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아버지

분류없음 2013/10/27 00:48

사는 도시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서북 방향으로 이사간 어떤 분이 "눈이 왔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겨울이야. 아, 몰라. 겨울이 와 버렸어.

 

해마다 10월이 되면 1917년(을 전후로 일어났을)의 그 일을 생각하느라 마음이 수선하다. 처음 몇 년은 마음이 마구 벅차고 뭔가 나도 한 사람의 몫을 단단히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고 불의에 결연히 떨쳐 일어나는 청년이 되어야지, 그랬다가 고꾸라지기도 하고 그러면 다시 책을 읽고 정신을 부여잡고 아마도 몇 년은 그렇게 '멘붕'이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그 와중에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추위와 허기와 사람 사이에 일어나기 쉬운 반목과 대립, 그런 고통을 어떻게 견뎠을까. 그러다가는, 1917년, 그해를 등지고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그 마음을 들여다볼 궁리를 해야지 그러다가 다른 나라의 이야기들을 먼저 읽거나 듣거나 그러다가 아 문득, 우리나라에도 이런 일들이 많았는데 아니, 자신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고향을 등져 봇짐을 싸거나 그 와중에 변을 당하는 일들이 많았는데 왜 이렇게 "기록된" 것이 드물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어릴 적에, 육이오만 되면 선생들이 부모님이나 조부모님께 전쟁통 이야기를 듣고 당신들이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 들어오라고 해놓고선 그걸 또 발표를 시키는 그런 일이 종종 있었는데, 우리 엄마는 두꺼운 솜이불을 뒤집어 쓰면 총알이 관통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와, 뒷산 굴에 숨어지내던 엄마의 사촌오빠들 이야기를 해주셨고 아버지는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나는 아버지의 "말씀 없으심"을 우리 나라의 "기록 없으심 혹은 드뭄"과 다르지 않은 변주로 읽는다. 아버지가 전쟁과 내란의 그 격변에서 잘 드시고 잘 자라셨을리는 만무하고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셨다는 것은 뻔한 일인데 - 할머니에게도 들었고, 고모들에게도 가끔 들었다 - 아버지는 아무래도 그 일을 당신의 일로 받아들이는 것이 (여전히) 힘드신 것 같다. 말을 잘 하지 못한다는 건, 아무래도 그런 반영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를 이해한다는 건, 이해한다고 말하기엔 좀 무리가 있을 성 싶고, - 아무래도 용서하기 힘든 어떤 면들이 여전히 있어서 그렇다 - 아버지를 어떤 한 사람으로 그 시대를 살아낸 한 사람으로 객관화할 수 있는 지경까지는 온 것 같다. 아 뭐, 또 이러다가 어떤 일을 겪으면 또 고꾸라지겠지 뭐. 어쩔 수 없다. 거기까지는. 다만 받아들일 수 있는 (acceptance) 어떤 국면까지는 진전했다, 고 말할 수 있을까.

 

눈만 내리지 않을 따름이지 몹시 바람이 세다. 윙윙윙. 비까지 내리니 아마도 체감온도는 더하겠지. 짝과 일하는 스케줄이 완전히 달라 쓸쓸함이 더해가는 깊은 가을날이다.

 

 

 

 

 

 

2013/10/27 00:48 2013/10/27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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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막은 2013/10/29 00:04 Modify/Delete Reply

    벌써 겨울을 걱정하는 계절이 되버렸다. 건강해~
    오랜만에 들어온 네 블로그를 대충 훝었는데 무슨일이지. 참.... 잘 해나가고 있는거지?

  2. 꽃개 2013/11/05 03:51 Modify/Delete Reply

    월동준비 시작했어요. ㅠㅠ
    제 블로그는,,, 독특한 분이 다녀가셨어요.
    저는 잘 해나가고 있어요. 힘들지만 소소한 재미를 찾으려 애쓰고 있어요.
    언니도 잘 지내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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