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서 나에게

분류없음 2013/11/05 04:15

#1.

해마다 -이 도시에 온 뒤로- 추수감사절이나 부활절 휴가에 고향에 갈 수 없거나 갈 고향이 없는 사람들, 길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제공하는 데에 기부를 했었다. 큰 돈은 아니지만 일고여덟 명 정도는 거뜬히 먹을 수 있는 만큼. 올해부터 그 기부를 중단하기로 결정하고 짝과 함께 성노동자를 후원하는 데에 같은 금액을 각각 후원하기로 했다. 개인수표를 각자 써서 보냈는데 그게 되돌아왔다. 사서함 주소를 폐쇄했는지, 폐쇄'당했는지' 알 도리가 없어 이메일을 보냈는데 답이 아직 없다. 꿀꿀하다.

 

#2.

'워커스액션센터'라는 데에 드디어 정식 가입을 했다. 지난 주 화요일, 밤근무가 잡혀 있어서 마음이 몹시 초조했지만 저녁 무렵 사무실에 들러 신입회원 교육 같은 것을 받았다. 함께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한 사람들은 만다린을 쓰는 두 명의 중국인. 그 가운데 한 명은 한국어를 '아주 잘' 한다고 하는데 곧 죽어도 한국어를 하지 않는다. 추측컨대 지린성 근방에서 오신 한인(韓人)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 곳에서 이른바 오리지널 한국인(중국인들이 가끔 너 오리지널이냐? 고 묻는데 이 의미는 South Korea에서 왔냐는 뜻이다)에게 갖은 모욕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짝의 영민함으로 두어 차례 캠페인 이벤트에 참가했던 탓에 담당자가 얼굴을 알아본다. 한국식으로 하면 불안정노동자후원센터, 같은 데라고 해야 하나. 이 나라에서 노동부 업무는 각 주별로 담당하기 때문에 연방법보다는 주의 노동법에 따라 노동자의 권익을 보장받거나 주장할 수 있다. 따라서 로비 대상도 주정부. 물론 인권 측면에서 고등법-연방법에 호소해야 할 때에는 고등법원까지 갈 수 있기는 한데 그 절차가 참으로 참으로 노동자에게는 고약하다. 어쨌든 나도 이제 센터의 회원이 되었다. 재미난 것은 사무실을 비롯해 인건비와 사업비 등 주요 경비는 대부분 시의 후원으로 충당한다는 점. 연간보고서를 보니 한국돈으로 6억 원가량을 예산으로 집행하는데 그 가운데 80% 이상을 시에서 받고 있다. 따라서 회원은 회비를 내지 않아도 상관없고 다만, 몸으로 '때운다'. 가령 통역이나 데이터베이스 입력과 같은 자원활동, 혹은 이벤트에 직접 참여하는 것과 같은. 

 

#3.

동인련에서 받은 무지개 어쩌구 - 이름이 너무 길어서 외울 수가 없다 - 모금함을 조립해놓고 보니 정방형의 무지개 모양이다. 귀엽다. 천 원짜리, 혹은 이천 원짜리 동전만 모을 생각인데 저 통이 언제 다 찰까. 동전을 넣을 때마다 아련하긴 해도 마음이 그 속으로 숑숑 들어가는 것 같아 기분이 흐뭇하다. 한국에 있을 때 왜 이런 일을 못했을까. 아쉽지만 이제라도 하고 있으니 다행이긴 하다. '나'에서 시작하는 일을 하자. 

 

2013/11/05 04:15 2013/11/05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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