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식의곤란

분류없음 2014/10/13 02:17

성격 탓인지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데에 한참 걸린다. 그래도 나름대로 적응을 잘하는 (adaptable) 편이긴 하지만 몇 가지 어려운 게 있다. 그게 바로 물과 음식이다. 물은 아무 물이나 마시면 설사를 하기 때문이고 음식은 처음엔 '냄새', 다음엔 '기억' 때문에 고생한다. 

 

며칠 전 새로운 케이크에 도전. 바로 레드 벨벳 케잌 (Red Velvet Cake). 

한국에 있을 때엔 케이크를 먹을 일이 별로 없었다.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생김새 대비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했다. 생긴 것은 아주 작고 별로인데 이삼천 원을 호가하는 그 가격이 나에겐 합당하지 않았다 (unreasonable) 고 하면 리저너블한가? 생일이나 행사 때엔 만 원이 훌쩍 넘는 케이크를 사다가 초를 켜고 그러는 행위도 마뜩잖았다. 뭐 그래도 주변 사람들이 좋아하니 그냥 그러려니 하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가끔 사다주거나 그랬지 내 돈 주고 내가 먹을 케이크를 샀던 일은 없다.

 

이 나라에선 케이크가 '일상'이다. 밥을 먹으면 후식으로 케이크를 찾는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대부분 케이크를 찾는다. 이 땅에 처음 쳐들어온 유러피안 사람들이 주로 가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거나 그런 사람들이 주도하는 행사에 가서 밥을 먹으면 케이크는 뭘로? 하고 묻는다. 아놔, 케이크밖에 없니? 하고 물으면 브라우니? 하고 대답한다. 젠장. 케이크나 브라우니나 거기서 거기 아닌가. 

 

그래도 룸메이트의 생일. 

아주 조금 로맨틱한 것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레드벨벳케잌을 9.99달러 주고 샀다. 덩어리가 별로 크지 않아 금방 먹겠지, 했는데 웬 걸. 아직도 남았다. 이것은 너무 달다.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달다. 지난 번에 먹었던 레몬씨부렁케잌보다 몇백 배는 더 달다. 고문이다.

그런데 지난 밤에 일고여덟 수저를 먹게 됐다. 그냥 먹게 되더라. 그래서 사람들이 케이크를 먹는 건가? 중독인가, 일종의? 먹고 났더니 속이 더부룩하고 끼룩끼룩거려서 힘들었다. 서너시간이 지난 뒤에야 트림이 나왔다. 그러고도 답답해서 와인을 한 잔 먹은 뒤에야 비로소 속이 편해졌다. 이 케이크는 비록 나에게 고통을 줬지만 냄새와 기억은 그다지 나쁘지 않다. 우선 생긴 것이 여느 케이크처럼 삼각형으로 얍삽하게 빠지지 않고 직사각형이었고 냄새도 그리 심하지 않았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냄새. 그리고 중간에 끼인 초콜릿이 매력적이었다. 달디 단 고통 속에 음전히 앉아있는 다크초콜릿 조각들. 너의 기억들. 

 

다음은 파코라 (pakora). 

남부 인디아 음식인 이것은 이민자들이 많이 참여하는 행사에 가면 항상 나오는, 빠지지 않는 감초같은 음식이다. 나에겐 약간 '집회만두' 일명, 못난이만두를 떠올리는 비쥬얼을 제공하므로 친근감이 간다. 치킨, 새우, 채소 등속을 버무리고 이집트콩가루에 섞어 커리, 큐민, 코리안더 등의 향신료를 첨가해 튀겨낸다. 내 경험상으론 사람들이 주로 채소파코라를 많이 먹는다. 나도 도전. 만들지는 못하겠고 한 접시를 샀다. 워매~~~~~~~~~~~~~~~~. 너무 맵다. 이것도 고문이다. 대체 무엇이 이렇게 매운 맛을 내는 거냐. 너는 누구냐. 사온 날 배가 고파 세 덩어리 먹고 바로 체했다. 매운 음식을 잘 먹는 나로서도 감당할 수 없던 이 채소파코라. 

냄새는? 별로 나쁘지 않았지만 기억 부분에서 좋은 점수를 주긴 어렵다. 집회나 행사장에서 먹는 것 외에 내 돈 주고 다시 사먹을 일은 없을 것 같다. 

 

 

한국음식들은 기억에서는 좋은 점수를 주곤 하지만 오히려 그 점수가 실질적인 맞닥뜨림에서 기대를 실망으로 돌려놓는다. 결국 섭식에 관한 한, 답은 내가 직접 해먹는 것 외엔 도리가 없다. 아이고... 

 

 

 

2014/10/13 02:17 2014/10/13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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