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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봉착

이주민센터란 곳에서 일한 지 벌써 6개월이 되었다. 내가 자원활동을 하며 맺은 인연으로 시작하게 된 일인데, 사실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정말 웃을 일밖에 없던 센터 상근자(후엔 타단체 대표)와 자원활동가의 관계에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대표와 상근자의 관계로 바뀔 때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긴 했었다. 마냥 좋을 순 없는 관계니까. 흠... 헌데 생각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일단, 모든 결정은 대표가 내린다. 나와 다른 상근자들은 그저 결정에 따른다. 어떨땐 스스로 결정내리라고 하는 일도 있는데 그런 것도 매우 불분명하고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예측 불가능하다. 그리고 자칫했다간 '맘대로 일하는' 사람으로 낙인 찍히기 십상이다. 특히나 큰, 장기 계획같은 것은 후원자들과 결정하고 우리에겐 할 일만 주어진다. 내가 한번 그런 일을 공유할 수 없겠냐고 물었지만 이게 이 단체의 한계란다. 상근자들은 그런 권한이 없단다. 난 왜 여기서 일하는 것일까? 체계가 없다. 모든 것을 인정의 문제로 풀려고 하는 편이라서 인정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어떤 서류를 제출한다거나 하는 게 전혀 없다. 말로 하는 것보다 서류를 제출하는 것이 훨씬 심적으로 편할 때가 많은데 말이다. 직원을 동등한 인간으로 생각하기보다 어린, 아직 모르는 게 많은 아이로 본다. 그러니 우리가 백날 뭘 얘기해봤자 "네가 아직 잘 몰라서 그래"라는 대답만 돌아온다. NGO라면... 적어도 상하수직 관계이기보다는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논의하고 결정할 수 있는 조직일거라 생각했는데 이곳은 내가 생각하는 NGO라기보다는 대표 혼자 애써서 만들고 꾸려온 대표 혼자만의 왕국인 듯 하다. 내가 회의를 하자 했다. 대표는 우리에게 매우 필요해보이는 교육도 시켜주질 않고 의사 소통도 잘 되지 않았기에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헌데 대표의 대답은 '필요없다'였다. 언제나처럼 "내가 전에 많이 해봤는데, 회의는 너무 길고 효율성도 떨어져" 이런 대답만 돌아온다. 회의를 하지 않으면 좋겠지. 허나, 이렇게 소통이 잘 안되는 상황에서 회의라도 해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꺼낸 말이었는데 "내가 해봤는데..." 이딴 말이나 돌아오다니. 짧고 효율적인 회의를 하면 될 것 아닌가! 또 우리가 모르는 게 많다면 왜 본인 스스로 교육을 해주지 않는것인가? 늘 부딪쳐보라는 말만 할 뿐이다. 그것도 한 두번이지...에휴..;; 다른 NGO에선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으나, 예전에 다닌 무역회사보다 훨씬 소통이 안되는 것 같다. 예전엔 사장은 아예 제쳐두더라도 다른 임원들이 있어서 적어도 '소통'은 가능했었는데 말이다. 중간에 사람이 없는 것도 정말 답답하다. 의사결정 방식... 다른 곳에선 어떻게들 하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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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죽일만큼..

일다 기사를 하나 읽었다. 한국인 남편의 계속되는 폭력과 협박에 위협을 느낀 캄보디아 여성(임신중)이 남편을 살해했다. 대구에서 일어난 일인데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는 이 일을“가정폭력을 일삼는 남편에 대한 우발적 가해로 인한 정당방위 사건"로 규정하고 해당 여성 구명운동에 나섰다고 한다. 아... 오죽했으면 칼을 들었을까? 자신과의 아이를 잉태한 배우자를 술자리 후 집에 오는 길 택시에서부터 구타해 집에 와서까지 계속 폭력을 휘둘렀다 한다. 절대 용서가 안된다. 정말, 정책이라고는 없고, 그저 한국에 온 이주여성들에게 알량한 요리 교육이나 시켜주겠다고 여기저기 지자체에서 설치고 다니는 꼴이라니... 준비도 전혀 안되어있으면서 '다문화'라고 말하는 거 보면 정말 코웃음만 나온다. 앞으로 이런 일은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날 수 있고, 지금도 한국내 수많은 이주 여성들이 남편의 폭력과 폭압적인 성관계에, 남편 식구들의 구박에 죽음을 결심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들이 꿈꾸었던 한국 생활이 결코 이런 건 아니었을텐데... 이 사건 얘길 했더니 센터 동료 여성분은 "그래도 그 여자는 용기라도 있네. 나보다 낫다" 이러신다. 이 분도 베트남에서 와 산업연수생으로 일 하다가 한국 남자랑 결혼했는데 정말 개보다 못한 취급 받다가 결국 이혼 소송 중이시다. 아침부터 눈물 바람이다. 이 울분... 실제 기사는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4731§ion=sc4§ion2=%C0%CC%C1%D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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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인문학

인권실천시민연대에서 예전부터 중점을 두었던 사업인 재소자들 문제. 오~ 지났지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게되었다. 정말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사업. 재소자들에게 인문학 수업을 제공한 것이다. 앞으로도 또 계속할 수 있을까? 계속 했으면 좋겠다. 예전 인권연대 인권학교 수업에서 만난, 한국갱생보호공단에서 근무하시던 분이 있었는데 그 분 말씀이, 재소자들 중에는 한 번도 주변의 따뜻한 관심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고 하셨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대화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도 마음을 열고 정말 감사해한다고 하셨더랬다. 재범률도 많이 낮아지며, 만일 재범을 저지를 경우에도 미안한 마음에 '갱생보호공단'에 있었노라고 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생일 케익이 어느 누군가에겐 평생 처음 받아보는 특별한 선물일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이 매우 소중한 사람임을 그동안 알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자존감을 주는 것만 해도 이 '평화인문학'의 역할을 다 한 것이리라. 이것은 과연 개인만의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 기회를 주어야 하는 것은 사회의 몫이다. 앞으로도, 제2, 제3의 평화인문학이 계속 될 수 있길 바란다. http://www.hrights.or.kr/note/read.cgi?board=action&y_number=147&nnew=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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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 한 두번 봤는데도 아주 친숙한, 거기다 매력적이기까지 한! 좀 반했다고 할 수 있겠다. 어제 만난 이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인데, 오늘 몇 번이나 그이를 떠올리며 마음 흐뭇해하고 있었다. 예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유머도 꽤 있고, 그 사람의 주관심사는 나를 아주 매혹시키며, 이 사람의 편안한 일상 속으로 나도 슬쩍 끼어들어가 그 주변에 머물고싶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난 연말에 만난 또다른 이도 있다. 이 친구는 정말 솔직하고 주관이 매우 확실하다. 처음엔 같이 놀고, 그 후엔 집회에서, 함께 오돌오돌 떨기도 하고, 열심히 뛰기도 하며 아주 가까워진 사이다. 몇 번을 봐도 어색하고 가까워지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이렇게 두어번만 만나도 급속도로 친해지는 관계들이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관심사나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과 친해지기 마련이지. 가끔은 십년지기 친구라도 어느 부분에서는 너무 다른 생각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려하)지 못한 채 떨떠름하게 얘기를 마무리하게 될 때도 많은 게 사실이다. 이런 매력적인 사람들이랑은 얘기만 하고있어도 웃음이 나고 늘상 동감의 고개질을 하고있을 수밖에 없다. 맞어! 맞어!! 이런 사람들이 이성이라면 정말 난 연애를 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들과는 연애 못지않게 풍성한 관계 맺기도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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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 공권력

가난의 굴레는 죽음으로 끝을 맞았다. 이 야만의 정부는 생존권을 요구한 이들의 입을 물대포와 컨테이너로 막고 결국은 화염 속으로 밀어넣어 죽여버렸다. 생각할수록 치가 떨린다. 추위에 떨며 고통 속에 돌아가셨을 분들을 생각하니 내 몸이 떨리고 그저 눈물만 나온다. 이 일, 감히 경찰이 시민들을 죽이다니! 불도저 가는 길 막는 자, 죽음으로 몰고 가겠다는 이 미친 정부. 너무너무 화가 난다.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오후에 한국어교육 자원활동을 하시겠다며 어느 고등학교 교사분이 찾아오셨다. 자신은 기독교도 싫고 운동권도 싫다면서, 묻지도 않은 말에 어제 죽은 철거민들 보라고, 화염병 들지 않았냐며, 화염병 든 사람들 다 운동권이라고...왜 화염병을 드냐고...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다. 경찰 폭압에 민간인이 죽었는데..... 목동에 살고, 골프치러 다니는 선생님은 사람이 죽었는데 그런 식으로 말이 나오는가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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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의 덫

평소 고기를 그다지 많이 먹는 편은 아니었으나 가끔 또 몸이 육식을 원할 때가 있어 맛있게 고기를 먹어주던 나였다. 어제 나와 상담중인 중국인 여성과 저녁을 먹었다. 아직 일이 해결된 것도 아닌데 내게 고맙다며 저녁을 대접하겠다기에 좀 머쓱하긴 했지만 그녀를 만났다. 김포시내에서 만나 들어간 곳이 고깃집이었는데 불고기를 골랐다. 그녀의 선택이었고 나도 동의했는데 차림표를 보니 불고기(미국산) O,OOO이었다. 순간 아차!했다. 이것이 바로 그 결과로구나... 순간 뒤통수를 한대 맞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육식을 줄이기로 마음 먹었다. 이것은 먼저, 평소 육식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이었다. 비인간적인 산업구조. 좁아터진 트럭에 끼여 어딘가로 이동중인 돼지들을 볼땐 차마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려버렸다. 또 지난 여름 뜨겁게 거리를 달구었던 외침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그러나 결국 수입을 하게 되었고 먹을거리를 선택할 때마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미국산 쇠고기라는 거대한 구조에 말려들고 말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먹을거리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이 그렇다. 집에서 보는 신문, 별 생각없이 들르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뭔가 말로 다 못할 충격으로 어제 결심했다. 앞으로 쇠고기와 돼지고기는 먹지 않겠노라고. 당분간 닭고기는 먹겠으나 이것도 차차 안먹는 쪽으로 가야겠지. 아... 인간의 이기심과, 거대한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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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참한 '이주'

우울한 나의 일 이주민센터에서 일 한지도 벌써 두 달이 넘었다. 초반 다른 업무들 이것 저것 하다가 본격적으로 이주노동자 상담을 한 것은 한 달정도 된 것 같다. 글쎄, 이 일을 시작할 땐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더 잘 알아보자는 생각을 했었고 뭔가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겠단 생각에 흥분까지 하기도 했었다. 센터 대표님은 나에게 조금 걱정되는 것이 회사 사장들과 대면해야할 때 그들의 거친 면모에 내가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 그런 걱정은 별로 들지않았다. 그거야 같이 소리치면 되는거니까. 내 예상대로 그건 큰 문제가 되는 것 같지 않다. 지난주 필리핀 노동자의 퇴직금 때문에 회사 전무란 사람을 만났는데 좀 미숙하게 얼굴을 붉히긴 했지만 당당히 할 말 다 하고왔다. 그런데 (나에게 있어) 진짜 문제는 따로있었다. 내 자신이 자꾸 우울해지고 침울해져 자꾸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져가는 것이다. 하루에도 몇번씩 듣는 얘기란 것이 우울하고 슬픈 것들이기 때문이리라. 오전에 공장에서 산업재해를 당한 스리랑카 노동자가 찾아왔다. 확인할 것이 있어서 조금 기다렸는데 마침 점심시간이라 같이 밥을 먹었다. 다친 부위는 이미 보았던 것이었다. 기계에 손이 끼어 오른손에 평생 남을 장애가 생겼다. 퉁퉁 부운 팔이 왼쪽의 두배는 돼보인다. 내 옆에 앉아 밥을 먹는 그 사람. 오른손잡이인 이가 왼손으로 밥을 먹으려니 잘 먹을 수가 있나. 삶은 양배추와 고기, 김치가 놓여있는 상에서 그가 집을 수 있는 거라곤 밥과 국 뿐이었다. 그마저도 밥톨이 후두둑 떨어지고만다. 그의 밥그릇에 고기와 김치를 얹어주고 양배추에 싸서 건네기도 했다. 그런데 순간, 내 가슴이 턱 하고 무너진다. '왜 이렇게.. 왜 이렇게 살아야 해요? 아, 정말...' 혼잣말인지 옆 동료들에게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눈물과 함께 쏟아낸 말이었다. 오전에는 한국인 남편에게 폭행을 당해서 온 중국인 여성과 두 시간이 다 되도록 얘기를 하고 나온 참이었다. 다섯 번 넘게 만나 얘기한 이 여성은 여전히 그 남편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밥을 먹고 내 동료들(한국인과 결혼한 베트남 출신 여성 두 분)에게 물었다. '베트남에서보다 더 잘 살려고 온거잖아요? 근데 더 잘 살고 더 행복해요?' '별 차이 없는 것 같아요.' 베트남에서 온 여성들은 자신들이 행복과 돈을 맞바꾸었다 말한다고 했다. 애정없는 사람과의 결혼 생활이 행복할 리 있겠는가? 한국 것만 좋아하고 베트남 음식은 맛도 보려하지 않는, 한 평생 같이 살 생각하는 사람의 문화란 것엔 손톱만큼의 관심도 없는 이와 산다는 것이.. 처음엔 사람을 위해 일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었다. 내 관심 분야에서 역량도 키워 조금씩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 발을 들여놓자 내 자신이 너무 우울해 견딜 수가 없다. 밖에서 관심 갖고 지켜보는 것과 그들 곁에서 같이 싸우는 것이 이렇게 다르구나. 하지만, 이 시기를 잘 넘겨야겠지. 힘내서 부당한 처우 받는 사람들이 정당한 대가 받을 수 있도록 해야겠지. 고용허가제..이게 얼마나 쓰레기같은 제도인지...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 변경을 할 때 노동부 고용지원센터에 가서 알선장을 받아온다. 그 종이에 다서여섯 군데의 회사 연락처가 나오고 그럼 난 뭐하는 회사인지, 노동자 수는 몇명인지, 한국인은 또 몇명인지 묻고, 급여와 잔업 여부, 이런 것들을 노동자들 대신 전화로 물어봐준다. 그런데 웃긴 것이 이 종이에 나온 회사들은 벌써 채용을 끝낸 곳이 많다. 대체 왜 이런 곳들을 알려주는 거지? 가끔 친구가 좋다는 회사 이름을 알아와 이곳에서 일하게 해달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회사에 연락해서 회사 사장이 고용지원센터에 이 사람 쓰게 해달라고 하면 직접알선이므로 불법이다. 꼭 노동부에서 소개해준 곳에만 가야하는 한계. 겨우 할 수 있는 거라곤 '어느 동네쪽에서 일하고싶어요' 이 정도다. 게다가, 사장 맘에 안들면 사업장 바꾸는 건 꿈도 못꾼다. 힘들어 죽을 것 같아도 사장이 '너 한번 당해봐라' 이런 심보면 죽은 듯이 일해야한다. 만일 회사를 나갈 때 회사 사정이 아니라 노동자 이유로 퇴사하는 경우엔 사업장 변경 횟수에도 불이익이 따른다. 마석 단속 이렇게 답답한 마음을 안고있는데 마석 소식을 들었다. 아주 싹쓸이를 했더군. 내가 너무 챙피해 얼굴을 못들겠다. 불법체류자들이 주로 사는 지역이 우범지역이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 좀 작작 하시지. 비자 없이 사는 사람들은 범죄 저지를 확률이 높다는 건가? 끽 소리도 못하고 살 사람들이 시끄러울 가능성이 높다는 억지. 이런 와중에도 정부는 '다문화주의' 이런 말을 지껄이며 외국인의 한국 동화정책을 펴고있는거다. 정말 저질이다. 이주. 정말 이주는 이렇게 처참해야 하는가? 물론 산재 생길 수 있지만 작업 환경이 조금 더 좋아서 덜 다칠 수 있다면... 이주노동자들에게도 권리를 주어서 양자 모두 합리적인 방법으로 고용하고 구직할 수 있다면.. 이 남편들, 교육이라도 해서 다른 문화 공부 시켰으면 좋겠다. 관계 맺기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이 자기 주장만 하는 이와 어떤 대화가 가능할까?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해 이들의 인생이 이렇게 불행하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베트남 동료에게 다음에 태어난다면 어느 나라 사람이었으면 좋겠냐고 하자 나라는 상관 없고 재벌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결국, 경제 문제.. 복잡하다. 내가 좀 능숙해져서 대처 능력을 좀 키웠으면 좋겠는데 지금으로선 울분과 침울함밖에 느껴지는 것이 없다. 지금도 수많은 곳에서 불안함에 떨고 있을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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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씨 강연

대한민국 주식회사 - 박노자

7.24 작은책 강연

 

그 유명한 박노자씨를 실제로 본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거기다 강연이 끝나고 식사하면서 얘기까지 같이 할 수 있었다. 아.. 정말 그 목소리와 표정, 완전 코미디였다. 웃음이 절로 ㅎ

 

제목이 제목인만큼 한국이 어떻게 기업국가가 되었는지 설명했는데,

80년대 말까지 군사관료제였던 한국이 점차 재벌의 힘을 키워주었고

결국 이제는 재벌에 잠식되어버리기까지 했다.

그는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이라 하기 어렵다. 그보다 '재벌집단의 과두제'가

더 어울린다 했다.

IMF로 재벌기업에 위기가 닥치긴 했지만 김대중 정부 시기 카드 발급을 남발하면서

신용 불량자 300만 양산. 이 또한 재벌들 배불려주기 위한 것이었을 뿐.

 

그리고 비정규직.

한국 비정규직은 아주 특이하다고 했다. 정규직과 노동 시간도 비슷한데(더 오래

일하기도 한다) 고용 형태등만 다르다. 유럽에서는 노동시간이 정규직보다 짧은

파트타임 잡이 바로 비정규직이라고 하는데..

그는 한국 근로자 중 56%에 해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사회적인 시민권 박탈자'

라고 정의내렸다.

게다가 비정규직은 IMF이후 재벌 세상 만들어주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이고

노동자 계층을 분리하는 최악의 방법.

 

게다가, 재벌은 시민 사회에도 장악력을 뻗쳤는데, 삼성 노조 만들려고 했던

김성환씨, 어느 시민단체에서 도우려 한 적 있었나?

정말 내 기억에도 없었던 것 같다. PD수첩인가? 거기서 한번 방송 내보낸 것 뿐.

이는, 시민단체도 재벌에 프로젝트 내서 지원받고 있었으니 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으리.

 

이제, 재벌 출신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어버렸다!

맨 꼭대기에 올랐으니 내려갈 일만 남은 것 아닌가?

 

촛불집회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배제된 것.

집회 자체가 쇠고기를 먹을 수 있는 중산층 중심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라고 하여

맘이 아팠다. 자신의 밥상 문제는 크지만 비정규직은 자기 일이 아니므로. '분산화'

 

그리고, 진보정당.. 아직도 너무 아마추어 수준 OTL

 

어떻게 하면 이 절망적인 정권 하에서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인가?라고 어떤이가

묻자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배제하는 것을 그만두고 함께

조직화해내는 것이 큰 기폭제가 될 것 이라고 답했다.

 

한국 정부가 미국의 의료보험제도같은 것을 도입하려고 하는 것을 물었더니

그것 또한 재벌들 배 불려주려는 수작이라고 한다.

 

누군가, 왜 노르웨이에서 일하냐고 묻자

자신도 한국에 있을 때 비정규직 강사였는데 일 구하는 것도 쉽지않고 해서

알아보다가 노르웨이에 자리가 있어 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정규직 되는 것

너무 힘들었단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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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자전차

오늘의 코스는 집(화곡동)-안양천-한강시민공원.

3주 전엔가 일주일 내내 자전거만 타고다니던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워낙 더워서

엄두도 못내고있다.

기분도 꿀꿀하던 일요일 오후 퍼뜩 생각난 것이 자전거, 옳타꾸나~~!

목동교를 지나 안양천으로 들어가봤다. 한강까지 가려면 좀 돌아가야 하긴하지만

오늘도 새로운 길을 택해보았다.

그래도 해질녘이라 사람들이 꽤 많았다.

계속 음악을 들으며 성산대교부터 원효대교 근처까지 한강변을 따라 갔고,

그다음엔 혼자 앉아서 맥주마시기. 맥주 완전 싸랑해~~ㅋㅋ

살랑살랑 불어오는 저녁 바람에 가끔 재밌는 사람이나 귀여운 아기들도 보고..

몇년 전 친구랑 여름 해질녘에 한강변 가는 거 참 좋아했었는데

돗자리 깔고 잠자는 거 정말 천국이 따로없었지..

아 근데 오늘 돌아오는 길에 살짝 위험했다.

별 생각 없이 라이트도 안달고 갔는데 돌아올 때는 이미 9시, 깜깜해진 거다.

곰달래길에서 열심히 달리고있는데 갑자기 길 한복판에서 택시가 서고 뒷자리에서

어떤 남자가 문을 여는거다! 아니, 거긴 인도로 통하지도 않는 곳인데

거기서 내리면 어쩌라는거야~

그와중에 나는 내가 듣기에도 거북스럽게 소리를 꽥 지르고 있었는데

자전거 속도 줄이는 것보다 소리 지르기에 더 몰두해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다.행.히. 그 남자가 택시 문을 다시 닫았다. 휴~ 살았네.

욕을 해야할지, 고맙다 해야할지...ㅜㅜ;;;

이런 순간이 오면 내가 넘어질 모습을 상상하게 되는데, 오늘 부딪혔다면

쿵! 문에 한번, 옆으로 넘어져서 옆에있던 가로등이나 인도 보호대(?)에 부딪혀 또 쿵!

그리고 그 좁은 곳에서 완전 민망한 자세로 넘어져있겠지? 뭐 이딴 생각까지 들더라.

출발할 땐 안그런데 돌아올 땐 좀 지치고 다리도 아파 그런지 사고날 뻔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전거 타니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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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기

늘 글쓰기에 대한 로망을 간직한 나.

이번에 현 정국에 대한 글을 영어로 쓰고 친구와 교정을 보면서 느낀 점.

내 글은 너무 감정이 앞서있었다.

물론 나름대로 조사한다고 기사도 꽤 찾아보고 그랬지만 사실에 입각한

증거를 제시하기보다는 옳다고 생각한 것에 확실한 이유도 제시하지 않고

너무 몰아대버렸다.

사실, 영어를 손 보려고 한거였는데 이건 뭐, 내용까지 고치고앉았다. ㅡㅡ;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쓸 땐 동기 부여가 매우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아무리 좋은 소재라도 내 안에서 울렁이는 것이 없으면 글 쓰기 불가능할 것이다.

10일 내용도 포함해서 좀 더 손봐야하는데 솔직히 10일 집회 얘기로만 해도

솔찬히 쓸 수 있을 것 같다.(윽. 이거 사투리잖아. 이보다 좋은 단어가 생각이 안나네.ㅋ)

요즘, 나한테 글쓸 거리 마구 제공해주는 이놈의 정부에게 고맙다고 해야할 것인지..

아~~2MB 때문에 머리에 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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