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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세

논란이 있다.

국기에 대한 맹세의 문구를 수정해야 한다는 이유는 이 맹세문이 너무나 ‘군국주의적인 훈육’ 에 가까운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문구는 절대적인 충성을 국민들에게 훈육하고 있는데, 이것은 자칫 권력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것으로 변질되기 쉽다. 실제로 이 맹세문이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그야말로 군인에 의한 통치, 즉 권력의 주체가 국민 여러분들이 아니라 국민은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해 복종의 대상이고 부림의 대상일 뿐이었던 시대다.
 
국민을 위해 국가가 존재하는 것인데 거꾸로 국가를 위해 국민이 복종하라는 식의 맹세를 강요하는건 잘못된 것이다.

 

충성을 한다는 것은 강요에 의한 무비판적인 굴종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이성적인 판단이 근거된 후에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 忠誠 이라는 글자에 부합하는 것인데 지금의 맹세문은 어떤 개인적인 선·악에 대한 판단도 없고, 이성적인 숙고도 없이 무조건 따를 것을 강요하는 것이라 실로 진실된 충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忠誠은 진실, 참마음, 정성을 다하다 라는 의미가 있는데 강요에 의한 것은 잠시의 무기력한 屈從일 뿐이고 이 충성과는 상관없는 의미가 된다.
즉 자발적인 마음에서의 간절함이 충성이라면 굴종은 종으로의 마음으로 굽히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이 맹세문이 국가와 민족에 대한 진정한 충성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너무나 자랑스럽거나, 충성스러운 맹세문이 아니고 국기에 대한 본질적인 모독이라고 보인다.
 
I pledge allegiance to the flag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o the republic for which it stands; one nation under God, indivisible, with liberty and justice for all
나는 미국 국기와 그 국기가 상징하는, 하나님의 보호아래 나누어질 수 없으며 모든 사람 들에게 자유와 정의를 베푸는 공화국에 충성을 맹세합니다.
 
이것은 미국의 국기에 대한 맹세문인데 종교적인 색체만 뺀다면 대단히 간단 명료하고 의미심장한 내용이다. 중요한 내용은 나누어질 수 없으며 모든 사람 들에게 자유와 정의를 베푸는 이라는 문구인데, 국기에 대한 맹세에서의 충성의 내용은 나누어질 수 없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와 정의를,베푸는 공화국에..라는 네가지의 말이다.
나누어질 수 없는=일체, 통일 이라는 의미다. 여기서의 일체와 통일은 의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국토를 말하는 것이고, 모든 사람들에게=평등이라고 보겠다.
자유와,정의를=충성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고, 베푸는 공화국에=국기로 상징되는 국가의 의무를 말한다.
  


국기에 대한 맹세문이 논란을 빚자 지난 5월 31일 행정자치부가 맹세문의 수정안을 제시하였다고 한다. 세 가지 안이 제시되었다.


제1안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서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과 영광을 위하여 국민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제2안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사랑과 자유와 평등의 이름으로 국민의 의무를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제3안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 정의와 진실로써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세 가지 안 모두 현재의 맹세문보다 순화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수정안 역시 지금의 맹세문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 것은 아니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책임과 의무를 다한다... 권리행사는 나쁜가?

 첫째, 책임과 의무의 이행이 강하게 부각된다는 것이다. 수정안은 권리의 행사가 부정적으로 인식된 전제에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거나, 국민의 의무를 다하고, 충성을 다짐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공동체의 삶에서 권리의 행사는 결코 부정적으로 인식되어서는 안된다. 적극적인 권리의 행사를 통하여 공동체가 발전하고 인간의 삶의 질이 향상되어 온 점을 애써 부인하려 하는 것은 아닐지... 과도한 권리의 행사나 남용이 경계되어야 하는 점은 옳지만, 권리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전제되어 만들어진 수정안은 아닌지 의문이다.
  

대한민국의 발전, 무궁한 영광, 번영은 무엇인가?

 둘째, 여전히 대한민국의 발전, 모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 조국의 통일과 번영이 최고는 아니지만 국가생활에서의 매우 높은 가치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은 사실 매우 공허하고 그 내용에 대해 쉽게 합의가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충성을 다하고, 책임과 의무를 다할 대상이 대한민국의 발전과 영광이거나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이라지만, 그 내용은 동일한 사안을 두고도 의견이 극과 극으로 갈릴 수 있는 것이다. 이라크파병을 두고 이게 대한민국 국력신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는 입장도 있지만 오히려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서는 결코 파병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있지 않는가? 애매모호하고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기도 어려운 목표를 두고 언제까지 국민에게 입술만 움직이는 맹세를 요구할 것인가?


사랑, 자유, 평등, 정의, 진실의 다짐... 너무 심하지 않은가?

 셋째, 수정안에 등장하는 사랑, 자유, 평등, 정의, 진실이라는 단어의 뜻은 의미심장하다. 인간의 삶에서 매우 숭고한 가치를 가지는 이들 개념을 사용하여 조국과 민족에 대한 맹세를 요구하는 것은 이 맹세문을 통하여 국가가 인간의 내면에 깊이 관여하고자 하는 것인가? 순박한 사람은 그런 마음으로 조국과 민족을 대할 것이고, 약은 사람은 맹세를 하면서 숭고한 의미를 가지는 ‘사랑, 자유, 평등, 정의, 진실’이라는 단어의 뜻을 마음 속에서 왜곡하게 될 것이다. 이도저도 아니면 매번 맹세문을 읊을 때마다 거짓말임을 의식하면서 하는 수밖에...


올바른 국가관의 형성

 국가생활을 하는 인간에게 올바른 국가관은 필요하다. 함께 국가를 형성하여 살아가는 삶에서 국가란 무엇인가, 민족은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은 어떠한 권리를 가지고 국가는 인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공동체의 삶을 살아가는 구성원이 져야 할 책임과 의무는 무엇인가 등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 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기보다 인간으로서의 자 와 권리가 강조되고 국가는 이러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임을 아는 것은 우리의 역사적 경험으로 보아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는 것보다 더욱 절실한 과제이다. 남용되지 않는 권리의 행사야말로 공동체를 건강하게 하고 발전시키는 힘이며 진정으로 봉사하고 싶은 공동체를 만드는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실한 마음의 소리는 강제될 수 없다... 국기에 대한 맹세는 이제 폐지되어야 한다

 진실한 마음의 고백은 강제될 것이 아니다. 진지한 양심의 소리는 스스로 울려나오는 것이다. 그런 마음의 소리가 강제되는 순간, 그 마음은 이제 왜곡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국기와 국가에 대한 마음을 고백하라고 요구해서는 안된다. 국기에 대한 맹세문의 어떤 수정안도 맹세를 요구해서는 안된다. 이제 국기에 대한 맹세문은 폐지하여야 한다. 국민의 70%가 폐지에 반대한다는 조사도 있다지만, 이런 문제는 합의하여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양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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