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좋은 만남, 좋은 사람들 [2004.2.16]

좋은 만남, 좋은 사람들 -대구에서 내 삶은 시작되었다


<녹생평론> 사무실로 가는 내 마음이 설렌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공부를 하는 것이기에 기대 반 걱정 반이다. 하지만 발길을 돌릴 수는 없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찾아가는 내 발걸음을 결코 멈출 수가 없었다. 밤눈이 어두워서인지 몇 코스를 지나왔다. 만촌 네거리에서 걸어 올라왔다. 드디어 <녹색평론> 사무실 앞에 섰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문을 두드렸다.


교재 중 <시적인간과 생태적인간>을 구입하지 못했다. 백수 생활의 비참함(?)일까. 경대 서점에서 눈요기로 대충 보고는 씁쓸한 마음으로 나와만 했다. 이런 날이면 서점 주인이 되고 싶어진다. 습벽인지 구입하지 못하면 제대로 책을 읽을 수가 없다. 게으름 때문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수고로움도 없이 어찌 공부를 하겠다고. 한참을 반성을 하게 되었다.


홍철이 선배의 세심한 배려로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공부할 앞부분 읽게 되어 다행이었다. 어느 정도 모인 것 같았다. 자기소개를 하고나서 본격적으로 배움의 봇물이 터지기 시작했다. 발췌문을 다 읽고 나서 조금은 편안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예습을 철저하게 못 한 결과 수박 겉핥기식인 것 같아 나의 게으름을 한번 더 탓하게 되었다. 뜨겁게 확실하게 완전무장하고 2교시를 준비해야 할 것 같았다.


이야기가 불붙기 시작했는지 11시가 가까워져 가는데도 식을 줄 몰랐다. 취중진담이 아니라 맨 정신으로 진지하고 치열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는 게 조금은 신기했다. 그런 문화를 많이 접해 보지 못 한 촌놈이기에. 뜨거움이 전이되어서인지 공부를 하고 싶다는 배고픔을 느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뒤풀이가 없을 것 같아 아쉬웠는데 그 열정이 금방 식을 그럴 모임이 아니었다.


이런 자리에 무슨 안주가 있더라도 천하일품이 아닐까. 외로움에 쩔쩔매본 놈은 이런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 수 있으리라. 술기운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하니 몹쓸 병이 도지기 시작했다. 뜬구름 잡는 질문에 상대방을 괴롭히는 것인 줄 알면서도 나의 궁금증에 스스로도 두 손 두 발 다 들고 혀를 내두르는 병이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도 횡설수설 주절거리게 만든다. 언젠간 제 풀에 지쳐 하지 않을 때가 있겠지. 징그러운 몹쓸 병.


부안까지 가게 되는 성과를 거두고서 맥주집으로 몸을 옮겼다. 끝까지 살아남은 자의 괴로움 또는 즐거움이랄까. 분위기는 절정에 이르는 것 같았다. 맥주 집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노래가 시작되었다. 준희 형님의 ‘저 창살에 햇살이’, ‘전화카드 한 장’과 성원 누님의 ‘청계천 8가’, ‘민들레처럼’ 그리고 나의 ‘농민가’ 또 다른 가수들의 많은 노래들이 더 이상 맥주집에 앉아 있지 못 하게했다. 흔하게 맛 볼 수 없는 그날의 뜨거움이 그리워진다.


결국 노래방까지 가게 되었다. 경록 선배님의 처절한 몸부림과 나의 짜가 춤을 합쳐 이판사판으로 만들고 말았다. 진이 다 빠져 파김치가 된 기분이었다. 동이 트기 직전에 날뫼터로 향했다. 내일을 위해 자는 게 맞지만 의리 때문에 라면에 소주 한 잔 마시고 안면몰수하고 사랑스러운 책을 베개 삼아 잠을 잤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