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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또 걷다

박재삼의 시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첫 구절인 "마음도 한 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처럼 혼자 앉아 있지 못해서 매일 걷는다. 도착할 곳이 없는 발걸음을 제일 싫어하고 힘들지만 무작정 걸을 때도 있다. 근데 지금처럼 쉼터에서 당직 설때면 걷고 싶어 미칠 지경에 이른다. 감옥에 있는 동지들도 이런 마음이겠지. 군대있을 때도 걷도 싶어 별 짓을 다했는데.

 

지하철과 버스는 답답해서 요즘 거의 안 탄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지만 음주 운전으로 며칠 동안은 자제하기로 했다. 오늘도 한 시간 반을 걸었다. 골목길을 걸으며 조용해서 좋지만 또 혼자인 것 같아 매연 가득한 대로를 걷는다. 효목시장을 나와 큰고개 오거리쯤이면 속도에 탄력이 붙는다. 완만한 고개를 넘어가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평화시장쯤이면 혼자가 아님을 느끼며 사람 구경을 한다. 반 쯤 온 것 같은 공고네거리에 서면 왜 이렇게 걸을까 싶다. 원래 걷는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지하철을 타면 짬을 내어 책이라도 볼 수 있을텐데. 난 너무 비효율적인 것 같았다. 강남약국을 지나치며 이런저런 기억을 되살려 보기도 했다. 칠성시장에서 신천변으로 빠졌다.

 

개나리를 보고싶어서 신천을 끼고 걸었지만 마침 어스름이 깔릴 때라서 그랬는지 우울해졌다. 예전에는 걸으면서 머릿속에 복잡했던 것들이 단순해지며 가닥을 잡을 수 있었다. 근데 요즘은 꼭 그렇게 뭔가를 얻어려고 하기 보다는 아무 생각 없이 많이 걷는다. 다리가 묵직해져오며 아플 때까지 그래서 집에 도착하면 잠이 올거라 바로 누웠지만 정신은 더 말똥말똥 또렷해진다. 제길~

 

신천에서 삼덕동으로 빠졌다. 쉼터에 도착해서 영화 <사랑할때 이야기하는 것들> 봤다. 억지스럽지 않았다. 담백했다. 혹자는 '미열'로 표현했는데 그 말에 동의하는 편이다. 여전히 왈칵 쏟아내지는 못했다. 그 많은 눈물은 다 어디로 도망갔을까.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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