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수상한 식모들 / 박진규

현재는 폭로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과거 진실한 비밀이 차지했던 자리를 지금은 진실의 겉옷을 입은 거짓말이 대신한다. 언어와 이미지 모두 믿을 수 없는 세계에서 사람들은 살아간다. 사람들은 구강만이 아니라 안구에도 메가폰을 설치했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이제 이미지들은 조작되고 왜곡되지만 아름다운 곡선을 지니게 된다. (p.108)

 

얌전히 쑥과 마늘을 먹은 곰은 여자가 되었다. 그렇다면 뛰쳐나간 호랑이는? 호랑이도 제스스로 여자가 되었지만, 이 호랑아낙과 그의 후예들은 체제에 편입된 것이 아니라 전복을 도모하는 존재들로 묘사된다. 호랑아낙의 계보를 어슷하게 잇고 있는 수상한 식모들은 적극적으로 부르주아 가정의 균열을 만들어내게 되고.

 

가설이 참 뻔뻔하고 재미나다. 김기영의 <하녀>와 모딜리아니의 <하녀>를 이렇게 만나게 하는 재기라니. 엉뚱한 서사를 그 자체로는 완벽한 우주로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천명관의 <고래>와도 닮은 소설. 재미는 있으나......

 



나는 여전히 남자 작가들의 성애에 대한 표현이 불편하고 불쾌하다. 여성들의 역사는 기록되지 않음으로 인해 상상의 여지를 많이 가지고 있고, 작가는 그 미지의 공간을 무대로 남성 화자를 앞세워 맘껏 뛰놀고 있다. '하녀'와 '식모'는 전복적 인물로 끊임없이 설명되지만, 남성의 욕망이 반영된 환상/대상이라는 위치로부터는 한치도 벗어나지 못 한다. 그녀들이 스스로의 그러한 위치를 이용하고 있음에도 뭔가 통쾌하거나 기분 좋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없는 걸로 봐서는, 결국은 그렇고 그랬던 것 같기도...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뭐가 중요하고 뭐가 진짜 문제인지 헷갈린다. 여성이 남성을 조롱하고 유린하는 방식과 남성이 여성을 조롱하고 유린하는 방식은 분명, 다르다. 그리고 남성작가들이 묘사하는 '여성이 남성을 조롱하고 유린하는 방식'은 남성 일반의 성적 환상과 다를 바 없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찝찝하기 짝이 없다. 성적 환상을 가지지 말라고 할 수야 없으나, 왜 그런 식인지들 모르겠다 정말. --;;

 

분명히 다르다. 완벽한 화해는 불가능하다. 다만 용납할 수 있는 선에서 공존할 뿐. 그런데 때로 그 '선'이라는 게 널뛰기를 할 때가 있다.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

 

뭐, 기발한 아이디어만으로도 후한 점수를 줄 수 있고 사실 꽤나 재미있게 읽었는데, 결국 쓰잘데기 없는 소리만 늘어놓은 것인가? 음.. 그건 아닌 것 같다. 오늘만 해도 전경 4명이 여성 한 명을 윤간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런 세상이고, 그런 뉴스를 들으면 난 즉각적으로 '씨발놈들 죽여버렸으면 좋겠다'는 소리를 한다. 그리고 울고 싶어진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