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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린 보람..

   살면서 '보람'을 느끼는 날이 그리 많지 않은것 같다, 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는데 이번에 블로그가 개편된걸 보니 처음 진보블로그를 쓴 날로부터 6년여 세월이 결코 무색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글쓰는것과 블로그개편과는 아무 관련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웬지 새 블로그로 이사온 듯한 느낌이 나쁘지는 않다. 그동안 개편에 관한 여러 공지가 떠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나름 기다리고 있었던 1인으로서 '보람'이 꽤 있고나...ㅋ 그리하여 다시한번 관계자 여러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고맙다는 인사를 꼬옥~! 전하는 바이다. 정말 고생들 많이 하셨습니다.

 

   문뜩 지난 포스트를 읽어 보는데 어느 분이 쓴 덧글중 인생의 절반은 '기다림'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나는 '외로움'을 태그로 포스트를 썼는데...인생의 반은 기다림, 그리고 반은 외로움...그럴듯한 말이다. 죽을때까지 내가 원하는 그것들을 위해 마음과 행동으로 옮기고 발로 뛰고 고민하고 시궁창 처럼 굴러 가더라도 놓지 않고 사는 이유는 그 무엇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것과 같으니까. 비록 기다림에 지쳐 벽에 똥칠을 하는 날이 오더라도 말이다.  지금 나의 상황도 그렇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다고 맨날 앓는 소리나 하면서도 나는 쉽게 기다림을 포기 하지 않는다. 지금 내가 기다리는 것은 이 곳(쪽방촌)의 주민들이 더이상 가난에 주눅들지 않고 떳떳하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말하며 조금이라도 더 나 보다는 남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사람들이 되고, 사소한 일로 싸우지 않으며 서로를 배려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지극히 소박(?)한 일들일지 모르지만  이것들은 지금 내가 바라는 가장 큰 '기다림'중 하나이다. 나는 그것을 돕기위해 여기 있지만 여전히 나의 영향력은 크지 않다. 그럴때 마다 나는 소진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휩싸이고 기력을 잃기도 한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난 원체 더위에 약해서 조금만 더워도 잘 참지 못하며 어디를 가도 에어콘 에어콘을 노래 부르며 살기 바빴다. 가까운 지인은 에어콘 싫다고 반대의 목소릴 드높이는 바람에 옥신각신 하기도 했고.. 그런데 드디어 불볕같던 더위가 가버리고 가을이 오고 있나보다. 기다린 보람이라는게 이런거겠지? 그 지독한 여름이 가버리고 귀뚜라미 울어대는 가을이 오고 있으니 말이다. 따라서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살것만 같은 날씨다. 비록 비가 오기는 하지만 숨을 쉰다는게 신기하고 편안하다. 이렇듯 기다리는 계절, 기다리는 마음이 가득하면 언젠가 그것들은 "꼭"이루어 지나보다. 거기다 '보람'을 느끼면 더더욱 금상첨화겠지.

 

   사실, 나는 유난히 기다림에 약한 존재이다. 성질머리가 급한것도 한몫을 하지만 느긋하게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은 정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 나를 보는 주변 사람들은 안절부절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하는 모습에 많이 피곤해 하기도 한다. 허나, 이곳에 와서 일하면서는 그 어떤 사소한 것이라도 기다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민들은 언제나 내가 바라는 기대치에 오지 않는다. 그러한 기대치를 갖는것 자체도 어쩌면 사치스럽고 교만한 일일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일을 하다보면 당연히 목표를 가지게 되고 기대를 갖게 된다. 그 기대와 목표가 없으면 어떤 일도 하나마나 한 일이 되듯이... 기대를 낮추고 기다리는 마음을 갖게되니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끼게 된것도 최근의 일이다. 급한 돈문제로 돈을 꾸어 갔을때도 나는 제때에 갚지 않으면 노심초사 하기 일쑤인데 대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언제나 여유롭게 주민들을 만나고 기다리는 마음을 갖고 일하는 대표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을 참 많이도 했었다. 

 

   며칠전 주말 밤에는 갑자기 한 주민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두 달 전에 꾸어간 돈을 갚으려고 하니 계좌번호를 알려 달라고...그래서 나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 "오~~ 착하네요. 좀 늦기는 했지만 계좌번호는 ㅇㅇㅇㅇ 입니당.' 하고. 나는 그가 꾸어간 금액이 얼마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보냈다는 돈은 달랑 1만원 이었다. 돈 만원을 잊지 않고 갚으려는 그 마음자세가 참 훌륭하게 생각되어 고생했다, 어떻게 지내냐는 답문을 보냈다. 이렇게 별거 아닌일로 새삼스러운 감동을 주고 받는 일이 흔치 않게 일어나는 곳인데 여기서 기다림을 포기할수는 없지 않은가. 짜증스러운 얼굴로 주민들과 마주하며 약속 안지키고 책임감 없다고 뒷다마 깐 것을 반성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올 여름에는 이 단체가 문을 연 지 처음으로 지역주민들과 단체로 수련회를 가기도 했다. 30명이라는 대대적인 인원이 모여 경기도 일영 유원지로 놀러를 갔는데...야심찬 프로그램 까지는 아니었어도 프로젝트로 딴 돈이 좀 있다는 핑계를 대고 일상탈출을 시도했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주민들은 잘 논다. 매 끼마다 소주를 반주로 내다시피 하고 밤에는 옥신각신 서로의 의견을 앞장 세우기에 바빴지만 그래도 한 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함께 더위를 피해 어디론가 왔다는 것이 좋았나보다. 앞장서서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고기를 굽고 치우고 술잔을 기울이고 웃고 떠들다가 왔다. 하필 그날따라 비가 와서 물놀이를 왕창 하지는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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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반기가 쏜살같이 흘러갔다. 상반기 결산을 좀 해야 하는데...그동안 덥다고 소식지도 제대로 못내고 앉아만 있어도 쏟아지는 땀방울이 괴로워 농땡이도 많이 쳤는데, 다시 심기일전 모드로 돌아가야겠다.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는 법을 배우며 오늘도 살아갈 것이다(안 어울리는 비장한 각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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