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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1/21
    울고 싶은 아침 [2001.04.06]
    꿈꾸는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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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가다 일기 [2001.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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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꾸는나비

울고 싶은 아침 [2001.04.06]

4월 6일 맑음


 

벚꽃의 화려한 자태와 따스한 봄 향기가 코를 유혹하는 봄날은 어김없이 왔다. 계절의 봄을 인력으로 막을 수 없듯이 국방의 의무 또한 우리들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었다. 소 도살장 끌려가듯 하나 둘씩 갔다.


 

날선 잠에 실눈을 부비며 일어났다. 노래방 일을 마친 병희와 지친 걸음으로 역으로 갔다. 월급을 아직 받지 않아 편도 차비 700원 밖에 없었다. 미안 했지만 병희한테 신세를 졌다. 혼자 가기 싫어 병희에게 같이 가자고 했고, 영민이 혼자 안 나오면 좀 그렇다고 해서 병희가 전화해서 나오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간만에 그것도 이른 아침에 얼굴을 다 보게 되었다. 병희가 건네준 말보르 레드 담배로 착잡한 마음을 누그뜨렸다. 아주 잠시 동안이었지만 재훈이 오기 전 반가운 얼굴들을 볼 수 있어 기분이 싱그러웠다.


 

술이 덜 깬 상태로 우거지죽상을 하고 나온 영민이, 산뜻하게 발랄하게 변신하고 나온 미애. 그렇게 못 잡아 먹어 안달이든 상극지간인 성배가 훈련소까지 가고. 하여튼 작은 것에 고마움을 느꼈다.


 

정렴이 생각이 났다. 입소 당일 마중을 못 해준게 씁쓸하게 가슴 한 곳이 시려왔다. 드디어 차 시간은 다 되었고 짧은 대화는 끝이 났다. 그리고 재훈이와 처음으로 한 악수. 착잡함과 무거움이 전해지는 악수였다. 개찰구를 지나갈때 재훈이 어머니 눈가는 붉어졌고, 아버지는 마른 그늘이 얼굴에 져 있었다. 플랫폼에 섰을때 내가 해 준건 손을 흔드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기차는 출발했다.


 

쓸쓸하고 힘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미애는 학교가 있는 부산행 기차로, 영민이는 재훈이 아버지 차로, 병희와 난 버스를 탔다. 중고생들 등교 시간이라 꽉 찬 버스에 앉았다. 병희와 난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차창 밖의 풍경만 멍하니 바라 볼 뿐이었다.


 

교복 입은 중고생들이 부러워 보였다. 집 근처 에서 내렸다. 고교때 국어 선생님을 뜻밖에 마주치게 되었다. 가벼운 인사로 지나쳤다. 멀리서 들려오는 경쾌한 새소리. 내 감정과는 상관없는 듯한 눈부신 햇살 가루가 쏟아져 내렸다.


 

짧은 시간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을 어떻게 가라 앉힐 수 있을까. 조금은 서러운 듯한 울음을 터뜨릴 수만 있다면 시원 해질 듯한데. 밝음이 살아 숨쉬는 아침에 울음이 어울리지 않는지. 억지로 울 수도 없고 환장 하겠다.


 

재훈이는 군대가고, 버스에 탄 중고생들은 학교에 가고, 그 국어 선생님 또한 학교에 갈 것이고, 난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알 수없는 서러움이 일때면 자책을 하는 버릇에 괜히 초라 해진다.


 

끝내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던 아침. 그렇게 울고 싶었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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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 일기 [2001.01.10]

어제는 한 이주일만에 처음 노가다 갔다 왔다. 근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재수 옴 붙어 아침부터 청승맞은 겨울비를 맞고 일했다.한 이주동안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에 몽롱한 정신으로 말이다.

여름에는 비를 맞고 일하는게 땡볕보다 낮지만, 겨울에는 할짓이 못 되었다. 운동화는 벌써 물이 차 발이 라면 불어터진것 같은 느낌이었고, 안경에는 빗물이 맺혀 앞을 제대로 볼수가 없었다. 그마나 다행인건 완전 코팅된 고무장갑을 끼고 비옷을 입어서 다행(?)이었지. 내가 하는건 디모도(잡일) 자칭`개잡부'다.

개잡부의 첫째 조건 `발이 열나게 뛰어다녀야 한다는 것.
둘째 `붙임성이 좋아, 20년 차이 아저씨와도 농담 따먹기를 잘 해야 한다는 것.
셋째 힘으로 하는 일에는 자신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근데 중요한 건, 그 조건에 내가 다 불합격이라는 것이다^^;;

어제 한 일은 캇팅기에 물 넣어 주고, 시멘트 바닥 쓸고, 옹벽을 수세미로 씻고, 거적대기 덮고, 잡목 다른 현장에 날러 주고 대충 그런 일을 했다. 캇팅기는 뭐냐하면? (목에 힘을 주면서 ^^) 시멘트 바닥 자르는 기계 있잖아. 한번쯤은 다들 보았으리라 생각된다.

짜증 정도로는 표현 안 될 괴음을 내는 기계,귀가 먹먹해지고, 이게 제정신인지, 그리고 인간이라는 자체가 순간 아주 본질적으로 신경질적이기도 하지.

그와중에도 뇌리를 때린 감상. "저리 단단한 시멘트 바닥도 자르데, 왜 내 가난은 저 기계로 자를 수 없는지." 역시 진절머리 나는 지긋지긋한 생각이 떨어지지 않는구나.

그런 생각도 잠시 현장이 산골이라 4시가 되어도 해가 떨진다. 5시쯤에 `시마이 담배'를 피고 일을 마쳤다.
중요한 건 오늘 좆같은 일당보다 약값이 더 많이 든다는 노가다지만, 겨울비 때문에 더 더욱 감기, 몸살에 처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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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오늘 시민모임의 정기총회가 있는 날이다.

2시부터 시작이니, 막 시작했을 터이다.

 

2년 가까이 활동한 곳을 떠나온 나는,

자유롭지 못한 덫에 놓여 있다.

이렇게 모든 게 서툴다. 3년전에 이러지 말자고 다짐했건만.

시작은 누구나 열정적이게 또는 수많은 각오로 시작되지만,

끝은 그렇지 못하다.

두 종류다. 심플한 끝맺음이거나, 구질구질한 끝맺음도 아닌 것이 악몽같은 기억을 남기고 간 끝이다.

난 항상 후자 쪽이었다.

 

올해는 무계획으로 무식하게 백수로 개기기다.

거머리처럼 피붙이들의 피를 안 빨아 먹는다는 원칙은 세웠다.

그 원칙은 유치하지만 자존심이다.

컴플렉스가 한 껏 묻어 있는, 날 것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자존심이다.

 

시민모임에서 공로패를 제작했다고 한다.

그 뜻을 충분히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난 받을 자격이 없기에.

모르는 번호의 전화가 연신 벨을 울리고 있다.

아직도 망설이고 있다.

 

총회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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