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과 야채반찬과 돈까스

어제 저녁엔 도시락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이를 계기로 도시락과 뷔페식에 대해서 말해본다. 명동에서 내가 가는 뷔페식당은 홍빠와 회사 가까운 꾸시 두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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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에게서 "뷔페식의 진실에 관해서 방송을 하니 어서 보라."고 전화를 받은 것은 그 며칠 전이었다. MBN인지 어딘지,,,, "재밌는 프로도 많은데 뷔페식이 뭐 어떻기에 그걸 보라는 것일까? 봐 말어?" 잠시 망설였지만 약간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채널을 맞췄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 방송 프로를 잘 본 것 같다.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뷔페식에 대한 숨겨진 이면을 조금은 알게 됐으니 말이다.

이런 종류의 프로를 좀 더 일찍 봤더라면 뷔페식에 관한 나의 막연한 선입견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그 방송을 보고난 후의 제일 큰 변화는 다음 미팅은 뷔페식당에서 해야겠다는 계획을 슬그머니 접게 된 점이다. 아마도 괜찮은 식당을 알아뒀다가 이용하는 쪽에 더 방점을 둬야 할 것 같다. 개인적인 점심식사는 가톨릭회관에서 하는 것으로 정하는 것이 제일 무난할 것 같고.

홍빠는 각종 육류가 구비돼 있어서 고기를 직접 구어 먹을 수 있는 특장점이 좋았었다. 각종 소스와 야채와 쌈이 갖춰져 있고 밥 종류로는 김밥, 볶은 밥, 초밥, 국수와 샐러드 떡볶이가 있었다.

반면에 꾸시는 김밥 종류가 훨씬 더 여러 가지다. 이에 못지않게 초밥종류도 상당히 많다. 그런데 생선초밥 위에 얹어진 생선이 신선하리라는 보장에 확신은 없다. 생선이 흔한 항구도시에서 나고 자란 덕분에 생선반찬을 많이 먹어본 경험과 미감(未感)은 초밥을 바라보는 눈높이에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생선초밥이란 간단히 말해서 작은 생선포를 밥 위에 얹어 먹는 것이기 때문에 신선한 생선과 즉석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점이 전제되지 않으면 신선도를 장담할 수 없다. 전부터 초밥을 그리 신용하고 있지 않은 이유다. 더구나 초밥은 우리나라의 주된 식사 형식도 아니고, 싸구려 뷔페식당에서 대량으로 제공되는 생선초밥을 마냥 좋아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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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꾸시에는 튀김종류가 갖춰 있고 후식으로 과자종류와 와플을 즉석에서 구어 먹을 수있다. 근데 꾸시에 김밥 종류가 많은 것은 좋은데 하나같이 마요네즈와 비슷한 소스가 얹어있었다. 남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김밥에 하나 같이 맛내기 소스가 얹어 있는 것을 보자니 "저건 아니다." 싶었다. 종류는 너절하나 맛에 차별성이 없다는 것을 간파한 점이다. 왜 맛을 다 똑같게 해버렸지? 

뷔페에 갔을 때 S는 무조건 좋아했고, M은 모시고 간 김에 엉겁결에 이것저것 잘 드셨고, V는 뷔페식에 별 메리트를 느끼지 못한다면서 좋은 평을 내리지 않았다. 이것은 뷔페식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몇 번 가본 느낌을 말한 것이고, 방송에서 알게 된 뷔페에 대해서 이제부터 기억나는 것을 말해본다. 

뷔페에서 나오는 연어는 진짜 연어가 아니다. 달걀도 오래된 것을 쓰는 것은 보통이다. 파손된 채 유통되는 달rif을 쓰는 것쯤은 보통이라 한다. 소시지 종류도 유통기한이 지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고기야말로 등급 왜 고기를 쓰는 것이 보통이다. 젖소 중에서도 젓을 더 이상 못 짜는 폐 사육 소는 두당 불과 삼사십 만 원 짜리라고 한다. 육질이 질기고 영양가도 좋지 않다. 단가 싸게 팔리는 소를 결국 이런 곳에서 사용한다.

채소도 역시 마찬가지다. 음식도 리필해서 다시 요리한 것처럼 한다. 운영비를 줄이기 위해서 인건비를 줄여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요리는 조리사가 직접 만들 수 없다. 상당부분 대량으로 포장된 것을 사다가 봉투만 뜯으면 가능한 즉석요리로 충당된다.

이런 얘기들이 깜빡 잊고 기억 속에 잠복해 있었다. 엊저녁에 먹게 된 도시락 때문에 생각나서 비로소 수면위로 떠올려 봤다. TV에서 본 뷔페식과 내가 먹은 뷔페식이 떠올랐고, 부실한 도시락을 본 김에 '도시락의 진실'에 대해서도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 이제 도시락 얘기다. 한 단체에서 도시락을 먹게 됐다. 저녁을 먹게 된 시간은 8시 20분 쯤, 어떤 사람은 속도 모르고 "단가가 높은 도시락을 주문하면 양질일 것이다"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아니다. 도시락의 일반적인 특징은 어느 메이커, 어느 가격대이든지 돈가스나 생선가스 같은 기름에 튀겨낸 반찬이 주를 이룬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왜 그럴까? 그리고 오뎅조림도 빠지지 않고 들어있다. 오뎅도 결국은 생선에 밀가루와 조미료 잔뜩 넣어서 기름에 튀겨낸 싸구려 반찬이다.

장소에 모인 사람을 대충 보니 약 200~250쯤 될 것 같았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도시락 반찬이 예상치를 벗어나지 않았다. 우리나라 도시락 업체의 대표적인 메이커가 한솥 도시락일 거다. 내 경우 무용단을 이끌고 지방공연을 갈 때 몇 번이나 도시락 신세를 진 일이 있었다. 늘 30~40개 정도는 주문했는데 그때마다 김치와 야채를 여분으로 챙겨 갔었다.

왜 나는 도시락 문제에 관심을 보이는가? 사람은 배고플 때마다 먹어야할 상황에 처하고, 음식이라는 것이 너무 조악하면 비참한 생각이 든다. 저녁으로 먹은 도시락은, 김치가 새끼손가락 보다 더 가는 것이 딱 두 조각 들어있었다. 김치란 색깔이 빨갛고 물기가 있어서 도시락에 담기엔 좀 적당치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도시락밥을 먹을 때는 “김치 좀 더 있었으면‘’하는 아쉬움이 간절하다. 받아든 도시락에는 튀김반찬과 조림반찬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역시나 오뎅에 양배추 몇 가닥이기에 채소반찬이 절실했다.

이래저래 현대인은 자칫 잘못하면 질 나쁜 육식을 과도하게 먹는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돈가스 같은 기름으로 튀겨내는 음식은 대량으로 만들 수 있고 쉽게 변질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 반면에 채소반찬은 쉽게 변질되고 모양도 쉽게 망가진다. 그래서 도시락이나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는 절대로 정성과 손이 많이 가는 요리사의 즉석요리와 신선한 채소반찬의 비중을 높이기란 쉽지 않다.

사정이 이러니 자본의 이익에 맞춰 형성된 패스트푸드를 주는 대로 먹어야 하나? 그러면 영양의 불균형이 심하다. 음식이란 고기와 야채를 적당한 비율로 섞어 먹어야 하는데 현실적인 이유와 경제적인 이유가 배치되는 상황다. 공임이 많이 드는 즉석요리로는 이윤을 맞추기 쉽지 않다. 양심적으로 신선 요리로 짜인 식단이 귀한 이유도 여기 있다.

여기서 대안 제시를 하고 싶은 거다. 이런 언밸런스를 개인적으로 보충하는 방법이 나로서는 김치로 충당한다. 김치는 채소가 주원료이면서도 쉽게 변질되지 않는 천연요구르트 즉 유산균 음식이다. 그러니 돈가스 종류의 패스트푸드 음식이 주조를 이루는 도시락을 먹을 때, 육식의 독소를 상쇄시킬 수 있는 것이 그래도 김치라고 생각해서다. 반찬 가지 수가 적다고 하지 않을 테니 오뎅 같은 조림반찬 하나 줄이더라도 김치나 좀 많이 줬으면 싶다.

청소년들도 비만으로 가는 지름길을 피하고 야채와 알맞게 섞어서 식사를 하는 습관을 길렀으면 좋겠다. 패스트푸드에서 제공하는 튀김음식을 무조건 먹지 말고, 조화된 식단을 제공하는 식당을 알아뒀다가 가려서 드나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먹는 것 하나라도 상술에서 계량화된 패스트푸드 위주로 따라가다가는 비만은 물론 각종 질병에 걸려서 삶을 건강하게 지탱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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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1 01:00 2014/02/2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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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금메달이 터졌다.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다. 우리에게 금메달 소식을 처음 전해준 선수는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의 이상화 선수다.

 

이 경기를 처음부터 지켜본 사람이다. 손에 땀을 쥐면서 스릴과 조바심, 기쁨과 만족 등이 뒤섞인 온갖 감정을 맛보았다. 이런 건전한 충격은 오래 동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올림픽이라는 큰 경기인데다가 지난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우리나라 선수가 2연패를 목표로 참가한 대회라서 기대와 떨림은 더 크게 작동했다.

 

스피드스케이팅의 경기방식은 두 명이 한조를 이루어 겨루는 방식이다. 이번 소치 올림픽에서의 500m 경기는 총 18조로 나뉘어 36명이 결선을 치렀다. 빙상경기라는 것이 순식간에 끝나는 게임이라서 그런지 참가선수 전원이 두 번의 레이스를 펼치고 나서 1,2차 경기성적을 합산하여 기록이 빠른 순서대로 금, 은, 동메달을 가리는 방식이었다.

 

서양선수들은 우리선수들 보다 키 크고 체격 좋은 선수들이 많다. 이번 동계올림픽의 스피드스케이팅 부문에서 네델란드 팀은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 500m 경기에서만은 2연패를 확정지으려는 사람은 바로 대한민국의 이상화 선수다.

 

승부의 결정은 마지막 질주로 판가름 된다. 이런 순간에 인간의 지나친 말수는 과유불급 바로 그것이다. 잠시 후 벌어질 세기의 볼거리에 관중도 TV 시청자들도 날선 긴장감으로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출발선 앞에 있는 이상화 선수만은 정작 도통군자처럼 초연한 표정이었고, 이를 지켜보는 이들의 긴장감이 오히려 유난한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집중하느라 바쁜데 쓸데없는 잡음을 넣어서 애꿎은 시청자들을 방해한 곳이 있다.

 

바로 KBS 2 방송국이다. 세기의 결승전에 그것도 37초 내외에서 결판나는 빙판위의 짧은 승부 앞에서 시청자는 화면에 집중하기에도 힘겨웠다. 중요한 곳을 행여나 놓칠세라 내심 불안하고 초조한 심정으로 오감을 총 동원하여 집중하기에도 바빴다. 그런데 방송국에서는 돼지 멱따는 것보다 더 심한 불협화음을 동원하여 시청자들의 시청 열의에 초를 치고 재를 뿌렸다.

 

방송과잉이다. KBS 2는 결승전을 분탕질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아나운서와 해설자 소리만으로도 말이 넘치고 과잉인 판에 난데없이 코미디언 강호동 씨가 나서서 그 특유의 땍땍거리고 꽥꽥거리는 소리를 내지르게 했다.

 

꼭 이래야만 한단 말인가. 37초 이쪽저쪽에서 끝나는 경기라서 온 신경을 곤두세워 집중하기에도 버거운 경기였다. 귀를 쑤시고 달려드는 강호동 씨의 땍땍거리는 소리가 너무도 지겨웠다. 어깃장도 유분수지.... KBS는 시청자들을 너무 깔봤다. 지상 최대의 드라마를 보는 판인데 그깟 코미디언이 무슨 대수라고 설치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 딴 해설 같지도 않은 코미디언의 해설이 없어도 빙상경기 하나쯤은 자력으로 시청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단 말이다. 시청자들은,

 

KBS 2를 규탄한다. KBS 2는 시청자들을 어릿광대 취급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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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6 02:56 2014/02/16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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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문의 신해혁명이 위대한 이유
‘혁명의 나라’ 중국을 분석한다 - ⑥

청나라 왕조가 서류상으로 망한 것은 선통제 푸이가 공식 퇴위를 선언한 1912년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2차 아편전쟁에 패한 1860년에 이미 망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정확히 표현해서 청나라는 1860년부터 본격적으로 망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본격적으로 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나 ‘망했다’는 것이나 사실상 오십보백보라고 본다.

이는 조선왕조가 공식적으로 망한 것은 1910년이지만, 본격적으로 망하기 시작한 것은 1876년 강화도조약부터라고 보는 견해와 유사할 터이다. 아무튼 1860년부터 본격적으로 망하기 시작한 중국은 숱한 우여곡절을 겪은 뒤 1949년에 이르러서야 새로운 통일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을 창건해 냈다. 결국 중국...은 무려 한 세기에 가까운 90년 동안 망국에서 건국으로 이행하는 대혼란을 겪은 것이다. 나는 이 기간을 정의하여 가히 ‘혁명의 시대’라고 하겠다.

1860년 2차에 걸친 아편전쟁의 패전으로 중국에는 서양자본주의가 내륙 깊숙이 침투하여 민중들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거듭된 패전으로 청조는 자주권을 거의 잃었고 민중은 만주족 왕조인 청조에 대한 저항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또한 청조는 전쟁 비용과 과도한 배상금 지불을 일반 세금으로 전가시킴으로써 인민들의 불만을 위험 수위로까지 치닫게 만들었다.

과연 90년이나 되는 ‘혁명의 시대’에 중국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일단 ‘혁명의 시대’였으니 말 그대로 ‘혁명들’이 발기했을 것 아닌가. 물론 혁명에는 실패한 혁명과 성공한 혁명이 있는데, 실패한 혁명은 혁명이 전개되는 기간에만 혁명일 따름이지, 훗날에까지 혁명이라고 호칭되는 법은 없다.

우리는 ‘태평천국의 난’, ‘의화단의 난’ 그리고 ‘신해혁명’, ‘홍군혁명’ 등의 용어들을 들어 알고 있다. 공자가 말한 정명(正命), 즉 ‘바른 이름 붙이기’를 여기에 적용할 때, 나는 위 이름들 중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신해혁명 하나밖에 되지 않는다고 본다. 이름을 바르게 붙이는 것은 대상을 바로 이해하는 데 아주 요긴한 항목이다. 그래서 나는 위의 것들을 각각 ‘태평천국농민항쟁’, ‘의화단항쟁’ ‘신해혁명’ 그리고 ‘중국혁명’으로 명명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태평천국농민항쟁(1850~1864)은 수백만 민중이 뜻을 모아 14년 동안 중국의 중요 지역을 장악하며 이상사회를 실현하고자 했던 항쟁이었다. 그들은 청을 몰아내고 한족민족주의를 구현하고자 했으며,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중국을 수호하고자 했다. 무엇보다도 이 항쟁은 반봉건적인 평등한 사회를 실현하려 했다는 점이 큰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근대를 지향한 대표적인 농민항쟁으로서 우리의 동학항쟁과 일면 비슷한 성격을 띤다.

의화단 항쟁(1899~1900)은 종교적 이념을 도구로 하여 서구열강의 침략에 대한 중국인들의 강력한 저항 의지를 보여주었다. 불행히도 이 항쟁은 근대무기로 무장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과 청조의 배신으로 좌절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제국주의 열강이 중국을 분할해서 점령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각인시켰다. 아울러 청조의 반민중성과 무능력을 폭로함으로써 이후 본격적으로 청조를 타도하기 위한 혁명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손문의 신해혁명(1911년)은 성공한 혁명이다. 손문은 1907년~1908년 어간에만 무려 6차례나 무장봉기를 이끌었다. 신해혁명은 원세개의 반혁명에 의해 좌절되는 수난을 겪었다. 하지만 신해혁명이 중국 현대사에 미친 긍정적 영향은 막대하다. 손문은 지금도 중국과 대만에서 동시에 국부로 추앙된다. 손문은 1912년 1월 1일 남경에서 중화민국이라는 정식 국호를 채택했으며 '민(民)의 공의를 취하고 중(衆)을 위해 복무한다'는 총통선서를 했다.

신해혁명은 제국주의에 의존적이었던 청조를 무너뜨렸다. 마침내 인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최초의 근대적 공화정부가 수립된 것이다. 이는 2,000여 년 동안 지속되어 왔던 전제군주제도가 허물어진 역사적인 대사건이었다. 이 혁명은 비록 자본주의계급의 혁명이기는 했지만 손문은 결코 서양식 자본주의를 추구하지는 않았다.

“문명은 선과(善果)와 악과(惡果)를 동시에 내는데, 선과를 취하고 악과를 피해야 한다. 구미 각국에서는 선과는 부자들이 다 차지하고 빈민은 악과만 먹었다. 소수가 문명의 행복을 차지하였으므로 이처럼 불평등한 세계가 된 것이다. 우리의 혁명은 국민의 국가를 만들어내야 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국가를 만들어내야 한다. 우리가 만드는 국가는 구미가 절대로 따르지 못하는 국가이다.”[손문(孫文), 1906년 <민보> 창간 1주년 연설 중에서]

이는 손문이 강유위·양계초 같은 계몽개혁주의 대지도자들을 제치고 구국의 혁명가로서 우뚝 설 수 있게 한 비결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에는 구한말과 식민지시대를 통틀어 손문 같은 캐릭터를 가진 지도자가 없었다. 이상설은 왕조부흥을 내세운 복벽주의자였다. 김구는 단순한 민족주의 항쟁가였다. 안창호와 이광수는 미·영을 흠모한 계몽주의자들이었다. 여운형에게는 혁명을 위한 구체적 실천이 없었다. 이승만은 친미주의자, 서재필은 종미주의자였을 따름이다.

나는 신해혁명이 있었기에 얼마 후 중국역사상 가장 위대한 마오쩌둥의 중국혁명이 가능했다고 본다. 혹자는 김일성의 인민혁명을 마오쩌둥의 중국혁명과 비슷한 성격으로 파악한다. 하지만 이것은 한반도 북위 38도선 이북지역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논리이다.

나는 김일성의 인민혁명을 과소평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김일성의 혁명은 사회주의 제국주의 국가였던 소련의 힘을 배경으로 한 것이었고, 그가 추진한 '조국통일전쟁'은 결과적으로 분단을 고착시켰다. 우리에게는 ‘손문 - 마오쩌둥’과 같은 유용하고 강력한 혁명 세트가 없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의 분단 현실과 남측의 비자주성을 야기한 요인 중 하나인 것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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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5 14:58 2014/02/15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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