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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겹지만 첫눈이었다

눈물겹지만 첫 눈이다
- 대구에 올 첫눈을 생각하며

 

신경현

 

이 공장 저 공장 이력서 싸들고 찾아다니다
불꺼진 쓸쓸한 집으로 돌아오는 실업의 사내여
오랜 싸움속에서
희망 보다 한숨이 먼저 쌓이는 천막농성장이여
밤을 세워 일을 하다
깜빡 찾아오는 졸음에 젖어버린 작은공장 노동자여
가난을 피해 도망치듯 무한경쟁의 대한민국을 찾아온 이주노동자여
눈물겹지만 첫 눈이다
절망 보다 희망을 먼저 껴입지 않으면
결코 겨울을 날 수없는 사람들에게
첫 눈은,
첫 눈이 내리는 잠시만큼은
눈물겹지만 축복이다
눈물겹지만 사랑이다
서럽지만 왠지 따스하다


눈물겹지만 첫눈이었다

 

토요일 일 마치고 돌아와 그래도 토요일은 밤이 좋은데, 이곳에서 얼굴보며 술 한잔 걸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했지만 한잔 걸칠 수 있는 기회가 꽝이 되었다. 한겨레 기사가 생각나 동보서적으로 가서 80년대산 등단 작가의 등단기를 셔터문 내릴 때까지 다 읽고 나와서 피시방에 앉아 그날 대구를 생각한다. 눈물겹지만 그리움이다.

 

부산으로 내려간 이유 중 하나가 제 발걸음으로는 집구석에 들어 가기 싫어서 구릉이 담 넘어가듯 이종사촌 형들의 등에 떠밀려 억지스럽지만 집구석에 가끔씩은 갈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잔정이라곤 전혀 없던 피붙이, 그 아들도 그대로 이어받아 억지스레 찾아간 엄마. 점심을 같이 먹을 요량이었지만 가시방석처럼 느껴져 얼굴만 보고는 칼바람처럼 뒤돌아 섰다. 후회로 대구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눈물겹지만 집구석이었다.

 

동대구역에 도착해서 녹평으로 향하던 버스 정류장에서 첫눈을 맞고는 눈물을 겨우 참으며 경현이 형에게 전화했다. "형, 눈물겹지만 첫눈이네요" 변비 앓듯 하지 말고 쑥쑥 쾌변을 보듯 글을 쓰게 하기 위해 가끔씩 전화해서 푸짐한 안주에 소주 걸치고는 집까지 가서 문청이던 한창 때의 이야기와 몇 권의 책을 챙겨주던 경현이 형. 첫눈을 보니 형이 생각났다. 그리고 홍철 형이불렀다던 그 노래도 듣고 싶었다.

 

아무리 술을 먹어도 취하지 않는 날이 있다. 내게 안 좋은 술버릇 중 하나가 기절해서 자는 걸 즐기는 것이다. 요즘은 아예 그럴 질 않고, 사람을 만나 수다 떨고 싶어 술을 찾는다 그러다 마실 사람 없으면 이 악물고 참는다. 한 일주일 참으면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 것 일까. 아니다 보고싶은 사람과 함께 마시니 취할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낮술부터 시작된 2007년 마지막 날. 한잔 걸치고 잠시라도 잘 생각이었다. 뜨거운 몸으로 안달 난 남녀사이도 이럴까. 무슨 할 이야기가 그리 많았을까. 집에 와서 와인에 병맥주까지, 또 맥주를 마셨다. 너무 행복했다. 딱 세상이, 내 삶이 이 기분이었으면.

 

앞으로 영원히 있어야 할 산, 앞산. 술로 시작된 2008년, 앞산에서 시작된 무자년. 기억하자. 패배로 기억될지라도, 기억하다 용량 초과로 터져버리거나 미쳐버리더라도 살아남자 그리고 기억하자 또 싸우자. 잠시 대구를 떠나 있어도. 이런 생각들로 함께 한 상수리 나무와 함께 서 있었다. 잠시 공간앞산달빛에서 몸을 녹이는 동안 난 취하기 위해 부지런히 술을 마셨지만 부질없는 짓, 술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에 있던 기타가 눈에 들어온 사람들끼리 자연스러운 노래가 흘러 나왔다. 조만간 땅과자유 회원들 반은 기타를 보물 1호로 지정할 것 같은 느낌으로 기타에 대한 예찬과 투덜거림이 양념으로 들어간 노래를 본능적으로 난 엠피쓰리에 녹음하고 있었다. 홍철형의 노래를 마침내 듣고는 난 너무나 대책없이 감상적이어서 탈이야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눈물 젖은 박수를 쳤다.

 

이등병 백일휴가 복귀하듯 부산행 기차 안에서 녹음되어 있던 노래와 웃음소리 그리운 목소리를 들어면서

눈물겹지만 첫눈이다
눈물겹지만 내 삶이다
눈물겹지만 앞산이다
눈물겹지만 땅과자유다
눈물겹지만 대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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