Why Don't We Do It In The Road

7. Happiness Is A Warm Gun

8. I Will

.

9. Julia

Side C

Side D

1. Birthday

1. Revolution # 1

2. Yer Blues

2. Honey Pie

3. Mother Nature's Son

3. Savoy Truffle

4. Everybody's Got Something To Hide Except Me And Mr.Monkey

4. Cry Baby Cry

5. Sexy Sadie

5. Revolution # 9

6. Helter Skelter

6. Good Night

7. Long Long Long

.

 

 하얀 더블 재킷에 아무것도 인쇄되지 않은 전위적인 시도로 선보인 15집은 셀프 타이틀(The Beatles)로 68년 11월에 선보였다. 대체로 비틀즈의 발랄했던 초기의 패턴이 다소 달라진 것은 10집 (Rubber Soul)부터였으며, 심화되기 시작한 것은 12집 (Revolver)이었고, 완전히 내면세계를 파고들었던 시기는 13집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와 14집 (Magical Mystery Tour)이었다. 그리고 비틀즈의 섬광이 극치에 달한 명반 중의 명반이라면 '화이트 앨범'이라 할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앨범의 이름은 'The Beatles'였으나 아무것도 인쇄되지 않은 재킷 때문에 'White Album'이라는 닉네임이 붙었다. 한때 캐피틀 레코드사에서는 알맹이까지 흰색으로 찍어냈던 해프닝도 있었다. 이 앨범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은 'Ob-La-Di, Ob-La-Da'이지만 오히려 이 곡은 그중 가장 처지는 곡으로 느껴진다. 레논과  매카트니에 눌려 빛을 보지 못했던 조지 해리슨의 나무랄데없는 리드 보컬이 에릭 클랩톤의 처절한 기타 어시스트와 함께 완벽한 트랙을 누비고 있는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의 화려함이 특히 눈에 띈다.

 연전에 머틀리 크루가 리바이벌했던 'Helter Skelter'에서는 80년대의 헤비메틀을 제시하기도했다. 두 장의 앨범에 가득 담긴 모든 작품이 듣는 이를 전대미문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특히 지난 12월 8일자로 타계 5주기를 맞았던 불후의 천재 존 레논의 자전적 독백 'Julia'와 'Happiness Is A Warm Gun' (마치 자신의 최후를 예견한 듯한)이 지금도 콧날을 시큰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사운드트랙 'Yellow Submarine'과 최후의 스튜디오앨범 'Abbey Road'

 

발매일 : 69.1.13.

Side A

Side B

1. Yellow Submarine

1. Pepperland [instrumental]

2. Only A Northern Song

2. Sea Of Time & Sea Of Holes [instrumental]

3. All Together Now

3. Sea Of Monsters [instrumental]

4. Hey Bulldog

4. March Of The Meanies [instrumental]

5. It's All Too Much

5. Pepperland Laid Waste [instrumental]

6. All You Need Is Love

6. Yellow Submarine In Pepperland [instrumental]

 

 'White Album'이 12번째 No.1에 오른지 불과 한 달만인 69년 1월에 비틀즈는 만화영화 'Yellow Submarine'의 사운드 트랙을 16집으로 공개했다. (앨범 차트 2위) 이 영화는 러브 스토리의 작가로 너무나 유명한 에릭 시걸이 각본을 쓰고, 'Ai No Korida(퀸시 존스가 발표해 유명해졌다)의 작곡자인 찰스 젠킨스가 특수효과를, 그리고 조지 더닝이 그림을 그린 만화영화였다.

 

발매일 : 69.10.1.

Side A

Side B

1. Come Together

1. Here Comes The Sun

2. Something

2. Because

3. Maxwell's Silver Hammer

3. You Never Give Me Your Money

4. Oh! Darling

4. Sun King

5. Octopus's Garden

5. Mean Mr. Mustard

6. I Want You (She's So Heay)

6. Polythene Pam

.

7. She Came In Through The Bathroom Window

.

8. Golden Slumbers

.

9. Carry That Weight

.

10. The End

.

11. Her Majesty

 

 그로부터 9개월후인 69년 10월에 비틀즈 최후의 스튜디오 앨범이자 그들의 3대 명반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17집 'Abbey Road'가 공개되었다. 당시 비틀즈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숱한 루머를 동반하며 과장 보도되기 일쑤였다. 그중의 하나가 폴 매카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헛소문이었다. 당시 국내에서도 AFKN을 통해서 폴이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른다는 토픽 뉴스가 보도되었고, 국내의 팬들이 큰 충격을 받았던 해프닝도 있었다.

 이러한 소문의 발단은 'Abbey Road'재킷을 자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앞에서 세 번째로 길을 건너고 있는 폴만 신발을 신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그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어느 상상력 풍부한 (?) 기자의 착상에서 나온 해프닝이었다. 어쨌든 숱한 화제를 남겼던 'Abbey Road'에는 조지 해리슨의 애절한 보컬 테크닉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던 'Something'이라든가 전세계적으로 사랑받았던 'Come Together'와 'Oh! Darling'등이 수록되어있다.

 그러나 역시 'Here Comes The Sun'과 투명한 시냇물처럼 아름다운 'Because'로 오프닝을 연후, 'You Never Give Me Your Money'로 시작하여 'The End - Her Majesty'로 마무리짓는 8부작 메들리가 'Abbey Road'의 백미이다.

 

히트싱글 모음집 'Hey Jude'와 최후의 앨범 'Let It Be'

 

 

발매일 : 70.2.26.

Side A

Side B

1. Can't Buy Me Love

1. Hey Jude

2. I Should Have Known Better

2. Old Brown Shoe

3. Paperback Writer

3. Don't Let Me Down

4. Rain

4. Ballad Of John And Yoko

5. Lady Madonna

.

6. Revolution

.

 폴이 존의 아들 줄리안 레논을 위해 만든 'Hey Jude'를 타이틀 트랙으로 열 곡의 히트 싱글을 모은 18집이 90년 2월에 선보이며 비틀즈는 70년대를 열었다. 언제부터인가 기르기 시작했던 이들의 머리와 수염은 이제 도인을 방불케하는 덥수룩함으로 변모했음을 재킷에서 발견해낼 수 있다. 특히 존에게서 그러한 인상을 더욱 짙게 받게되는데, 아직도 폴은 유일하게 수염을 기르지 않은 말쑥함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었다. ('Hey Jude'는 앨범 차트 2위)

 

  'A Hard Day's Night'과 'Help!'그리고 'Yellow Submarine'에 이은 네 번째 비틀즈 영화이자 최후의 앨범이 되어 버린 19집 'Let It Be'는 70년 5월에 출반되었다. 세미도큐멘타리식으로 만들어진 'Let It Be'는 본래 TV용으로 제작되었으며 69년 1월 2일에 크랭크인되었다.

 이때부터 이미 비틀즈는 'Abbey Road'가 발표되기전부터 끈질기게 나돌던 해산설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먼저 존이 오노 요코와 함께 앨범 'Two Virgins'를 낸 것을 필두로, 조지가 솔로 앨범 'Wonderwall Music'을 발표했다. 한편 폴은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출반할 무렵부터 의뢰받았던 영화음악 'Family Way'를 발표했고, 링고는 'Candy'라든가 배드핑거가 음악을 맡았던 'Magic Christian'에 영화배우로 데뷔한 것등이다.

 

 

발매일 : 70.5.18.

Side A

Side B

1. Two Of Us

1. I've Got A Feeling

2. Dig A Pony

2. One After 909

3. Across The Universe

3. The Long And Winding Road

4. I Me Mine

4. For You Blue

5. Dig It

5. Get Back

6. Let It Be

.

7. Maggie Mae

.

 

 이러한 와중에서도 애플 레코드의 경영 책임자였던 닐 애스피널이 제작을, 마이클 린지호그가 감독을, 토니 레니가 편집을 각각 맡아 영화 'Let It Be'를 완성해냈으며 1970년 5월에 앨범도 공개되었다. 필 스펙터가 앨범 제작을 담당했으며 조지 마틴이 크게 어시스트해 준 이 음반에는 건반악기의 모든 것을 아는 빌리 프레스톤이 찬조출연하여 종횡무진으로 화려한 반주를 들려주기도 했다. 이 앨범에서는 'Get Back'과 'The Long And Winding Road', 그리고 타이틀 트랙 'Let It Be'등 무려 세 곡이 No.1에 올랐으며 앨범 역시 14번째 No.1을 기록했다.

 

 이로써 비틀즈는 1964년 1월의 데뷔 앨범 'Meet The Beatles'로부터 1970년 5월의 마지막 앨범 'Let It Be'에 이르기까지 불과 7년동안에 19장의 앨범을 남겼으며 그 중 5장의 앨범을 제외한 14장을 모두 앨범 차트 1위에 올려놓는 불후의 기록을 수립해냈다. 뿐만 아니라 64년 1월 18일자로 No.1에 오른 'I Want To Hold Your Hand'로부터 70년 6월 23일자로 No.1에 오른 'The Long And Winding Road'에 이르기까지 모두 20곡의 싱글이 No.1에 오른 믿기 어려운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서강석(lennon71)

비틀매니아 서강석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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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les의 정규 discgraphy

 

http://www.youtube.com/watch?v=N2LkjhnAg1E&search=beatles

[MV] Beatles - Movie med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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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ease Please Me | Beatles Album 2004/10/12 17:20

발매일  1963년 3월 22일 (Mono ONLY)
               1963년 4월 26일 (Stereo version)
               1987년 2월 26일 (CD release)
               Total time  31:59

영국 앨범 챠트   챠트진입일 
               1963년 4월 6일
               1963년 5월 11일부터 30주연속 1위 기록 (70주 동안 차트에 머무름)
               CD버전은 1987년 3월 7일 32위을 기록하며 4주간 차트에 머물렀다.

판매량
   발매이후 6개월만에 25만장의 판매고를 올렸고, 이후 영국에서 50만장, 전 세계적으로 2백만장이 팔렸다. 
   
자켓 디자인
Beatles 첫 광고용 사진이기도 한 이 사진은 London 맨체스터 구에 있는 E.M.I. House 계단에서 촬영했다.
도안한 인물은 Angus McBean 으로 Beatles편집앨범 '62년-66년','67년-70년'도 그가 도안했다.
 
Mono/Stereo 버전의 차이
Stereo 버전에서는 "Please Please Me"를 부를때 John이 마지막 절 단어를 잘못 말하고는 마지막 합창에 낄낄 웃어버리고 만다. 이게 모노 버전에서는 들리지 않는다.
 
에피소드
조지 마틴은 앨범의 제목을 "Off The Beatle Track" 라고 하자고 제안했지만 채택되지 못했다. 조지 마틴은 그 제목을 상당히 마음에 들어했는데, 이후 63년 7월 22일 미국에서 발매된 앨범에 'Meet The Beatles'로 쓰여졌다. 이때 발매된 앨범에는 'Please Please Me' 와 'Ask Me Why'가 빠졌었다가 1964년 1월 27일에 다시 발매되었을 때 포함되었다. 대신 " Love Me Do "와 " P.S. I Love You " 는 제외됐다.원래 Song writing credits는 McCartney-Lennon으로 되어 있었지만, Parlophone사가 이것을 Lennon-McCartney으로 바꾸어 발매했다.
 
앨범소개
Beatles의 공식 Debut앨범인 이 Please Please Me는 Beatles신화의 또 한명의 주역 George Martin의 프로듀스로 초기 Rock'n Roll과 Beatles의 개성이 잘 어우러진 14곡을 담고 등장했다. 등장 이후 약 10일이 지난 1963년 4월 6일 영국차트 10위로 등장, 5월 4일부터 30주간 1위에 랭크되는 등 64 주간 차트 100위권에 머무는 신기록을 세웠고 당시 데뷔 앨범으로는 최다 판매고를 기록하던 Elvis Presley의 'Jailhouse Rock'의 판매량을 2 만장 초과하는 25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영국을 비롯한 전 유럽 지역에 Beatles선풍을 몰고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된다.
With The Beatles | Beatles Album 2004/10/12 17:20

영국앨범차트   1963년 11월 30일
1963 년 12월 7일부터 21주간 1위 (51주간 차트에 머무름)
CD버전은 1987년 3월 7일부터 2주간 차트에 머무름(40위까지 도달.)
1997년 3월 22일부터 1주간(72위)

 
판매량
    발매되기 2주전에 이미 27만장의 선주문이 들어왔고, 1주전에는 50만장으로 되었다. 발매되기이 전인 18일에 이미 Silver disc가 되었던 것이다. 64년 2월 중순에 영국에서 이미 88만5천장이 팔렸고, 1964년말에는 영국에서 최초로 백만장을 달성했다. (사실은, 6년전에 발매된 미국의 사운드트랙"South Pacific"이 1963년 11월에 밀리언셀러에 올라, 영국에서 최초의 밀리언셀러라고 할 수는 없지만,그래도 비틀즈는 2년도 채 안되서 그 업적을 달성한 것이다.)
 
 엘범  
   이 앨범의 미국버전인 "Meet The Beatles"는 이상하게도 5개의 트랙이 누락되었지만 5백만장이 팔렸다.총 6백5십만장이 팔린 셈이다.챠트에서 이 L.P.는 "Please Please Me"를 1위 자리에서 밀어내고, 21주간 1위의 자리를차지  한 후, 51주간 차트에 머무렀다. 앨범의 형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모조리 순위를 매겼던 영국 챠트의 초창기시기였던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L.P.가 영국 싱글차트에서 11위에 올랐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자켓 디자인
    Beatles의 많은 레코드 쟈켓중 1,2위를 다투는 걸작 쟈켓이다. Robert Freeman이 촬영했다.
    Epstein은 이 사진을 무척 좋아해서 자택의 벽에 걸어 두었었다고 한다.
 

 Mono/Stereo 버전의 차이
    "Money" 스테레오 버전에는 걸출한 기타연주로 시작되지만, 모노 버전에는 실리지 않았다.
                 모노와 스테레오 버전의 피아노 인트로도 틀리고, 전체적으로 사용된 기기도 틀리다.
 

  에피소드
    First Album [Please Please Me]에서 선곡되지 않은 [Hold Me Tight]이 다시 레코딩되어
    이 앨범에 수록되었다.
 

 앨범소개

많은 공연 애창곡들이 두면 가득히 담겨져 있다.. 비틀즈는 그들의 첫 번째 앨범 PLEASE PLEASE ME를 1963년의 가장 잘팔린 앨범으로 만든 성공적 방식으로 여기에도 되풀이 하고 있다. 다시한번 그들은 그들 자신의 오리 지날 작품 8곡과 함께 그들이 가장 흠모했던 미국의 R&B 아티스트들의 레퍼토리를 각기 뽑아내어 다수 여기에 담고 있다. 
 

A Hard's Night | Beatles Album 2004/10/12 17:17

발매일   1964년 7월 10일
                1987년 2월 26일 (CD)

녹음일   영화 촬영중의 1965년 2월중순 - 6월 중순 (Total time   29:45)

영국앨범차트   진입일  1964년 7월 18일
                                       1964년 7월 25일부터 21주간 1위에 랭크
                                       1971년 2월 16일부터 1주간 (No.30)
                                       1987년 3월 7일부터 4주간 (CD release,eached no.30)

 
■ 판매상황
영국에서 선주문 25만장이었고 발매 첫주에 25만장이 팔리고 1위에 올랐다. 그해 말에는 60만장이 팔렸고,영국에서 80만장이 팔렸다. 미국버전의 앨범은 좀 다른데,  미국에서는 George Martin 이 영화의 몇몇곡을 추가해서 앨범을 판매했고, "Something New"라는 이름으로 명명했다. 이 두 앨범은 미국에서 300만장이 판매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A Hard Day's Night" 는 4백만장이 팔렸을 것으로 추산된다.
 
자켓 디자인
    Robert Freeman이 촬영했지만 자세한 내용은 전해지지 않는다.
 
 Mono/Stereo 버전의 차이
"A Hard Day's Night"  스테레오 버전은 모노버전보다 몇초가 길다.
"I Should Have Known Better"  스테레오 버전은 하모니카인트로에서 얼마간의 갭이 있지만 모노버전은 없다. 스테레오 버전은 마지막절에 네 번을 하지만, 모노 버전은 세번이다.
"If I Fell"  스테레오 버전은 오프닝에 솔로 보컬이 double-track이지만 모노는 아니다.
"Tell Me Why"  스테레오 버전은 오프닝에 솔로 보컬이 double-track이지만 모노는 아니다.
 
MEMO
1964년 8월 첫주에 비틀즈에게 있어서는 최초이자 유일하게 앨범과 싱글곡이 미국과 영국에서 동시에 No 1에 오르게된다.
또한 이 앨범은 전곡이 Lennon과 McCartney가 함께 작곡한 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앨범소개
비틀즈는 활동 기간중 "A HARD DAY'S NIGHT"를 비롯해서 "HELP", "MAGICAL MISTERY TOUR"."YELLOW SUBMARINE" 등 몇 편의 영화를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이들의 첫번째 영화였던 "A HARD DAY'S NIGHT"는 최고의 비틀즈 영화로 꼽히고 있고 특히 사운드트랙 앨범의 수록곡들은 모두 황금같은 비틀즈의 명곡들로 꾸며져 있기 때문에 비틀즈 팬들에게 더욱 사랑받고 있는 앨범이다
 
Beatles For Sale | Beatles Album 2004/10/13 13:14

발매일   1964년 12월 4일
                 1987년 2월 26일(CD) Total time   33:25


영국 앨범 챠트 챠트진입일

              1964년 12월 12일
                  1964년 12월 19일부터 7주간 1위
                  1965년 2월 27일부터 1주간 1위
                  1965년 5월 1일부터 3주간 1위 기록(총 46주간 차트에 머무름)

                  1987년 3월 7일 발매된 CD버전이 45위에 오르며 2주간 챠트진입해 머물렀고,
                  1997년 3월 22일부터 72위를 기록하며 1주간 머물렀다.


발매상황
이 앨범이 발매되기 한달전부터 무려 50만장이상의 선주문이 들어왔고, 곧 75만장으로 불어났다. 
이는 선례가 없는 사상 초유의 수치였다.
곧바로 이 앨범은 역시나 자신들의 앨범인 "A Hard Day's Night"를 밀어내고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달에 Rolling Stones에게 1위 자리를 내어줬다가 다시 그 다음달에 1위로 복귀한다. 한 싱글챠트에서도 28위를 기록했다. 28위라고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당시에는 앨범에 실린 노래의 양이 중요한게 아니라 단지 단위 노래의 copy가 얼마나 팔렸나만으로 평가했기 때문이다.
이후 영국에서만 1백만장의 판매고를 올리게 된다.
한편 같은 앨범이 미국에서 "Beatles' 65"로 발매되었는데, 왠일인지 트랙의 순서뿐만 아니라 제외된 곡도 었다.
그래도 영국에서 발매된 그 앨범과 함께 30만장이 판매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4백만장이 판매된 것으로 추산한다. 실제로 다음 미국 앨범인 "Beatles VI"에서, 제외되었던 6곡을 포함했기 때문에 이 앨범의 판매 량까지 합산해야 할 것이다.
이로써 100만장이 더해져서 총 5백만장이 팔린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자켓 디자인
앨범커버 사진은 1964년 가을에 Robert Freeman이 촬영했다. 장소는 Royal Albert Hall근처의 London의Hyde Park뒤쪽을 선택했다. 순회공연과 그밖에 팬들(Beatlemania)와 함께 하며 피로에 지친듯한 모습을 찍은 것이 더욱 팬들에게 어필한 것으로 보인다.
속지 또한 Freeman의 사진들이었다. 워싱턴 D.C 콜롯세움에서 Beatles의 2월 11일 공연사진이 왼쪽에, 오른쪽에는 A Hard Day's Night촬영중에 런던의 Twickenham 영화 촬영소들의 로비에 벽의 앞에서 있는 모습이다.
 


Mono/Stereo 버전의 차이
    "No Reply" mix한 것이 차이를 보인다.
    "Words Of Love"  스테레오버전이 모노버전보다 약9초정도가 짧다.
 


에피소드
레코딩 당초 전작 앨범에 이어 Ringo가 노래할 곡이 없었다. 거기에  John이  함부르크시절에 레파토리였었던  [Honey Don't]를 Ringo에게 부르게 하였으나 그는 가사를 잘 암기하지 못해 레코딩이 늦어져 레코딩 최종일에 겨우 완성되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스튜디오의 녹음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음에도 L.P에서의 3트랙은 단 1 take만에 녹음된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1964년 8월 14일에 비틀즈는 앨범에 수록할 다른 곡을 5 take까지 녹음 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수록되지 못했고 이후에도 역시나 remix되지도 못했다. 그 곡이 바로 "Leave My Kitten Alone"이다.
 

앨범소개

오리지널 8곡, 커버 6곡으로 구성, 초기 비틀즈의 성장을 여실히 나타내는 이 앨범의 매력은 보컬을 강조시키며 4인 (McCartney, Lennon, Harrison, Ringo)을 가장 가깝게 느끼도록 한 것이다.

HELP | Beatles Album 2004/10/12 17:21
 
발매일   1965년 8월 6일
                1987년 4월 30일(CD)

녹음일   영화 촬영중의 1965년 2월중순 - 6월 중순 (Total time   33:22)

영국앨범차트   진입일 : 1965년 8월 14일
                                        1965년 8월 14일부터 9주간 1위에 랭크(챠트에 37주간동안 랭크)
                                        1971년 7월 24일부터 2주간 (reached no.33)
                                        1987년 5월 9일부터 2주간 (CD release, reached no.61)


 
■ 판매상황   

영국에서 선주문 25만장이었고 발매 첫주에 27만장이 팔렸다. 총 100만장이 팔렸고, 전세계적으로 250만장 팔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발매후 곧장 "The Sound Of Music" 가 차지하고 있던 1위자리를 빼앗았지만 두달후 다시 1위를 내어주게 되었다.
 

자켓 디자인
    Robert Freeman이 촬영했지만 자세한 내용은 전해지지 않는다.
 

Mono/Stereo 버전의 차이
    "Help!" 둘다 같은 반주를 갖고 있지만, 보컬에서 차이를 보인다.
 

에피소드
이 앨범의 레코딩중 Paul의 Beatles 탈퇴설이 있었다. 그 이유는 [Yesterday]의  레코딩에 John, George,Ringo가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Rubber Soul | Beatles Album 2004/10/12 17:22

영국앨범차트   챠트진입일 : 11th December 1965년 12월 11일(42주간)
    1987년 5월 9일부터 4주간 (CD release, reached no.60)
    1998년 4월 25일부터 1주간 (No.62)

 
 판매량
    이 앨범은 50만장의 선주문이 있었고 영국에서 75만장 가량이 판매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3백만장 정도로추산되고 미국에서 발매된 앨범에는, 추후의 버전에서는 수록되었지만, 전곡이 수록되지 않고, 영국의"Help!"앨범에서 2곡을 수록했다.
 

 자켓 디자인
    커버에는 비틀즈의 이름이 인쇄되지 않았고, 사진은 Robert Freeman이 촬영했다.
 

 Mono/Stereo 버전의 차이
"What Goes On"  모노버전에서는 마지막 기타연주의 기타코드 부분이 빠져있다. 스테레오버전에는 모두 실렸다.
 

  MEMO   
    Rubber Soul이라는 타이틀은 Anthology 2의 첫번째 디스크에 수록된 I'm Down을 들어보면 연주가 끝난 후 폴이 Plastic Soul이라고 외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이건 "진짜 소울(흑인음악)이 아니다, 인공적으로 만든 흑인음악이다"는 의미인데, 반년 뒤에 플라스틱을 러버로 바꿔서 앨범의 타이틀로 쓴 것이다.
1965년 11월 4일의 이 앨범 세션동안에 비틀즈는 인스트루멘털곡인 "12-Bar Original"을 녹음했다.
이때쯤에는 EMI 스튜디오를 마음대로 쓸수 있었으므로 여유를 가지고 제작하였다.  Beatles의 라이벌 그룹인 비치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은 [이 앨범을 들고 평가가치가 높은 훌륭한 작품들이 꽉짜여있어 충격을 받았다. 이제부터 나도 싱글이 아닌 앨범을 사용해서 무엇인가를 표현하겠다] 라고 말했다.  보컬을 강조하고,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앨범소개

Beatles의 음악적 진보와 음악에 있어서 새로운 영역을 확보하게 해준 앨범으로 초기의 낭만적 순수성을 대변하는 작품이다. 조형적 멜로디를 통한 매혹적인 작곡 그리고 변화기에 찾아든 날카로운 의식등이 어우러져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예술적 이중주이다."(66년 1월, 워싱턴포스트지). 
Revolver | Beatles Album 2004/10/12 17:23
 

영국 발매일 : 1966년8월 5일


레코딩       : 1966년 4월 - 6월까지 10주동안 전례없이 오랫동안 녹음.


Poducer    : George Martin


Engineer   : Geoffrey Emerick


참가 Staff
                        이니루 왓구왓드 (인도인 뮤지션 : Tabra : A - 4)
                        Geoge Martin : (Back Chorus : A - 6, Piano : B - 1)
                        Mal Evans (Sound Effect : A - 6)
                        Nile Aspinal (Back Chorus : A - 6)
                        Patti Harrison (Geoge의 처. Back Chorus : A - 6)


히트상황
 영국의 Album Chart에서는 66년 8월 13일 첫등장. 10월 8일까지9주간 연속 1위를 독점. 통합 20주간 랭크됨.


에피소드
 [Revolver]란  Album Title은 Paul이 일본공연시숙소인 Hilton Hotel 에서 경비의 권총을 보고 생각해낸 것이다. 그외에 생각한  Album Title은 [Pendulum]-Paul, [Aftermath]-Ringo와 [Magical Circle] [Four Side To The circle] [Beatles On Safari] [After Geography][Abracadabra]등이다.

 

쟈켓 스토리
    66년도 그래미에서 쟈켓 디자인상 수상. 커버디자인은 비틀즈의 친구인 Klaus Voormann으로  세션 베이시스트이다. 뒷면은 의 Promotin Album 을 촬영하기 위해  EMI Studio에 모였을때 사진가인 Robert Whitaker가 찍은 것이다. 4인이 쓰고있는 안경은 65년 8월 미국공연때 구입한것이다.

 

MEMO
    [Rubber Soul]의 성공으로 자신을 깊이 생각한 Beatles는 본격적인 Studio Musician 으로 활동하기로 결정했다. [Rubber Soul]로 시험한  실험적 Sound를 발전시켜 Pop Music을 예술적 경지로 이끌었다. "이 앨범에는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진귀한 Sound가 있다. 지금까지 시험해보지 못한 것으로 연주를 흉내 내려고 해도 절대로 흉내 낼 수가 없다." 라고 Paul이 말하였다. 지금까지 Rock의 범주를 뛰어 넘어 혁명적인 새로운 Sound를 만들었으며 노래의 재재 범위를 정치풍속, 철학적 명상 등으로 확대하였다.

 

SOUND
     [Rubber Soul]의 연장선상의 앨범으로  이 두장을 듣고 비교해보면 [Rubber Soul]이  따뜻한 느낌을 내포한 것에 비하여 이 [Revolover]는 아주 차거운 느낌을 준다.

 

앨범소개

록역사상 가장 혁명적/실험적인 앨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 Beatles Album 2004/10/12 17:24

영국 발매일  :  1967년 6월 1일

레코딩        :  1966년 12月하순 - 1967년 4月상순까지 4개월간.  700시간 걸려 녹음.

레코딩 Staff
    Producer :  George Martin
    Engineer : Geoffery Emerick
                     (이 Album의 Engineering으로 1967년도 Gramy상에서 Best Engineer부분 최우수 상 수상)

참가 Staff
    George Martin (Piano A-4, B-3. Hamond Organ A-7. Hamonium B-6)
    Mal Evans     (Hamonica A-7. Piano B-6)
    Neil Aspinal  (Beatles의 Load Manager : Hamonica A-7)
    Paul Backmaster (영국의 명 Arranger : 챔발로 B-6)
    Sound Ingoprededo (영국의 Top group : sax B-4)

히트상황
    발매후  3개월간 전세계적으로 250만장이상 팔림. 1975년 8월말 현재 1100만장 돌파. Beatles Album중 [Abbey Road] 와 비슷한 기록. 영국에서 예약은 25만장.  Album Chart에서 1967년 6월 3일에 첫 등장하여  1위에 랭크. 10월 28일까지  22주간 연속 1위. 통산 43주간 랭크.[New Musical Express]지의 Single Chart까지 등장하여 전대미문의 쾌거를 기록. 미국 Album chart에서는 통산 149주간 랭크.  1967년 6월 24일에 8위로 첫 등장하여 다음주에는 1위. 10월 7일까지  15주간 연속 1위를 차지하였다. 6월 15일에 RIAA공식 Gold Disk 획득.
 
에피소드
    이 Album이 발매되었을때 New York Phil의 상임지휘자인 Leonard Bernstein은 극찬의 말을 했다.  "Beatles의 Sound는 Bach의 Fuga에 필적하는 美를 가졌다. 여러가지 의미로 볼때  그들은 금세기 최고의 작곡가이다. 금세기의 슈베르트나 헨델이라고 할수 있다." Beatles는 이  Album에 많은  Sound Mixing을 사용하였다. 최고의 걸작인 의 끝에 수록된 Sound는 18track으로 녹음하였다.  17track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인간의 귀에 이 소리는 마치 개소리처럼 들린다.
 
쟈켓 스토리
    1967년도 Gramy상에서 Best Album상 수상.  Beatles 최고걸작 쟈켓. 배경에 인물사진을 배치. 초기의 Beatles모습을 인형으로 배치하여 새로운 Beatles 탄생을 환영. 즉, 지난 모습을 손수 매장하고 새  Beatles를 선언. 언제나 Beatles의  모든  아이디어의 장본인인  Paul의 생각으로 유명인의 합성사진을 선택,  Beatles멤버 4명이 좋아하는 인물을 선정하였다.
 
MEMO
    새 앨범제작에 있어  자신감을 가지고 만든 완벽한  Total Album.  Paul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20세기 들어 출현한 대중음악 가운데 최고의 찬사를 받음과 동시에 아직까지도 살아 숨쉬는 전설로 이어지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에서 보여준 과도기적 실험성을 거쳐 대중음악의 한계에 도전한 Beatles의 극대화된 역량이 최고의 정점에 달해 음악으로 승화된 앨범이다.
 당시의 표현을 빌자면 "대중음악의 승리" 바로 그것이다. 숨김없는 사회고찰, 날카로운 현실비판, 인생에 대한 예리한 분석, 온화하게 전개되는 유우머속의 냉소, 그리고 허무가 깃들여진 미래의 영상등을 그려내고 있는 수록곡 들이 모두 하나의 개념과 줄거리로 이어지는 콘셉트(Concept) 형식을 밟고 있다.
특히 콘셉트 형식은 이 앨범이 자랑하는 핵심적 특징을 당시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그 놀라운 창의성에 경이를 느끼게 한다. 한편, 진보적 논리를 바탕으로 한 녹음기술의 전환기적 변혁을 가져왔고, 윤기있게 채색된 작곡법과 연주기법 등으로 Beatles의 놀라운 천재성을 다시 한번 입증시켰고, 이 앨범 이후로 대학에 대중음악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학과가 설립되어 대중음악에 예술적 의미를 부여하는 동기를 마련하는 등 이 앨범이 가져다준 사회적, 문화적, 교육적, 음악적 충격파는 실로 엄청났다.
Magical Mystery Tour | Beatles Album 2004/10/12 17:25

영국 발매일  :  1967년 12월 8일 (E.P 판)
 
레코딩 일시  :  A면은 동명영화의 촬영과 병행하여 1967.8.하순 - 10月.상순까지 녹음.
                           B면은 1966.12.상순 - 1967.10.중순까지 연속적으로 녹음하였다.
레코딩 Staff
               Producer  :  George Martin
               Engineer  :  Geoffery Emerick
 
참가 Staff
               Mal Evans      (탬버린 : B-2)
               George Martin  (피아노 : B-5)
               Mick Jagger (Rolling Stones의 lead Vocalist : Back Chorus : B-5)
               Keith Richards (Rollinf Stones의 Guitarlist : Back Chorus : B-5)
               Erick Clapton  (Back Chorus : B-5)
               Keith Moon     (The Who의 Drummer : Back Chorus : B-5)
               Graham Nash    (Back Chorus : B-5)
               Gary rees  (Oga Brothers의 member : Back Chorus : B-5)
               Patti Harrison (Back Chorus : B-5)
               Jane Asyer     (Paul의 애인 B-5)
               Marian Faithful (Back Chorus : B-5)
 
발매상황
영국 Single Chart에 1967.12.16.에 17위로 첫 등장하여 다음해 1968.1.13.에  1위에 올라 통산 10주간 랭크됨. 미국 Album Chart에는 1967.12.23에 157위에 첫등장하여 다음해 1968.1.16 - 2.24.까지 8주간 연속 1위, 통산 82주간 랭크되었다. 1967.12.15, RIAA 공인 Gold Disk 수상
   
에피소드                                                           
영국에서는 Sound Track 곡만 있는 E.P로 발매되었는데 레코딩 종료시 6곡을 더 수록했다. 발매 문제로 Album을 만들기에는 너무 곡이 적어  1장의  EP로 수록할수 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싱글판 3매를 한 Set로 발매했으나 여러 생각끝에 2장의 EP Set로 만들었다.
A면은 Sound Track곡, B면은 Single 히트곡을 수록하여 Album을 만듬. 미국에서는  영국 Sound Track판의  결점인 레코드를 일일이 뒤져 듣던것을 보완해  Sound Track곡만을 들을 수 있게 한쪽면에  수록했다. 반대편은  여기까지 mono로 들었으나, stereo로 수록했다. Capitol Record의 나쁜 상술이었다. EMI Record 에서는 오랫동안의 발매 요청으로 1976.10월에야 겨우 발매되었다
                                                        
MEMO
TV용 영화 [Magical Mystery Tour]의 Original Sound Track 판으로 음악적으로는 전작 Album인 [Sgt.- ]의 연장선상에 위치한다.< I Am The Walrus >, < Blue Jay Way >, < Flying >등, electric 기술을 구사한 두터운 Sound를 가진 작품이 많다. Psychedelic Animatism적 성격이 강한 영화 Sound Track이다.  전작보다 더 도약적이고 보다 Comic하게 만들었다. 시적인 면에서는 환상적이고 허속적인 , , 서정성이  뛰어난 은 걸작이다.
 
The Beatles(The White Album) | Beatles Album 2004/10/12 17:27

발매일   1968년 11월 20일
                1979년 1월 16일 (White Vinyl)
                1987년 8월 24일 (CD)
                1998년 11월 23일 (CD Special Edition)

영국앨범차트   진입일
                7th December 1968
                1968년 12월 7일부터 7주간 1위
                1969년 2월 1일부터 1주간 1위 (총 22주간 차트에 머무름)
                CD버전은 1987년 9월 5일부터 2주간 차트에 머무는데 최고 18위를 기록했다.
    
 
영국 발매일 : 1968년 11월 22일
           레코딩 : 인도에서 귀국후 68.5월하순에서 10월하순까지 4개월 반 동안 녹음.
 
 레코딩 스탭
    Poducer  : George Martin
    Engineer : 1) Jeff Emeric
                       2) Cris Thomas (Bad Finger, Roxy Music, Sex Pistols의 Poducer로 유명함)
                       3) Ken Scortt (Super Tramp의 Producer)
 
참가 Staff   1) Mal Evans (탬버린 A-2, 트럼펫 C-6)
                      2) Jackie Lomax (영국출신의 Vocalist, 손박자 A-2)
                      3) John (Paul과 함께 손박자 A-2)
                      4) Cris Thomas (Mellotron A-6, Harpsicord B-4)
                      5) Ono Yoko (John의 아내, Back Chorus A-6, C-1)
                      6) Eric Clapton (lead Guital A-7
                      7) Patti Harrison (Back Chorus C-1)
                      8) Georgy Martin (Electric Piano D-3, Harmonium D-4)
 
Hit 상황
   1) 영국 Album Chart에 1968年 11月30日에 3위로 첫등장하여 다음주에 1위에 올라  1969. 2. 15.까지 10주간 1위 독점.통산 21주간 랭크됨.
   2) 미국에는 12月14日 11위에 첫 등장하여 12月28日에서 이듬해 2月1日까지 또 2月15日  3月1日까지 모두 9주 간 1위. 통산 114주간 랭크. 68年 12月6日  RIAA공인 Gold Disk 수상
 
에피소드
    이 Album의 레코딩 Session으로 된 작품은 George의 [Not Guilty]( 79년 솔로앨범에 수록), Paul의  [Jubilee](Junk의 원곡), John의 [On the road to Marakesh] 등이다.
 
자켓 스토리
    자켓에 "The Beatles" 라는 문자를 나타낸것 외에는 어떤 인쇄도 없어 "White Album"으로 불리운다. Beatles 자켓 중 가장 간단하다. 전작의 자켓에서도 볼수없는 의외성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Album에는 레코드 번호외에 세계에서 하나 밖에 없는 고유번호가 찍혀있다.
 
 MEMO
    1) 이 Album은 [Sgt. -]까지의 의도적 시도에서 탈피했음을 보여준다. Concept 형식이 없다. Sound는 심벌이 더욱 풍부하여 음악 박람회적 앨범이다. 독특한 [Back  In The USSR],  칼립소풍의  [Ob-Ra-Di Ob-Ra-Da], Blues풍의 [Yer Blues][Happiness is] 바로크 풍의 [Black Bird][Mother Nature's Son] Contry풍의 [Rocky Raccon] [Don't Pass Me By], Music콩쿨의 [Revolution 9] 등 그들 4인의 개성이 발휘된 작품들이다.
    2) Sound 면에서는 [Back In The -]는 Beach Boys의 Chuck Bessy, [Yer Blues]에는 Blood Shade Blues,[Why Don't We -]에는 Rolling Stones화 했다.
    3) 시적인  면에서는  [Back In The -][The Continuing -][Honey Pie]에서는 미국적이고 [Glass Onion] 에서는 Beatles 자신, [Black Bird] [Piggies]에서는 인간적이고 [Sexy Sadie]에서는 마하리쉬 요기를 [Cry Baby Cry]에서는 영국황실을, [Revolution 1]에서는 폭력혁명 세력을 보여주었다.
 
 Sound
    이 Album에서는 Paul과 John 자신이 Produce를 하기 시작했다. 그 중 유명한 Hit 곡도 여러곡 탄생되었다. Member외에  여러 Session Man이 참가했다.  [Revolution 1] 의 Piano는 Nicky Hopkins, [While My -]의  기타는  George 대신 Eric Clapton이 연주하였다.  이 Album을 듣고 있으면 그들 4인이 각자 하고 싶었던 말을 확실히 알수있다.
    이  Album에는 특히 Paul의 곡이 많다.  [While My -] 는 George가, [Yer Blues]는 John이 각각 독점했다.  [Black Bird]는 cord를 사용않고 6도로치는 Count line과 Melody가 합해져  매우 아름답다. [Revolution]은  Contry적인 Melody line이다. Acoustic guital 소리가 매우 명쾌하다. Contry라고 말한것도 미국에는 없는 Sound이다.
    Scotland적이고 영국적인 Sound라고 느껴진다. 이 Album에서 느낀 특징은 생음악이 많다는 것이다. 시기적으로 생각해보아도  [Sgt. -]까지의 계산으로 볼때 옛 Sound와는 반대이다. Album의 Play는 어느것을 보아도 4인이 부르는 느낌이다. George Martin의 영향이 크다고 할수있다. [Revolver], [Sgt. -]등과 비교해 볼때 그들 자신의 Musician으로서의 음악성이 돋보였다. 즉 앞의 두 작품보다 음악가로서 모습이다.

 
THE BEATLES (White Album)

비틀즈의 섬광이 극치에 달한 명반 
Yellow Submarine | Beatles Album 2004/10/12 17:25

영국 발매일 : 1969년 1월 17일 발매

미국 발매일 : 1969년 1월 13일 발매
 
레코딩 일시 : 67년 6월 중순경 - 68년 2월까지
                         London Abbey Road Studio에서 녹음.
 
Poducer  : George Martin
 
■ 발매 상황  : 미국에서는  69년  2월에  Chart에 처음 등장하여 24주간 통산랭크되었으나 1위는 하지 못하고  2위 까지 올랐었다. 영국에서는 겨우  4위까지 올랐을 뿐이다. 이것은 Beatles의 Original Album중 가장 부진한 기록이다.
 
George의 곡 Only a Northern Song은 그가 단시간 내에 쓴곡으로 Beatles작품에 대한 자조적은 비판을 담고 있으며 나아가 그 내부에는 그들의 사심, 세력 이해관계등이 깔려있다고 한다.
 
이 앨범은 Beatles 멤버들이 Apple사의 설립과 사업구상으로 바쁘고 또 각자 단독적인 활동이 시작될 무렵에 녹음된것으로  그들이  별 애착을 가진것이 아니었기에  가장 저조한  평가를 받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Brian Epstein 에  의해  계약된 Project로써  United Artists에 3번째 Beatles 영화를 만들 의무가 있었기에  그들은 별로 내키지 않는 가운데 만화영화의 음악을 담당했다. Yellow Submarine은 66년 발표된  L.P.에서,[All You Need Is Love]는 67년 발표된 L.P. 에서 각각 발췌한 것으로 Beatles의 신곡은 4곡뿐이다.
 
Let It Be | Beatles Album 2004/10/12 17:27

영국 발매일  :  1970년 5월 8일 발매

미국 발매일  :  1970년 5월 18일 발매

레코딩        :  동명 영화의 촬영과 병행하여 1969.1월  2월 상순까지 녹음.

레코딩 Staff
                           Producer     :  George Martin, Phil Spector
                           Engineer     :  Gly Johns

참가 Staff
    Billy Preston (미국출신의 흑인 키보드 연주자) : 전기피아노 ( A-2.4.5.6 , B-1.2.5 )
    George Martin : 오르간 ( A-3 )
 
발매 상황
    Beatles 해산설의 화제와 더불어 미국에서는 예약으로만 370만매가 팔려 사상 최고기록을 수립하였다.  미국 Album Chart에는 1970.5.30.  104위로 처음 등장하여 6.13  7.4  4주연속 1위를 차지하였다.  통산 55주간 랭크. 70.5.26. RIAA 공인 Gold Disk 수상.  영국 Album Chart에는 1970.5.23. 3위로 처음 등장. 6.6  7.25  8주간 1위 자리를 지킴. 통산 25주간 랭크.
 
에피소드
    [THE BEATLES]에 이은 새로운 Album 제작 시작무렵 전자 음향기술을 피하여 자신들의 악기만을 사용한 Simple 한 Sound의  Album을 만들기를 원한  John이  다른 3인에게 [정직한 앨범]을 만들것을 제안, 그의 의도대로 마치 리허설 하는 것을 녹음해 놓은 듯한,  Documentary touch의 Live 형식의 Album이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Twickenham film studio가 황량하고 형편없어 Apple Studio로 옮겨 녹음을 끝냈다.  원래 Album title은 [Get Back] 이었으나 중도에 발표를 연기했다가 일년 반후에 재편집하여 [LET IT BE]로 title을 바꾸어 발표 하였다. 거의 30시간에 달하는 양의  Raw Tape을 하나의 Tape에 편집하여 Live  Recording 당시를 생생하고 박력있게 전한 Phil Spector의 Produce능력이 돋보인다.
 
MEMO 
    중기이후 써왔던 Dubbing 등의 Studio음향기술을 배제한 Simple한 Rock 색체의 사운드제작을 위해 노력하였다.  내용적으로 folk Rock 풍의 [Two of us], Blues style의[Dig a Pony][For you Blue], 민속풍의 [Maggie Mae] Gospel 풍의  [Let it be],   Rock Number  [Get back], Ballad 풍의 [The long and winding road], [Across the  Universe], 1950년대 소년시절 John 과 Paul의 공동작품인 Old Rock [One after 909]등 다채로운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1969년 녹음당시 Original recording Producer는 George Martin 이었으나 1970년 4월경 Phil Spector의 Remixing,  overdubbing에 의하여 앨범이 완성되었다.[Let it be]는 Original Single과  Phil Spector에 의해  재편집  된 곡이 후반부 코러스부분 one play차이로 single이 3분50초, 앨범수록 Let it be가 4분01초로 차이가 있다. [The long and winding - ]의 경우 코러스,  Harp, Strings 등이 가미되어  재편집되었는데  Paul은 그것에 대해 매우 불만스러운 의사를 표시하기도 했었다.

[Across the Universe]는 68년 녹음되어 세계야생동물보호 기금에 헌정한 것이나 1970년 3월 재편집당시 Back  Vocal, 새소리등이 삽입되었다. [I me mine] 은  Abbey Road Studio에서 녹음, [I'e got a - ] [One after 909] [Dig a Pony]는 Apple studio의 옥상에서 녹음한것을 재편집한 것이며 나머지곡들은  Apple studio 에서 녹음된 것이다.
 
Abbey Road | Beatles Album 2004/10/12 17:26

앨범 발매일
        영국 발매일 : 1969년  9월 26일
        미국 발매일 : 1969년 10월  1일

레코딩 일시   : 1969년 7월    8월에 걸쳐 녹음
 
레코딩 Staff
        Poducer      : George Martin
        Engineer     : Jeff Emeric , Phil McDonald , Alan Parsons
 
■ 발매 상황
매니저 Allen Klein의 능숙한 선전활동과 미국에서부터 번진 Paul의 사망설과 관련, 발매 초기부터 폭발적인 판매량을 기록하였다.  첫해 판매량만해도 500만장이며 이것은 [Sgt. -] 보다 200만장이나 많은 기록이다.   전세계적으로  75년까지 1300만장이 팔려 Beatles Album 중 최다판매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영국 Album Chart에  1969.10.4.에 첫등장하여 1위에 랭크. 1970.2.14.까지 19주간 1위 독점. 통산 35주간 랭크되었다. 미국에서는 1969.10.18.에 178위에 첫등장하여 11.1-12.20, 다음해 1.3-1.10. 통산 11주간 1위에 랭크.  통산랭크 주간은 87주이다.  1969.10.27. RIAA공인 Gold Record 선정.
 
에피소드
      이 앨범의 레코딩 세션으로 녹음된 작품은 John의 작품으로
     [Four Nights In Moscow],[When I Come To Town]이 있다.
 
자켓 스토리
  Paul의 사망설의 한가지 원인이 된 자켓사진이 유명하다. 횡단보도를 걷고있는 Beatles 멤버들을  Paul의 장례식행렬의 목사(John),장의사(Ringo),묘지의 인부(작업복차림의 George)로 보았음.  Paul이 맨발인것은 그가 죽은 사람임을 상징하는 것이며  Paul이  담배를 오른손에 쥐고있는 점도 지적되었다. 노상에 주차하고 있는 Volkswagen(Beetles)의 번호판 [IF28] 은 Paul의 나이 28세를 나타낸것이라는 소문이 떠돌았음.
 
MEMO
이 Album의 레코딩시기는 [Let it be] 레코딩시기 (69.1-2) 보다 늦다. 그러나 여러가지 문제로 인하여  [Let it be]가 70년 5월에 발표되어 final Album이 되었으나,[Abbey Road]가 실질적인 Beatles의 최후 작품인 것이다.
[White Album]이후 4인의 개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또하나의 Album으로 보고있다. 완성도가 높은 치밀한 구성, 아름다운 조화가 있는 반면 강한 개성의 경합이 돋보이는 걸작 Album이다. 서로가 지친 상태에서 그들의 왕국이 서서히 붕괴됨을 느끼며 만들어낸 Beatles 최후의 역작으로 하나의 작은 기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Side 1'은 종전형식대로 단독곡들이 수록되어있고 'Side 2' 는 전체적으로 메들리형식을 취하고 있다.  사운드 면에서는 신서사이저를 많이 도입했으며, 랩소디적인면, Musical 성격의 곡도 있고  Rock and Roll, Prograssive pop 등 다양한 면을 나타내고 있다.
 
ABBEY ROAD
 
섬세한 감성과 지성이 융화되어 완벽한 음악성이 빛나는 Beatles 최후의 거작 는 가장 Beatles다운 앨범이며 오늘날 "Pop 음악의  교과서"라고까지 인식되어지는 작품이다. 다시 한번 발휘된 그들 특유의 변화무쌍한 작곡법돠 연주 기법 등이 윤기있게 다듬어져 있어 전체적인 음악적 구조가 치밀한 논리적 전개로 채색되어 있어 듣는이를 전율의 도가니로 인도하고 있다.
이  앨범의 특징은 이후의 철학적, 사회적 주제의식에서 어느정도  벗어난, Beatles가 오로지 순수하게 음악에의 열정만을 가지고 만든 지극히 예술적인 앨범이라는 것이다.  Beatles의 수많은 걸작 중 회고의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으며 가장 윤기있는 앨범이라는  평과 함께 "음악적인 측면에서 를 능가할 작품은  없다."(미국, Rolling Stone지, 1978년)라는 견해가 일반적인 통념처럼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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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les 21세기에도 계속된다. 쭈욱~~~

http://www.youtube.com/watch?v=uPsRA6H0wZM&search=beatles

[MV] the beatles - free as a bird /real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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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atles - Real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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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les - Hey Bulld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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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 The Beatles - Come Together [Rare Promo vids CD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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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atles 1962-1966(The Red Album) | Beatles Album 2004/10/15 00:08
http://blog.naver.com/ajc0101/60006630678
 
 side1
 1. Love Me Do   
 2. Please Please Me  
 3. From Me To You
 4. She Loves You
 5. I Want To Hold Your Hand
 6. All My Loving
 7. Can't Buy Me Love
 
 Side 2          
 1. A Hard Day's Night
 2. And I Love Her
 3. Eight Days A Week
 4. I Feel Fine
 5. Ticket To Ride
 6. Yesterday
                              
 Side 3
 1. James Bond Theme (US only)
 2. Help!
 3. You've Got To Hide Your Love Away
 4. We Can Work It Out
 5. Day Tripper
 6. Drive My Car
 7. Norwegian Wood (This Bird Has Flown)

 Side 4
 1. Nowhere Man
 2. Michelle
 3. In My Life
 4. Girl
 5. Paperback Writer
 6. Eleanor Rigby
 7. Yellow Submarine
The Beatles 1967-1970(The Blue Album) | Beatles Album 2004/10/15 00:08
http://blog.naver.com/ajc0101/60006630666
 
 Side 1
 1. Strawberry Fields
 2. Penny Lane
 3.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4.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
 5.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6. A Day In The Life
 7. All You Need Is Love
 
 Side 2
 1. I Am The Walrus
 2. Hello Goodbye
 3. The Fool On The Hill
 4. Magical Mystery Tour
 5. Lady Madonna
 6. Hey Jude
 7. Revolution
 
 Side 3
 1. Back In The U.S.S.R.
 2.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3. Ob-La-Di, Ob-La-Da
 4. Get Back
 5. Don't Let Me Down
 6. The Ballad Of John and Yoko
 7. Old Brown Shoe
 
 Side 4
 1. Here Comes The Sun
 2. Come Together
 3. Something
 4. Octopus's Garden
 5. Let It Be
 6. Across The Universe
 7. The Long And Winding Road
Live At The B.B.C | Beatles Album 2004/10/15 00:06
http://blog.naver.com/ajc0101/60006630633

제목 그대로 영국의 BBC 방송국과 APPLE 레코드사 GEORGE MARTIN의 허가와 지원하에, 수록 편집은 직접 조지 마틴이 맡아 한 이 앨범은  크리스마스를 위한 선물로 나오게 된 기념음반이다. 사실 이런 공식적인 협조하의 라이브는 처음 발매되는 셈인데 BBC 방송 출연시의 라이브라 관중의 수음없는 방송국 특유의 사운드를 접할 수 있다. 두장의 CD상에는 모두 69개의 트랙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BEATLES GREETINGS', JUST A RUMOUR', '1822'등은 그들의 대화 또는 BBC의 DJ인 BRIAN MATTHEW, ALAN FREEMAN등과의 인터뷰를 담은것에 제목을 붙인 것이다. 따라서 130분간 총 56곡의 노래가 선보이는데 약 30여곡은 전혀 스튜디오 앨범에는 수록되지 않았던 곡들로, 비틀즈가 1963년 이전 리버플과 함부르크 클럽 라이브시 연주했던 ROCK'N ROLL의 고전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존과 폴의 희귀곡인 I'LL BE ON MY WAY'는 원래 BILLY J. KRAMER에게 줬던 곡으로 그의 데뷔 싱글 DO YOU WANT TO KNOW A SECRET' B면에 수록됐던 곡이다.
사실 이 앨범은 요즘 팬들에게는 별로 흥미를 끌지 못할 요소가 많다. 사운드도 MONO인데다 주로 그야말로 옛날 노래 위주이고 로큰롤에 로커빌리 일색 인데다가 그 흔한 YESTERDAY'나 HEY JUDE'는 커녕 I WANT TO HOLD YOUR HAND'정도도 없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바로 귀중한 역사이다. 비틀즈의 팬이라면 입이 벌어질 귀중한 선곡이자 대화가 들어있는 필구매의 소중한 선물일 것이다. ELVIS PRESLEY의 첫 싱글 THAT'S ALL RIGHT MAMA'를 비롯해 I GOT A WOMAN', 'FORGOT TO REMEMBER TO FORGOT'은 엘비스의 곡이고, 역시 로큰롤의 대부 척 베리의 곡은 'TOO MUCH MONKEY BUSINESS', 'CAROL', ROLL OVER VEETHOVEN', 'SWEET LITTLE SIXTEEN'이 연주됐으며 그밖에 CARL PARKINS의 HONEY DON'T', COASTERS의 YOUNG BLOOD', MARMALADE의 SOME OTHER GUY', MARY HOPKIN의 THE HONEYMOON SONG', 그리고 비틀즈가 초창기에 좋아했거나 영향받았던 곡들과 그들의 로큰롤 레퍼토리가 연주되는 귀중한 방송 실황, 초기의 HOLLIES, HERMANS HERMITS, BUDDY HOLLY등의 음악과도 비견되는 초기의 비틀즈 사운드가 있다.

 

Anthology 1 | Beatles Album 2004/10/15 00:05
http://blog.naver.com/ajc0101/60006630609
 
무명시절부터 비틀매니어 시절까지의 시기를 해부한 비틀즈의 역사 제1탄!
Quarry Men 시절에 제작한 최초의 싱글 That'll Be The Day/In Spite Of All The Danger... Tony Sheridan의 백밴드로 제작한 My Bonnie, Ain't She Sweet...
Decca사와의 오디션에서 연주한 Three Cool Cats, The Shiek Of Araby, Like Dreamers Do, Hello Little Girl... EMI사와 오디션 트랙 Love Me Do, Besame Mucho...
프로듀서 Martin의 강력한 권유로 어쩔 수 없이 녹음한 How Do You Do It...
John의 유명한 멘트로 아직까지 팬들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Royal Command Performance 공연...
The Morecambe And Wise Show...
그리고 보너스로 수록된 John의 미완성곡, Free As A Bird... 신화의 탄생과정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자료들로 가득한 앨범!

 

Anthology 2 | Beatles Album 2004/10/15 00:05
http://blog.naver.com/ajc0101/60006630601
 
Fab Four의 창의성이 절정에 다르고 있던 Help! 시절부터 Magical Mystery Tour 시절까지를 다룬 Anthology 2탄! 명곡 Yesterday의 탄생과정... 앨범 Rubber Soul, Revolver의 녹음세션, Sgt. Pepper 세션, Strawberry Fields Forever의 어쿠스틱 버젼, Magical Mystery Tour, 그리고 John의 Real Love... 이 앨범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말 그대로 Magical Mystery Tour!
 
Anthology 3 | Beatles Album 2004/10/15 00:04
http://blog.naver.com/ajc0101/60006630590

약간의 눈발이 흩날리던 69년 1월 30일 낮 12시 무렵, 영국 런던 중심가 새빌로 거리의 한 건물 옥상에 4명의 젊은이가 나타났다. 뒤이어 귀에 익은 목소리와 연주가 흘러나왔고, 때마침 점심시간을 맞은 인근 직장여성들이 이들을 보기 위해 한꺼번에 몰려나와 삽시간에 인산인해가 됐다. 도심에서 소음을 내고 교통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의해 40분만에 제지됐던 이 소동이 그 유명한 비틀즈의 '루프톱 세션'(옥상연주)이다. 

이 광경은 비틀즈가 출연한 마지막 영화 "Let It Be"에 그대로 삽입됐다. 이는 네명의 멤버가 벌인 마지막 연주가 됐고, 지금도 당시의 현장을 둘러보는 관광상품이 개발돼 있을 정도로 팝 음악의 역사에 남은 명연중의 하나다. 

 The Beatles Anthology 3 편에서는 비틀즈의 마지막 곡 <겟 백>을 옥상연주의 실황 그대로 들을 수 있다. 이 곡은 경찰이 출동하자 불안을 느낀 폴 맥카트니가 마지막 부분을 애드립으로 처리했고, 존 레논과  조지 해리슨의 앰프가 아주 짧은시간 고장을 일으키는 바람에 완벽하게 연주되지는 못했다. 귀가 예민한 사람이면 이를 알아차릴 수 있는데, 정규 앨범에 수록돼 있는 곡과 비교해 들으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The Beatles Anthology 3」편에는 <겟 백>을 포함, 68년부터 1970년사이 '화이트 앨범'이란 별칭으로 더 널리 알려진 「The Beatles」「Abbey Road」「Let It Be」를 발표하던 후기 비틀즈의 녹음중 50곡이 더블 CD에 담겨있다. 

 수록곡 중에는 지금까지 미공개 상태로 남아있던 곡들이 몇곡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화이트 앨범에 수록하기 위해 녹음했다가 다른 곡들에 밀려 빠지게 된 연주시간 6분의 <화츠 더 뉴 메어리 제인>은 존 레논의 낭랑한 목소리가 갖가지 음향효과와 어우러져 상당히 아방가르드적인 느낌을 준다. 이밖에 <렛 잇 비>와 <컴 투게더>의 최초 녹음(퍼스트 테이프), 존 레논과 폴 맥카트니의 대화가 삽입된 <헤이 주드>, 에릭 클랩튼의 도움없이 조지 해리슨만의 리드 기타로 녹음한 <화일 마이 기타 젠틀리 윕스> 등 이미 발표된 것과는 다른 버젼들이 수록되었다. 

95년 11월부터 잇따라 발표된 「The Beatles Anthology」 시리즈는 지금은 전설이 된 비틀즈의 궤적을 연대기 형식으로 정리한 것으로 이번 3편이 완결편 이다. 특히 1,2편에서는 존 레논이 생전에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해 둔 노래에 나머지 멤버들이 반주를 입힌 <프리 애즈 어 버드>와 <리얼 러브>가 25년만의 신곡으로 발표돼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The Beatles Anthology」 시리즈의 지금까지의 판매량은 모두 1천 3백만장에 이르고, 덩달아 기존 음반도 6백만장이 추가로 판매된 것으로 집계돼 세대를 뛰어넘는 달러 메이커로서 비틀즈의 명성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Free As A Bird 
  *Speech : John Lennon
*That'll Be The Day
*In Spite Of All The Danger 
  *Speech : Paul McCartney
*Hallelujah, I Love Her So
*You'll Be Mine
*Cayenne 
  *Speech : Paul McCartney
*My Bonnie
*Ain't She Sweet
*Cry For A Shadow 
  *Speech : John Lennon 
  *Speech : Brian Epstein
*Searchin'
*Three Cool Cats
*The Sheik Of Araby
*Like DreamersDo
*Hello Little Girl 
  *Speech : Brian Epstein

*Besame Mucho
*Love Me Do
*How Do You Do It
*Please Please Me
*One After 909 (Sequence)
*One After 909
*Lend Me Your Comb
*I'll Get You 
  *Speech : John Lennon
*I Saw Her Standing There
*From Me To You
*Money (That's What I Want)
*You Really Got A Hold On Me
*I Saw Her Standing There
*She Loves You
*Till There Was You
*Twist And Shout
*This Boy
*I Want To Hold Your Hand
*Scene from "The Morecambe and Wise Show" *Moonlight Bay
*Can't Buy Me Love
*All My Loving
*You Can't Do That
*And I Love Her
*A Hard Day's Night
*I Wanna Be Your Man
*Long Tall Sally
*Boys
*Shout
*I'll Be Back (Take 2)
*I'll Be Back (Take 3)
*You Know What To Do
*No Reply (Demo)
*Mr. Moonlight
*Leave My Kitten Alone
*No Reply
*Eight Days A Week (Sequence)
*Eight Days A Week (Complete)
*Kansas City/Hey-Hey-Hey-Hey
*Yes It Is
*I'm Down
*You've Got To Hide Your Love Away
*If You've Got Trouble
*That Means A Lot
*Yesterday
*It's Only Love
*I Feel Fine
*Ticket To Ride
*Yesterday
*Help!
*Everybody's Trying To Be My Baby

*Norwegian Wood (This Bird Has Flown)
*I'm Looking Through You
*12-Bar Original Tomorrow Never Knows
*Got To Get You Into My Life
*And Your Bird Can Sing
*Taxman
*Eleanor Rigby (Strings Only)
*I'm Only Sleeping (Rehearsal)
*I'm Only Sleeping (Take 1)
*Rock And Roll Music
*She's A Woman
*Strawberry Fields Forever (Demo Sequence)

*Strawberry Fields Forever (Take 1)
*Strawberry Fields Forever (Take 7 & Edit Piece)

*Penny Lane
*A Day In The Life
*Good Morning Good Morning
*Only A Northern Song
*Being For The Benefit Of Mr. Kite! (Takes 1 and 2)
*Being For The Benefit Of Mr. Kite! (Take 7)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Within You Without You (Instrumental)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Reprise)
*You Know My Name (Look Up The Number)
*I Am The Walrus
*The Fool On The Hill (Demo)
*Your Mother Should Know
*The Fool On The Hill (Take 4)
*Hello, Goodbye
*Lady Madonna
*Across The Universe
*Happiness Is A Warm Gun (Lennon/McCartney)
*Helter Skelter ( Lennon/McCartney )
*Mean Mr. Mustard ( Lennon/McCartney )
*Polythene Pam( Lennon/McCartney )
*Glass Onion ( Lennon/McCartney )
*Junk (McCartney)
*Piggies (Harrison)
*Honey Pie(Lennon/McCartney)Don't Pass Me By ( Starkey )
*Ob-La-Di, Ob-La-Da (Lennon/McCartney)
*Good Night (Lennon/McCartney)
*Cry Baby Cry (Lennon/McCartney)
*Blackbird (Lennon/McCartney)
*Sexy Sadie (Lennon/McCartney)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Harrison )
*Hey Jude (Lennon/McCartney)
*Not Guilty (Harrison )
*Mother Nature's Son (Lennon/McCartney)
*Glass Onion (Lennon/McCartney)
*Rocky Raccoon (Lennon/McCartney)
*What's The New Mary Jane (Lennon/McCartney)
*Step Inside Love/Los Paranoias (Lennon/McCartney/Harrison/Starkey )
*I'm So Tired(Lennon/McCartney)
*I Will(Lennon/McCartney)
*Why Don't We Do It In The Road (Lennon/McCartney)
*Julia(Lennon/McCartney)
*I've Got A Feeling(Lennon/McCartney)
*She Came In Through The Bathroom Window(Lennon/McCartney)
*Dig A Pony(Lennon/McCartney)
*Two Of Us (Lennon/McCartney)
*For You Blue(Harrison )Teddy Boy (McCartney)
*Rip It Up/Shake, Rattle And Roll/Blue Suede Shoes(Blackwell/Marascalco/Calhoun/Perkins)
*The Long And Winding Road (Lennon/McCartney)
*Oh! Darling(Harrison)
*All Things Must Pass (Roberts/Katz/Clayton )
*Mailman, Bring Me No More Blues (Lennon/McCartney)
*Get Back (HaLennon/McCartney )
*Old Brown Shoe (Harrison)
*Octopus's Garden (Starkey )
*Maxwell's Silver Hammer (Lennon/McCartney)
*Something (Harrison)
*Come Together (Lennon/McCartney)
*Come And Get It (McCartney)
*Ain't She Sweet (Ager/Yellen )
*Because (Lennon/McCartney)
*Let It Be (Lennon/McCartney)
*I Me Mine (Harrison)
*The End (Lennon/McCartney)
 
 
 
The Beatles 1 | Beatles Album 2004/10/13 10:18
http://blog.naver.com/ajc0101/60006584981

비틀즈는 약 8년간 활동하면서 빌보드 앨범 차트에 14장의 앨범을 정상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싱글은 'I Wanna Hold Your Hand'부터 'The Long And Winding Road'에 이르기까지 무려 20곡이나 1위에올려놓았다.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비틀즈의 베스트 앨범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나왔다. 그 중에서 유명한 것이 붉은 색 재킷에 [1962-1966]이라 명명된 초기 베스트를 모은 더블 앨범과 푸른 재킷에 [1967-1970]이라 는 타이틀이 붙은 후기 베스트를 모은 더블 앨범이 그것이다. 전자는 빌보드 차트 3위를 기록했고, 후자는 1위를 기록해 비틀즈의 위용을 새삼 떨쳤다.

 

이 비틀즈 [1]은 아마도 비틀즈 베스트 앨범의 백미 중의 백미일 것이다. 사실 많은 아티스트들의 베스트 앨범이 있어왔지만 비틀즈의 이번 앨범과 같은 베스트 앨범을만든 적은 없었다.

앞서 말했듯이 머라이어 캐리가 차트 1위곡 위주로 베스트 앨범을 꾸미긴 했지만 그것은 비틀즈의 이 앨범에 비하면 함량 미달이 아닐 수 없다. 세상 그 어떤 뮤지션이 이렇게 강력한 베스트 앨범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비틀즈의 넘버 원 싱글은 미국에서 20곡이지만 UK 차트와 합치면 27곡이 넘는다. 수록곡은 1964년 5월에 미국에서 1위를 차지했던 'Love Me Do'로 시작해서 1970년 6월에 마지막으로 1위를 차지했던 'The Long And Winding Road'로 끝난다.

 

이 베스트 앨범은 CD의 한계 시간이 80분에 가까운 79분 12초의 러닝 타임을 가지고 있다. 이 시간에는 27곡 밖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다른 넘버 원 곡인 'Please Please Me'와 같은 싱글은 실리지도 못했다.

 

그래서 이 앨범은 그냥 때가 되어 나온 그저 그런 베스트 앨범이라기보다는 아직도 비틀즈를 넘어서는 밴드가 없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자료인 셈이다. 그리고 새로 시작한 밀레니엄에도 당분간 이런 기록을 만들 수 있는 뮤지션이 있으랴 하는 의미심장한 거만함(?)까지 느껴지는 앨범인 것이다. 알찬 앨범이라는 말을 가끔 쓰지만 이것은 그 정도를 넘어선 꽉 찬 완벽한 앨범인 것이다.

 

Love Me Do

From Me To You

She Loves You

I Want To Hold Your Hand

Cant Buy Me Love

A Hard Days Night

I Feel Fine

Eight Days A Week

Ticket To Ride

Help

Yesterday

Day Tripper

We Can Work It Out

Paperback Writer

Yellow Submarine

Eleanor Rigby

Penny Lane

All You Need Is Love

Hello, Good-Bye

Lady Madonna

Hey Jude

Get Back

The Ballard Of John & Yoko

Something

Come Together

Let It Be

The Long And Winding Road

 

 

 

The Capitol Albums Vol.1 (Box)  




가수/연주자별 커뮤니티
음반사: Capitol
기획사: EMI
가수: Beatles
제조국가: EU
발매일: 2004-11-16
판매가격: 68,500원
마일리지: 685원
시디갯수: 4 CD
상품코드: ◎B2486

 

 

 

 

자켓사진 - 음악창고
Beatles, The / White Album - 30th Anniversary Limited Edition

제작사 : EMI
발행일 : 1998
장르 : Rock / Metal
형태 : 2 CD
제조국가 : EU
수입품
 
    
Wish List
LP 자켓 디자인의 4명 맴버 사진 포함된 CD

Yello Submarine - Songtrack | Beatles Album 2004/10/13 09:18
http://blog.naver.com/ajc0101/60006583637

1999년 8월 30일, 비틀즈의 고향인 영국 리버풀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새로운 YELLOW SUBMARINE 앨범 발매에 앞서 행해진 '노란 잠수함의 날(Yellow Submarine Day)'의 행사는 40여개국에서 몰려든 15만 명의 팬들과 각종 매체의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루었으며, 행사장의 무대는 물론 모든 클럽과 레스토랑 등에서는 수많은 밴드들이 비틀즈의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행사의 클라이맥스는 새롭게 리믹스된 영화 '노란 잠수함'의 상영이었다.


비틀즈의 멤버 네 명이 희화되어 카메오로 등장하기도 한 이 애니메이션은 비틀즈가 관여한 모든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통틀어 가장 높은 예술적 평가를 받았음은 물론, 환각적인 내용과 혁신적인 스타일로 인해 당시 정점을 이루고 있던 사이키델릭 문화의 멋진 산물로서 기록되었던 작품이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라 할 만한 이 작품의 대담한 스타일은 이후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나 등 기존 만화의 틀을 깨는 성인 대상의 애니메이션 작품들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1968년 7월 런던에서 개봉된 이래 법적인 문제로 공개되지 않았던 영화가 정확히 31년만에 새 옷을 입고 빛을 보게 되었다는 사실은 수많은 비틀 마니아들과 애니메이션 팬들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의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가장 즐거운 소식은 역시 새로운 앨범 YELLOW SUBMARINE SONGTRACK의 발매라 할 수 있다.


세 장의 ANTHOLOGY 시리즈로 비틀즈의 숨겨진 음악에 목말라 하던 팬들의 갈증은 어느 정도 해소된 것처럼 보였지만 한 가지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것은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당연한 바람이요 또 불만이기도 했다. 다른 많은 슈퍼 그룹/아티스트들의 앨범들이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더 나은, 풍성한 음질로 팬들을 즐겁게 하고 있는데 왜 유독 비틀즈의 작품들만 CD가 대중화되기도 전인 10여년 전에 발매된 이래 진보가 없는 걸까?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가 새로운 라이너노트와 여러 사진들을 포함한 만족할만한 부클릿으로 재발매되고 THE BEATLES(WHITE ALBUM)가 발매 30주년 기념으로 오리지널 LP 재킷 모양으로 등장했지만 그 사운드에 기술적인 손질이 가해진 것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SONGTRACK'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발매되는 앨범이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앨범에 수록된 곡들의 타이틀만을 보면 비틀즈의 중반기 히트곡 모음집 정도로 여겨지지만, 이 앨범이 ANTHOLOGY나 다른 형태의 편집 앨범들과 차별되는 가장 큰 이유는 영화에 사용된 모든 곡들이 포함되었다는 사실 외에, 바로 첨단의 디지털 음향 기술이 동원된 최초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디지털 리마스터링 과정을 거친 CD들과는 달리 이 앨범은 마스터 테이프의 미세한 잡음의 제거와 음량의 조정이라는 기본 작업은 물론 보컬과 연주, 스트링 섹션 등의 트랙을 모두 스테레오로 분리함으로써 어떤 리마스터 앨범들보다 나은 음질을 담고 있다. 예컨대 이 앨범에 수록된 비틀즈의 작품 이상의 완벽한 사운드는 나올 수 없다는 뜻이 된다.


물론 이러한 작업들은 영화의 재개봉을 위한 극장용 프린트와 차세대 영상 매체인 DVD(Digital Video Disc)를 위해 새롭게 손질하고 복원하며 필수적으로 거쳐야 했던 과정이기도 하다.


1969년에 발매된 YELLOW SUBMARINE에는 비틀즈의 곡이 (LP A면에만)이전의 앨범들에 수록되었던 2곡을 포함하여 단 6곡만이 수록되어 있으며 나머지는 그들의 프로듀서인 조지 마틴(George Martin)이 작곡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이루어진 스코어 7곡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는 애초에 레코드사의 상업적인 의도하에 기획된 것이었고,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이 앨범을 비틀즈의 정규 앨범으로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또한사실이다.


Pepperland나 Sea of time과 같은, 조지 마틴의 재능과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인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여하튼 새로이 발매된 앨범에는 Yellow submarine과 All together now, All you need is love 등 오리지널 앨범에 수록된 6곡을 비롯하여 Eleanor Rigby,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When I'm sixty four, Nowhere man, Love you to 등 RUBBER SOUL('65)과 REVOLVER('66),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67), MAGICAL MYSTERY TOUR('67)에 수록되었던 곡들이 고루 담겨져 있다.


중기 비틀즈를 거론하는 데 빠질 수 없는 15곡을 최상의 음질로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은 비틀즈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더할 수 없는 즐거움일 것이다. 그리고 그 즐거움에는 한 가지가 더해진다. 이 앨범의 발매를 필두로 비틀즈의 다른 모든 앨범들의 리마스터링을 기대할 수 있다는 즐거움 말이다.

 

Yellow Submarine       
Hey Bulldog       
Eleanor Rigby       
Love You To       
All Together Now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Think For Yourself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       
Baby You´re A Rich Man       
Only A Northern Song       
All You Need Is Love       
When I´m Sixty Four       
Nowhere Man       
It´s All Too Much

Let It Be...Naked | Beatles Album 2004/10/12 16:02
http://blog.naver.com/ajc0101/60006566000
 
'모든 것을 다 이루고 다 해보고 나면 순수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듯이 30곡이나 들어간 옴니버스형의 대작 "The Beatles(White Album)"을 내놓은 1968년 말 비틀스는 초기의 밴드시절을 재현하는 풋풋한 성격의 앨범을 만들고자 했다. 게다가 그들은 1966년 8월 이후 전혀 공연을 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콘서트 실황과 관련된 생생한 앨범을 원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 기획은 밴드 리허설을 그대로 담아 TV 프로로 방영하고 동시에 사운드트랙 앨범을 선보이는 형식의 병행 프로젝트로 발전되었다.
하지만 트위큰햄 필름 스튜디오에서의 작업은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여러 곡(이 중에는 훗날 "Abbey Road" 앨범과 멤버들의 솔로 앨범에 수록된 곡들도 있었다)을 낭송하는 수준의 리허설이 진행됐지만 런던의 추운 날씨와 멤버들의 의견차 등 여러 장애요인으로 인해 애초의 의도가 실현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조지 해리슨이 먼저 불만을 제기하며 이 세션에서 이탈했다.
비틀스는 트위큰햄 스튜디오를 떠나 막 완공된 애플 스튜디오 지하로 돌아와 애초 생각한 대로 테이프루핑, 오버더빙, 프로듀싱 기술 등이 전혀 없는 '무가공' 앨범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일체의 포장 없이 라이브 실황과 그 과정을 그대로 담는, 이른바 백 투 베이직(back to basics) 앨범이 목표였다. 그들은 '날 것'(raw thing)을 원했다. 존 레논은 노골적으로 프로듀서 조지 마틴(George Martin)의 배제를 천명했다("이번 앨범의 경우는 당신의 프로덕션, 보이스 더빙, 그리고 어떤 편집도 원하지 않아!"). 방향도 처음 기획했던 TV 프로젝트에서 '피처 필름'으로 돌렸다. 이때까지 그 영화와 앨범의 가제는 'Get Back'이었다.
중도에 키보드 연주자 빌리 프레스턴(Billy Preston)이 게스트 뮤지션으로 가세하면서 세션은 활기를 띠었고 명 엔지니어 글린 존스가 중심에 서서 세션 데모를 제작했다. 와중인 69년 1월, 기획한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이룬, 애플 옥상에서의 라이브 연주가 있었다. 비틀스 멤버들은 옥상에서 라이브로 할 수 없었던 몇몇 곡들, 예를 들면 'Let It Be' 'The Long And Winding Road' 'Across The Universe' 등의 녹음을 해서 일단 앨범 콘텐츠는 거의 완성을 보았다. 영화작업은 그런대로 잘 진행되었다.
글린 존스는 우리가 알고 있는 앨범의 레퍼토리에 'Rocker' 'Save The Last Dance For Me' 'Teddy boy'가 포함된 트랙 리스트의 테이프를 제출했다. 비틀스는 만족하지 않았음은 물론 진행 중인 'Get Back' 작업을 일단 접고 대신 전혀 다른 새 앨범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것이 "Abbey Road"였다. 따라서 기획시점으로 보면 "Abbey Road"가 비틀스의 마지막 앨범이 된다.
"Abbey Road"가 69년 9월에 발표되고 해를 넘겨 글린 존스는 다시 'Get Back' 앨범을 정리해 비틀스에 제출했지만 이번에도 반응은 시큰둥했다. 70년 3월, 그 앨범을 다시 프로듀스한다는 차원에서 명망 높은 프로듀서 필 스펙터(Phil Spector)가 초청되었다. 공개를 앞둔 영화에 동반된 앨범이 요구되었기 때문이었다.
필 스펙터는 문제의 3곡 'The Long And Winding Road' 'Across The Universe' 'Let It Be'를 오케스트레이션과 코러스 더빙을 통해 웅장한 버전으로 리믹스했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하프, 트럼펫, 트롬본 연주자와 코러스 싱어들이 대거 동원되었다.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는 그 결과에 만족하긴 했지만 그것은 애초 날 것을 만들고자 했던 기획과는 거리가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70년 4월 비틀스의 충격적인 해산소식이 발표되었고 다음달 8일 16개월의 산전수전을 겪은 끝에 사실상 그룹 최후 작품이 된 앨범이 마침내 공개되었다. 앨범 타이틀도 어느덧 'Get back'에서 'Let It Be'로 바뀌었다. 5일 뒤 영화시사회가 뉴욕에서 개최되었지만 뿔뿔이 흩어진 비틀스 멤버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차트에서는 앨범의 타이틀곡이자 폴이 주도한 곡 'Let It Be'와 비틀스로부터의 독립에 이를 악문 존의 솔로 싱글 'Instant Karma' 간의 인기경쟁이 불을 뿜었다. 70년 5월, 앨범의 두 번째 싱글이자 비틀스의 마지막 싱글이 된 'The Long And Winding Road/ For You Blue'가 발표되었고 그와 함께 비틀스의 이름은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비틀스의 역사적인 "Let It Be" 앨범이 나온 지 32년이 흐른 2002년 2월 폴 매카트니와 당시 영화작업을 지휘한 마이클 린제이 호그(Michael Linsay-Hogg)는 우연히 비행기에 동승하여 둘 모두 결코 잊을 수 없는 "Let It Be"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두 사람은 과거를 회상하면서 엄청난 산고(産苦)를 겪으면서 불가피하게 결과가 변형되었던 그 문제의 앨범을 '원래대로 되돌리자'는데 합의했다. 즉 68년 12월과 69년 1월 비틀스가 꿈꾸었던 '백 투 배이직'의 의도를 회복시키자는 것이었다.
엔지니어 알란 로즈, 폴 힉스, 가이 매세이 세 사람은 애플 스튜디오에 보관된 그 프로젝트의 33개 릴 테이프를 찾아내 18개월 간 원형복구 작업에 매달렸다. 먼저 필 스펙터에 의해 덧입혀진 오케스트레이션, 코러스 그리고 갖가지 효과를 걷어냈고 (그래서 앨범 타이틀이 벗겨낸다는 의미의 'Naked'이다), 그리고 난 뒤 거기에 현대의 디지털 기술을 가했다.
애초 기획의 포인트였던 순수성을 탈환(?)하는 동시에 지금의 음반수요자들도 (옛 것을 듣는다는 수고 없이) 만족스럽게 들을 수 있는 '명징한' 사운드를 위해서였다. 그것은 '과거의 오리지널리티'와 '현대적 음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번 새 앨범은 우리가 알고 있는 "Let It Be" 앨범과는 형식과 질에 있어서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달라진 것은 다음과 같다.

 

'The Long And Winding Road'는 "Let It Be" 앨범에 수록된 버전과는 전혀 다른 초기 테이크를 담았다. 비틀스가 초기 기획단계에서 원했던 완벽한 '날 것'인 셈이다.


'Let It Be'와 'Across The Universe'는 필 스펙터에 의해 덧입혀진 오케스트레이션과 코러스를 걷어내 오리지널 상태를 구현했다. 


수록곡도 달라 원 앨범의 'Dig It'과 전통 민요를 그들 식으로 처리해낸 곡 'Maggie Mae'를 빼고, 대신 거기에 미국 판 앨범 "Hey Jude"에는 수록했으나 캐피틀 앨범에는 없는 곡 'Don't Let Me Down'를 넣었다. 그러나 이 곡 또한 오리지널과는 다르다.


오리지널 앨범에 수록된 몇몇 곡 앞에 삽입된 리허설 라이브 멘트를 모두 뺐다. 대신 그들 의도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 리허설과 '메이킹' 과정은 'Fly On The Wall'이란 제목으로 별도의 23분짜리 CD 한 장으로 엮어 과거의 것보다 훨씬 생생하고 자세하며 그간 알려지지 않은 내용의 단편을 소개하고 있다.


수록곡의 순서도 바뀌었다. 원 앨범은 'Two Of Us'로 시작해서 'Get Back'으로 끝을 맺는다. 그것은 동반된 영화에 나오는 노래들을 순서로 엮은 것이었으나 이번 앨범은 69년 기획 이후 녹음한 순서대로 재편집했다. 당연히 앨범의 포문을 여는 곡은 당시 작업 타이틀이었던 'Get Back'이며 마침표를 찍는 곡은 'Let It Be'이다.

 

이번 앨범은 결코 향수와 복고 정서에 의존한 재발매나 통상적인 리마스트링 앨범이 아니다. 변이가 어쩔 수 없었던 70년 앨범이 남긴 아쉬움의 앙금을 뒤늦게라도 지우고 '기획초기'의 의중을 되찾기 위한 앨범이다. 진정한 "Let It Be" 기획 정신의 회복이다. 폴 매카트니와 링고 스타는 이를 통해 이미 세상에 없는 존 레논과 조지 해리슨을 향해 '그때 우리가 정말로 꿈꾸었던 것'을 바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중에게 선사하기 이전에 '비틀 동지' 존과 조지 두 사람의 영전 앞에 놓는 늦깎이 선물이라고 할까.
앨범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흩어졌던 네 사람이 비로소 다시 처음 만난 시절로 돌아가 못다 이룬 우정을 완성하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폴 매카트니의 감회. "비틀스의 진정성은 '위대한 작은 밴드'였다는데 있다. 그것이 "Let It Be" 테이프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며 또한 중요한 것이다!" 그가 표현하고 있는 '위대한 작은 밴드'란 말할 것도 없이 50년대 말 어린 시절, 오로지 음악으로 즐거웠고 그것에만 매진하며 쌓았던 우정의 결집체를 가리킨다. 친구 둘을 먼저 보낸 그와 링고는 그리하여 이번 앨범에 비틀스 캐리어의 마지막 정리라는 의미도 이입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앨범은 순수하면서 또한 숭고하다.
비틀스 팬들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축복의 선물이다. 비틀스 앨범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비틀스의 최후 실체를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마치 69년 1월의 그들 리허설에 자신도 직접 참여해 참관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 것이다. 해산 후 33년 세월의 벽이 절로 허물어지며 멋진 4인(Fab Four)이 우리 곁에 아직도 있는, 아니 우리한테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살아있는 전설이요, 전설의 용트림이다. 오리지널 음악의 회복이 아니라, 오리지널 비틀스의 재림이다. 비틀스는 결코 죽지 않는다.

 

Get Back

Dig A Pony

For You Blue

The Long And Winding Road

Two Of Us

I've Got A Feeling

One After 909

Don't Let Me Down

I Me Mine

Across The Universe

Let It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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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최초로 읽은 글... 제대로 된 최초의 글? by 임진모

90년대 중반에 처음으로 접한 존레논 관련 아티클입니다.
임진모씨가 지은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 중의 내용으로 그 책은 이사가다가 잃어버린 것 같은데 인터넷에서 같은 내용의 글을 찾았습니다. 올려봅니다.
존레논에 관한 저의 고정 관념을 많이 바꿔준 글이었습니다.

존레논의 위대함이 그의 정치적 사상적 스탠스가 좌파적이다 민중적이다 하는데 있는 것은 물론 아니겠구요(사상적으로 더 뛰어난 이론가 활동가들도 많으니까), 제 개인적으로는 매시기 처한 상황 속에서 진지하고도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간 존의 진정성에 있다고 봅니다.

비록 굴곡은 있을지라도 존은 적어도 그때그때마다의 시점에서 언행과 행동과 삶이 일치하는 사람이었으며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늘 반추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노동계급에서 태어나 오로지 돈을 벌기위해 자아를 숨기고 몹탑 헤어를 하고 대중 입맛에 맞게 무대에 서야한다는데 대해 늘 괴로워했으며, 나중에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돈을 번데 대해(a lucky man who made a grade) 죄의식을 늘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괴리를 해결하고 극복하려는 열정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60년대 후반이후 존의 자아 각성에 대해 사람들은 왜 귀여운 우리 존이 점점 또라이가 되어가나, 다 저 일본 원숭이(except for me and my monkey) 때문이다 하면서 존이 비틀즈 구성원이 아닌 원초적이고 반항적인 인간 존레논 자체을 찾아가고 회복하는 것에 대해 탐탁해하지 않고 매도하였습니다(구조주의 식으로 표현하자면 주체는 타자의 호명appellation에 의해 규정됩니다.).

이에 존은 타인들이 원하는대로 적당히 더벅머리 존으로 타협했으면 향후 편하게 살 수 있었고 부 또한 보장받았겠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존은 일생동안 줄곧 자기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닥뜨렸으며, 행동하고 실천했으며, 자신을 둘러싼 편견, 허위의식에 저항했습니다(그렇지 않았으면 이민국과 그렇게 장기간의 지루한 법정 투쟁을 애당초 하지도 않았겠지요. 요꼬는 아이를 세번이나 유산하고…).

그런 연장선상에서 존의 음악 그 자체가 바로 그의 삶의 궤적이자 전기이기도 합니다.
Revolution
Ballad of John n Yoko
Come together
Give peace a chance
Power to the people
Working class here
God
I don’t want to be a soldier
Imagine
Sometimes in NY 수록곡들
그리고 거의 집회이자 커뮤니케이션의 장인 공연들(RATM을 방불케 하는)…

텍스트로써 존의 앨범과 노래들에 매시기 그가 당면한 고민과 갈등, 관심사가 투영되고 있습니다. 이는단지 선언에 그치는 것이 결코 아니며, 예컨대 액티비스트로서 절정에 달한 앨범 some times in NY가 시장에 발매되었을 때에 그는 또한 오프라인에서, 현장에서 현실과 몸으로 맞부딛치고 있었습니다(cold turkey와 mother를 부를 때도 안에서는 절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생애에 그토록 변화무쌍하게 그러나 치열하게 살아간 인간이 바로 존레논이었습니다. 때때로 결과적으로 좌충우돌하였더라도 그 과정은 너무도 성실하고 진지한 것이었습니다(사실 결과적으로도 일정정도 politically correct하였기에 그의 죽음이 일종의 순교로 후대에 의해 추앙받는 것이겠지요…).


그밖에 90년대 중반 제가 읽은 존레논 책 중에 레이 코널리 저, 임진모 전찬일 번역의 ‘존레논’(대륙-현재 절판?)이라는 책이 있는데 원저작자가 보수적 스탠스를 취해서인지 솔로 시절 존의 음악 및 활동에 대한 평가는 다소 빈약하고 야박한 편입니다.

반면 같은 시기에 읽은 책으로 임진모씨 본인이 직접 쓴 [존 레논 : 이매진, 세상으로 만든 노래] 새길 출판사가 있는데(현재 역시 절판?) 이 책은 비틀즈 시기도 구체화하여 포함하고 있지만 존레논 개인의 삶과 음악을 연속적으로 점증적으로 잘 서술한 것 같습니다(어떻게 보면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상의 아티클이 이 책의 서곡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기타 한번 치룰 때마다 구설수에 오르고 욕을 사서 먹던 온갖 인터뷰들도(우리 카페에 올라와 있는) 존을 이해하는 좋은 방편이라고 생각하며…

지금은 시중에 레논에 관해 어떤 책들이 나와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존레논 개인이 60-70년대 시대정신을 온몸으로 안고 산 사람이기에 다리품 팔고 서점에 가서 직접 책 좀 보시고 인간 존레논, 그의 음악, 그리고 60-70년대 시대에 대해 접하고 이해할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Ps.

1. 임진모씨가 쓴 책 중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 100?’ 아직도 시중에서 판매되는 것 같습니다. 같은 스탠스로 쓰여졌으며 이중에 비틀즈의 5대 명반이 모두 들어가 있습니다.

2. 글 중간에 로널드 레이건에 관한 내용은 흥미롭습니다. 68년 우드스탁 롹페스티발 3장짜리 LP앨범을 들어보면 한 가수가 '우리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아주 좆같은 놈인데 그놈 이름이 로널드 레이건이다'라는 취지로 말합니다. 청중들이야 당연히 '레이건! 펵유우우……'하고.
80년대 대처리즘과 함께 레이거노믹스로 신보수주의 불을 지피고 베트콩을 싹쓸이하는 람보2의 시대를 창출해냈으며, 전체(全) 머리(頭)가 환(煥)한 코리아 대통령을 등두드려주던 바로 그 대통령... 지금은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 큰 바위 얼굴에 추가한다나 뭐란다나 하면서 알츠하이머병으로 벽에다 똥칠하고 있는 바로 그 레이건 전대통령입니다. 당시 대통령할 때 부통령은 애비 부쉬, 지금은 아들네미 부쉬

3. 다섯장짜리 레논 앤쏠로지 시디 부크렛에 실린 시사만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닉슨 행정부가 존을 도청하고 린치?가하고 장난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낙선 운동했으나 끝내 닉슨이 재선되자 존은 엄청난 정신적 공황에 빠지게 됩니다(잃어버린 주간). 그러나 결국 닉슨은 워터게이트 도청건으로 사임하게 됩니다.

4. 65년‘지금 비틀즈가 예수보다 더 유명하다’라는 발언으로 그 사단을 치룬 존이 불과 10년도 안돼서 God을 도마 위에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일련의 액션을 통해 사람들이 존과 요꼬를 거의 내놓은 자식 취급하고 제껴놓아서 운신의 폭이 넓어진 것도 있겠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60년대말 미국의 히피 운동과 유럽의 68(파리)혁명을 거치면서 온갖 금기가 극복되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다만 ‘노동계급의 영웅’가사 중에서 나오는 fucking은 그시대 동급 최초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들은 당신을 종교와 섹스와 TV로 중독시키지. 그런데 당신은 자신이 현명하고 계급이 없으며 자유롭다고 여기는 거야’라는 본질을 바라보는 냉철한 지성은 놀랍습니다. 일단 영국만 보자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아무리 복지 시스템이 잘되어있어도 축구나 밴드로 뜨지않으면 리버풀에서 벗어날 수 없답니다.

5. 예수 발언 얘기를 꺼낸 김에…
모린 클리브와의 인터뷰에서 레논은 다음과 같은 취지로 말했습니다. “현대 사회는 미디어의 사회다. 매스 미디어 발달로 이제 비틀즈가 그리스도보다 유명(popular)해질 지경까지 왔다”. 이러한 일정정도 세태를 꼬집는 발언이 미국으로 건너가 극우 기독교 근본주의자, Ku Klux Klan(aka WHITE ANGEL)에 의해 말 앞뒷머리 싹 자르고 비틀즈의 자만감 표현으로 왜곡되었습니다. 또한 그렇게 말한 적이 없는데 비틀즈가 예수보다 더 위대하다(greater)라고 말한 식으로 왜곡되었습니다. 저는 이 척박한 색깔나라 코리아에서나 이러는줄 알았는데 미국에서도 그럽디다. 한심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말 앞뒷머리 다 자르고 단어 어구만 말꼬리 잡고 늘어지는 인간이 제일 짜증납니다.

6. 인간들이 요꼬를 except for me n my MONKEY 못생긴 원숭이 취급하는데에는 저변에 오리엔탈리즘이 깔려있다고 봅니다. 요꼬가 백인 여자였으면 반응이 어땠을까 상상해봅니다. 요즘 비틀즈 책 많이 쓰시는 한선생님 글에도 보면 그 풍부한 fact에도 웬지 이런 시각이 은연 중에 비치는 것 같은데(비틀즈 컬렉션을 보고) 물론 강요된 것일 것이며 우리 동양인들끼리는 정신 바짝 차리고 서로 존중하고 자긍심을 가집시다.

새로고침
아바타 꾸미기
꼬리말 쓰기꼬리말 쓰기
루씨 저도 '대륙'출판사에서 나온 그 책 가지고 있습니다. 그 출판사 사장님이 친히^^ 선물로 주신.... 요꼬에 대한 생각이 저와 비슷하시군요. 헌터 데이비스의 책 'The Beatles'를 보면 존과 요꼬가 처음 만날 당시를 쓴 부분이 있는데요, 저자는 그 만남이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더군요. [2005/01/17]
루씨 위에 언급하셨듯이 '죄의식'을 가진채 대중에 영합하는 노래들을 계속 써야했던 당시, 존은 새로운 세계, 새롭게 자신을 표현해야할 뭔가를 열망하고 있었고 바로 그때 일반인들 눈에는(사실은 그 속에 나도 포함^^) 쬐끄맣고 못생기고 이상한 짓을 하는 못생긴 동양 여자가 짠~ 나타나서 존의 영혼을 흔들어 놓은거겠죠. [2005/01/17]
루씨 사람들이 그녀를 '존을 꼬여낸 구미호'정도로 생각하는건 자유지만, 어쨋든 한사람의 영혼을 그렇게 흔들어 놓을수 있다는건 멋진일 아니겠어요? 그녀가 백인이었다면 그렇게 '원숭이'까지 가진 않았겠죠. [200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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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의 음모이론

 

http://www.youtube.com/watch?v=re8lOhx1wE8&search=beatles

[MV] Tomorrow Never Knows-The Beatles Carto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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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레논의 죽음에 대한 미스테리 > by 전찬일

레이 코널리 著의 ‘존레논’본문과는 다른 관점으로 임진모씨와 함께 번역한 전찬일씨가 책말미에 수록한 부록을 올립니다. 80년도 레이건 행정부 집권과 관련한 CIA 존레논 암살 음모론에 관한 내용입니다. 재미로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참고로 멜 깁슨,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 '음모론(conspiracy theory)'에 보면 멜 깁슨이 CIA가 만든 살인 병기로 나옵니다. 손에 한시라도 호밀밭의 파수꾼이 없으면 돌아버리지요(마크 채프먼처럼). 집에 사서 재놓고…
약물과 히피의 대부 제리 가르시아(그레이트풀 데드의 리더), 비판적인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이 CIA 뿌락찌라는 표현이 참 재밌었습니다.

왜 이런 흥미로운 음모론이 나오는지에 대해서는 아래 762번 글부터 먼저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자구에 얽매이지 마시고 문맥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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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레논의 죽음에 대한 미스테리 > by 전찬일

존 레논을 살해한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은 레이 코넬리의 의견처럼 과연 불행하고 머리가 돈 열광자에 불과 할까?
흔히 얘기되고 검찰측의 공식적인 논리처럼 그는 역사에 남기를 간절히 소망한 사이코 팬 또는 과거의 레논 팬에 지나지 않을까? 간혹 외신을 통해서 전해지듯이.. 어떤 정치적 세력의 사주와 세뇌에 의한 (정치적)암살일 가능성은 없을까?

혹자는 '엔터테이너'요 좀더 후하게 표현해 '팝 아티스트'에 불과한 인물에게 웬 암살이냐 할지도 모르겠다. 1963년 11월22일 미국과 전세계의 역사를 뒤바꾼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살해마저 미국인들의 73%가 그렇게 믿지 않고 끊임없이 암살설이 제기되는 상황에서도 리 하비 오스왈드라는 24세의 한 청년의 단독 범행이라고 단정짓는 판국에 그런 반응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JFK에 이어 60년대에 계속 터진 마르틴 루터 킹 목사와 JFK의동생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의 죽음 역시 모종의 암살이라는 심증이 감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얼 레이와 시런 시런이라는 '고독한 광인들'이 저지른 미친 짓일 뿐이라니까
따라서 아무리 신빙성 높은 증거가 드러나고 결정적 사실이 밝혀진다 할지라도 2000년 12월이 지나야 비로서 사면 여부가 새로 결정될 채프먼이 '진실'을 말하지 않는 한 레논의 암살설은 영원히 미궁 속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물론 얼마전 감옥에서 다시 한 번 음모설을 부인한 채프먼이 그간 진실을 말해 왔다고 할수도 있으리라.
그의 주장대로 그는 J.D. 셀린져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의 열여섯 살 먹은 주인공 홀든 콜필드처럼 이 세상으로부터 '사기꾼들'을 제거하기 위해 레논을 선택해 살해 했는지도 모르니까.. 아울러 그럼으로써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읽게 되고 그 결과 채프먼같은 사명을 이 세상에서 실행에 옮길 수 있을런지도 모르니까..

혹은 그를 정신 감정한 대부분의 정신의들과 심리학자들. 더불어 대다수 언론의 의견처럼 그는 '레논이 되고자 한 인간'(The twisted man who wanted to be Lennon)-<타임> 1980.12.22, p.19- 이고 '레논의 타자아' (Lennon's Alter Ego)-<뉴스 위크>1980.12.22, p.30~31 -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한결같이 그런 주장을 펼치게 한 결정적 단서는 채프먼이 80년 10월 23일. 경비원직을 그만두고서 일지에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이 아닌 '존 레논'이라고 서명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그가 자기 자신을 확인 시켜주는 정체성을 상실하고 레논과 완전히 동일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레논과 경쟁을 벌이고 있었으며, 따라서 레논을 살해한 것은 곧 스스로를 죽인것이나, 다름없다는 논리다.

사실 그들이 통설이 되어 버린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무리가 아닌 듯하다. 이 책을 포함 대부분의 레논 전기는 물론, 기사들을 보면 여러 모로 레논과 채프먼의 삶 사이에 유사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둘다 사춘기 시절에 음악에 빠졌고, 록 그룹을 결성했다. 또한 그들은 아이들을 사랑했고 다른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도왔으며 연상 (레논은 7살,채프먼은 4살)의 일본 여성과 결혼했다. 아울러 그 두 사람으 sdiranf에 탐닉하기도 했고 감정의 기폭이 굉장히 심했다. 반면 그들의 삶은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생산적삶과 파괴적삶,성공한 사람과 실패자로.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레이콜먼과 요코마저도 -레논의 죽음과 관련된 통설을 내세우고 받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살해가 정치적 암살이라는 음모설은 존이 죽은 80년 12월 말부터 이미 나돌기 시작했다.
전적으로 무시되긴 했지만 주로 '암살정보위원회'라는 단체가 유포한 것으로 황당한 구석이 많음에도 다음과 같은 주요 메시지에는 일축해 버리기는 어려운 타당성이 있다.
"비록 레논이 진정한 공산주의자는 아니었고 기회주의적으로 경찰 방탄 조끼기금을 희사하긴 했지만 미국정부와 CIA는 신뢰할 만한 정치적 저항자들이 전적으로 없는 상황에서 그저 속마음으로 털어놓는 친사회주의자요 반종교적 온건파 인물조차도 봐줄 수는 없었다!"

그 외에도 미정부 고위관리들은 레논이 다시 녹음작업에 복귀하는 것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으며, 그가 예전처럼 자신의 강력한 영향력을 평화라는 대의를 위해 행사할 것이라고 우려했다는 다소 거창하지만 신빙성이 높은 주장을 펴는 사람들도 있었다. 매카시와 워터게이트의 나라. 이란 콘트라 스캔들과 걸프전의 당사국인 ,더욱이 단적으로'와스프(WASP: White Anglo- Saxon Protestant 미국의 지배적인 특권계급인 앵글로 색슨계 백인 신교도)의 천국인 미국에서 위의 주장들이 사실이었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일까?

이같은 다소 감정적이고 산발적인- 그렇지만 개연성있는 -주장에서 상당히 발전해 레논의 암살설을 ,미 발표된 풍부한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논리적이고 설득력잇게 제시하고 잇는 것이 영국의 저명한 범죄학자이며 변호사인 펜턴 브레슬러가 8년간 조사 끝에 쓴 '존 레논의살해'(The Murder of John Lennon, Sidgwick & Jackson Ltd ,Lodon ,1989)라는 책이다. 그는 여기서 사실상 레논의 살해는 CIA에 의해 수년간 구상되고 계획되었으며.. 마크 채프먼은 그를 통제하는 비밀스런 힘에 의해 총을 쏘게끔 세뇌 당했다는다는 과감한 주장을 하고 있다.


채프먼은 레논을 체제를 전복시키려 한 정치적으로 위험한 인물로 간주한 CIA / 미국 정부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또한 그들은 그때 막 선출된 공화당 출신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의 반동적 정책에 반대하는 데모를 벌이는데 일백만 인파를 동원시킬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존 레논이라고 여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브레슬러가 더욱 황당한 주장을 펴고 있다고 느낄지는 모르지만, 그는 수십 년간 법에 종사해 온 전문가답게 FBI, CIA의 레논 관련 문서, 채프먼의 정신 감정 자료들, 채프먼 선고문 등 레논레 대한 글을 쓴 그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한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접근법으로 치밀하게 레논의 암살설의 가능성을 제고하고 있다.
코넬리의 말대로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이란 인물자체가 존레논의 삶에 그 어떤 중요성을 지닐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존레논의 살해(암살)가 전 세계에 준 충격과 파급 효과를 고려해 볼 때, 이상하리 만치 살인범에 대해 폭넓고 깊이잇는 관심과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본필자 역시 의아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브레슬리의 탐구가 다소 지나치게 문제 의식으로 가득차 있고 기존의 통설을 뒤집어엎는데 초점을 맞춘 것 같은 인상이 들지는 모르지만 채프먼이 명사수처럼 신속하고 정확하게 자신의 대상을 저격 살해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아울러 브레슬 리가 집요한 추적으로 밝히고 있듯이 하와이 호노룰루에서 뉴욕으로 가는 그의 항공권은 조작되었었다.
그리고 그는 뉴욕으로 가기전 시카고에서 아무도 모르고 설명할 수는 없는 3일을 보냈다. 게다가 진실을 밝혀 주리라 예상했던 재판은 채프먼 자신이 변호인의 의사에 반하여 갑작스럽게 스스로 유죄를 인정해 버림으로써 벌어지지도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브레슬리가 다른 전기작가들과 여느 평범한 기자들과 마찬가지로 밝혀내지 못한 문제점들이지만, 그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어떻게, 왜 그런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는 그것을 추적하면서 미국 역사에 등장하는 암살들.CIA가 자행한 약물과 최면술을 이용한 마인드 콘트롤 실험. CIA-FBI-YMCA 등의 관련 CIA가 조직 운영해 온 암살 조직 , CIA FBI 의 존레논 감시 등을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술, 전문가다운 방법을 취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기의 주장을 무리하게 강요하지 않고 최종적인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는 현명함을 보이고 있다. 즉 그는 흔히 빠지기 쉬운 센세이셔널리즘의 노예가 되지 않으면서 센세이녀서널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는 어떤 정치적 필요에 의해 국민들에게 주어지는 천편일류적 사실이 결코 진실이 아닐수 있다는 깨달음과 의식을 다시 한 번 각성, 환기시키는 훌류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지면은 결코 그가 3백 페이지에 달하는 저서로 제시한 내용을 요약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그것은 별도의 작업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고정관념을 심어주지 않기 위해, 아울러 새로운 정보와 시각을 제시하기 위해 조금 더 상세히 그 책을 다루지 않을 수 없다.
필자의 판단에 브레슬리의 저서가 코넬리의 책과 연관하여 독자에게 시사하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채프먼의 삶과 관련된 '세'가지 중요한 일반적 오해이다. 그 첫 번째가 거의 모두가 아무런 의문없이 인정하는 사실로서 채프먼이 열렬한 존 레논 숭배자라는 것. 그렇다면 헌신적인 팬이 왜 그의 우상을 죽여야만 했을까?? 브레슬러에 따르면 사실은 레논을 살해할 당시 마크 채프먼은 레논의 특별한 팬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표현이 처음부터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것은 법원이 임명한 채프먼의 변호사 허버트 아들러버그의 즉흥적인 진술 때문이었다.

80년 12월 9일 오후에 벌어진 법정 신문에서 그는 판사에게 채프먼이 동문서답을 한다고 얘기하면서 단지 "그(채프먼)는 비틀즈를 대단히 칭송했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자기 자신을 중히 여기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덧 붙였다.
그는 법정 안에서는 특별히 레논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법정 밖에서 기자단에 둘러싸인 그는 겁에 질려 무심코 채프먼이 10살때부터 레논에게 매우 경도되어 있었다고 말하며 자신의 느낌은 아주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혼란스러운'은 어디로 날라가 버리고 채프먼은 갑잡스레 레논의 열광적인 팬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실 그 후 2개월이 지난 뒤 아들러버그가 밝혔듯이, 그가 채프먼을 만나 충분한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단지 25분 동안 급히 이야기를 나눈 다음 법정에 갔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들러버그는 채프먼에게 그가 레논의 팬인가 물어보았는지 아니면 그가 자진해서 그런 얘기를 했는지, 또는 '팬'이라는 말을 도데체 언급이나 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검찰특 얘기 역시 채프먼이 14살때부터 24살 사이인 지난 10년간 존 레논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 물론 그가 학창시절 비틀즈나 존 레논에 빠졌다 해도 그것은 예외적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당시는 수백만의 청소년들이 다 그랬으니까. 따라서 그는 결코 헌신적 레논 팬인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가 살해 현장에서 체포될 당시 14시간에 해당하는 비틀즈 테이프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된것인가?? 만약 카세트 녹음기와 테이프가 정말로 있었다면 그는 레논 팬은 아니었더라도 비틀즈의 열광적 팬이란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를 체포한 뉴욕 경찰 스티브 스피로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채프먼이 소지하고 있던 것은 책 '호밀밭의 파수꾼' 그의 뉴욕 호텔 객실 키. 하와이 은행 비자카드가 전부였다는 것. 따라서 그것은 어떤 상상력이 풍부한 기자가 꾸며낸 이야기인 셈이다. 레논 살해 후 한 달이 엄게 하와이에서 마크의 행적을 조사한 호노눌루 경찰서 루이스 L. 수자 경감 또한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마크 채프먼과 관련된 두 번째 오해는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과의 관계. 그는 알려진 바처럼 레논을 살해한 후 총은 내던지고 조용히 그 책을 읽고 있었다. 그는 책표지 안에다 '홀든 콜필드로부터 홀든 콜필드에게.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다.'라고 적어 놓기까지 했다. 그는 1988년 2월 미국과 영국에서 방영된 케빈 심이 만든 영국 TV 다큐 프로<존 레논을 살해한 사나이>에서 자신이 존 레논을 살해한 이유는 세상에 널리 알려져 그 책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그 사건이 벌어지기 바로전까지 채프먼은 그 책을 읽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전세계의 수많은 기자들이 가능한 온갖 각도로 다양하게 그 사건을 다루기 위해 채프먼의 고향을 찾아 갔지만 마크의 학창시절 친구들이나 교사들 중 단 한 명도 그 책의 주인공과의 동일시는 커녕 책자체에 대해 언급한 예를 볼수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 역시 과장, 조작 되었거나 채프먼이 의도적으로 그책이 청소년들에게 미친 영향력을 감안해 일부러 강조할 수도 있었다.

브레슬러는 이 저서를 다완성해 출판사로 보내고 89년 6월2일 마크 채프먼에게 편지를 보낸 5월 후 마크가 자신이 음모에 관련되어 있다는 저자의 주장을 부인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책의 맨 마지막에 각주로 밝히고 있다. 마크는 "레논씨의 살해 이유는 매우 복합적입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 그것들을 감적으로 구분하려고 여전히 애쓰고 있습니다."라고 적어 보낸 것이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삶을 밝혀 주고 목적을 부여한 예수님께 자기를 바쳤다고 주장했다. 그가 그렇게도 중시하던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 오해는 마크가 사귀기 힘들고 혼자 있기를 더 좋아한 '외톨박이' 였다는 주장이다. 그의 모친은 1987년 <피플>지의 짐 게인즈에게 단 한 번의 인터뷰에서 그에 대해 강력하게 반박하고 있다. 그녀에 따르면 그는 친구도 많았고 밖에 나가서 좀 놀라고 말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종합해 봐도 그는 언제나 쉽게 여자얘들과 어울렸고 비중있는 연애사건도 2건있었다. 게다가 그는 아이들을 무척 좋아했고 잘지냈으면 남자들과도 깊은 관계를 유지했다.

이처럼 채프먼에 관련된 일반적 믿음이 객관적으로 확증된 사실이 아님에도 그가 대부분의 암살범들과 마찬가지로 또 한명의 정신이상자에 불과 한가. 더욱이 재판부마저도 그가 정상적이라고 판단해 20년부터 종신형까지 징역을 살 수 있다는 판결을 내린 마당에. 채프먼이 재판을 받기도 전에 자신이 유죄임을 시인한 것이 진정 그가 미쳤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정작 본인도 재판당국도 그가 정신이상 이 나니라고 하는 상황에서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그 사실에 집착하는 것일까?? 사실 그가 미쳤다는 것이 요코는 물론, 진실보다는 현실이 더 중요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속편한 생각일 터이다.

유럽 정치가도 한나라의 왕도 대통령도 아니며, 그렇다고 교황도, 종교지도자도, 노벨수상자도 아닌 일개 팝스타가 죽은거 가지고 왜 크토록 심각한 의미를 부여하여 음모,암살 운운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도 많았고 지금도 역시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그의 죽음에 직면해 보인 슬픔과 분노의 의미는.
JFK의 죽음 이후 한 사람의 죽음이 그토록 엄청난 여파를 미친적이 없다는 그 많은 증언들의 뜻은 어디에 있는가??
비록 존 레논이 정치적 음모에 의해 암살당햇다는 것을 백일하에 밝힐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간 통념으로 굳어진 나이브한 주장들은 수정,폐기 처분돼야 하지 않을까?

채프먼이 레논을 살해함으로써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레논이 사기꾼이며 평화와 저항을 설파하면서도 다른 초특급 부자 자본주의자들처럼 엄청난 부의 결실을 만끽하고 있던 억만장자 록 스타라고 굳게 믿어 그를 제거하려 했다는 ,또는 인생의 낙오자로서 레논과 같은 세계적 인물을 죽여서 유명해지기를 꿈꾼 '고독한 광인'이었다는 주장은 말이다.
국내의 보통 독자들은 물론 열렬한 비틀즈 / 레논 팬들이라 할지라도 존 레논이 그긔 세대에서 가장 정치적으로 능동적인 록스타였고 좌파적 색채를 띠고 호전적인 활동을 펼쳤다는 것은 거의 모르리라.. 그렇지만 그 진실성은 차지하더라도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가 곧 들어설 반동적 레이건 정권에 반대하는 집단적 저항의 집결지 역할을 할 수 있는 거의 독보적인 강력한 영향력을 느꼈다는 것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따라서 그 도구로써 채프먼이 조종받고 이용됐다는 브레슬러의 주장이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니는 것이다.


어쨌든 레이건의 권력 획득과 레논이 예전의 거대한 존레논으로의 복귀가 일치했다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었다.

그는 음악을 통해 자신의 위력을 입증하려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의 정치,사회 활동을 벌일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컴투게더'(Random House, New York, 1984)의 저자 존위너가 밝히고 있듯이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고 잇지만, 그가 저격당한 바로 그 주에 그는 처와 숀과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가 웨스트 코스트에서 스트라이크를 벌이는 일본계 미국인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집회에서 행진할 예정이었다." 그는 이미 비행기 티켓도 구입해 놓은 상태였다. 그는 다시 거리로 나설 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브레슬러는 이런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즉 레논은 또 다시 '정치적 동물'이 되고 있는 것이니 만큼 생존해서는 안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죽음의 이유가 명백해지기전, 세상 사람들이 예전의 레논 <평화에게 기회를>을 부른 바로 그주인공이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전 그는 제거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브레슬러는 자신의 주장을 단언하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단지 그는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진실'에 근접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관심사라고 못받고 있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간 강요받아 온 사실과 진실은 결코 진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진실을 쫓는 작업은 결코 중단되어서는 안된다 . 그것이 바로 브레슬러 저서의 진정한 가치이며, 필자가 이런 글을 덧붙이는 목적이다. (Rest In Peace 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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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모著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 중 존레논 편

이제는 한편의 시 across the unive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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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모著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 중 존레논 편


1964년 2월 이들이 처음 미국에 상륙했을 때 미국 전역이 떠들썩했다. 케네디 공항에는 1만 명 이상의 틴에이저들이 운집했고, 그들이 출연한 '에드 설리반 쇼'의 시청률은 70%를 상회했다. 그 시간대의 뉴욕시의 소년 범죄는 드물게도 제로를 기록했다 ...

짤막한 비틀스 스토리다. 비틀스의 전설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그것을 창조한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등 '전설의 4인'(Fab Four)은 1960년대 내내 대중음악과 청년 문화를 주도하면서 시대를 대변했다. 1960년대는 그들의 것이었다.

1970년 그룹은 해산되었고 비틀스라는 이름은 무대에서 사라져 갔지만 멤버 모두가 빛나는 솔로 활동을 펼쳐 재결합설은 끊임없이 그들을 에워쌌다. 그러나 그룹 성원 가운데 한 사람인 존 레논이 1980년 괴한의 흉탄에 피살되면서 사실상 비틀스 스토리는 끝이 났다.

존 레논은 비틀스의 리더였다. 그의 이름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룹을 이끌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중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충분하다. 그렇기에 그가 사망했을 때 시사주간지 <타임>과 <뉴스위크>는 동시에 그를 커버스토리로 다뤄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았던가(권위를 자랑하는 이 양대 주간지가 문화 예술인을 발행일이 같은 날에 표지인물로 취급하기는 존 레논이 최초였으며, 지금까지 그밖에 없다).

그는 우리에게도 유명하다. 비틀스의 리더라는 사실은 차라리 상식이고, 필생의 라이벌이었던 폴 매카트니와의 다툼으로도 유명하다. 아내가 일본 여인 요코라는 점도 유명하다. 특히 우리 팝 팬들에게 '이매진', '러브', '오 마이 러브' 등 아름다운 팝송을 남긴 '부드러운 가수'로 널리 알려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1970년 비틀스 해체 전후로 정치, 사회적 제반 문제를 강도 높은 톤으로 노래하고 한때 일선 투쟁에까지 가담한 '투사'였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존 레논이라는 어찌보면 한 사람의 대중 스타의 존재에 시사성의 가치를 부여하고 무게를 실어준 이 중요한 사실이 우리 대부분의 팝 팬들 기억에는 자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비틀스 시절이 1960년대 후반 존 레논에게 대중음악은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는 인기 창출의 수단이 아니라 어떤 문제를 꿰뚫고 그 인식을 전달하는 미디어로 파악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3인칭 대중 소설 쓰기를 포기하고 자신의 존재를 규명하고 사회적 사고를 전달하는 1인칭 다큐멘터리를 쓰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한다. 1968년 그는 '혁명(Revolution)'이란 제목의 노래를 싱글로 발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 곡은 레논의 사실주의적, 정치적인 노래쓰기의 신호탄을 올렸다.

'혁명을 원한다고들 하지. 그래, 우리 모두는 세상을 바꾸고자 하지... 그러나 당신들이 파괴에 관하여 얘기할 때 나를 제외시키게 된다(count me out)는 것을 모르는가요... 헌법을 개정할 거라고들 하죠. 예, 우리는 머리를 변화시키길 바라죠.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들 하죠. 대신 정신 상태를 해방시켜야 할 거예요. 모택동의 사진을 들고 나선다면 여하튼 누구와도 성과를 얻지 못할 겁니다.'

미국과 영국 전역에 민주화 투재, 반정 운동으로 시위와 집회가 들끓기 시작하던 그 당시 존은 과격한 행동주의 노선에 앞서 '정신 개조'와 '의식혁명'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작금의 풍조에 편승할 것이 아니라 의식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는 얘기다. 그 무렵 존은 자신이 양친 없이 이모 밑에서 자란 불우한 유년기를 비롯, 자신이 겪게 된 불행의 근본적 원인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있다고 자각한 상태였다.


이러한 존재 규명을 토대로 그는 비틀스 해산 후 자신의 '색깔'을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1971년도 음반 <플라스틱 오노 밴드(Plastic Ono Band)>의 수록곡 '어머니(Mother)'에서 존은 '어머니 가지 말아요, 아버지 돌아오세요'라고 광기서린 듯 절규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토해 내고는 곧바로 '노동 계급의 영웅(Working Class Hero)'이란 곡에서는 전투 의지를 다지는 현재의 변모된 자신을 펼쳐 보인다.

'그들은 가정에서 당신에게 상처를 주고 학교에서는 당신을 매질하지. 당신이 똑똑하면 증오하고 바보일 땐 무시하지. 그래서 당신은 돌아 버려 그들의 좆같은(fucking) 규율을 따르지 않게 되지. 노동계급의 영웅이란 될 만한 거야... 그들은 당신을 종교와 섹스와 TV로 중독시키지. 그런데 당신은 자신이 현명하고 계급이 없으며 자유롭다고 여기는 거야. 그러나 내가 아는 한 당신은 여전히 좆같은(fucking) 농부나 다름없다구. 노동계급의 영웅이란 될 만하지... 영웅이 되려거든 자 나를 따르라구!'

존은 무차별로 법, 종교, 도덕 등 자본주의의 이념적 베일을 들추어 그 실체를 통렬히 고발하면서 개량과 개혁을 넘어서는 혁명을 부르짖는다. 의식 혁명의 단계를 뛰어넘어 이제는 실천과 투쟁의 시점으로 진입해야함을 느낀다. 노래로써 그가 내세운 테마는 '사랑과 평화'(Love and Peace)로 포장되었다.


<플라스틱 오노 밴드>와 곧이어 공개된 <이매진(Imagine)> 음반의 수록곡을 비롯해 해산 직후에 싱글로 발표한 노래를 살펴보자.

'인스탄트 카르마가 네게 올 거야. 네 머리를 두드릴 거야. 자신과 만나야 할거야. 곧 당신은 죽게 될 터인데 도대체 뭘 생각하는 거야. 사랑 앞에서 비웃으면서 말야.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당신에게 달려 있어... 인스탄트 카르마가 네게 찾아올 거야. 당신의 발을 움직이게 할 거야. 네 주위의 형제들을 인식하라구. 네가 만나고 있는 모든 사람을 말야... 우린 빛날 수 있어. 달과 별과 해처럼. 어서와, 만나자구.' '인스탄트 카르마(Instant Karma)'

카르마는 인연 또는 만남을 가리키는 말로, 존은 이 곡을 통해 미디어를 포함한 현대적이고도 '즉각적인 만남'을 역설하고 있다. 발표 당시 영미(英美)에서 밀리언셀러를 기록했으며,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상품 광고배경으로 이용돼 다시금 주목받았다.


'민중에게 권력을! 즉각 민중에게 권력을! 우린 혁명을 바라지. 똑바로 두발을 세워 거리로 나서야 해... 당신이 부리는 사람들이 아무런 대가를 못받고 노동하고 있어. 그러니 그들이 사실상 가지고 있는 것을 그들이 소유하도록 해줘요. 우리가 전면에 나서 당신들을 끌어내릴 것이야.' '민중에게 권력을(Power to the People)'

'난 군인이 되고 싶지 않아. 난 죽고 싶지 않아. 난 법관이 되고 싶지 않아. 난 거짓말하고 싶지 않아. 난 성직자가 되고 싶지 않아. 난 울고 싶지 않아.' '난 군인이 되고 싶지 않아(I Don`t Want to bed a Soldier)'

직설적이고 과격한 메시지 일색이다. 마지막 곡에서 그 일단이 엿보이고 있지만, 특히 종교는 그의 독설을 피하지 못한다.


'신은 우리가 고통을 재는 척도로서의 관념일 뿐이야. 다시 한번 말하자면 신은 관념이야, 그것으로 우린 고통을 측정하는 거지... 난 마법을 믿지 않아. 성경을 믿지 않아. 히틀러를 믿지 않아. 예수를 믿지 않아. 케네디를 믿지 않아. 석가를 믿지 않아. 엘비스 프레슬리를 믿지 않아. 밥 딜런을 믿지 않아. 비틀스를 믿지 않아. 난 나만을 믿어. 요코와 나를. 그것이 현실이야. 꿈은 끝났어. 어제까지 난 꿈을 쫓고 있었지만 이제 난 다시 태어났어.'

'신(God)'이라는 노래다. 여기서 신은 종교적인 신 외에 현실적 우상으로서의 신을 포함하고 있는데 존은 모두를 깡그리 거부하고 있다. 무신론자의 극단을 노출하는 곡으로 비틀스 때인 1966년 “비틀스는 예수보다 유명하다”(Beatles is More Popular than Jesus)라는 발언으로 일대 파문을 일으킨 전력을 면면히 이어나간 것이다.


그의 역사관, 사회관은 1971년의 명곡 '이매진(Imagine)'으로 완결된다. 존은 이곳에서 '천국이 없다고, 국가가 없다고 상상해 보라'고 하고는 말미에 가서 '사유재산이 없다고 상상해보라'고 유도하고 있다.

'물론 상상하기 어려울 거야. 그리되면 탐욕에 대한 필요도, 기아도 없지. 형제애만이 있을 거야. 모든 사람이 세상을 공유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게나.'

루소에서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의 기초로, 인간의 인간에 대한 착취의 원리로 파악된 사유재산제에 회의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이 노래는 1980년대 초반 영화 <킬링 필드>의 마지막 부분에 삽입되어 많은 관객들에게 진한 감동을 안겼다. 영화 사운드 트랙의 백미라고 칭송을 하기도 했지만, 당시 존의 생활권인 영미사회, 즉 자본주의사회에 대한 부정이 테마인 만큼 공산주의의 잔학상을 고발하는 영화에 이 곡이 삽입된 것이 아귀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없지 않았다.


이 무렵 그는 어느덧 가수의 위치에서 크게 일탈, 노래 운동가이자 행위주체로 변해 있었다. 평화를 주제로 한 정치색 짙은 일련의 이벤트에 적극 나섰으며 1960년대 말 대학가의 시위를 주도한 제리 루빈이나 애비 호프먼 등 신좌익 활동가와 친교를 긴밀히 한다. 활동 거점은 미국의 뉴욕.

'정치 가수'로서의 존 레논을 언급하기 위해서는 당시 미국사회의 배경을 언급하지 않으면 안된다. 1960년대 말 불길처럼 퍼져나간 공민권 투쟁, 반전 운동은 1968년 마르틴 루터 킹 목사 암살 사건과 월남전의 격화를 계기로 과격한 양상으로 번져갔다. 대학가의 징병 거부 시위는 무장 투쟁의 단계로까지 진입했고 평화를 주창한 비폭력 노선의 히피들 간에도 과격집단 이른바 '이피'(Yippie)가 등장했다. 이피들은 흑인 무장 투쟁 그룹인 '블랙 팬더'와 제휴, 폭력 혁명의 기치를 드높였는데, 이 이피들의 리더적 존재가 제리 루빈과 애비 호프만이었다.

비틀스 말기부터 이피의 입장에 공감을 가졌던 존은 이들에 동조하고 실천적으로 연대해 정치색을 노골화한다. 1969년 5월 캐나다 몬트리얼에서의 '베드인' 행사, 같은 해 9월 캐나다 터론터에서의 '라이브 피스' 공연을 가진 데 이어 1970년에는 미국으로 파고들어가 11월 뉴욕 아폴로극장에서의 '애티카 자선 콘서트', 12월 미시건주 앤아버의 미시건대학에서의 '존 싱클레어 자선 콘서트'(제리 루빈도 참석) 등에 잇따라 출연하여 평화를 외치고 사회의 억압 및 모순을 규탄한다.

애비 호프만과 제리 루빈과 같은 신좌익(New Left)과 손잡고 일선 투쟁에까지 나섰으니 일련의 사회운동을 체제에 대한 도발로 간주했던 미국정부가 어찌 가만히 있었겠는가. 존의 행동은 백악관의 닉슨 대통령에게 즉각 보고되었고 닉슨 정권은 '위험 인물'인 존의 미국 추방을 궁리하게 됐던 것이다.
1972년 6월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자 존은 강도높게 미공화당 정부의 사기성을 공격했으며, 이로 인해 더욱 닉슨의 미움을 샀다. 당시 민주당 조지 맥거번 후보와 치열한 선거전을 벌이고 있었던 닉슨 정권은 존 레논이 급기야 그 무렵 개최된 공화당 전당대회를 전복시키려 했다는 것을 확신했다. 어떤 방법으로든 그를 미국땅에서 내쫓아야 했다.

닉슨 정부가 두려워했던 인물은 무장투사보다는 미국과 같은 사회에서 특히 효과적인 존 레논 부류의 '문화적 게릴라'인 까닭이었다. 이때부터 FBI가 존과 요코의 생활을 은밀히 감시하기 시작했다. 존은 정부 차원의 '외압'이 자신에게 가해져요고 있음을 감지했지만 결코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는 당시 외쳤다.

"아무것도 나를 막지 못할 것이다. 내가 여기 있든 또한 어디에 있게되든 나의 생각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거리낌없이 말할 참이다.”

1972년 2월로 기한이 끝나게 된 그의 미국 체류 비자 연장 신청은 기각되고 말았다. 표면상의 기각 사유는 1968년 그의 체포까지 몰고왔던 영국에서의 마리화나 소지죄였다(궁색하지 그지없다). 이후 미국 영주권을 획득하려는, 존의 미국 정부 당국을 대상으로 한 길고도 치열한 법정 투쟁이 전개되었다.
비자 연장 신청 기각으로 가시화된 닉슨 정부의 국외추방기도에 분기탱천한 그는 1972년 6월 가장 과격한 메시지를 담은 2장짜리 음반 <뉴욕에서의 한때(Sometime in New York)>를 출반하여 미정부에 응답한다. 그때까지 나온 대중 가요 음반을 통틀어도 가장 급진적이라 할 만한 이 작품에서 존은 1971년 뉴욕시 애티카 형무소에서 폭동이 일어나자 주방위군이 발포해 43명의 사망자를 낸 반민주적 사태를 성토하고 있고, 영국정부에도 핏발을 세워 당시 격화일로를 걷고 있던 북아일랜드 식민 정책에 대해서도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그는 영국 정부에 대해서도 강경한 자세를 보여 1969년 11월 영국군이 월남과 나이지리아 전쟁에 참전한 데 항의, 비틀스 시절 받았던 국가공로훈장 MBE를 반환해버렸다).

'죄수를 쏘다니. 43명의 가련한 여인들을. 언론은 죄수에게 책임을 돌리지만 죄수들은 서로 죽이지 않았어. 록펠러가 방아쇠를 당겼지! 그게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거야. 모든 죄수를 석방하라!' '애티카(Attica State)'

'앵글로 잭슨 돼지들과 스코틀랜드인들이 북부(아일랜드) 식민지화를 위해 보내졌지. 피에 젓은 유니온잭을 흔들면서. 그게 무슨 가치가 있는가. 어찌 너희들이 자랑스럽고 자유로운 사람들을 감히 억류한단 말인가. 아일랜드는 아일랜드에게 맡기고 영국군은 바다로 되돌아가라!' '일요일, 피에 젖는 일요일(Sunday, Bloody Sunday)'

이 음반에 수록되어 있고 역시 북아일랜드 식민화 정책을 비판한 노래 '아일랜드인의 운명(The Luck of the Irish)'과 함께 '일요일, 피에 젖은 일요일'은 매상의 이익금이 아일랜드 독립을 위한 무장게릴라 단체인 북아일랜드공화군(IRA)에 기부되었다. 이 곡은 또 아일랜드 출신으로 1980년대 팝계를 강타한 그룹 유투(U2)에게 영감을 제공하기도 했다. 유투는 곡은 존의 것과 다르지만 '일요일, 피에 젖은 일요일'이라는 똑같은 제목의 노래를 불렀다.


이 앨범에는 또 '안젤라(Angela)'라는 노래가 들어 있는데, 흑인 여성운동가인 안젤라에 대한 당국의 부당한 탄압을 고발하고 있다.

'안젤라, 그들이 당신을 감옥에 집어넣었죠. 당신의 배우자를 총살했구요. 정말, 당신은 세계의 무수한 정치적 죄수 중 한 사람이죠... 안젤라. 세계가 바뀌는 소리가 들리는가요? 세상은 당신을 주시하고 있어요. 당신은 곧 세계의 누이 형제들에게 돌아가게 될 거예요. 당신은 아직도 민중의 교사지요.'

그런데 과연 안젤라를 탄압한 인물은 누구였을까.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였고 나중 8년간 미국 대통령에 재임한 로널드 레이건 바로 그 사람이었다. 레이건은 1970년 말 카터를 꺾고 대권을 쥐었고, 레논은 그때 피살되었으니 운명의 엇갈림치고는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뉴욕에서의 한때>음반의 꽃은 '여성은 세계의 노예(Woman is the Nigger of the World)'라는 곡이었다.

'우리 여성더러 가정만이 그녀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말하지. 그리곤 그녀가 친구가 되기엔 너무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하는 거야. 그녀가 하인이 아니면 우릴 사랑하게 아니라고 하거든. 여성은 노예 중의 노예야.'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해주는 또 하나의 기둥인 가부장제와 여성 차별을 통렬하게 풍자하고 있다. 이 노래는 대중 가요 최초로 우먼리브(Woman lib), 즉 여성해방운동을 정면으로 다룬 곡이라는 게 정설이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는 우먼리브 물결이 솟구쳐 1969년 뉴욕에서 제1회 페미니스트회의가 개최되어 남녀의 완전 평등이 주창되었고 1972년에는 미국 최초의 여성월간지 <미즈>가 창간되었다.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에 대한 공식적 항의가 제기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여성은 세계의 노예'는 우먼리브운동에 열정적이었던 아내 요코의 사고방식이 크게 영향을 미쳤는데, 우먼리브를 매우 적절하게 소화해냈다고 평가받았다.

존은 노래만 부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이념을 적극 실행에 옮겨 요코와 숫제 남녀 역할을 교체해버린다. 요코와 잠시 헤어졌다가 필생의 반려자임을 재확인하고 1975년 재결합한 이후 내내 집안에 들어앉아 아들 숀의 육아에 전념하는 등 안살림에 치중, 실제로 자신을 그렇게 불렀듯 '하우스 허스번드'(House Husband : 主婦 아닌 主夫가 되는 셈이다)로 변신하여 모든 바깥일은 요코에게 일임한다. 요코가 존의 사후에 사업가의 면모를 견지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남편 덕분(?)이다.

'여성은 세계의 노예'와 관련하여 또 하나 지적해야 할 부분은 이 곡이 발표됐을 때 니거(Nigger)가 차별 용어에 해당된다고 해서 방송 금지 처분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차별을 고발한 노래인데 용어가 차별적이라고 금지되다니 우습기만 하다.

존의 노래는 그 이념성, 급진성, 그리고 묘사의 대담성으로 인해 방송 금지라는 억압이 유달리 자주 가해졌다. 심지어 '어머니' 같은 곡은 너무 광기를 띠고 있다는 이유로 발표 당시 일부 방송국에서 금지 지정을 받기도 했다(이유치고는 너무 인색하다).


그러나 1974년 이후 존의 이미지는 크게 바뀌고 만다. 이 무렵 내놓은 음반 <마인드 게임즈(Mind Games)>나 <벽과 다리(Walls and Bridges)>에서 나타나듯 투사적 대열에서 극단적 퇴각을 시사, 민주화 투쟁에 지친 모습을 군데군데 노출시키고 음악적 주장은 자취를 감춘 채 공허한 사랑타령을 해대기도 한다. 물론 이 두 앨범은 요코와 별거중일 때 출반되어 절망과 공허감이 상당 부분 작용한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의 급진성에 매료된 팬들에게는 적지 않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아주 오래 전 그것은 꿈속에서였을까? 단지 꿈이었을까? 알아, 난 알아. 그것은 너무 현실 같았어. 거리를 산책했고 열기 속으로 속삭이는 나무들. 난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지. 두 개의 정신이 이상하게 춤을 추고 있었지...' '9번째 꿈(#9 Dream)'

빅히트한 노래였지만 그의 작품으로서는 너무 무게가 제거되어버렸다. 불과 2년 전의 그가 아니었다. 이같은 외형상의 사상 전향(?) 때문인지 미국 정부는 마침내 1975년 10월 존에게 미국영주권을 발급해주었다. 더구나 그는 이후 음악 생활을 단절한 채 작품 출반은 물론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꺼렸다. 한편 1987년 전기작가 앨버트 골드만은 존의 전기문인 『존 레논의 삶』을 내놓고 그 무렵 그가 깊이 마약과 관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기록, 일대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뉴스위크>지는 이와 관련한 갑론을박을 커버스토리로 취급했다).

5년간 동면하고 난 후인 1980년 그는 앨범 <이중환상(Double Fantasy)>을 들고 화려히 컴백하여 새출발의 의지를 팬들에게 알렸다. 그렇지만 그 새출발의 정체란 일반인이 상상한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매일 우린 사랑을 나누곤 했지. 왜 우리 둘은 멋지고 편하게 사랑을 나누지 못할까. 이제 우리들의 날개를 펴고 휠훨 날아가야 할 때야. 또 하루가 우리 사랑을 비껴가지 않도록. 마치 새출발하는 것처럼 말이야.' '새출발 하듯(Just Like Starting Over)'

그의 새 모습은 '바퀴를 바라보며(Watching the Wheels)'라는 곡에는 더욱 선명하게 그려진다.

'난 그저 여기 앉아 바퀴가 굴러가는 것만을 응시할 테야. 난 정말 그것이 굴러가는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워. 더 이상 회전목마는 타지 않을 테야. 굴러가도록 내버려둘 거야. 사람들은 혼란에 빠져 내게 질문하지. 난 문제는 전연 없고 해결만이 있다고 말하지. 그러면 그들은 마치 내가 이성을 잃었다는 듯 고개를 젓지. 난 서두를 것 없다고 말하지. 난 단지 여기 앉아 시간을 즐길 뿐이야.'

참으로 많이 변질된 상태다. 과연 존은 훼절한 것인가. 엄청난 부와 안락에 취해 투쟁 의지를 저버린 것인가. 이런저런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앨범 발표 몇 개월만인 1980년 12월 8일 그는 팬이라고 자처하고 순순히 다가온 마이크 채프먼이라는 정체불명의 청년이 쏜 총에 맞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얼마 전 미국 CIA의 조종으로 마이크 채프먼이 존을 살해했다는 미확인 외신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어쨌든 존의 사망과 함께 미국은 레이건의 보수 시대가 활짝 열렸다).

존의 후반기 삶을 집중 조명한 사람들은 “그도 별 수 없는 인물이었다”라고 결론 내리기도 한다.
1970년대 초반의 거침없는 돌진과 견주었을 때 이같은 단정이 무리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결론은 성급한 측면도 없지 않다고 생각된다. 방법론에 변화가 있었을 뿐 최후의 앨범에까지(아무리 냉정하게 따져도) 그의 영원한 테마인 '사랑과 평화'는 결코 그의 두뇌에서 분리되지 않았다.

다만 가정이 큰 관심사로 부각되었을 따름이었다. 그의 유작 <이중 환상>에는 과잉이라고 여겨지리만치 요코에 대한 헌신과 자식에 대한 애정이 전편을 흐르고 있다. 그에게서 가정이란 의미는 개인에게 가치뿐만 아니라 '변화의 밑거름'인 교육을 제공하는 '사회의 살아있는 세포'로 간주되었다. 그간의 현실 투쟁에서 이제 가족을 단위로 한 길고 긴 '역사투쟁'에 돌입한 것이었다.

존 레논의 전설은 신비와 혼돈의 안개에 뒤덮여 있다. 그가 보여준 인생의 드라마틱한 굴곡이 그에 대한 확실한 규정을 가로막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서방체제의 제반 가치를 통렬히 고발한 투사로서의 존의 모습은 재조명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비록 그의 육신은 사라진 지 10년이 훨씬 흘렀지만 엘비스 프레슬리와 같은 '서방의 순종파 가수들'과 달리 현실 개혁과 직접 투쟁으로 일생을 숨가쁘게 달려간 그는 여전히 많은 가수들에게 '노래 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서 있다. 섹스 피스톨즈의 쟈니 로튼, 퀸의 브라이언 메이, ELO의 제프 린, 유투 그리고 조지 마이클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스타들이 그의 영향을 공개적으로 시인하고 있다.

레논이 사망했을 때 영원한 라이벌이자 친구인 폴 매카트니는 이러한 추모사를 남겼다.

존 레논은 예술, 음악 그리고 세계평화에 누구와 견줄 수 없는 지대한 공헌으로 영원히 기억될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는 아직 살아 숨쉬고 있다.


1993/04 임진모 (jjinmoo@izm.co.kr)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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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사람들 - 레닌에서 비틀즈까지

http://www.youtube.com/watch?v=Gf-Q2rDd6Tw&search=beatles

[MV] Beatles Hey Jude /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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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atles -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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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atles - revolution
Added on December 29, 2005, 07:48 PM by bigriverharp

 

한 10년전에 한겨래 신문에서 "20세기 사람들 - 레닌에서 비틀즈까지" 라는 코너를 매주 운영했습니다. 나중에는 2권짜리로 단행본으로 묶여 나왔는데 정치 사회 문화 외에도 아도르노, 마르쿠제 등 현대 사상까지 인물 위주로 포괄하는 아주 좋은 책이었습니다(저는 지금도 이책을 가지고 있는데 이사가다가? 분실하여 다시 구입한 세트입니다. 언론 고시? 준비하던 동생도 같이 끼고 열심히 봤었습니다... 상식 제고 차원에서).
말미의 내용처럼 레논은 롤랑 바르트나 쟝폴 사르트르와 동급이지요. 한시대가 끝났습니다....

아마도 직접 typing하신 정원창 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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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사람들 - 레닌에서 비틀즈까지

100 - 비틀즈 (1962-1971)



전 세계 젊음 열광시킨 자유와 평화의 화음

뛰어난 음악성에 시대정서,이상담은 대중음악의 전설



파리/고종석 주재기자


한국의 1950년대를 회고하는 자리에서 시인 고은은 "아, 50년대!"라는 영탄을 피할수 없었다. 어떤 세대, 어떤 공간의 사람에게는 1960년대가 그런 영탄의 대상 일 것이다. 만약 한 연대의 이미지란 것이 있다면 1960년대의 이미지를 짜내고 있는 것은 어떤 사건들과 사람들일까.

많은 현대사가와 저널리스트들은 그 리스트를 케네디가의 영욕, 베트남전쟁, 아이히만 재판, 알제리 독립, 유리 가가린과 잇따른 우주 정복의 무용담, 중국의 문화대혁명, 그리스의 군사쿠데타, 체 게바라의 비장한 최후, 68년 5월혁명과 그 이듬해 드골의 퇴진, 프라하의 봄 같은 항목들로 채울 것이다. 그런 현대사가들이나 저널리스트의 일부를 포함해서 더 많은 수의 대중은, 특히 그들이 60년대에 10대였거나 20대였다면, 그 리스트에 비틀스라는 항목을 기꺼이 끼워 넣을 것이다. 이런 판단은 비틀스의 리더격이었던 존 레논이 지금부터 15년전 어이없는 죽음을 맞았을 때, 당시의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가 발표한 애도 성명에 의해서도 입증된다. "그의 정신, 비틀스의 정신은 경박하면서도 진지하고, 냉소적이면서도 이상주의적인 그 세대의 정신이 되었습니다."



"경박하면서 진지" 60년대 상징



사실, 비틀스의 60년대 대표성에 대해서는, 그 영역을 대중음악에 한정하다 하더라도 약간의 이의가 제기될수 있다. 그들은 단지 짧은 한 순간 동안만 엘비스 프레슬리 한 사람의 인기를 누르고 팝음악세계의 정상에 머물수 있었다. 정치가요의 전통을 중시하는 이에게 60년대는 비틀스의 시대라기보다는 차라리 보브 딜런이나 조운 바에즈나 컨트리 조 앤 더 피시나 짐 모리슨이나 롤링 스톤즈의 연대다.



그러나 더 대중적이었던 엘비스 프레슬리나 더 정치적이었던 보브 딜런들보다도 60년대의 이미지는 비틀스라는 이름에 더 끈덕지게 달라붙어 있다. 그것은 우선 록 그룹으로서의 비틀스의 시작과 끝이 60년대와 일치한다는 사정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비틀스의 앨범들은 그러나 30년전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여전히 팔려나간다. 게다가 그들 주위에는 그들의 경쟁자들보다도 훨씬 더 많은 신화가 따라다닐다. 그런 신화들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해낸 일은 코드 사용의 극적인 다양성과 리듬의 혁명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또 비틀스식의 복장과 헤어스타일을 통한 한 시대유행의 창조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들 모두는 영국 지방도시 리버풀의 노동자 계급 출신으로서 백만장자가 되는 계급상승의 신화를 이룩했다. 그들 모두는 한사람 한사람이 뛰어난 뮤지션이었고 그 네 싱어송라이터의 만남을 통해 그들 재능의 효과는 한껏 증폭되었다. 그들은 록 음악을 대중에게 더욱 더 친숙하게 만들면서도 비록 좌충우돌하기는 했지만 음악의 정치성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요컨대 그들 모두는 적어도 반전주의자들이었다. 그들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존 레논에게는 음악의 정치적 선동력을 먹어치우는 자본주의 유통회로에 대한 자의식이 있었다. 요컨대 그들은 백만장자 명망가가 된 뒤에도 자기들을 그렇게 만든 좌우의 상업주의에 대한 반성이 있었다.



그 존 레논은 1940년 10월 9일 영국 서쪽의 항구도시 리버풀에서 아일랜드계의 가난한 노동자 앨프리드 레논과 극장 안내원 출신의 부인 줄리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이혼 탓에 이모 밑에서 자라난 존은 고등학교 재학 시절인 1956년에 이미 쿼리맨이라는 그룹을 조직했고 한해 뒤엔 자기보다 두살 어린 왼손잡이 기타리스트 제임스 폴 매카트니를 만났다.



"전쟁대신 사랑을" 베트남전 반대



그 이듬해에 땅딸한 몸통에 기다란 팔다리를 지닌 조지 해리슨이 쿼리맨에 가입했다. 60년에 실버 비틀스로 이름을 바꾼 이 그룹은 도버해협을 건너 당시 유럽 대중음악의 중심지였던 독일 함부르크를 오가며 하찮은 명성을 쌓았다. 앞의 "실버"를 떼고 비틀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레논 그룹에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한 것은 노스잉글랜드 뮤직스토어의 사장인 브라이언 엡스타인이었다. 엡스타인은 레논과 그의 동료들에게 60년대 대중음악계를 불태워버릴 수 있는 연료가 내장돼있다는 사실을 알아챘고, 그 자신이 기꺼이 그 점화자가 되기로 했다.



매니저 엡스타인의 제안으로 레논과 동갑내기인 리처드 스타키(에명 링고스타)를 새 드럼 주자로 받아들인 비틀스 4인조는 역시 엡스타인의 주선으로 62년 EMI사와 계약을 맺고 데뷔싱글 <날 정말 사랑해 줘>를 발표했다.


그들의 뒤이은 싱글 <제발 날 기쁘게 해줘>와 <당신의 손을 잡고 싶어>가 잇따라 히트차트 1위를 기록했을 때, 그리고 64년 2월 비틀스의 미국 공연 뒤 그들의 노래가 빌보드 차트 1위에서 5위까지를 휩쓸었을떠, 이제 비틀스라는 이름은 대중음악사에서 누구도 지울 수 없는 고딕체의 활자가 되어 버렸다. 이어서 비틀스 멤버의 삶을 그리며 영국 노동계급 청년들의 한 단면을 보여준 영화 <어느 힘겨운 날 밤>이 출시됐을때, 더 나아가서 마침내 66년에 비틀스가 집단 기자회견을 통해 베트남전쟁 반대를 선언하고 <필요한 것은 사랑이 전부>라는 노래를 통해 무조건의 사랑과 평화를 역설 했을 때, 비틀스라는 이름은 성공한 노동계급과 대항문화와 프리섹스와 마약과 진보운동의 모순된 그러나 가장 강력한 60년대적 상징이 되었다.



67년 여름 엡스타인이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하고, 존이 일본계 미국인 전위예술가 오노 요코와 가까워지면서 보이기 시작한 비틀스의 분열 조짐은 존에 대한 폴의 라이벌 의식으로 가열돼 71년 그룹의 공식해체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룹 해체 뒤에도 윙즈라는 새 그룹을 이끈 폴 매카트니를 비롯해서 비틀스 멤버들은 잇따른 히트 앨범을 발표하며 제 나름의 음악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리더격 존 레논, 열성팬에 피살



그룹 해체 뒤 존 레논의 삶에 대해서는 약간의 부연이 필요하다. 비틀스 시절부터 정치적 급진주의와 인도의 초월명상, 정신 요법등을 오가며 멤버들 가운데 가장 "히피적인" 면모를 보였던 존은 그뒤 타리크 알리, 로빈 블랙번 제리 루빈 등 대서양을 사이에 둔 두 앵글로 색슨 국가의 신좌파 청년들과 어울리며 급진적 정치운동가로 변모했다. 부인 오노 요코와 함께 뉴욕에 정착해서 반전, 인권운동, 북아일랜드 독립지원운동에 매진하며 우리나라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운동가요 <민중에게 권력을><이매진>등의 노래를 만든 이 시기의 레논은 닉슨 행정부의 블랙 리스트에 올랐고, 공화당 정부는 워터 게이트 사건으로 닉슨이 사임하기까지 계속적인 추방명령과 FBI를 동원한 미행과 감시를 통해 그의 사생활을 옥죄었다. 레논은 1980년 12월 8일 그의 열렬한 팬임을 주장하는 마크 채프먼에 의해 자기 집 앞에서 살해됐다. 바로 그 해에 사르트르, 티토, 에리히 프롬, 롤랑 바르트, 앨프리드 히치콕, 헨리 밀러, 팔레비, 장 피아제, 스티브 매퀸 ,로맹 가리 같은 이름들이 세상을 버렸다. 한 시대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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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의 해산... 그리고

http://www.youtube.com/watch?v=-6G7MkBMVxE&search=beatles

http://www.youtube.com/watch?v=Xra3UKhbG1o&search=beatles

[MV] The Beatles - Get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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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 Back (Rooftop Concert) - The Beat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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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les - Get Back (Let It Be...Naked 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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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초장부터 결성이 아니라 해산을 논하나? 하겠다. 원래 그런게 재밌는거다. 비틀즈의 경우도 해산이 쏠쏠하다. 중심축인 John과 Paul의 갈등이 비틀즈를 사상 유례없이 만개하게 하였다.

 

John과 Paul은 비틀즈의 정식 데뷔 4년전인 58년도에 처음 만났다. 당시 John의 카리스마 밴드에 Paul이 가입했쥐. 존이 참 고민을 많이 했단다. 내가 이 밴드에서 왕인데 이 얼굴 Elvis 비슷하게 잘생기고 노래도 잘하고 더구나 15살부터 작곡을 하던 이 노마를 밴드에 넣을 것인가... 받으면 팀이 강화될꺼 같구 반면에 나의 아성에 개길꺼 같구....

 

바로 그거다. 비틀즈는 John과 Paul의 경쟁 긴장관계 속에서 사상 유례없이 꽃펴왔다.

결국 John은 Paul을 받았으며 Paul을 쫓아 John도 열심히 작곡하게 된다. 그리하여 역사상 최고의 작곡 컴비인 Lennon-McCartney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둘의 최초의 갈등은 1965년 말. 롤링스톤지 평가 멘트대로 '아마도 가장 위대한 앨범일지도 모르는' Rubber Soul 앨범 시절 처음 표면화된다. 역사에 길이 남을 기타 리프곡인 John의 작곡 Day Tripper를 싱글 A면으로 하기로 했는데 나중에 Paul의 작곡 We can work it out이 역시 A면 가오로 급부상하였다. 팽팽한 양측의 세싸움 결과 더블 A사이드 싱글로 내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영국에서는 2곡이 모두 1위하였고 미국에서는 We can work it out이 1위, Day Tripper가 빌보드 5위를 차지했다. 2곡 모두 Rubber Soul 앨범 전체를 규정하는 걸작들이다. 좌우간 이렇게 신경전이 불거졌다.

 

1966년의 '롹 역사상 가장 실험/혁명적인 앨범' Revolver에서는 멜로디 메이커로서의 Paul의 재능과 더욱 깊히 자아를 성찰하는 John의 개성의 차가 더욱 두드러졌다.

 

공연을 완전히 중단한 후

1967년 '비틀즈의 농축된 재능이 만들어낸 불가사의'인 Sgt. Pepper~ 앨범을 만든다. 이 앨범의 피날레 곡인 A day in the Life는 비틀즈 최고의 걸작곡으로 평가되는 노래로 John과 Paul의 합동작인데 이는 작곡을 같이 한게 아니라 두 사람의 서로 다른 두곡을 기술적으로 합친 것에 불과했다. 이후 매니져인 Brian Epstein이 overdose로 죽는다. 이 때부터 워커홀릭인 Paul의 독주가 시작된다. 반면 게으른 John은 Yoko 주위를 겉돈다.

 

1968년 '비틀즈의 섬광이 극치에 달한 더블 앨범' white album에서 이제 이들의 결속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Rubber Soul/Revolver 2장을 합친 듯 30곡의 명곡을 쏟아냈지만 그 곡들은 각 멤버의 솔로곡에 지나지 않았다. 나머지 멤버는 단지 세션 연주가의 역할에 불과했다. (앨범 작업을 하는 동안 맨날 싸워댔는데 정작 팀을 떠나겠다고 한 것은 드러머 Ringo였다).

 

69년 공연을 다시 재개하기 위해 시작한 Get Back 프로젝트를 통해 멤버들간의 관계는 오히려 완전히 파탄났다. 과거로 돌아가려는 Paul의 Get Back의 꿈은 결국 해산하도록 내버려둬라Let it be가 되었다. 결국 공연도 못하고 런던 애플 옥상에서 게릴라 콘서트 비슷하게 하는걸로 대체되었다. 69.1.30 옥상 공연은 팀의 마지막 결속의 활동이다. 그런만큼 최상의 컨디션 상태 연주를 보여주었다.

 

69년 중순 이제 아주 내놓은 제목의 Ballad of John n Yoko라는 싱글을 녹음하는데 오히려 John, Paul 둘이만 만나서 북치고 장구치고 다하고 녹음했다. 이곡이 노래로써는 둘간의 실질적인 마지막 협력이리라...(나중에 John은 자신의 솔로곡 Give Peace a Chance에서 그 고마움의 표시로 작곡 크레딧을 Lennon-McCartney로 달았다).

 

1969년말 '해산 직전이라고는 그룹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걸작' Abbey Road가 폴의 주도로 제작되었다. 비틀즈의 실질적 마지막 앨범이다. 서로 마지막이라고 스스로 느낀 만큼 멤버들이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앨범의 B면은 하나의 opereta를 창조했다. 반면 이에 대해 존은 서로 다른 곡을 하나로 묶은 것에 불과하다고 폄하한다. 좌우간 앨범으로는 실질적인 마지막 작품으로 마지막 곡 제목도 공교롭게 the end이다(그러나 실제 마지막 곡은 히든트랙 Her Majasty이다)

 

1970년 방치되던 Get Back 프로젝트의 잔여물이 앨범 Let it be라는 이름으로 정리되었다. 멤버들 중 아무도 관심가지지 않고 방치되던 것이었다. Get back은 포기되고 걸맞게 Let it be로 명명되었다. 형식적인 마지막 앨범이다. 이 앨범의 수록곡중 비틀즈가 공식적으로 마지막으로 녹음한 George Harrison 작곡의 I ME MINE은 그나마 존이 참가하지도 않았다. 역시 앨범 수록곡 중 The long n winding road는 비틀즈의 마지막 싱글로 70년 20번째 빌보드 1위곡이다. 마치 비틀즈의 역정을 정리하는 듯 하다. 공식적인 마지막 노래이다. 그랬다.

 

 

ps.

비틀즈의 5대 명반에 대한 찬사는 침이 마를만큼 해도 모자라지 않다. 물론 전작 초기4장 앨범도 롹큰롤 폼을 규정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5대명반은 마스터 피스들이다. 도저히 버릴 곡들이라고는 없는, 마치 히트곡 모음집을 연상케하는 Rubber Soul (65)/ Revolver (66) 그리고 그와 비슷한 두장짜리 더블 앨범 white album(68), 개인적으로 꺼리나 67년 Sgt.Pepper 앨범은 당시 녹음 테크놀로지를 총동원한 시의적절함이 있었으며 실질적 마지막 앨범 abbey road(69)는 opreta 도입을 통해 음악적으로도 진보적이었다.

 

최근 스톤즈를 좀 들어봤다. 롤링스톤즈의 명반으로 이하의 것들을 뽑는다.

 

    AFTERMATH  1966
    Between the Buttons 1967
    THEIR SATANIC MAJESTIES REQUEST  1967  
    BEGGARS BANQUET  1968
    LET IT BLEED -   1969
    Sticky Fingers -   1971   
    Exile on Main St. - 1972

 

어떻게 비틀즈와 비교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된다. 과거 스톤즈 곡들중 엄청 뛰어난 레퍼토리들은 satisfaction, get off my cloud, paint it black, jumpin jack flash, sympathy for devil, honky tonk woman, gimme shelter, brown sugar 등 몇곡 안된다. 위의 앨범들 중에도 후진 곡들 많이 있다. 비틀즈처럼 전곡이 다 뛰어난 음반 만들기가 그렇게 힘든거다.

 

롤링 스톤즈의 최고 명반으로는 스톤즈판 2장짜리 white album으로 평가받는 Exile on Main St.을 친다. 음... 충분히 그 가치를 대접받을 만한 명반이다.

 

개인적으로 롤링 스톤즈 앨범 중 THEIR SATANIC MAJESTIES REQUEST 1967 좋아한다. 비틀즈의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사아키델릭 앨범 모방작 아류라고 엄청 욕먹었던 앨범이지만 앨범 그 자체로는 잘 만든 작품이다. 스톤즈로서는 새로운 참신한 시도이다.

 

롤링스톤즈의 최고 명반을 LET IT BLEED 69년작이라고 생각한다. Get Yer Ya-Ya`S Out! 1970년 실황앨범과 같이 들으면 좋다. monkey man같은 곡 스타일은 Cream 지향적 연주이다.

 


Rolling Stones / Let It Bleed
01   Let It Bleed 
02   Love In Vain 
03   Midnight Rambler 
04   Gimmie Shelter 
05   You Got The Silver 
06   You Can't Always Get What You Want 
07   Live With Me 
08   Monkey Man 
09   Country Honk 

Rolling Stones / Get Yer Ya-Ya`S Out! (Live)
01   Jumpin` Jack Flash 
02   Carol 
03   Stray Cat Blues 
04   Love In Vain 
05   Midnight Rambler 
06   Sympathy For The Devil 
07   Live With Me 
08   Little Queenie 
09   Honky Tonk Women 
10   Street Fighting Man 

 

이 앨범은 레온 러셀, 알 쿠퍼, 라이 쿠더, 지미 밀러 등 롤링 스톤즈 앨범 사상 가장 화려한 게스트들이 등장하는 수작이다.
또 하나의 롤링 스톤즈다운 명곡으로 기억될 'Gimme Shelter'에서는 소울적인 뉘앙스도 감지되고 있는데, 코러스 부분에서 이들은 살인과 능욕, 그리고 사랑 등을 매우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라이 쿠더가 만돌린을 연주하고 있는 'Love In Vain', 피들 연주가 시골적인 풍경을 잘 표현해주는 'Country Honk', 키쓰 리처드의 베이스와 레온 러셀의 피아노, 그리고 바비 키스(Bobby Keys)의 테너 색소폰 연주 등을 들을 수 있는 경쾌한 'Live With Me' -레온 러셀의 혼 어레인지도 좋다-, 이안 스튜어트의 피아노가 사이드 곳곳에서 빛을 발하며 키스의 슬라이드 기타 솔로 역시 구수하게 다가오는 타이틀곡 'Let It Bleed', 브라이언 존스가 퍼커션을 연주한 폭력적인 남녀차별주의적 송가 'Midnight Rambler' -리듬이 점차적으로 빨라지며 흥분도를 더하는 것이 인상적-, 키쓰 리처드가 보컬과 기타를 함께 맡고 있는 'You Got The Silver', 탬버린과 비브라폰 등을 삽입하고 있는 재즈적 업템포의 'Monkey Man', 그리고 CF에 삽입되어 익숙한 'You Can't Always Get What You Want(Version 2)'에서는 알 쿠퍼가 피아노부터 프렌치 혼, 오르간까지 도맡아 연주하고 있으며 런던 바흐 성가대까지 가세시키고 있는 것이 돋보인다.
한편 이 앨범이 공개될 즈음 이미 비틀즈는 와해와 해체의 조짐을 보이고 있어 롤링 스톤즈는 세계 최고의 로큰롤 밴드로 올라서게 되었다.
이 앨범을 끝으로 브라이언 존스가 그룹을 떠난다. 그는 멤버들과의, 더 정확히는 믹 재거 및 키스와의 음악적 견해 차이가 두드러져 결국 팀을 떠나고 만 것이다. 그는 밴드를 탈퇴한지 불과 한 달만에 죽고 말아 주변을 가슴아프게 하기도 했다. 


첫 포문을 여는 전미 챠트 1위 곡 brown Suger는 이들의 라이브시 항상 마지막을 장식하는 명곡으로(이들의 공연을 보면 이 곡이 나올 때 가장 화려한 스테이지가 연출된다) Keith Richards의 발군의 리듬기타 베킹을 중심으로 어쿠스틱 기타, 섹스폰, 피아노가 혼연일체를 이루며 흥겨운 로큰롤을 만들어 낸다. 이어지는 sway는 brown sugar보다 템포가 한층 느려지긴 했지만 흑인 블루스의 향취가 그윽한 곡으로 특히 곡 후반부 Mick Taylor의 발군의 기타 솔로를 들을 수 있다. Pearl Jam 의 alive의 후반부 기타솔로와 비견될 만하다. Rolling Stones의 곡치고는 너무나 아름다운(사실은 Rolling Stones이기 때문에 가능한) 록발라드 wild horses는 필자가 이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트랙이다. 노을이 비껴가는 저녁하늘을 바라보며 느끼는 이유 모를 서글픔이 밀려오는 듯한 여운을 주는 곡이랄까. 공격적이고 거칠 것만 같은, 록 역사상 최고의 보컬 연출자 Mick Jagger의 보컬 역량을 이 곡에서 명백히 확인할 수 있다. 이어지는 또 다른 명곡 can’t you here me knocking은 록큰롤풍으로 흐르다가 곡 중반부부터 B. keyes의 흐느적거리는 섹스폰이 재즈적 빚깔이 내는가 싶더니 이내 Mick Taylor의 진득한 블루스 기타톤이 끼어든다. 기타와 섹스폰이 섞여 마치 서로를 애무하는 듯한 모양새로 곡을 마친다. 이 곡 중반부를 들을 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성적 무드를 연상케 하는 곡이다. 이어지는 곡 you gotta move는 블루스 풍의 한층 느려지고 단순해진 사운드의 곡으로 뭔가에 도취된 듯한 보컬과 슬라이더 기타가 절묘한 어우러짐을 연출해 낸다. 분위기를 또 다시 바꿔 이어지는 btich는 터프하고 거칠 것 없는 전형적인 Rolling Stones표 음악이다. 보컬, 관악기, 슬라이더 기타, 그리고 타악기가 이렇게 촘촘히 잘 짜여지면서 익사이팅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은 Rolling Stones가 왜 록큰롤의 천재인가를 말해준다. Mick Jagger의 호소력 짙은 보컬이 돋보이는 l got the blues는 브라스의 반복적인 멜로디라인이 가히 일품으로 곡 중간 Billy Preston의 하몬드 오르간 연주는 곡을 더욱 맛깔스럽게 만들어 준다. 거장 Ry Cooder가 참여해 멋드러진 슬라이더 기타 연주를 선보인 sister morphine은 일설에 의하면 당시 Mick Jagger와 연인으로 마약에 찌들어 있던 Marianne Faithful을 염두에 두고 만든 곡이라 한다. 상큼한 컨트리풍의 곡 dead flower는 이 앨범 전체를 지배하던 흑인 블루스 필이 완전히 가신 곡으로 블루스에 거부감을 느끼는 국내 팬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을 듯 한 곡이다. 곡이 경쾌하고 부담이 없다. 마지막 곡 moonlight mile은 Stones팬들에게 she’s rainbow나 2000 light years from home과 함께 이들 최고의 사이키델릭록으로 받드는 곡이다. 특히 후반부의 웅장한 스케일의 현악연주는 아트록과 클레식의 느낌마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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