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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공식의 또 다른 측면, 즉 "여성적" 측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계급투쟁의 개념이 어떻게 역사적 유물론 속에 작동하는지 상기하기만 하면 된다. (그 어느 때보다 오늘날의 "탈-이데올로기" 시대에 딱 맞는) 구좌파의 슬로건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없다"는 "모든 것(총체로서의 사회)은 정치적이다"는 보편 판단이 아니라 전부는-아닌 집합의 "여성적" 논리의 차원으로 읽어야 한다. 그래서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없다"는 정확히 사회적 장은 불가피하게 정치적 분열에 의해 표지되어 있음을, 즉 사회를 단일한 전체로 인식할 수 있는 중립적 "제로-지점"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뜻한다. 달리 말해,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없다"는 정치적 장에서 "메타 언어란 존재하지 않는다"를 뜻한다. 즉, 어떤 종류의 사회적 기술이나 이해라도 당파적인 언표행위의 위치를 함축하고 있다. 극단적인 의미에서 그것은 이미 "정치적"이며, 우리는 언제나 이미 어떤 "편에 서 있다." 계급투쟁이란 객관화될 수 없는, 즉 사회적 총체 안에 자리매김될 수 없는 이 불가해한 한계, 또는 분열에 붙여진 이름이다. 왜냐하면 우리로 하여금 사회 일반을 단일한 총체로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그 한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없다"는 바로 그 점이 사회를 단일한 총체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정치적"이라는 술어를 통해 이 총체를 "모든 것은 정치적이다"고 규정하더라도 말이다.
슬라보예 지젝,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인간사랑, 2004, 314쪽
(그리고 위 문장에 대한 지젝의 주석) :
오늘날 우파와 좌파의 차이는 진부한 문제틀이라는 얘기가 많다. 이런 이야기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이 두 개념의 비대칭성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좌파는 "나는 좌익이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즉 좌와 우의 구분과 분열을 인식하는 사람이다. 이에 반해 우파는 그 변덕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스스로를 중심에 두고서 "극단주의"를 "한물 간 것"으로 비난한다. 달리 말해 좌/우의 구분은 오직 좌파적 관점에서만 그 자체로 인지(헤겔식으로, 정립)된다. 이에 반해, 우파는 스스로를 "중심"에 있는 존재로 인식한다. 그들은 "전체"의 이름으로 말한다. 그들은 분열을 거부한다. 그래서 정치적 공간의 분절은 성차sexuation에서처럼 역설적이다. 그것은 단순히 전체가 두 편으로 분절되는 것이 아니라 한쪽 편(좌파)이 분열 그 자체를 대리표상한다. 그리고 다른 편(우파)은 그런 분열을 부정한다. 그래서 좌우의 정치적 분열은 필연적으로 "좌파"와 "중심"의 대립이라는 형태를 취한다. 거기서 "우파"의 자리는 비어 있다. 우파는 자기 자신을 일인칭 화법으로 "나는 우익이다"고 말할 수 없다는 점에 의해 정의된다. 그들은 오직 좌파의 관점에 의해서만 그 자체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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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만 다 읽고 나가서 과일 먹으면서 담배나 피자고, 이미 온 몸에 퍼져 버린 지겨움과 끙끙거리며 싸우고 있을 때, 저 구절이 눈에 말 그대로 번쩍하고 들어 왔다. 자본론의 가치형식절에 대한 재독해에 이어, 마르크스주의와 라캉을 연결시키려는 지젝의 또 다른 시도라는 점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도 일상적인 경험으로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저 설명의 예리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맛에 지젝을 읽는다(그리고 견딘다-.-)
요컨대, 좌파가 보기에 우파는 우파지만, 우파가 보기에 좌파는 그냥 미쳤다는 거다. 그리고 좀 지나친 해석인지도 모르겠지만, 지젝은 좌파란 본래 사회 내부에서 '광기'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급진적 입장이라고 하는 것은 기존의 사회적 인식으로는 소화할 수 없는 의제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언제나 광기일 수 밖에 없다. 사육되는 동물들에 대한 끔찍한(즉, 비인간적인) 조치에 대한 거부감으로 채식을 선택하는 사람들처럼, 고용이나 임금 등에서의 산술적 양성 평등의 달성만을 목표로 삼지 않고, 그런 통계에서 결코 잡히지 않을 문제들을 고민하는 사람들처럼. 그러니까 진보적 정치를 일련의 합리적 정책으로 환원시키는 이른바 '합리적 진보'나 '새는 좌우 두 날개로 난다'며 훈계조로 말하는 절충주의자들은, 완전히 틀렸다. 정책은 오직 좌파를 배제했을 경우에만 합리적일 수 있고, 좌파는 잘 날고 있는 새에 달라 붙어 간지럽히는 벼룩과 같은 것이다. 좌파라는 말은, 그 역사 때문에 역으로 다양한 급진적 정치를 포함하지 못하는 개념으로 배척당하기도 하지만, 지젝의 해석을 통해 새롭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여간 이제 정말로 담배 한 대 태우러 나가야 겠다. 낮에 마트에서 처음 보는 과일을 하나 사 왔는데, 담배와 맛이 꽤 잘 어울릴 것 같다. 평소 요리랍시고 해 먹는게 워낙 시원찮아서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지만, 독일 과일은 한국보다 대체로 맛이 좋은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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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눈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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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어렵지않나요? 관심은있지만,, 아니 못본책이 많아서리 손도못대고있고,, 조만간 봐야할듯..부가 정보
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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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한테는 무척 어려운데요, 하지만 비교적 잔재미를 많이 주는 글이라 어떻게든 읽어볼만 한 것 같아요. 글에서 농담을 많이 인용하는데, 전 지젝의 개그 센스가 좋더라구요 흐흐.부가 정보
윤태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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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을 읽는 이유가 저와 비슷하군요. ㅎㅎ'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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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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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좌우파에 대해 타당하고 공감이 가는 해석이로군요. 저도 예전에 그런 생각을 해봤죠. 사회주의자는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하지만 자본주의자는 자신을 자본주의자라고 하지 않는다고요. 그저 경영인 내지는 합리적인 사회인이라고 부를 뿐이죠. 저도 오늘 마침 좌우파에 대해서 좀 횡설수설했는데 트랙백 겁니다. :)부가 정보
오늘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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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는 잔여/주변/찌꺼기라는 곳에 자리메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젝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거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위상은 우파의 잔여/주변/찌꺼기가 됩니다. 좌파가 우파에 대해서 비어있다고 해도 억측이 되곤 합니다. 지젝이 하는 것은 정립시키기 입니다. 그러나 되려 좌파의 자리가 비어있다는 불행한 느낌조차 듭니다. 좌파가 좌파와 중심으로 위치지우고 우파가 비어있다고 한들 공허한 느낌, 한 때 취하는 충족감으로 생각조차 됩니다. 자본주의 안에서 자리지우기는 위상마져도 혼동됩니다. 아는 것 중의 하나는 이런 일반적인 좌표설정이 이성과 논리에 숨막히게 치우친다는 것 입니다. 틀리고 올바르지 않으면 안될까요? 그런 생각들을 했습니다...포스팅 도움되게 읽었습니다....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