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었다

분류없음 2013/10/04 00:06

오늘은 이 곳 기준으로 10월 3일이다. 한국 기준으로 개천절.

 

지긋지긋하게 고단했던 여름이 이렇게 가 버렸다. fall has arrived. 길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이번 여름처럼 고단했던, 고역같았던 여름이 또 있었을까 싶다. 아마 살다보면 또 있으리라.

 

인생에는,

일 때문이든, 사사로운 관계든 한 번 만났다가 헤어진 어떤 사람을 다시 조우하지 않는 그 상태로 지내는 것이 서로에게 더 나은 그런 관계가 있다. 살다가 그런 일이 있었나, 싶게 잊힌 채로 서로 살아가다 보면 으레 좋은 일만 기억하기 마련이고 홀연히 기억이 살아나더라도 그 좋은 기억으로 좋은 일로 지긋이 웃을 수 있으면 그만이니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노풍을 이끌기 직전이었나 아님 그 해였나, 서울을 훌쩍 떠난 어떤 이가 있다. 아무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소식 한 장 남기지 않고 "사라진" 그 이 때문에 여럿이 "잠깐" 고통을 겪었다. 그 고통을 나눠 지느라 고생한 이들이 많았고 나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적게나마 내게 분담된 그 고통을, 아니 그 역할을 하느라 다소 피곤할 때도 있었지만 어디 감정의 허망함을 겪은 이들에 비할소냐. 나는 그저 내게 주어진 일을 했지만 알게 모르게 디프레션을 겪던 나였기에 남의 감정까지 보살필 그럴 기운이 내게는 없었다. 그 뒤 몇 년이 흘렀고 대통령이 두 번 바뀌었다. 반도를 뒤집어 놓았던 노풍의 주인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 사람을, 훌쩍 서울을 떠난 그 사람을 이 도시에서 다시 만났다. 벌써 십 년도 넘게 지났다. 첫 만남 자리에서 나는 그이의 어떤 기억과 사고가 여전히 서울을 떠난 그 해에 머물러 있는 것을 감지했다. 당혹스러웠다. 그 때 나는 그 자리를 벗어났어야 했다. 나는 지난 십 년 동안 하지 말았어야 할 실수를 거듭 했고 더 잘 했어야 할 일들을 더 잘하지 못했고 적당히 했어야 할 일들을 분수넘게 한 일도 있지만 단 한순간도 어떤 자리에 머물지를 못했다. 둥지를 틀지 못했다. 팔자에 억세게 새겨진 그놈의 '역마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태어나기를 이렇게 태어난 탓이 (born this way) 더 컸다. 그런데, 강산이 바뀌는 동안 그이는 여전히 거기 어느 순간에 '머물러' 있었다. 그이에게는 그만의 '둥지'가 있었다. 그것은 당혹감을 넘어 어떤 '책임감'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간간이 만남을 지속하면서 나는 내 가장 가까운 옆사람에게 '충고'와 '조언'을 들었다. '꽃개, 당신은 지금껏 내가 알던 당신과 너무 달라요.'

 

여름 끝무렵, 나는 십이 년 만에 조우한 그이와 다시금 관계를 정리했다. 그이는 그이만의 둥지에서 살 권리가 있고 나는 그이를 거기에서 끄집어낼 수 없다. 나는 그이가 만든, 만들었다는 둥지에 들어갈 생각이 없다. 그 둥지는 유통 기간이 훨씬 지난, 어쩌면 유효 날짜를 지우고 몰래 다시 쓴 '유통되어서는 안될' 어떤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 데면데면하게 살아갈 것이다. 훌쩍 떠나고 다시 훌쩍 만나는 어떤 인연처럼, 세상에 있는지 없는지 알다가도 모르고 모르다가도 아는 그런 관계처럼, 어떻게 지내셨어요, how have you been?, it's been quite awhile, 그런 인사를 나누는 이 곳의 친구들처럼 그렇게 지내게 되리라.

 

만나지 말았어야 해, 하는 후회는 사실 의미가 없다. 그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여름이 더 고역스럽다.

2013/10/04 00:06 2013/10/04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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