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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2004.2.12]

여의도에서
- 한-칠레FTA 비준안 통과 반대를 위한 농민대회에 참가하면서


여의도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잠바에 민노당 로고와 글씨가 적힌 아저씨를 봤다. 가는 동안도 혼자가 아니고 함께 가는 것이었다. 여의도가 초행길이라 늦지 않게 제대로 찾아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저 아저씨만 따라 가면 될 것 같아 안심이었다.

빌딩 숲을 지나 드디어 도착 했지만, 나락 한 알 회원님들을 쉽게 만날 수 있을까. 손전화로 물어물어 상봉했다. 풀꽃 세상의 풀씨님들과 같이 있었다. 초면이었지만 그렇게 심하게 낯가림을 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수많은 깃발 아래 삼삼오오 깡소주를 틀어넣는 아버지 나이 때의 아저씨들, 일하던 그대로 옷차림을 하고 머리띠를 두르고는 담배를 태우고 있는 할아버지들, 아주머니까지도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불콰하게 달아올라서인지 어깨춤을 추며 축제 같은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다.

솔직히 슬펐다. 울컥 눈물이 쏟아질 뻔도 했다. 단련되지 않는 나약한 모습. 들키지 않았지만 이런 감상에 빠지는 것도 싫다.

그것도 잠시, 행진이다.
따라 걷다 보니 단상 앞에 서 있게 되었다. 물대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짱돌을 쥐고 어연하게 서 있는 사수대의 청년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시장바구니에 돌을 나르던 여학생이 짝사랑했던 애보다 훨씬 더 예쁘게 보였다. 강철대오 같이 측면 방호벽을 대열로 이루고 있던 대학생들이 든든했다.

작으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건, 구호로 고함으로 서 있음으로서 버팅겨 내며, 가사도 모르는 농민가며, 아스팔트 농사를 흥얼거리며 따라 했다. (지금은 귀에 따까리 앉을 때까지 듣고 있습니다.) 초년병이라 장갑도 없이 내복도 안 입고 허술하게 온 결과 춥고, 담배도 다 떨어졌고, 다리도 아팠지만, 동지애로 뭉친 나락 한알님들의 배려 때문에 힘이 생겼다.

김밥에 소주 몇 모금을 털어 넣고, 담배도 몇 모금씩 돌려가며 피웠다. 견디면서 마음속에서 생겨나는 건 국회의원이라는 놈들의 비열함을 몸으로 느끼면서 증오하고 있었다. 개 끌 듯이 질질 끌면서 눈치를 보는 잘난 놈들을 얼굴을 떠올렸다.

환호성과 부둥켜안으면서 비준안 저지를 했다는 승리의 맛.
돌아오는 길이 조금은 가벼웠다. 현장에서 하나 됨의 희열을 느꼈다. 돈 주고는 못 사는 그런 맛이다.

나의 첫 전투적(?) 시위 현장에 나락 한 알님들이 같이 있어서 어떤 빽보다 든든했고, 느꼈고, 배웠습니다. 첫발을 내딛는 나에게 용기와 지혜를 주셔서 고마울 뿐이었다. 첫 마음을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 투쟁의 현장에서 단련되어 가는 강철 새잎 같은 존재가 되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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