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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교실 모임 다음날 [2004.02.01]

오랜만에 시창작교실 회원들을 만났다. 속쓰림과 주정에 가까운 이야기들 때문에 몸과 마음이 괴롭다. 어김없이 들려오는 할머니의 잔소리가 나를 괴롭힌다.

"문디, 술도 못 이기면서 어디서 쳐 마시고 와가주고 지랄이고!"

할머니 특유의 목소리에는 미움이 섞여 있지 않다. 오늘은 변기를 잡고 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런 날이면 술 깨는 약 봉지가 머리맡에 놓여 있을 때도 있다. 예전만큼 속이 안 좋은 걸 느끼지만, 무작정 마시게 되는 날이 있다.

어제가 그런 날인 것 같았다. 문학이 뭐고, 시가 뭔지 몰라도 소화 해 낼 수 없을 정도의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오버하는 이 버릇을 언제 고칠지 걱정스럽다. 오버가 아니라 분노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커피샵에서 시작해서, 보쌈 집에서 소주, 아구찜 집에서 또 소주, 마지막 입가심으로 생맥주. 솔직히 아구찜 집에서 벌써 술기운이 올라서 살아 보지 못한 80년대를 겁 없이 횡설수설 했는데, 내가 했던 말이 어쩌면 무덤이고 족쇄가 될 텐데. 항상 또 술 깬 아침에 후회하게 된다.

꺼져가는 불씨가 아니라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 같이 생맥주 집에서 지훈이와 미덕이 샘과 밑도 끝없는 입싸움(?)이 계속 되었다. 장사 마치기 위해 우리 테이블만 가길 기다리고 있는 주인아줌마에 눈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 혼자서 두 분의 공격을 엄청 받았다^^

아쉬움을 남긴 채 다음 설전을 기약하며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다시 만나고 싶었다. 현재의 내 위치를 또 깨닫기 위해서. 쉽게 말해서 한방 먹었다. 그것도 보기 좋게 기분이 엉망이었다. 아니 지금껏 살아 온 내 사상(생각)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 같았다. 다시 무언가를 채워 넣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실컷 깨어지고 싶다. 그래서 더 이상 깨어질 게 없는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 어디서 귀동냥에 겉멋에 빠져 비겁한 놈처럼 술에 힘을 실어 큰소리치는 내 자신이 초라했다. 껍데기에 불과한 내 삶이 이제는 정말 진절머리 난다.

미덕이 샘의 촌철살인 같은 말과 지훈이의 맑은 기운은 나를 또 키우는 원동력이 될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물어 본다.

“넌 왜 글을 쓰려고 하고, 그 배움에 있어서는 얼마나 진지하고 치열한가?”

좀더 노골적으로 물어 보자

“너 솔직히 습작이라는 걸 몇 편 쓰고 술주정 부리는 거니?”

속쓰림과 오버한 말의 괴로움보다는 오늘의 삶이 또 허튼 다짐으로 끝나지는 않을까하는 괴로움이 더 크다. 지훈이가 중학교 때 이응인 선생님께 들고 갔던 몇 권의 일기장같이 적겠습니다. 한 편의 글을 들고 와 내미는 두려움과 부끄러움도 버리겠습니다. 그래서 다시 술자리를 가지겠습니다. 술 먹고 즐기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서로 못 잡아먹어 헐뜯는 자리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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