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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사회적 교섭 폐기 촉구 교수들 원색적으로 비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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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곤 기자 peyo@jinbo.net | |||||||||||||||||
비정규개악안 긴장 극도로 높았던 24일, 민주노총 논평 제출 민교협과 교수노조에 소속된 진보적 교수 58명이 지난 22일 사회적 교섭 폐기를 촉구하며 내놓은 ‘민주노총 대의원들에게 드리는 호소문’에 대해 민주노총이 격렬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비정규법안 처리를 둘러싸고 긴장이 극한으로 고조되고 있던 24일, 민주노총은 호소문을 제출한 교수들을 ‘진보를 자처한다는 일부 교수들’ 이라 지칭하며 논평을 제출했다. 특히 이 논평에서 민주노총은 “성명서의 주장과 대대에서 단상점거를 시도한 사람들의 주장이 이렇게 일치하는 것은 단순한 우연만은 아니라고 본다”며 음모론을 제기함으로써 파문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비정규공대위 교수들에게 “투쟁조직에 힘을 보탠 적이 있냐”는 질문
지난 22일 발표된 호소문에서 교수들은 “총파업투쟁은 조직하기 어렵고, '사회적 교섭'을 재개하지 않고서는 비정규직 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를 저지할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워 사회적 교섭 참가를 위해 온갖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이다”라고 민주노총을 비판한 바 있다. 민주노총의 논평에 따르자면 사회적 교섭 폐기를 주장하면 비정규직개악안 저지 전선에 심각한 교란을 주고 있게 되는 셈이다. 또한 교수들이 “우리는 지금 조건에서 위력적인 총파업투쟁 조직은 어렵다는 민주노총 지도부의 판단에 동의한다”고 전제하며 “그러나 총파업투쟁 조직의 어려움이 투쟁 역량 강화를 위한 최선의 노력 경주 책임까지 면하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사회적 교섭 강행의지를 비판한 부분에 대해 민주노총은 “성명을 발표한 교수들이 민주노총의 집행을 같이 책임질 것인가”, “아니 투쟁조직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탠 적이 있던가”라는 원색적 표현을 사용하며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표현했다. 그러나 이 호소문을 발표한 교수들 중 다수는 지난 해 비정규개악안이 나온 직후부터 ‘비정규노동법 개악저지와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공대위’를 구성해 민주노총과 함께 대사회적 운동에 나선 바 있다. 민주노총, 사회적 교섭 반대하는 교수들이 현장의 불신을 조장해왔다 이어 민주노초은 이번 성명을 발표한 교수들이 “지도부의 조직화노력에 현장의 불신을 조장해온 것이 진실”이라며 “(교수들이 제출한)성명서의 주장과 대대에서 단상점거를 시도한 사람들의 주장이 이렇게 일치하는 것은 단순한 우연만은 아니라고 본다”며 음모론적 시각을 내비치기도 했다. 민주노총은 “앞으로 의견이 있다면 가능한 교수노조를 통해 조직적 입장을 개진해주길 당부한다”며 “교수도 노동자라면 노동자답게 집단적, 조직적 질서를 준수해주길 바란다”며 조직적 질서를 강조했다. 이에 대해 58인의 교수들이 제출한 호소문에 동참하지는 못했지만 대체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는 한 비정규직대학교수는 “그나마 사회적 지위가 있는 교수들의 성명에 대해서도 민주노총 집행부는 조직적 질서를 내세우며 입을 막으려고 하는 판국”이라며 “민주노총은 ‘조직적 질서’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노동자 대중의 실질적 민주주의’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새겨보아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사회적 교섭반대가 민주노총 분열이면 노동부 장관이 민주노총 통합하나?” 또한 민주노총은 “미력이나마 민주노동운동의 발전에 힘을 보태왔다”며 자부하며 “사회적 교섭안을 유보 없이 폐기시켜 줄 것을 간곡하게 호소”한 교수들에 대해 “학자의 관념으로 재단해서 대중의 자주성을 침해하지말기를 바란다”며 “섣부른 관념적 운동이 현실에서 얼마나 많은 노동자에게 폐해를 초래했는가 우리는 많은 경험을 갖고 있다”고 응답했다. 민주노총은 “큰 투쟁에 대해 함께하면서 힘을 보탤 것을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바”라며 성명을 마무리 지었다. 민주노총은 24일의 논평을 통해 사회적 교섭 폐기를 호소하는 교수들을 원색적 표현을 사용하며 비판하고 나섰다. 물론 현 민주노총 집행부가 사회적 교섭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반박할 수 있지만 사회적 교섭 폐기 주장이 ‘분별없는 처신’ ‘현장의 불신 조장’ ‘대중의 자주성을 침해’하는 행위라는데는 동의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민주노총의 논평을 꼬집은 비정규직대학교수는 “사회적 교섭 반대가 ‘민주노총을 분열하는 행위’라면 ‘조건없는 노사정위 즉각 복귀’를 주장하는 휴직 교수인 김대환 노동부 장관은 민주노총을 통합하고 있느냐”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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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02월25일 11:31:03 |
“지식인들과 ‘민족문화예술인’들이 <조선일보>에 기고하고 인터뷰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 것은 그들의 오래된 일상적 요구에 따른 것이다. 반성적 성찰이 쉽지 않은 까닭은 그 요구가 일상 속에서 지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신문을 구독하던 30% 가까운 이름 없는 옥천 군민들이 그 신문을 끊은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옥천 군민들에게 <조선일보> 구독은 일상적 요구의 표현이 아니라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몰상식이었을 뿐이다. 여기서 상식마저 배반할 정도로 일상의 덫에 깊숙이 빠져버린 지식인들과 ‘민족문화예술인’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알 만한 사람들의 몰상식은 <조선일보> 기고와 인터뷰라는 바람이 오래된 일상적 요구였던 것에 반해 ‘친일 잔재 청산’이라는 당연한 주장은 오래 전에 이미 박제화되어 그들의 일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한국 사회에 자극적인 발언이 필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일부 지식인들이 강준만 교수의 거친 실명 비판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던 점이 이를 말해 준다. 아직도 안타까운 점은 그와 같은 자극에 대하여 “오케바리, 당신의 자극적인 실명 비판에도 문제가 있지만 <조선일보>와 상종했던 우리에게도 잘못이 있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아직 부족하다는 점이다.”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홍세화.
“《드니의 귀》라 불리는 시칠리아 근처의 작은 섬에 동굴이 하나 있고, 이 동굴에 오뒤세우스가 갇혀 있소. 그는 퀴클롭스와 대면하고 있소. 그를 죽이고 싶어하는 퀴클롭스가 제안했소. 《너는 끓는 물에 삶아질 수도 있고, 불에 구워질 수도 있다. 선택은 너에게 맡기겠다. 지금 무슨 말이든 한 마디를 해라. 만일 그 말이 참이면 너를 끓는 물에 삶아 죽일 것이고, 그 말이 거짓이면 너를 불에 태워 죽일 것이다》라고 말이오. 그러자 꾀 많은 오뒤세우스는 절묘한 대답을 생각해 내서, 끓는 물에 삶아지지도 않았고 불에 구워지지도 않았소. 그가 무슨 말을 했을까요? 당신들에게 3분 동안의 시간을 주겠소. 대답의 기회는 단 한 번뿐이오. 《기권이냐 갑절이냐》라는 퀴즈 프로그램 본 적 있소? 자아, 친구들, 이제 당신들 차례요.”
……
그녀는 언젠가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라는 책에서 읽었던 <금붕어의 기억력>에 관한 글을 떠올린다. <금붕어가 어항 속에서 사는 것을 견딜 수 있는 것은 기억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금붕어는 장식용의 수중 식물을 발견하면 그것에 경탄을 하고 이내 잊어버린다. 그런 다음 유리벽에 닿을 때까지 헤엄쳐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는 똑같은 수중 식물을 보고 다시 경탄한다. 이런 과정은 무한히 돌아가는 회전목마처럼 되풀이된다.>
결국 금붕어의 기억력이 약한 것은 미치지 않기 위한 생존 전략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지도르의 건망증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도 어쩌면 세상사의 충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전략일지도 모른다.
……
그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번개처럼 그의 뇌를 스친다.
“오뒤세우스는 <당신은 나를 불에 구울 겁니다>라고 말했어요.”
이지도르가 설명을 덧붙인다.
“그렇게 말하면 퀴클롭스는 몹시 난처한 상황에 빠집니다. <당신은 나를 불에 구울 겁니다>라는 오뒤세우스의 말이 참이라면, 퀴클롭스는 그를 끓는 물에 삶아 죽여야 합니다. 따라서 그는 불에 구워질 수가 없지요. 그렇다면 오뒤세우스는 거짓을 말한 셈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나를 불에 구울 겁니다>라는 오뒤세우스의 말이 거짓이라면, 그는 불에 구워져야 합니다. 그러면 오뒤세우스의 말은 다시 참이 됩니다. 결국 퀴클롭스는 오뒤세우스를 삶아 죽일 수도 없고 구워 죽일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판결을 내리지 못하지요. 그래서 오뒤세우스는 죽음을 모면합니다.” ‘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요약하면 ⑴ 권력 앞에서 자기를 주체적으로 포기하는 적극적 수동성 ⑵ 이 누추한 존재에게 최후의 자긍심을 부여해주는 엘리트주의의 환상 ⑶ 이와는 다른 삶의 방식을 부정하고 의심하는 위선론. 적어도 내가 보기에 이것이 조선일보가 몸소 실천하고, 나아가 우리 사회 성원 모두에게 적극 권하는 괴상한 존재미학이다. 그것이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지면 그것은 이제 심오한 “인생공부”로 돌변하게 된다. 자기가 그렇게 사는 것은 좋은데, 이걸 남한테 권하고 다니는 그 심리의 정체는 대체 뭘까?” ‘아웃사이더’, 「존재미학, 비루한 자들의 미적 에토스」, 진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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