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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은 아침 [2001.04.06]

4월 6일 맑음


 

벚꽃의 화려한 자태와 따스한 봄 향기가 코를 유혹하는 봄날은 어김없이 왔다. 계절의 봄을 인력으로 막을 수 없듯이 국방의 의무 또한 우리들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었다. 소 도살장 끌려가듯 하나 둘씩 갔다.


 

날선 잠에 실눈을 부비며 일어났다. 노래방 일을 마친 병희와 지친 걸음으로 역으로 갔다. 월급을 아직 받지 않아 편도 차비 700원 밖에 없었다. 미안 했지만 병희한테 신세를 졌다. 혼자 가기 싫어 병희에게 같이 가자고 했고, 영민이 혼자 안 나오면 좀 그렇다고 해서 병희가 전화해서 나오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간만에 그것도 이른 아침에 얼굴을 다 보게 되었다. 병희가 건네준 말보르 레드 담배로 착잡한 마음을 누그뜨렸다. 아주 잠시 동안이었지만 재훈이 오기 전 반가운 얼굴들을 볼 수 있어 기분이 싱그러웠다.


 

술이 덜 깬 상태로 우거지죽상을 하고 나온 영민이, 산뜻하게 발랄하게 변신하고 나온 미애. 그렇게 못 잡아 먹어 안달이든 상극지간인 성배가 훈련소까지 가고. 하여튼 작은 것에 고마움을 느꼈다.


 

정렴이 생각이 났다. 입소 당일 마중을 못 해준게 씁쓸하게 가슴 한 곳이 시려왔다. 드디어 차 시간은 다 되었고 짧은 대화는 끝이 났다. 그리고 재훈이와 처음으로 한 악수. 착잡함과 무거움이 전해지는 악수였다. 개찰구를 지나갈때 재훈이 어머니 눈가는 붉어졌고, 아버지는 마른 그늘이 얼굴에 져 있었다. 플랫폼에 섰을때 내가 해 준건 손을 흔드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기차는 출발했다.


 

쓸쓸하고 힘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미애는 학교가 있는 부산행 기차로, 영민이는 재훈이 아버지 차로, 병희와 난 버스를 탔다. 중고생들 등교 시간이라 꽉 찬 버스에 앉았다. 병희와 난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차창 밖의 풍경만 멍하니 바라 볼 뿐이었다.


 

교복 입은 중고생들이 부러워 보였다. 집 근처 에서 내렸다. 고교때 국어 선생님을 뜻밖에 마주치게 되었다. 가벼운 인사로 지나쳤다. 멀리서 들려오는 경쾌한 새소리. 내 감정과는 상관없는 듯한 눈부신 햇살 가루가 쏟아져 내렸다.


 

짧은 시간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을 어떻게 가라 앉힐 수 있을까. 조금은 서러운 듯한 울음을 터뜨릴 수만 있다면 시원 해질 듯한데. 밝음이 살아 숨쉬는 아침에 울음이 어울리지 않는지. 억지로 울 수도 없고 환장 하겠다.


 

재훈이는 군대가고, 버스에 탄 중고생들은 학교에 가고, 그 국어 선생님 또한 학교에 갈 것이고, 난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알 수없는 서러움이 일때면 자책을 하는 버릇에 괜히 초라 해진다.


 

끝내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던 아침. 그렇게 울고 싶었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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