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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쉼터에서의 대화

부찌의 집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쏟아지는 잠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부찌가 쉼터에 가서 좀 쉬라고 하며 오토바이로 바래다 주었고 난 3시간의 꿀맛같은 낮잠을 즐겼다.

 

일어나서 거실로 나오니 태툰이라는 아저씨가 혼자서 TV를 보고 있다. 그는 학생시절 지하학생조직의 지도부로 일하다 투옥되었고, 수감기간 중 계속된 고문으로 허리의 주운동신경 하나가 끊어져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우리는 어눌한 영어로 오래도록 대화를 나누었는데 주로 그의 가족사와 그가 한 활동, 수감기간에 겪은 경험에 관한 것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뭐냐고 묻는다.

 

- 니가 지지하는 정당이 뭐냐?

+ 응, 민주노동당이야

- 아~ 나도 그거 안다. 김대중씨가 리더 아냐? (democratic이라는 말을 듣고 오해한 듯)

+ 아니, 그건 자유주의자가 주축을 이룬 다른 당이고, 내가 지지하는 당은 이번에 국회의원이 새로 10명 나온 노동자를 위한 당이야.

- 그래? 한국에는 당이 많군. 김영삼에 대한 한국인들의 생각은 어때?

+ 그가 7-80년대에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건 맞지만, 그 이후 그는 노동자와 학생들을 탄압하고 권력을 남용했어. 심지어 그 아들은 여러군데서 뇌물받아 먹다 걸려서 지금 감옥에 있지

- 그래? 어쩌다 그 사람이 그렇게 됐어?

+ 뭐.. 나도 잘 모르겠지만, 원래 권력이라는 것의 속성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 아닐까?

- 그래... 근데 노동자를 위한 당이라... 니 정치적 색채가 뭐냐?

+ 나? 흠........ democratic socialist

- socialist???

 

그가 큰 소리를 지르더니만 이내 똥씹은 표정이 된다. 그래, 난 버마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사회주의자라는 말을 쓰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해 왔던가. 48년 버마가 독립한 이후 버마체제의 근간은 사회주의였다. 또한 이후 쿠데타 세력은 북한과 같은 폐쇄적인 계획경제체제를 도입하며 그것을 "버마식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봉건적 통치체제일 뿐 사회주의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버마의 재야인사들을 감옥에 쳐넣고 고문했던 사람들은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로 호명했던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현재 버마의 재야세력에게 "사회주의자"라는 말은 경멸에 가까운 뉘앙스를 지니는 것 같다. 테툰씨의 반응에 놀란 나는 just like the french and german이라는 수식어를 애써 갖다붙였다. 그러자 몇 분후 나는 그와 대화를 재개할 수 있었다. 아... 사회주의를 참칭하는 독재는 짜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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