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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의글] 먼저 떠난 상덕에게

 
[추모의글] 먼저 떠난 상덕에게  “부디 그곳에서는 질병과 고통 없이 편안히 살기를”
윤가브리엘(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26일 세상을 떠난 고 김상덕 활동가를 추모하는 글을 윤가브리엘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대표가 보내왔다. 김상덕 활동가가 글리벡 투쟁을 이끌었던 환자 당사자라면, 윤가브리엘 대표는 현재 HIV/에이즈 감염인들의 인권보호 활동을 이끌고 있는 감염인 당사자다. 윤가브리엘 대표는 현재 병세가 악화돼 서울대 병원에 입원 중이며, 병상에서 추모의 글을 작성해 보내왔다.[편집자주]

 

지치고 힘든 하루를 보내고 초저녁 설핏 든 잠을 전화벨 소리에 깨고 이렇게 모니터 앞에 앉았다. 오늘은 아주 길고 힘든 하루를 보냈었어. 날벼락 같은 너의 죽음을 듣고도 병실에 갇혀 꼼짝 못하는 내 자신도 원망스럽고 그렇게 황망히 가버린 너도 야속하고 그렇더구나.

 

너를 민중의료연합 사무실에서 권미란의 소개로 처음 보았을 때 구구한 자신의 소개를 하지 않아도 너의 살아온 이력을 다 알 것 만 같았어.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에 화상을 입은 듯한 너의 외모를 보고 나 못지않게 아프고 힘들게 살아온 친구라는 걸 단박에 느끼면서 진 한 동질감을 느꼈었다. 너나 나나 어떻게 병마와 싸워 왔는지 앞으로도 어떻게 병마와 싸워야 하는지 서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뭔가가 있었다고 생각해. 우린 한번도 서로의 아픈 이력에 대해 얘기해 본적이 없었잖아.

 

너가 앓고 있던 백혈병이나 내가 앓고 있는 에이즈란 병이나 환자들의 문제는 거의 대동소이 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어떤 방법이 환자들의 권익에 도움이 될까를 늘 고민하고 문제의 핵심들을 잘 짚어내던 풍부한 너의 경험과 지식에 배울 점 이 참 많은 친구라고 늘 생각 했었다.

 

그리고 훗날 에이즈 환자나 백혈병 환자나 모든 환자들이 다같이 연대하여 환자의 권익을 찾기 위한 일들을 해야 한다고 그래 놓고서 그렇게 황망히 가버리다니,,,

 

나의 신체 한쪽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든다. 그렇게 위태롭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너에게 내가 참 많은 기대를 했었나봐. 죽음은 망자의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산자의 것이라는 말이 있던데 그 말 이 딱 맞는 것 같구나.

 

나 역시 앞으로도 내가 얼마나 살아 나갈 수 있을까 문득문득 드는 생각에 고개를 가로 저으며 ‘얼마를 사는 게 뭐 중요해 하루를 살아도 열심히 사는 게 중요하지’라고 다짐 했었는데, 너의 죽음을 접하고 얼마를 사는 것도 중요 한 일이구나라는 걸 깨닫게 된다.

 

나도 참 우매한 인간에 불과 한 것 같아. 난 죽음 이라는 걸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었어. 훌쩍 떠나버리면 그만 아닐까 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아. 남아있는 사람도 생각해야 한다는 걸 또 배우게 된다. 아마 너도 그렇게 편안히 눈감지는 못했을 것 같아.

 

그동안 너를 힘겹게 짓누르던 삶의 무게를 이제 그만 내려놓고 먼저 간 그곳에서라도 고통 없이, 아픔 없이, 질병 없이, 편안히 살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함께 하려던 우리의 일들을 너를 생각해서, 나를 위해서 그리고 남아 있는 이들을 위해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먼저 간 그곳에서 라도 날 지켜봐줄 거 라 믿는다!

 

상덕아! 그곳에선 제발 아프지 말아라!

 

 [2006년 5월, 당시 입원중이었던 윤가브리엘이 먼저 떠나간 김상덕님을 추모하는 글을 민중언론 참세상에 기고한 것입니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id=36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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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25년속의 에이즈운동

 [2006년 7월 동성애자인권연대 진보포럼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에이즈 25년 속의 에이즈운동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윤가브리엘


1) 미, 에이즈발견 ‘에이즈 이데올로기로 게이들 죽이기’


올해로 에이즈 발견 25년이 되었다. 미국에선 에이즈 25년을 맞아 25년 정리와 에이즈 문제가 어떻게 왜곡되고 이용되어 왔는지 언론들이 특집기사들을 통해 다루었다. <이글 에서는 시사 주간지<뉴스위크>가 에이즈25년 ‘에이즈가 미국을 어떻게 바꿨나’의 특집기사에서 일부분 인용하였다.>


1981년 미국 질병관리센터(CDC) 의사들이 “남성 동성애자"들이 감염되는 특이한 급성폐렴과 피부암 사례”로 보고하면서 에이즈는 세상에 존재를 알렸다,

당시 대통령 레이건의 보좌관을 지낸 팻 뷰캐넌은 1983년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를 이렇게 묘사했다 “동성애자들이 자연과의 전쟁을 시작했고, 자연은 가공할 천벌을 내리기 시작했다.” 이 한마디로 레이건 정부와 극우파, 언론 등이 왜곡과 무시, 비난의 질병으로서 에이즈를 다루었다는 것을 단 적으로 알 수 있다.

에이즈발견 25년 역사를 돌아보면 당시 미국 사회는 마치 중세 인들이 흑사병을 대하듯 무관심과 적의, 오해로 에이즈를 다루다 질병을 키웠고, 특히 남성동성애자들은 극우파와 기독교에 의해 질병을 확산시키는 악마 취급을 당하며 “신이 동성애자에게 내린 천벌”이란 낙인을 받고 죽어 나갔다. 82년 美 의료인ㆍ언론, 등은 에이즈를 "동성애자 관련 면역 결핍증"으로 소개. 질병관리센터 는 에이즈(AIDS) 로 명칭을 지정하였다, 아이티 출신, 동성애자, A형 혈우병환자, 정맥 약물주사자, 를 4대 위험요인으로 지목하였다. 종교적, 도덕적 이유로 게이와 약물 주사자 들에게 관심이 없던 레이건 정부는 무관심으로 일관하였고 언급자체를 꺼렸다. 미국에서만 에이즈로 1만 2천여 명 이 사망할 때까지 공식석상에서 한 번도 이를 언급하지 않은 사실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레이건의 입에서 ‘에이즈’라는 말은 1987년에야 나왔다. 그것도 ‘비정상인들’인 남성 동성애자들끼리의 성관계가 유일한 발병원인인 ‘게이 암’으로 에이즈를 언급하여 이른바 ‘정상인들’ 이성애자들은 동성애자들을 조소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1980년대 미국 언론들도 에이즈 보도에 무관심 했다. 뉴욕 타임스는 81~82년 사이 새로운 치명적인 전염병에 대해 10건 미만의 기사만 실었으며, 그나마도 작은 박스 기사로 다루었다. 뉴스위크도 83년 4월에야 커버스토리로 다루었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성애자도 감염된 1982년 2월 '게이들에게 종종 치명적인 질병이 여성과 이성애자에게도 발병하다'라는 제목으로 처음 보도했다. HIV감염인 들은 가정에서 쫓겨나고, 직장에서의 해고, 학교, 병원, 등 에서 기피, 격리대상이었으며 의료 보험 혜택도 받지 못했다.


당시 게이 사회도 에이즈에 대해 무관심 했다. 게이 언론도 에이즈를 취급하지 않았다. 언론에서 “게이들에게 치명적인 질병”에 다룬 기사들을 게이 언론들은 “질병관련 소문은 대체로 근거 없다”는 제목을 달았다. 에이즈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는 게이사회 일각에서 여러 해 동안 지속되어 왔다. 주변인들이 피부암으로 또는 심한 폐렴으로 입원 하는 동안에도 70년대의 파티를 이어가길 원했던 다수의 게이들은 자신들의 성적자유에 에이즈가 찬물을 끼얹는 걸 원치 않았다. 84년에 가서야 샌프란시스코 게이 전용사우나 폐쇄 여부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동성애자 권리 운동가이자 작가인 ‘래리 크레이머’(87년 ACT-UP 을 조직한 활동가)는 당시 게이들이 많이 모이는 행락지에서 에이즈 연구기금 모금 운동을 벌였으나 불과 769 달러 밖에 안모였다.


대다수 미국인들이 ‘처음으로’ 에이즈를 알게 된 것은 영화배우 록 허드슨이 85년 게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에이즈로 끝내 사망하면서 그때서야 미국인 들은 에이즈를 처음으로 인식했다. 대다수 미국인들이 감염인 근처에만 가도 병을 옮는 줄 알았던 당시 상황에서, 친구 록 허드슨의 손을 잡으며 그의 뺨에 키스를 하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사진은 혁명적 인 것 이었다. 이 후 테일러는 에이즈 자선 재단을 운영하며 미 정부 보다도 더 먼저 발 벗고 나서서 에이즈 연구기금과 환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자선 활동을 시작하였고 에이즈 자선재단의 대표적인 얼굴이 되었다.

그 이후 91년 농구 스타 매직 존슨의 감염은 '버젓하고 건강해 보이는 스포츠 스타'도 에이즈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에 더욱 충격적 이었고, 영국의 유명 록 그룹 퀸의 리드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 의 감염사실 과 죽음은 전 세계를 놀라 게 만들었다


2) 미 에이즈환자들 거리를 나서다! ‘침묵은 죽음이다’


81년 에이즈 가 처음 발견 된 이후 이 질병과 질병의 확산을 수수방관한 미 정부에 분노를 터뜨려온 에이즈 운동가 “래리 크레이머”는 87년 실의에 빠져있는 에이즈 환자 1만 여명을 모아 뉴욕 맨하탄 동성애자 지역봉사센터에서 '직접행동' 조직 액트업(ACT UP “권력의 해방을 위한 에이즈연대”)을 결성한다.  액트업 은 ‘침묵=죽음 Silence=Death’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하고. 백악관 앞에서 에이즈로 사망한 환자의 관을 들고 정부의 무대책에 항의하며 투쟁에 나선다. 액트업 이 결성된 같은 해 87년 미 FDA에 첫 승인 된 에이즈 치료제 AZT (지도부딘)를 환자들이 먹을 수 있게 하고 조속한 치료제 개발과 지원을 촉구 하는 시위를 벌이면서 치료제 AZT를 개발한 제약사가 있는 월스트리트를 봉쇄했다. 이후 에도 액트업 과 연대하는 많은 단체들(옥스팜, 국경없는의사회 등)과 함께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점거하고 성패트릭 성당에서 대규모 시위 등을 지속적으로 벌인다. 이 들의 지속적인 투쟁에 힘입어 에이즈에 대응하기 위한 미 정부의 본격적인 대책 마련인 에이즈지원 법 과 예산 배정은 1990년대에야 이뤄졌다.


95년 클린턴이 백악관에서 최초의 HIV/AIDS 회의를 개최하고 에이즈 치료제 단백분해효소 억재제인 신약들이 개발 되어 에이즈 치료가 좀 더 쉬워진다. 97년 세 가지 향바이러스제 를 섞는 칵테일 용법 덕분에 미국에서 에이즈 사망자가 전년대비 40%이상 감소 하지만 비싼 치료제 때문에 돈 없는 환자들은 약을 먹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미국은 사 보험 제도에다 주마다 보험관련법이 달라 현재도 에이즈는 보험적용이 안 되는 곳이 많다) 액트업 은 특허라는 명목으로 폭리를 취하는 다국적 제약사들을 비난하며 지속적인 약값인하 투쟁을 벌리 고 2년마다 열리는 국제 에이즈 회의에서 “비싼 치료제가 우리를 죽인다!”는 구호를 외치며 다국적 제약사의 전시장들을 때려 부시 며 항의 한다.

그 외에도 반세계화 투쟁의 집회가 있었던 1999년 시애틀, 2000년 제노바, 그리고 2002년 유럽사회포럼이 열리고 있는 피렌체에서 에이즈 문제를 해결하라는 요구를 내걸고 반세계화 행진에도 결합하였다. 처음 에이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직된 액트 업이 적극적으로 ‘반세계화, ’반자본주의 운동’에 참여 하는 건 에이즈의 문제가 단지 질병의 문제가 아니고 빈곤과 계층의 문제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현재 에이즈 환자의 95%는 저개발국에 집중돼 있고 특히 아프리카 사하라이남 국가들에 무려 2천 8백만 명이 몰려 있다. 또한 계층적으로도 의료 접근권이 취약한 사람들에게 훨씬 더 감염 율 이 많다.(미국의 현재 감염 율 통계를 보면 가난한 흑인들이 50%이상을 차지한다)


에이즈 25년 미국 사회를 평가해보면 초기 게이의 질병으로 왜곡하여 초기대응 하지 못한 실패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부터 현재 이라크 전쟁에 이르는 모든 전쟁에서 죽은 미국인 보다 더 많은 인명을 앗아갔다. 그 과정에서 미국의 역사와 문화에 지우지 못할 흔적을 남겼고 동성애를 묘사하는 언론의 태도를 바꾸었다. 미국인들은 무시하고 욕해왔던 한 사회의 인간성을 인정하게 되었다. 에이즈 란 질병도 바뀌었다 게이와 약물사용자를 죽이는 질병에서 ‘빈곤과 인권 취약 계층의 질병’으로 바뀌었다. 에이즈 환자의 권익을 위해 투쟁한 액트업 은 수수방관하던 미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냈고 에이즈 환자들이 적극적인 행동을 벌이지 않았다면 암 환자 , 림프종 등의 난치병 환자들이 오늘날과 같은 열성적인 환자 권익운동을 벌이지 못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3) 한국 에이즈25년 감염인 인권침해25년 ‘감염인 들이 인권을 말하다‘


한국에서는 1985년 에이즈 환자가 처음 발견 되었다. 당시 에이즈란 질병을 강 건너 불구경 하던 정부는 87년 부랴부랴 대책이라며 에이즈 예방법을 제정, 감염인 색출, 격리, 통제에 들어간다. 에이즈 예방법을 통해 공포의 이데올로기를 조장하면서 미국이 초기 대응에 실패한 직접적 원인인 동성애자 ‘고 위험 집단’ 정책으로 일관한다. 미국의 실패한 에이즈 정책을 답습하는 정부를 비판해야할 한국의 언론들은 오히려 에이즈 공포를 더 부추긴다. 감염인문제가 발생하면 보복 심리로 문제를 일으킨다며 에이즈문제의 원인이나 연구는 없고 사건에만 초점을 맞춘다. 언론에서 감염인 들은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으로 심각한 문제이고 정부에 감염인 감시와 관리를 더 철저히 하라는 기사들을 쏟아낸다. 국가인권위가 지난해 발간한 ‘HIV 감염인과 에이즈환자 인권실태 조사보고서’를 보면 3대일간지 에이즈 관련보도 1600건 중 5.3%인 85건만이 감염인 인권을 기사로 다뤘다.


또한 에이즈를 정부가 제대로 알리지도 않아 국민들은 에이즈 발견 25년이 지난 지금도 에이즈에 무관심 하며 나와는 상관없는 일들로 인식한다. 그나마 에이즈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언론에 의해 왜곡된 공포의 대상 일뿐이거나 입에 올리기 싫은 금기의대상이다. 나와는 무관한 일로 받아들이지만 감염인들 에겐 심한 편견을 보이고, 감염인 들이 퍼트리고 다녀 문제라는 피해의식도 상당하다. 감염인 들은 여전히 부도덕한 ‘걸릴 만한 짓을 한사람들’이란 낙인 이 찍 혀 한국에서 에이즈 25년은 ‘감염인 인권침해 25년‘ 으로 단정 지어 말할 수 있다. 이런 한국사회의 잘못된 에이즈 인식을 조장하는 배경엔 에이즈 예방법(후천성 면역결핍증 예방법)이 존재한다. 87년 제정 후 몇 차례 개정을 통해 감염인 격리 조항 같은 독소조항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감염인은 감시와 통제, 관리의 대상일 뿐이고 에이즈 공포에 기반 한 조항 도 변한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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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에 대한 편견 조장하는 영화 <너는 내 운명>

[인권, 영화를 만나다] 에이즈에 대한 편견 조장하는 영화 <너는 내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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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기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깼다"는 영화 <너는 내 운명>을 보기 전부터 기대보다는 걱정이 더 컸다. 그간 영화를 비롯해 온갖 미디어들이 에이즈란 질병을 편견에 가득 찬 시선으로 다루고 있다는 걸 익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에이즈에 감염된 여성의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는 이 영화가 그런 편견을 깨줬으면 한다는 작은 기대를 한 것도 사실이다. 개봉을 하면 꼭 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마침 HIV/AIDS 감염인 단체, 예방단체 등 에이즈 관련 단체들이 가진 비공개 시사회에 초대됐다.

사진설명<너는 내 운명>의 포스터 [출처] 공식 홈페이지(mysunshine.co.kr)


이 영화는 2002년 여수에서 HIV에 감염된 여성이 성매매를 하다 구속된 실제 사건을 극화한 작품이다. 당시 이 사건을 언론을 통해 접하면서 마녀사냥식 사실왜곡과 여론호도에 경악했던 나로서는 애초부터 이 영화를 편한 마음으로 볼 수는 없었다. 영화는 순박한 '농촌 총각'과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을 모르는 '다방 여종업원'의 슬픈 사랑과 이별, 그리고 사회의 편견에 대한 싸움을 나름대로 담고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내 심기가 불편해진 건 여주인공의 감염사실이 드러나면서 사회의 편견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영화 후반부부터였다.

실제 사건과 마찬가지로 영화에서도 기자들이 몰려들면서 주인공들이 살던 지역은 에이즈 공포에 휩싸였다. 같은 동네에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에이즈 검진을 받는 동네사람들, 여주인공과 성관계를 맺었을 거라 짐작되는 한 트럭의 군인들, 심지어 보건소 직원까지. 당시에도 그런 호들갑을 떨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영화는 지역주민들의 무지스러운 행동을 과장되게 그리기 시작했다. 실제 사건에서는 공포를 조장한 언론의 역할이 더 컸음에도 말이다.

사진설명<너는 내 운명>의 스틸사진 [출처] 공식 홈페이지(mysunshine.co.kr)


여주인공을 그래도 사랑하며 같이 살겠다는 남주인공을 향해 "미쳤냐?"며 "에이즈는 당장 죽을 병"이라고 만류하는 보건소 의사는 의사로서의 자격이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몇 년 전부터 에이즈는 치료가 가능한 만성질병으로 진화하여 의료계에선 이미 만성질환으로 보고 있다. 감염인을 일선에서 관리한다는 의사의 입을 빌려 나온 이 말은 에이즈에 대한 감독의 무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겠다.

구속된 여주인공이 감옥에서 홀로 거울을 보다 피부에 붉은 반점들이 번지며 흉측한 몰골로 변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장면에서는 어느새 "지겨워"라는 말이 내 입속을 맴돌았다. 미디어들이 흔히 다루는 에이즈에 대한 잘못된 정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에이즈에 감염되면 피부에 나타나는 붉은 반점이다. 물론 서구의 HIV 감염인들은 체질 탓인지 그런 반점들이 간혹 나타나기도 하고, 아프리카 감염인들은 위생환경의 문제로 유독 피부질환에 시달린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이나 일본 등 동양인들은 그런 붉은 반점들이 거의 안 나타나고 내가 본 많은 말기 환자들도 거의 그런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

미디어들은 왜 그리도 HIV/AIDS 감염인들의 피부에 집착할까? 아마도 에이즈란 질병이 가지는 혐오스러움과 공포를 표현하는데 붉은 반점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에이즈에 대한 혐오스러운 상징이 그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 감염인들까지 혐오의 대상으로 여겨진다는 것을 감독은 모르는 것 같아 답답하기만 하다.

실화의 주인공들이 어떤 사랑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이 영화는 실화의 본질은 비켜간 채 단지 남성 중심의 사랑을 다루면서 "그래도 좋아"라는 동정심에만 초점이 맞춰져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다. 남주인공은 '에이즈까지도 받아들이는' 무한한 아량을 가진 사람이고 여주인공은 단지 그런 남성에게 '사랑받는' 대상일 뿐이다.

당시 실화의 주인공은 콘돔 사용을 거부한 남성 성매수자에 의한 피해 여성이었음에도 가해자로 몰려 가혹한 처벌을 받아야만 했다. 성을 산 남성들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수많은 남성들은 깨끗한(?) 몸을 제공하지 않았다며 그 여성에게 저주에 가까운 비난만을 퍼부었다. 누구하나 그 여성에게 사과하는 사람은 없었다. 실화 속의 두 주인공이 이 영화를 보며 어떤 기분이 들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의 그 악몽을 다시 떠올리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윤한기 님은 에이즈인권모임 나누리+(aidsmove.org) 대표입니다.
인권하루소식 제 2902 호 [입력] 2005년09월27일 0: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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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의 날, 지켜지지 않는 약속 -윤한기의 인권이야기

[윤한기의 인권이야기] 에이즈의 날, 지켜지지 않는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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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기 
12월 1일은 유엔에이즈계획(the United Nations Programme on HIV/AIDS, UNAIDS, 아래 유엔에이즈)이 제정한 세계 에이즈의 날이다. 유엔에이즈는 각 국가들의 에이즈 관리 및 예방사업을 돕기 위해 1996년 1월 창설된 유엔 산하의 에이즈 전담기구이다. 이 유엔에이즈가 2005년 세계에이즈의 날을 맞아 전 세계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AIDS 확산에 대한 노력을 전 세계가 하고 있지만, 그 수는 계속 증가했고, 현재는 4030만명에 육박했다. 거기에는 소녀를 포함하는 여성의 죽음과도 점점 더 깊은 연관을 가진다. 하지만 콘돔의 중요한 역할로 몇 개 국가에서는 성인 감염 비율이 감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에이즈 감염은 더욱 증가추세에 있고 여성의 비율도 높아졌다. 뉴욕에서 열린 세계회의(World Summit)는 모든 유엔 국가들은 2010년까지 HIV의 예방, 치료, 그것들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가능한 그 목적에 가깝게 가는 것들과 그 실행에 대해 맹세했다. 그들이 필요로 하고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효과적이고 포괄적인 예방, 치료, 돌봄 프로그램은 보다 방대한 스케일에서 좀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의 에이즈에 대한 노력은 좀 더 가속화되어야 하며, 게을리 할 여유가 없다. 우리는 HIV에 대항하여 백신, 여성 감염을 통제할 수 있는 기술의 개발과 새로운 세대를 위한 효과적인 치료 보조의 가속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해야 한다. 우리는 이번에 새로운 테마를 선택했다. "에이즈를 막으려면 약속을 지켜라"(Stop AIDS, Keep the promise) 효과적인 예방, 치료, 돌봄 서비스, 이것들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는 약속을 지켜야만 한다. 여기에는 어떠한 변명도 따를 수 없다." (한국HIV/AIDS감염인연대 KANOS 번역)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엔에이즈의 메시지는 효과적인 예방, 치료, 케어 서비스에 국가가 적극적인 약속을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이 메시지가 한국사회에서는 전혀 통용되지 않는다. 질병관리본부와 보건복지부는 올해 에이즈의 날 한국의 슬로건을 '에이즈 예방은 나로부터'로 정해 에이즈에 대한 책임을 마치 개인에게 지우는 듯한 인상을 주어 감염인의 한 사람으로서 심히 불쾌하기만 했다. 언제나 그랬지만 에이즈의 날에 에이즈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보다는 예방에 대한 경각심만 앞세우며 모든 언론은 마치 에이즈 때문에 혹은 4천만이 넘는 감염인들 때문에 지구가 폭발 직전에 놓인다는 이상한 논리들만 펼쳐놓는다. 에이즈의 공포와 경각심만 쏟아내는 세계 에이즈의 날, 정작 감염인들은 더욱 움츠러들고 나아진 것 없는 인권상황에서 벌어지는 화려한 기념식은 허탈하기만 하다.

에이즈의 날을 지나면서 감염인 사이트 KANOS에 올라온 글이 모든 감염인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아 인용해 본다. "나는 에이즈에 감염된 사람이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감염인이거나, 감염인이 될 수 있는, 결코 에이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아직도 병원에서 진료에 따른 수술거부를 일삼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남의 눈이 무서워 검사도 두려운 나라가 한국이다. 직장 건강검진에 HIV/AIDS 테스트가 포함되어, 언제 직장에서 쫓겨날지 모르는 나라가 한국이다. 호적정리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가족이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도대체 동생 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에이즈에 걸리냐고 떠들어대는 의사가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수술일정을 체크하면서 당신 호모냐고 되레 큰소리치는 의사가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그런 한국에서 나와 당신들은 살고 있다."
◎ 윤한기 님은 에이즈인권모임 나누리+(www.aidsmove.org) 대표입니다.
인권하루소식 제 2961 호 [입력] 2005년12월19일 17:4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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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전염병 병력자 정보제공은 마땅히 철회되어야 한다! -윤한기의 인권이야기

[윤한기의 인권이야기] 법정 전염병 병력자 정보제공은 마땅히 철회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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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기 
지난 9월 보건복지부 국정 감사에서 에이즈 수혈사고의 문제 제기가 집중적으로 다뤄지면서 한 건 터트릴 사안에 목이 말랐던 한나라당의 전제희 의원은 질병관리본부가 보유하고 있는 법정 전염병 병력자의 정보를 대한적십자사에 넘겨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의 심각한 인권침해나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아무런 고민도 없이 보건복지부는 10월 부랴부랴 법정 전염병 병력자 정보를 적십자사의 혈액안전관리시스템에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혈액안전관리 시스템 계획이라는 것이 속내를 들여다보면 너무나 졸속으로 치러진 전형적인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일 뿐이며, 보건복지부의 아무 생각 없는 정책에 감염인들은 또 한번 상처를 받고 좌절하게 만드는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작금의 에이즈 수혈사고 들은 항체미형성기를 찾아내지 못하는 현재의 검사법이 문제인 것이다. 이미 질병관리본부에 등록된 HIV/AIDS 감염인들은 이미 항체를 다 가지고 있기에 설사 감염인이 모르고 헌혈을 했다하더라도 적십자의 혈액검사법으로 얼마든지 방지할 수 있다. '나누리+'가 이 사안에 관한 성명서를 발표하고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대한적십자사에 공개질의서를 보내고 확인한 결과 이미 HIV는 적십자사에 매주 정보를 제공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심지어 보건복지부의 혈액장기 팀 담당자는 전화통화에서 "감염인들이 의도적으로 헌혈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마치 감염인들이 에이즈 수혈사고의 원인인 것처럼 왜곡하는 발언까지 했다

이에 22일 감염인 단체. 정보인권단체등과 함께 질병관리본부 앞에서 전염병 병력자 정보제공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HIV 감염인 단체 KAPF의 대표는 발언에서 에이즈에 대한 편견이 과도한 한국사회에서 적십자라는 민간기구가 감염인의 정보를 알고 부주의하게 다뤄질 경우 얼마나 큰 인권침해와 피해를 당할 수 있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이미 에이즈 양성이란 이유로 직장에서도 해고당하고 진료거부도 당하며 심지어는 가족들한테도 외면당하는 현실에서 헌혈의 집까지 감염인들의 정보를 알게 되어 잘못 유출될 경우 감염인들은 지역사회에서 쫓겨나는 일도 생길 것이라며 깊은 우려를 표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항의의 표시로 붉은 삼각형의 색지에 HIV/AIDS, B형간염, 말라리아 등을 써 붙이면서 적십자사에 정보제공이 나치 시대에 독일군이 유대인, 동성애자 등에게 표시를 붙여서 격리시킨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미로 항의표시를 했고 기자회견 후 붉은 삼각형 색지를 찢어버리면서 향후 이 문제가 철회될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을 결의했다.

이어 질병관리본부 방역관리센터장과의 면담을 단체 대표들이 가졌지만 질병관리본부의 입장은 아직 준비가 안 되었고 관계자들과 논의하겠다는 답변만 들었다. 면담을 맡은 담당자는 감염인의 인권을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무엇보다 감염인의 인권이 중요하며 감염인 지원을 위해 고민한다고 입바른 소리만 했다.

우리는 HIV/AIDS 감염인이란 이유로 이미 국가에 등록되어 시·도를 경유해 보건소의 관리를 받으며 일선 공무원들에 의해 부주의하게 감염 사실이 노출되어 피해를 당하는 사례들도 봐왔고 늘 감시 받는 듯한 관리체계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데 적십자사라는 민간기구에까지 감염인의 정보를 제공하는 건 차라리 감염인들에게 "당신들은 HIV/AIDS에 걸렸으니 표시 나게 사시오"라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전염병 병력자정보제공은 마땅히 철회되어야 한다!
윤한기 님은 에이즈인권모임 나누리+(www.aidsmove.org) 대표입니다.
인권하루소식 제 2942 호 [입력] 2005년11월22일 19: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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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건강검진으로 일터에서 배제되는 감염인들 -윤한기의 인권이야기

[윤한기의 인권이야기] 직장 건강검진으로 일터에서 배제되는 감염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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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기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의 시민실천사업 'HIV/AIDS 인권지침서' 발간작업과 올해 단체협력사업 'HIV/AIDS 감염인 치료 접근권' 실태조사를 위해 '나누리+'는 감염인 간담회를 진행해 왔다. 간담회에서 감염인들이 토로하는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가 직장 건강검진에서 원하지 않는 HIV 검진 때문에 피해를 당하는 일이다.

HIV 검진 때문에 부당해고를 당한 ㄱ씨의 사연을 보자. 지난해 봄 직장 건강검진에서 HIV 양성반응 판정을 받은 ㄱ씨는 감염사실을 안 직장 상사로부터 "일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아직 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되는 건강한 상태였던 ㄱ씨는 이후 대기발령 상태가 됐다. 업무가 특수해서 바로 교체되기는 어려워 약 1개월 동안 인수인계를 하고 전혀 일해보지 않은 부서로 옮겨져 3개월을 근무했다. 이후 파견형식으로 원래 업무로 복귀했다가 출산휴가 갔던 동료가 돌아오자 다시 대기발령 상태가 됐다. ㄱ씨는 결국 회사의 권고와 상사의 그만두라는 최종통보까지 듣고 명예퇴직으로 내몰렸다. 당시 상담을 맡았던 필자는 엄연한 부당해고이니 노동부에 알리자고 ㄱ씨에게 적극 권유했다. 하지만 ㄱ씨는 자신의 감염사실을 또 드러내야 하는 부담 때문에 그냥 억울한 일을 감수하고야 말았다.

에이즈에 대해 한국사회가 가진 과도한 편견과 차별, 이에 따른 감염인들의 좌절은 필자를 답답하게 한다. HIV 감염인들은 HIV 양성이란 이유로 부당해고와 진료거부를 당해도 자신의 병명이 알려지는 게 두려워 법적인 구제나 이의제기 절차를 포기한다. 에이즈는 일상생활에서 전혀 전염이 안 된다는 사실도 제대로 모르는 직장 동료들에 의해 감염인은 '집단 따돌림' 당하고 스스로 직장을 그만두기도 한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HIV검진은 사생활을 침해하는 중대한 인권침해인데도 직장 건강검진을 통해 관례처럼 이루어지고 있다. 게다가 검진결과는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공개되고 있다. 보통 직장 건강검진은 검진을 전문으로 하는 의료기관에 사업주가 의뢰하는데 검진항목이 많고 비용도 많이 드는 A급과 검진 항목이 적은 B급, C급 등으로 나뉜다. A급 검진 항목에는 문제의 HIV 검진이 들어 있고 노동조합에서도 A급 검진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검진의 결과가 사업주에게 일괄통보되는 바람에 HIV 양성반응이 부당한 해고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제7조는 "감염자의 진단·검안 및 간호에 참여한 자"와 "감염자에 관한 기록을 유지·관리하는 자"에게 비밀유지 의무를 부여하고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원하지 않는 HIV 검진에 따른 결과가 타인에게 함부로 통보된다. 에이즈 관련 법조항 가운데 꼭 필요한 것이 직장 건강검진에 HIV 검진을 무조건 포함시키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이다. 어떤 검진보다도 HIV 검진은 당사자가 검진을 원해야 하며 검진을 받을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지 상담도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 양성으로 밝혀지면 심각한 사생활침해와 인권유린을 당할 수 있기에 결과가 본인에게만 통보되는 장치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윤한기 님은 에이즈인권모임 나누리+(www.aidsmove.org) 대표입니다.
인권하루소식 제 2921 호 [입력] 2005년10월25일 0: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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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우리에게 약을 달라!&quot; -윤한기의 인권이야기

[윤한기의 인권이야기] "우리에게 약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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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기 
"오늘날 아프리카에는 수백만 명의 여성들이 에이즈라는 또 다른 로벤섬(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배로 30-40분 정도 걸리며 17∼20세기까지 백인들에게 저항하는 흑인들의 유배지로 병원과 군사기지, 최고의 보안시설을 갖춘 감옥)에서 홀로 희망을 잃고 투쟁하고 있다."

2004년 말 유엔 에이즈계획(UN AIDS)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에서 4000만 명이 HIV(에이즈를 일으키는 인간면역 결핍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으며, 지금 당장 약을 먹어야 하는 에이즈 환자가 600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그 가운데 10%만이 약을 먹고 나머지 90%는 비싼 약값 때문에 약을 먹지 못해 죽어나간다. 넬슨 만델라의 이 말은 버림받은 90% 가운데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아프리카의 비참한 현실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에이즈 치료제를 생산하는 다국적 제약자본들이 특허를 핑계로 약값을 비싸게 책정해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프리카·아시아·남미 등 가난한 나라들은 의약품에 접근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9월 2일 문화방송(MBC) 시사교양 프로그램 는 특허에 의한 살인을 당하고 있는 아프리카의 비참한 현실을 현지 취재를 통해 잘 보여주었다. 국민의 30% 이상이 HIV에 감염된 우간다에서는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에이즈구호기금'으로 세워진 HIV/AIDS 진료소에서 무상으로 약을 나눠주고 있다. 하지만 많은 환자들이 진료소에 갈 차비도 없고 걸어갈 기운도 없어 홀로 움막 같은 집에서 약은커녕 먹지도 못하고 온갖 피부병과 폐렴 등 '기회질환'(면역력 결핍에 따른 병)으로 오로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처참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런 아프리카를 돕겠다고 부시 행정부는 앞으로 5년 동안 150억 달러를 내놓겠다고 발표하면서도 생뚱맞은 단서를 달아 에이즈 환자와 활동가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낙태를 반대하는 단체, 순결을 강조하는 단체를 통해서만 지원하고 지원약품은 다국적 제약사의 '오리지널' 약만 허용한다는 것. 인도에서 생산되는 카피약으로 지원하면 지원액의 1/10만으로도 더 많은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데 말이다. 카피약은 다국적 제약사의 치료제와 똑같은 성분으로 만들어져 우리 돈으로 1년에 70만원 정도밖에 들지 않는다. 단지 특허라는 로열티만 붙지 않았는데도 한 달에 100만원이 넘는 오리지널 약값보다 싼 것이다. 다국적 제약자본과 미국은 이런 카피 약을 다른 나라가 생산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해 생산을 중단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부가 국영제약사를 통해 에이즈 치료제를 생산하고 무상으로 공급하고 있는 브라질은 다국적 제약자본과 미국 등을 상대로 '특허파기'를 주장하며 세계무역기구(WTO) 무역관련지적재산권관련협정(TRIPs)의 예외조항인 '강제실시'를 강행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에이즈 치료제 가운데 '네비라핀'(상표명 바이라문)은 간에 치명적인 독성을 유발해 최근 미국에서 이 약을 먹고 사망한 사례가 보고되었다.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에서는 판매 금지된 이 약이 아프리카에는 계속 팔리고 있고 우간다의 HIV 진료소 의료진들은 금지약품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한국에서도 12가지 정도의 오리지널 약만 보험등재가 되어 있어 약값을 정부가 지원하고 있으나, 세 가지를 한 번에 먹어야 하는 에이즈 치료용법의 특성과 부작용 등을 감안하면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은 '네비라핀'까지 먹어야만 하는 상황이다. 필자 역시 지난해에는 오리지널 약을 수입해 먹었지만 1년에 840만원이나 되는 약값을 감당할 수 없어 지금은 부작용이 많은 다른 약과 문제의 네비라핀을 복용하고 있다.

많은 이들에게 에이즈는 죽음의 병으로 잘못 알려져 있지만 의학의 발달로 완치는 안되더라도 치료는 가능한 만성질병이 되었다. 우리 에이즈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안정성이 확보된 약이다. 우리는 에이즈로 죽는 것이 아니라 특허로 죽어갈 뿐이다. "우리에게 약을 달라!"
윤한기 님은 에이즈인권모임 나누리+(www.aidsmove.org) 대표입니다.
인권하루소식 제 2894 호 [입력] 2005년09월12일 2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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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윤 가브리엘과 변진옥

감염인 인권증진이 에이즈 예방이다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대표 윤 가브리엘, 변진옥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네트워커 http://networker.jinbo.net/zine/" 40호 파워인터뷰

 

글 _ 홍지은

 

 

 

 

 

 

올해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예방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되었다.

한 인간이 태어나서 의젓한 어른으로 자라는 시간이다. 그러나 HIV/AIDS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20여 년 전 무관심과 무지의 수준에서 조금도 자라지 않았다.

11월 6일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이 발의한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 및

감염인 인권증진에 관한 법률안’은 감염인 인권에 대한 우리 사회 최초의 문제제기이다.

법안 개정 과정에 참여한 윤가브리엘 나누리+ 대표와 공동행동의 변진옥 씨는

“감염인의 인권 증진만이 HIV/AIDS를 둘러싼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이다.”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아래 에이즈 예방법)은 언제 만들어졌는가?
윤 가브리엘(아래 엘) :
에이즈 예방법은 1987년도에 제정됐다. 전염병 예방법에 기초해서 만들어졌는데, 지금 보면 사람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법이다. 격리조항까지 있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에이즈는 공포의 병, 죽음의 병이었기 때문에 법안도 그러한 인식을 그대로 반영했다. 이후 5번의 개정을 거쳐서 격리조항처럼 상식을 벗어난 것들은 사라졌다. 하지만, 치료지시(*)와 같은 강제 처분 조항이 여전히 남아있다.



‘HIV/AIDS 감염인 인권증진을 위한 에이즈 예방법 대응 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이 조직된 것은 그간 정부가 내놓은 개정안들이 내용상으로 어떤 문제가 있어서인가.
변진옥(아래 옥) :
5차례의 개정과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6차 개정안까지 개악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최초의 에이즈 예방법이 생겼을 때의 기조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점이다. 그 틀이 변하지 않은 이유는 법 개정 과정에서 감염인 당사자가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해 보건복지부가 입법예고 전에 감염인 단체들의 의견서를 받기도 했으나, 법안에 반영된 것은 없었다. 정부가 주도해서 조항 몇 개만 바꾸는 식으로는 예방을 달성하기는커녕, 감염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조장해 그들의 인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뿐이다. 이런 식으로 그냥 놔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이번 개정 국면에 개입하기로 했다.


인권이 있는 곳에 예방이 있다



‘감염인 인권증진을 위한 에이즈 예방’을 목표로 이번에 전면개정안을 제출했다. 인권증진이 예방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엘 :
현재 우리 사회는 내가 에이즈에 걸렸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그래서 감염인들은 대개 가족에게까지 자신의 감염사실을 숨긴다. 혼자만 알아야 하기 때문에 그 고통이 크다. 아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다. 이런 생활이 계속될 경우 무슨 일들이 일어나겠는가. 뭐랄까, 그 사람은 굉장히 비관적인 상태로 내몰리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누구도 예상을 할 수가 없다. 감염인 관련 사고가 그래서 발생한다. 감염인이 술집에서 일했다, 성관계를 했다는 등의 사건들 말이다.


만약 이 사람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감염사실을 말하고, 주위 사람들이 “그래? 그것 치료 잘 받으면 오래 산다더라.” 이런 식으로 격려해주면 그들의 삶은 180도 달라진다. 당장 나 자신과 감염 사실을 숨기고 사는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나는 친구들에게 알렸고, 그들은 나를 도와주고 격려해주었다. 그래서 내가 이런 활동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감염사실을 말 못한 친구들은 내가 봐도 어떻게 살까 싶을 정도로 힘들어한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그렇게 극단으로 내몰리다 보면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그래서 많은 감염인이 당당하게 자신을 밝힐 수 있게 하는 것, 즉 인권증진이 예방에 도움이 된다.


옥 : 전염병 역학에 따르면, 어떤 병이든 전파를 막으려면 4가지 요소에 대한 부분적 혹은 전체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병원체(pathogen)’다. HIV를 박멸하는 것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HIV를 없앨 수 없다면 예방 백신을 개발해 ‘비감염인(host․숙주)’의 면역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이 있으나, 백신이 없는 상황이다.
남은 것은 ‘벡터(vector)’와 ‘사회적 환경(environment)’이다. 벡터란 병원체를 운반하는 과정을 잘라내는 방법을 일컫는다. 성관계에서 콘돔 사용, 혈액의 안전관리 등이 그 대책이다. 그런데 성행위는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처럼 국가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왜냐면 성관계는 둘만의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협상의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친밀감이지 예방행위가 아니다. 강제로 콘돔을 사용하라고 할 수 없다.
결국, 에이즈를 정말로 예방하는 것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게 하는 사회적 환경이다. 감염인이라는 사실이 치명적인 결점이 되어, 한 사람의 인권을 위협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만 감염인 스스로 예방행위를 하고, 비감염인이 안전할 수 있다. 벌칙조항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해마다 증가하는 국내 에이즈 감염인구가 이를 방증한다. 현재 에이즈 예방법의 억압적인 패러다임으로는 결코 에이즈를 예방할 수 없다.


활동가들만의 논리가 아닐까. 비감염인이 감염인과 함께 지내는 것을 거부할 권리도 있다.
옥 :
감염인의 권리가 비감염인의 생명권을 위협한다고 보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런 반응은 명백하게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HIV는 일상적인 접촉으로 절대 전파되지 않는다. 성관계에서도 콘돔이라는 수단이 있다. 이것은 감염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비감염인의 생명권과도 충돌하지 않는다. 감염인의 인권증진이 어째서 비감염인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말 그대로 몰라서 하는 소리다.


오히려 감염인의 인권을 보호하면 비감염인의 인권은 한층 더 보호받을 수 있다. 장애인이 편하게 탈 수 있는 버스는 비장애인도 편하게 탈 수 있다. 마찬가지로 감염인이 치료를 잘 받을 수 있다면 비감염인은 훨씬 더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이를테면, 감염인이 병원에서 치료거부를 당하는 이유는 병원이 소독을 잘 안 해서이다. 소독이 잘된다면 비감염인은 HIV뿐만 아니라 무수한 미생물로부터 가장 강력하게 보호받을 수 있다. 감염인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사회라면 비감염인이야말로 정말 잘 사는 사회이다.

 

 

 


허울뿐인 익명검사와 노동권 보장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6차 개정안에 대해 평가해 달라.
옥 :
몇 가지 용어 정리가 있었다. ‘감염자’를 ‘감염인’으로 바꾸었다든지. 또 익명검사 조항을 신설했다. 질병관리본부의 HIV/AIDS 관리지침에서 권장사항으로 익명검사를 두었는데 이제 법으로 규정을 한 것이다. 직장에서의 차별 금지도 명시했다. 국제적인 여론과 감염인들의 지속적인 문제제기로, 정부도 감염인 인권이 실효성 없이 과도하게 탄압받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법의 패러다임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은 두려워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패러다임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옥 :
익명검사를 법률로 끌어올린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검사만 익명으로 하면 뭐하나. 보고는 모두 실명으로 한다. 정부가 익명검사를 도입한 이유는 검사를 더 많은 사람에게 확대하기 위해서다. 분명 검사는 예방과 감염인의 건강을 위해서 중요하다. 그러나 감염인 색출이 목적이 아니라, 공중보건을 위한다면 익명검사와 익명보고를 연동해야 한다. 어찌 보면, 검사의 익명․실명 여부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감염인을 실명으로 관리하는 상황이다. 이를 간과한 익명검사의 법제화라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겠는가.


직장에서 차별 금지를 선언하는 것 역시 좋다. 근로기준법에 있는 내용을 에이즈 예방법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해 줬다. 하지만, 이 역시 핵심을 못 집었다. 실제로 직장에서 쫓겨나는 감염인도 있지만, 제 발로 직장을 나오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익명보고를 한다면, ‘이 사람이 바로 감염인이다.’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는가. 예방뿐만 아니라 감염인 지원을 위해서라도 실명 보고는 필요하지 않나.
옥 :
보고과정에서 감염인의 신원을 증명할 필요는 없다. 감염인의 정보가 필요한 이유는 의료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다. 어느 지역에서 감염률이 얼마만큼 증가하고 있는지 확인해서 의료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결정하기 위한 기초 자료로 쓸 뿐이다. 이 과정에서 감염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역학조사서에는 주소, 주민등록번호뿐만 아니라 ‘당신의 성 정체성이 무엇이냐.’는 질문까지 있다.

 

실명 노출의 부작용이 심대한 상황에서 감염인에 대한 정보 수집은 사례조사(*)에만 그쳐야 한다. 게다가 실명보고는 예방에 도움이 전혀 안된다. 익명으로 보고하지 않으면 누가 익명검사만 믿고 검사를 하겠는가. 감염인들이 심리적 안정을 누리게끔 익명보고를 해야 한다.
감염인 지원을 위해 실명이 필요하다지만, 감염인 정보 보고 체계와 지원 체계는 서로 분리되어있다. 보고체계에서 얻어진 정보로 감염인에 대한 약값과 치료비 지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질병관리본부에 집적된 정보로 감염인 지원을 하지 않는다. 감염인이 시군구의 사회복지과에 따로 신고를 해야 국민기초생활지원법으로 치료비 지원을 받는다. 물론 지원과정에서는 실명이 필요하고, 그것까지 반대하지 않는다. 질병관리본부로 실명을 비롯한 감염인의 정보가 불필요하게 집적되는 것을 반대한다.



감염인들은 왜 스스로 직장을 그만두는가. 질병의 유․무로 인한 차별 금지를 법이 보장한다면 감염인이 움츠러들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엘 :
감염 사실이 알려지는 것 자체가 이미 사회적으로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HIV에 대한 편견이 많은 상황에서 감염인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하루에 약을 두세 번 먹는데, 직장에 다니면 보통 화장실에 가서 먹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호기심이 얼마나 많은가. 그 호기심 때문에 감염인들은 고통받는다. 하다못해 병원에서 약 상자를 받아도, 에이즈 치료제라고 쓰여 있으면 상자를 버리고 약병만 가지고 간다. 감염인은 에이즈에 이 정도로 민감하다. 그러니 직장에서 감염사실이 알려지면 자기 발로 나오는 수밖에 없다.

 


옥 : 감염인들은 자신의 HIV 감염사실이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때문에 직장 내에서 HIV 감염 사실이 알려지게 하는 직장검진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HIV 검진을 일률적으로 받게 하거나, 그 내용이 고용주에게 보고되는 일들이 사라져야 한다. 그런 것들이 감염인을 노동권으로부터 소외시킨다. 노동권을 지켜달라는 선언만으로는 감염인의 노동권을 보장할 수 없다.

 


편견과 통제의 정점, 전파매개행위금지


공동행동의 전면개정안은 기존의 법안 그리고 정부가 내놓은 안과 어떻게 다른가.
엘 :
전파매개행위금지 조항 폐지가 가장 큰 차이점이다. 감염인을 악의적인 전파자로 규정하는 현행 에이즈 예방법의 핵심이 바로 전파매개행위금지 조항이다. 예방조치를 하지 않은 성행위를 하면 처벌한다는데, 사실 예방은 감염인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비감염인도 같이 해야 한다. 감염인한테만 예방을 강조하는 것도 일종의 억압이다. 왜 예방을 감염인만 해야 하나. 감염인이 항상 콘돔을 가지고 다닐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러면 비감염인이 예방조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조항은 감염인에게만 예방을 강조한다. 결과적으로 감염인을 단지 ‘퍼뜨리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독소조항이다. 의도적으로 남에게 신체적인 위해를 가했다면 형법으로 처벌할 수도 있다. 굳이 감염인의 삶을 억압하는 조항을 남겨둬야 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실제로 전파매개행위를 하더라도, 당사자만 알지 다른 누가 알겠는가? 보건소 직원이 성행위 하는 것까지 쫓아다니면서 관리할 수도 없다. 그러니 있으나 마나 한 조항이다.


옥 : 또 한 가지 특징은 학교, 직장, 병원에서의 에이즈 교육을 명문화한 점이다. 감염인에게는 특히 의료인과의 상담이 중요하다. 감염인이 질병 때문에 맨 처음 만나는 사람이 의료인이다. 그래서 의료인이 차별적인 태도를 보일 때, 감염인들은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는다. 아는 사람이 저 정도인데, 보통사람들은 어떨까 싶은 거다. 때문에 의료 인력들이 끊임없이 교육을 받아야 하고, 그 내용을 감염인에게 잘 알려줘야 한다.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자신의 건강과 예방을 위해 어떤 것들을 고민해야 할지,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등 감염인에게 필요한 지식이 많다. 이는 비감염인도 받아야 할 교육이다.


엘 : 감염인은 수혈하면 안 된다는 교육도 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감염인 됐다고 누구에게도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소리만 듣는다. 내가 처음으로 만난 보건소장은 나에게 함부로 성관계하지 말라는 이야기만 했다. 어떤 정보를 주고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조심하라는 말 뿐이었다.
옥 : 감염인이 앞으로 모든 에이즈 정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도 마련했다. 기존의 ‘후천성면역결핍증 정책위원회’와 달리, 감염인의 참여를 의무화한 ‘후천성면역결핍증 대책위원회’를 설립을 법에 담았다.


법은 인간에 대한 국가의 태도를 보여준다



기존 법을 폐지하고 새로운 법을 제정할 수도 있는데 전면 개정 방식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옥 :
사실 이 질문은 에이즈 예방법을 현행 전염병 예방법에 통합시키는 게 어떠냐는 취지로 많이 한다. 에이즈가 다른 질환과 특별할 것이 없다는 호의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전염병 예방법이 급성이면서 불특정다수에 전염되는 전염병들, 예를 들어 장티푸스 같은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든 법이라 에이즈처럼 만성적인 질환에 맞지 않는다. 무엇보다 현행 전염병 예방법 역시 문제점이 많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또한, 감염인들이 처한 사회적 상황은 아직도 특별한 보호가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다른 질병과 동일선상에 놓을 수 없다.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꾼다는 차원에서 폐지 의견이 공동행동 내에서 더 많았지만,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했다. 아직은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곤란하지만 위헌소송도 곧 할 예정이다.

 

 

 

법이 사회적으로 만연된 차별과 편견을 일소할 수 있는 도구는 아니다. 실제로 감염인의 삶을 옥죄는 것은 법이 아니라 비감염인들의 시선 아닌가. 법 개정 운동이 효과가 있을까.
엘 :
법이 실생활에 끼치는 영향은 무시 못 한다. 왜냐하면, 감염인은 국가의 관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소에서 3개월에 한 번씩 면담을 해야 한다. 만약 연락이 끊기면, 보건소 담당자가 집으로, 때로는 직장까지 찾아오기도 한다. 이사를 할 때마다 알아서 찾아온다.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감염인은 관리를 받아야 한다. 일종의 ‘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옥 : 법이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한꺼번에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법은 국가가 그 대상에게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헌법을 왜 만드는가? 우리 생활을 구체적으로 규율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 헌법은 인간에 대해 갖춰야 할 기본적인 태도를 국가에 요구할 뿐이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
에이즈 예방법 역시 마찬가지다. 1985년에 우리나라에 첫 번째 에이즈 환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외국에서 에이즈라는 병이 생겼는데, 무서운 병이라더라.’라는 추상적인 두려움만이 존재했다. 그러나 1987년에 에이즈 예방법이 만들어진 이후에는 그 두려움이 구체화되었다. 잘못 만들어진 법이 특정대상을 적시하면서 사회는 그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노골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에이즈 예방법은 감염인에 대한 국가의 태도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틀이다. 국가의 잘못된 태도에 대해 압력을 가하고, 이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법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그 틀이 바뀌지 않는다면 차별과 편견을 없애자는 말이 선언에 불과해진다. 법 개정 운동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동행동이 제출한 법안의 전망은 어떠한가.
옥 :
미리 어떤 타협점을 둔다는 점에서 말하기가 곤란하다. 정부가 선의를 가지고 만들었다는 개정안이 문제가 많고 여전히 그 기반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우리 법안을 통해서 보여줄 것이다. 당연히 법안의 통과가 목표다.


다른 나라의 에이즈 관련법을 소개해 달라.
옥 :
사실 외국에서 에이즈만을 따로 규정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만과 필리핀 정도다. 일본은 몇 년 전에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을 폐지하고 이를 감염증예방법에 편입하면서, 에이즈에 대해서는 실명보고를 하지 않도록 명시하고 있다. 필리핀 법은 법 자체가 국제가이드라고 볼 정도로 매우 선진적이다. 그 외에 미국 같은 나라는 여러 법률에 관련사항을 분산시켜 놓았을 뿐 아니라 주마다 정책이 조금 다르다. 우리와 법체계가 다른 서구는 보건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는 국가적 전략 차원에서 에이즈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국제적 가이드를 많이 참고해 감염인들의 리더십을 중요시한다.


그러한 법과 정책이 실제로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는가.
옥 :
꼭 법률의 효과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서구에서 에이즈에 대한 편견이 상당히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태국은 실명보고체계를 익명보고로 전환한 후, 감염률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그 의도가 인권을 보장하려고 한 것이든 아니든 그러한 장치들이 실제로 예방에도 도움이 되었다. 감염인들의 커뮤니티도 많이 활성화되어서, 다른 환자들의 권리에 대해서도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한다.


끊임없이 계속해서 알린다



약값과 치료비 지원 때문에 어떤 감염인들은 한국 정부의 에이즈 정책을 높게 평가한다. 그래서 이러한 대(對)정부 활동이 부담스러울 것도 같은데.
엘 :
맞는 말이긴 하다. 현재 에이즈 예방법에 관리 규정만 있는 것도 아니다. 치료비 지원, 쉼터 운영과 관련된 내용도 있다. 그래서 감염인 중에는 이런 활동 하면 우리가 괜히 손해 보는 것 아니냐는 사람도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얼마나 좋은 것이냐고 말한다. 또 에이즈 예방법이 실질적으로 자신의 삶을 옥죄어 온다고 인식하지 못한다. 어떤 이들은 보건소의 관리도 당연하게 여긴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행동을 할 때 감염인들이 많이 나오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을 설득해서 자신의 권리에 대해 깨우치게 하는 일이 좀 힘이 든다.


7월 4일 공동행동 발족 이후 반년 동안 법 개정 운동을 하면서 느낀 소회를 밝힌다면.
엘 :
입원을 하는 바람에, 공동행동 활동에 많이 참여하지 못했다. 그래서 평가를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공동행동 사람들은 정말 열심히 했다.
우리의 목표는 법 개정도 중요하지만, 에이즈 예방법에 대해 제대로 알려서 차후에라도 법 폐지 운동을 할 때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는 것이었다. 1987년에 이 법이 제정됐지만 그간 어느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2002년에 나누리+가 처음으로 정부 관리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토론회를 열면서 에이즈 예방법의 문제가 논의되었다. 또 에이즈라는 주제가 선정적일 수도 있어 쉽게 눈길을 끌지만,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금방 알 수 있는 주제가 아니라서 대중적으로 알리는 일이 힘이 들었다. 그런 상황을 감안하면, 공동행동은 에이즈 예방법의 문제점을 정말 많이 알렸다.
옥 : 그 이전에 나누리+에서 활동할 때는 그냥 추상적으로 ‘감염인들과 함께해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감염인들과 같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니, 그들이 실제로 겪는 일들, 고민을 많이 알게 되었다. 관계가 확장되면서 내 활동의 목표가 더 구체화 되었다. 우리가 믿어왔던 바와 마찬가지로, 또 대다수의 질병이 그러하듯이 에이즈는 개인의 잘못도 아니고 개인의 고통에만 머물러도 안 된다. 사회 전체의 책임과 고통이 되어야 한다. 에이즈를 통해 나는 세상을 더욱 넓게 바라볼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많은 것을 얻었듯이 공동행동에 참여하는 감염인들 모두 더 많은 것을 느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힘이 될 것이다.

 

 

 

* 치료지시 : 에이즈 예방법 제14조의 ‘치료지시’와 제15조의 ‘강제처분’ 조항을 일컫는다. 정부 개정안에서는 ‘치료지시’를 ‘치료 및 보호의 권고와 조언’으로 ‘강제처분’을 ‘치료 및 보호 조치’로 바꾸었으나 내용이 다르진 않다. 게다가 현행 강제처분의 내용인 ‘치료’를 개정안에서 ‘보호’에까지 확대함으로써 1999년에 삭제된 격리보호 조항을 되살리고 있다. 감염인의 치료 및 보호는 감염인이 원하여, 되는 것이지 국가가 이를 지시할 수 없다. 오히려 국가의 치료 및 보호조치에 대한 지시는 치료 및 보호를 원하는 감염인의 진료를 거부하는 의료인과 의료기관에 대해 해야 할 것이다.

* 전파매개행위금지 : 현행법과 정부 개정안 제19조의 ‘전파매개행위의 금지’ 조항은 ‘감염의 예방조치 없이 행하는 성행위’와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하여 타인에게 전파할 수 있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전염의 가능성을 근거로 감염인의 사생활을 통제할 수 있는 여지를 두어 법리적 문제점들이 여러 차례 지적되었다.

* 사례조사 : 현행법과 정부 개정안 제10조의 ‘역학조사’ 조항은 ‘감염자 및 감염이 의심되는 충분한 사유가 있는 자와 감염되기 쉬운 환경에 있는 자’에 대하여 역학조사를 실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반면, 공동행동의 전면개정안 제15조는 ‘역학조사’ 대신 ‘사례조사’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는 기존의 ‘역학조사’라는 용어가 내포하고 있는 전염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에이즈에 대해서도 연장될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전염병 역학에서도 산발적 발생에 대해서는 ‘환자 사례조사’, 유행 상황에 대해서는 ‘유행 역학조사’라는 용어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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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과 장미

 


당신은 우리에게 언제나 든든한 힘이 되고 있습니다.

몇일 전 12월 1일 에이즈 감염인 인권주간 소속 활동가들은 세계 에이즈의 날을 HIV/AIDS 감염인 인권의 날로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그 장소는 감염인을 시한폭탄으로 여기며 차별과 편견으로 가득찬 에이즈 정책을 펼치는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차별과 편견의 벽을 넘어’라는 제목으로 기념행사를 치루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감염인 인권증진이 에이즈 예방이며, 감염인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한미FTA를 중단할 것을 외쳤고, 감염인의 발언권을 보장하라며 행사장으로 들어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와 협회 관계자는 우리들의 진입을 막았습니다.  기껏 들어갔지만 행사는 이미 끝났고 우리의 요구를 알리기 위해 보건복지부 차관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하려했으나 대한에이즈예방협회 관계자는 항의서한을 뺏으며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전달할 기회마저 박탈했습니다.


그 날 저녁, 기자회견 참가 활동가들이 가브리엘형이 있는 병실로 모였습니다.  저는 우리가 바라는 에이즈 감염인 인권의 날을 축하하기 위해 수줍은 감수성을 들이밀며 빨간 색 장미 꽃 한 송이를 들고 병실로 찾아갔습니다. 형이 기자회견에 함께 참가하지 못해 안타까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완강하며 절박한 행동을 만들지 못해 안타까워 하고 있을 활동가들이 떠올랐으며, 형이 질병과의 혹독한 싸움에서 이기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리고 제 자신의 마음을 강렬한 붉은 색으로 채우기 위해 형이 좋아하는 장미 한 송이를 가져갔습니다.  꽃을 받아들며 좋아하는 형이였으며, CMV로 시력을 많이 잃긴 했어도 붉디 붉은 꽃은 보이는 모양입니다. 


병실엔 꽃을 들고 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전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았건만 원래 모르는 사람처럼 당당히 ‘뒷 문’ 엘리베이터를 통해 올라갔습니다.  형은 꽃을 보고는, “혹시 앞에서 ‘저지’ 안하디?”했습니다.  순간 사람들은 왁자지껄 웃었습니다.  “어째 말을 골라도 ‘저지’래..  누가 활동가 아닐까봐.”...



붉게 물든 장미 보다 더 선명하게

전 형이 감염인인 사실을 안지 몇 년 되지 않았습니다.  몇 년 전 심하게 아파 병원에 입원한 동인련 회원이 있다고 했을때도 그냥 입원했나 했습니다.  형에게 직접 감염인이란 이야기를 들었을 때 놀라기 앞서 ‘절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야할 굳은 약속’을 얻기라도 한 것처럼 얼어버렸습니다. 


형은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2005년 동성애자인권캠프에서 형은 자신 삶의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병원진료를 거부당했던 일, 집안과의 관계... 캠프 참가자들은 형의 이야기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동성애자임과 동시에 감염인으로 ‘두 번의 커밍아웃’.  이 힘든 ‘커밍아웃’은 그 간 형이 겪었을 고난을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가브리엘 형은 불게 물든 장미보다 더 선명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열정적인 사람

장미는 가브리엘 형이 자신의 예명을 로즈로 할 만큼 좋아하는 꽃입니다.  열정적인 자신의 끼를 ‘로즈’란 이름으로 표현하며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발족식에서 맘껏 펼쳐보였습니다.  태국에이즈컨퍼런스에서 세계 에이즈 활동가들의 밝고 역동적인 활동에 크게 고무받은 형은 깊고 구수한 끼를 선보인다며 한껏 곱디 고운 한복을 입고, 형이 좋아하는 ‘한영애’님의 노래를 립싱크하며 무대를 휘어잡았습니다. 


작년 APEC 회의가 열리는 부산에도 함께 갔었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동인련 참가단과 함께 호모포비아 부시 반대! 전쟁에 쓰일 돈으로 에이즈치료제를!이란 피켓을 들고 무지개 깃발을 휘날리며 부산 시내를 휘젓고 다녔습니다.  멀리 회담장소를 보며 ‘헤엄이라도 쳐서 갈까?’하던 형의 떨리는 목소리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봄이 좀 더 빨리 오길 바라는 심정으로

온갖 미사여구를 끌어다 쓰는 글발 아닌 글발이 오히려 형의 활동을 미화하지 않나 쓴 글을 보고 또 보고 합니다.  하지만, 형과 함께 했던 순간을 기억해보면 언제나 그것은 저에게 활동의 좋은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병실에서 다리가 더 굳어지면 안된다며 앙상하게 뼈만 남은 두 다리를 떨며 운동하던 형, 밥힘으로 벌떡 일어나 함께 활동해야 한다며 새끼 꼬박꼬박 챙겨먹어야 한다는 형, 답답한 병실에서 굳건하게 에이즈 활동가들에게 힘을 불러 일으켜 주는 형...  봄이 빨리 찾아와 형과 함께 장미가 가득한 곳에서 걷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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