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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하는 고백

작년 7월 하던 일을 중단하고 4개월의 긴 여행을 다니면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 혹은 내가 끌어안고 있는 현실로 부터 자유로운 해방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내가 내린 대안적 삶에 대한 대략적인 결론은, 자발적으로 가난해 질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이며, 내 몸뚱아리를 이루고 있는 손과 발과 가슴이 원하고 말하는 것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 돌아오면서 난 아주 가뿐하게 농부가 되길 결심했고 그리고 그걸 준비하는 시간을 갖고자했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온 후, 나의 결심은 흔들흔들, 위태위태 해지기 시작했다. 현실의 다양한 모순과 문제들을 가지고 운동을 하는 친구들을 다시 만나고 내가 의미있고 가치있다는 것의 내용이 자꾸만 다른 것들로 채워지고 그러다보니 스스로 중심을 잘 찾지 못했다. 또다시 거대한 담론의 늪에 빠져버리고 말았고, 현재 어쨌든 도시에 사니깐 뭔가 의미(?)있는 일을 시골로 가기 전까지 해야한다는 나름대로의 강박같은게 다시 생겨나게 되었다.

 

3년가량 돈을 버는 일을했고 놀고 있다는 얘기가 돌면서 지역운동하는 사람, 당운동 하는 사람, 대안학교 하는 사람 등 여기저기서 함께 뭔가를 하자는 제안들이 자꾸 들어왔다. 어쩜 난 아직 내가 쓸모있는곳이 있나보네 하며 기분이 좋기도 했고, 다른 측면에서는 이왕 한다면 예전에 내가 했던 그런 활동을 한번 하고 싶은 욕구도 마구마구 생겨났다. 그러면서 난 운동을 해야하는 이유보다 사실 활동을 하면서 행복했던 경험이 더 많이 떠올랐다. 이러면서 정리되었던 마음이 다시 막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체제를 거스르며 사는 건 모두가 직업운동권이 되는 문제는 아닌데, 난 다시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활동가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막 간절하게 생기게 되었다. 사실 그 모습과 그 내용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말이다. 그래서 난 내 친구에게 요구해고 그 친구를 마구 흔들었다. (그는 내게 너무도 소중한 동지다.) 그러나 내겐 허영이 있었고, 우습잖은 환상같은 것도 있었던 모양이다. 황당한 내용으로 모이작당해보자는 게 영 마음에 안드는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난 혼란스러움을 중단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적이 없는 '모'환경단체에 이력서를 넣었고, 지난한 면접의 과정을 통과해서 신입으로 뽑혔다. 사실 이러한 행동과 결론에 이른것은 나의 고민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 단체에서 몇일간 진행한 연수를 통해서 아주 강하게 느끼게 되었다. 사실 이건 지극히 예상가능한 결론이었다. 내가 그곳에서 활동을 한다는것은 자본주의 사회를 거스르며 가난하게 살겠다는 것과도 이어지지 않고, 내 몸뚱이와 감성을 자라게 하는 일도 아니며, 농부가 되려는 그 과정에 있지도 않으며 내가 해보고 싶었던 활동과도 전혀 성격이 다르다.

 

황당한 나의 행동이 다시금 내 뒤통수를 친다. 이런 모습은 내안에 복잡하게 얽히고 정리되지 않은 가치관이 마구마구 섞어버려서인것 같다. 남들이 하면 부럽지만 내가 하면 두려운 것들이 참 많아서 였던것 같다. 남들이 돈이 없어도 열심히 운동하는 것이 부러우면서도 난 그게 무섭다. 남들이 백수로 지내면서 느리게 소박하게 사는것이 부러우면서도 내게는 잘 허용이 안된다. 남들에게는 차근차근 여유를 가지며 살아보라 쉽게 말하지만 내겐 참으로 급한 사람이다.

 

결국 난 틀과 그 틀의 밖 사이에 있는 경계선에서 나자신을 왔다리 갔다리 옮겨 두고 있다. 이제는 정리해야지 싶은데... 그래서 난 내가 지원한 그 단체의 활동을 포기할꺼고, 서른둘의 삶을 다시 쓸꺼다. 진짜 베짱이가 되는 그런 삶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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