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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피랍: 자기책임론을 걷어버리자

지금 아프간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20명의 기독교 선교단에 대해 여론은 대체로 두 가지 수식어를 붙여주고 있다. '멍청이' 또는 '광신도'. 이 수식어들은 '자업자득이니 가서 순교하게 내버려둬라'라는 주장이나 '일단 구출하고 그 다음에 책임을 묻자'라는 주장을 뒷받침 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어느 주장이나 '자신들의 신념을 전파하기 위해 위험한 줄 알면서 간 것이니 그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생각에 입각해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러한 자기책임론은 기독교의 공세적인 선교정책에 평소부터 가지고 있던 반감이 투영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들이 아프간에 간 목적이 기독교란 사실이 또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왜 기독교에 대한 깊은 반감을 갖고 있는 국가에 기독교를 선교하겠답시고 가서 저 꼴을 당해 국가에 피해를 끼치는가? 지금 사경을 헤매는 이들을 눈 앞에 두고 벌어지고 있는 자기책임 논쟁은 어느 정도 그들이 기독교도라는 사실에 근거해 있는 것이다. 만약 그들이 기독교도가 아니고, 따라서 반기독교 정서에 우리가 쉽게 기댈 수 없다면 그 때도 지금처럼 쉽게 자기책임론을 말할 수 있을까?


(1) 인권이란 이름이었다면

911 테러사건 직후 미국이 오사마 빈 라덴을 잡겠다며 아프간을 침공해 그들의 화려한 군사기술을 뽐내고 있을 무렵, 언론에 비친 아프간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미사일과 문을 박 차고 들어와 '빈 라덴 내놔!'라고 소리치는 미군에 의해 고통받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미군이 아니라 여성에게는 교육도 못 받게 하고, 문화를 파괴하는 이슬람 근본주의 정치를 자행하는 탈레반에 의해 신음하고 있었다. 차도르로 눈만 겨우 내 놓은 아프간 여성의 모습 뒤에 이어지는 미군의 미사일은 마치 억압자를 향해 내리 꽂히는 신의 망치처럼 보이지 않았는가? 아프간은 단순히 알 카에다에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아프간에 '인권'이라는 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행해진 것이었다. 어쨌든 공식적으로는 그랬다. 물론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다. 미국이 탈레반을 몰아내고 집권시킨 북부동맹은 탈레반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이들이었고, 전쟁복구가 미비한 가운데 아프간은 가난과 마약과 정치적 부패로 신음하고 있다. 

만약 피랍된 사람들이 종교인이 아니라 아프간의 여성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교육사업을 벌이거나 마약중독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던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사람들은 아프가니스탄처럼 반기독교 정서가 강한 곳에서 기독교를 선교한 것에 대해 책임을 돌리고, 기독교의 공세적 선교정책을 문화 다원주의를 거스르는 몰상식한 행동이라 여긴다. 하지만 우리의 문명에는, 기독교의 이름으로 식민화된 지역에 찾아가 자신의 삶을 헌신한 백인 영웅들의 이름 또한 기록되어 있지 않은가? (혹시나 해서 덧붙이는데, 앞 문장은 기독교의 행적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만약 피랍된 이들의 행동이 인권의 이름으로 비호받을 수 있다면 여론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인권은 기독교보다 광범위한 지지기반을 얻고 있는 가치이기 때문이며, 심지어 그래서 미국의 아프간 침공의 공식 이데올로기이자 한국의 파병의 이데올로기로 채택된 것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와 인권 사이에 명확한 위계를 매긴 채 기독교 선교라는 목적을 비판할 수 있는가?



(2) 납치가 일어난 파병이라는 현실

인권이건 신이건 상관 없이 자청해서 간 것이니 그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피랍자'가 '납치'에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어떻게 뭔가를 당한 사람이 그 일에 책임이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왕따 당한 사람에 대해서 '저러니 왕따 당할 만 하지'라고 말하는 것 까진 이해할 수 있어도 '니가 그렇게 행동했으니 왕따 당한 건 네 책임이야'라고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 '자업자득이니 가서 순교하게 내버려둬라'라는 말은 '왕따 당한 건 네 책임이니 선생님 귀찮게 하지 말아라'라는 말과 똑같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들이 위험한 곳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선택한 것과 실제로 납치를 선택한 것은 별개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당연히 위험에 처한 국민은 국가에게 그들을 도울 것을 요청할 권리가 있다. 이를 저버린다면 국가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대체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물론 자기책임론을 주장하는 사람들 역시 국가가 그들을 무시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저 국가의 책임을 경감시키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국가가 요구를 수용하지 않아 그들을 구해내지 못하더라도 국가를 비난해서는 안 되며, 국가가 요구를 수용해서 그들을 구출하더라도 이로 인해 발생한 국가의 피해를 그들에게 문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체 이번 피랍사건으로 국가가 어떤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인가?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투입된 인력이나 비용은 원래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을 수행한 것이니 피해라고 볼 수는 없다. 요구를 수용했을 때 '테러에 굴복한 약한 국가'라는 이미지가 붙는 것이 피해라고들 한다. 국가 신뢰도도 떨어지거니와 한 번 굴복했으니 이를 노리고 테러범들이 계속 한국인들을 납치할 것이니 실제적으로도 테러위협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테러와 국가라고 하는 것이 모든 맥락을 무시한 채 추상적으로 둥둥 떠다니는 것일까? 테러범들이란 다이하드에서 존 맥클레인이 무찌르는 일당들처럼 허공 속에서 뜬금없이 쑥쑥 솟아나는 이들이며 국가는 시뮬레이션 게임의 능력치 항목처럼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아프간과 탈레반이라는 지금 테러의 맥락 속에서 한국이라는 국가의 신뢰도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게는 자신들과 더불어 세계의 패권을 유지해 나갈 수 있게끔, 적당히 이익을 쫒을 줄 알고 힘 앞에 굽힐 줄 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슬람 국가들에게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약소국을 침략하는 더러운 욕망을 의미할 것이다. 국가의 신뢰도라는 일견 중립적인 말은 사실은 강력한 가치를 수반한 말이다. 그런 말을 입에 올리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는 과연 이 전쟁이 일어나는 맥락을 고려한 후에, 한국의 아프간 파병을 정당하다고 생각하면서 말을 하는 것인가?  

요구수용이 테러의 연쇄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이 주장에는 테러범들의 구체적인 존재가 사상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이 언제나 일관되게 행동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미국이 인권의 이름으로 침공을 정당화 하다가 전쟁에 대한 보도가 시들해지자 그를 위한 노력을 방관하는 것처럼 한국 역시 이번 테러와 다음 테러에서 취할 태도는 완전히 다를 수 있다. 그런데 '다음 테러'라니? 다음에 테러를 하는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캐나다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는 퀘벡사람들일까? 물론 아닐 것이다. 다음에 또 납치 소식이 들려온다면 아마도 한국군이 침략군의 일환으로 파병되어 있는 이라크에서 일 것이다. 다음 테러가 걱정이라면, 20명의 희생을 감수하며 테러범들에게 강경책을 펴기 보다는 더 빨리 철군을 계획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테러범들은 '악의 집단'으로 추상화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존재한다. 다음 테러를 걱정하기 전에, 그리고 테러범들을 테러범이라고 부르기 전에 먼저 한국의 군대 파병이라는 현실을 생각해 보는 게 어떻겠는가?     

 

한국 정부는 국민들에게, 우리는 아프간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침략국일 미국의 요구를 받아 침략군의 일원으로서 아프간에 갑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인권과 봉사의 이름으로 파병을 정당화했다. 정부의 뒤를 이어 국민들이 신앙과 봉사의 이름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아프간에 갔다. 이들이 국익을 침해했다고? 과연, 이들은 아프간이 결코 한국인들을 반기지 않는 곳이며 한국군 역시 결코 반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함으로써 국가의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밝혀냈으니 국가에게 피해를 입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해야 하는 것은, 피랍자들에게 왜 그런 데엘 왜 갔느냐며 문책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게 대체 파병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고, 파병이 대체 어떤 것이었는지를 해명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며, 이번 일로 이런저런 마음 고생을 할 게 분명한 국가를 위로한답시고 피랍자들의 책임을 얘기할 게 아니라, 국가에게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 국민을 구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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