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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을 기억하면서..

6월 항쟁 이후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헌이 이루어졌다. 당시 전두환 임기말이고 체육관에서 선출된 대통령이 다음번 선거에도 체육관 선거가 될거라는 호헌조치 발언은 전국을 들끊게 했고 천주교에서는 조직적으로 '우리손으로 대통령을 뽑자'라는 현수막을 내걸었고 많은 호응을 받았다. 결국 6월항쟁은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을 우리손으로 직접 선출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07년 한국일보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중 10명 중 6명은 6월 항쟁을 잘 모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나도 당시 군을 제대하고 첫 일자리를 그때 군포의 모 음료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듯 나도 그랬던 사람이다. 그러나 군사독재의 부당함을 맞서 저항하는 사람들에 미안함은 있었다. 학생운동이 왜 저토록 저항하는 이유가 있을 거라 믿었던 것이다. 모 다방에 붙은 오늘은 공짜 라고 붙여진 것들이 세월이 빠르게 변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내가 있게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역사에 길이남을 이 6월항쟁을 주도한 단체가 있었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이다. 이들이 주축이된 6월항쟁의 일부인원들이 참여정부와 한나라 민주노동당에 정치를 하고 있고 흔히 486이라 부르는 것이다.
6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는 한국민주화투쟁의 역사는 우익군부권위주의정권이 풍미하던 60년대 이후 세계사 속에서 가장 빛나는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당시의 세계사 속에서 세계민주진보진영의 한갈래 희망이자 빛이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세계적으로 유래없는, 세계가 인정하는 자랑스러운 민주화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세계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안목이 부족하였다. 그 의미를 알지 못하였다. 이제라도 우리는 민주화투쟁을 세계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간직하려는 노력을 시작하여야 한다.

 

그 하나 하나의 유물 속에 담긴 세계적인 의미를 다시 읽어야 한다.

근현대사 속에서 가장 중심적인 우리 사회의 목표는 첫째가 독립이고 둘째는 민주주의였다. 미 제국주의의 신 식민주의에 반대하면서 독립을 위해 온몸을 바치며 쓰러져 간 그 정신이 대한민국을 버티는 하나의 버팀목이라고 한다면, 민주주의를 위해 온몸을 바치며 쓰려져 간 그 정신이 대한민국을 버티는 또하나의 버팀목이다. 그런 점에서 다시는 독재와 권위주의 망령이 이 땅에 되살아나지 않도록 우리의 민주화투쟁이 정사(正史) 속에 위치지워져야 한다. 그런데 벌써 잊혀지고 있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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