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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후반기 내 삶의 중심에 있었던 '농민장터'

2006년 후반기 내 삶의 중심에 있었던 '농민장터'

 

늦게 장터 정산을 끝내며, 나도 정리를 해야할 것 같았다.

말끔히 정리된 로드맵이나 장터 취지의 휘황찬란  선배의 글에 주눅이 든 건지 농민장터에 관한 글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다. 6개월 가량을 함께하며 보낸 시간들인데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니 조금은 아쉽고, 섭섭하다.

 

2006년 7월 21일부터 10월 27일까지 매주 금요일 농민장터를 열었다.

경북지역의 10여개의 시군 농민회 소속 생산자들의 물품을 직접 들고와서 장사꾼의 잇속이 아닌 농민의 똥줄타는 심정으로 장터에 참여했을 것이다. 대구공업대학 운동장에서, 대구MBC 앞마당에서, 수성구민운동장 주차장에서, 북구 관음운동장에서, 경북대 운동장에서 총 14차례를 열었다.

 

찜통 더위의 땡볕을 받으며 시작해서 느닷없이 내리는 비를 원망하기도 했고, 금요일마다 일기예보는 '비' 라해서 항상 걱정을 했으며 떨이를 하고 싶어도 어느덧 짧아지 해를 끝으로 대장정의 장터도 파장을 했다.  풀어내자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뒤죽박죽이겠지만 어디 이것 뿐일까. 근데 말자. 내 속만 터지고 후회스러울 뿐 일 것이다.

 

이것 하나만은 확실히 얻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 순전히 내 개인적인 수준과 느낌이겠지만. 금호의 힘이라 일컫는 영천의 연사부장님은 항상 사무국의 운영을 걱정해하며 배즙을 먹어라며 몇 박스씩 챙겨주셨고,  성주의 사무국장님,  안동의 형님들, 경산의 호균선배, 고령의 고시생 같았던 농민분, 의성의 자부심과 한미FTA 저지에 역설이시던 어르신들, 장터 식당의 주인이셨던 상주 여농의 조직부장은 항상 덤으로 부침개 또는 묵을 주셨다. 생각난다. 다시 장터 실무를 보기는 싫지만, 지금 생각나는 사람들은 보고 싶다. 항상 소주가 뒤따라다녔던 장터, 다같이 모여 소주 한잔하고 싶다. 집회 현장에서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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