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쉽지 않다

  • 등록일
    2006/11/09 15:30
  • 수정일
    2006/11/09 15:30

학교를 안가고

집에서 세탁기를 돌린 후

다 돌아갈 때까지 기다려서 빨래를 널었다.

 

지금은 수업중. 사실 이번주 학교 수업 한과목 빼고 다 쨌다.

11월 컴플렉스인가. 학생회 선거철이 되면, 정말 학교에 가기 싫어지는 건...

몇년째 그러고 있지만... (군대갔다온 2년은 제끼고...)

그런데 이번에는, 꼭 학생회 선거탓도 아니고, 11월의 탓도 아닐 것이다.

 

며칠동안 집에서, 혹은 학교 전산실에서

이런 저런 사람들과 MSN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기분으로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낮이고 밤이고 수다를 떨었다.

 

내가 무엇에 답답해하고 있는지,

내가 알고 있는 어휘의 수준으로 설명이 잘 안되는 그 상태를 깨뜨리기 위해

이곳 저곳을 헤메고 다녔다고 생각할란다.

그리고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시간은 지나갈 것이고, 내일은 올 것이다.

나는 빠른 속도로 새로운 사람들을 알아가고 있고,

그것을 무한히 긍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자. 왜 무한히 긍정하지?

'소통'이라는 게, 하면 좋고, 하지 않으면 좋지 않은,

그렇게 쉽게 생각할 것은 아니잖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는 오늘 학교에 안가고

집에서 세탁기를 돌린 후 빨래를 널었다.

물론 늦게 일어난 탓도 있지만, 빨래를 해야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럼 꼭 내가 해야했는가?

내가 수업도 못 (혹은 안) 들어가더라도, 빨래는 꼭 내가 해야 하는 것이었는가?

그것도 세명이 같이 사는 집에서...

 

내가 해야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누구도 하지 않았고, 그걸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게 나였기 때문이다.

미리 계획을 짜도 되는 것이었다.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으나,

나 역시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냥 아무말 없이 내가 했다.

 

그게 잘못인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나는 잘못하지 않았다.

다른 두 사람에게도 잘못이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서는 내가 꼬라박았다는 문제를 논하고 싶은 것이 아니니까...

 

중요한 것은 내가 그런 계획조차 같이 머리를 맞대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바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지 않았다.

빨래를 하고난 지금이라고 해도 그건 달라지지 않는다.

 

그냥 도망가버리면 그만이다. 나는 그걸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도망가버리는 것이

'소통'이라는 긍정적인 개념에 완전히 반대의 지점에 있는 것은 아니다.

저들은 '소통'의 주체고, 나는 '소통'의 대상으로 대우받는 것이 싫을 뿐이다.

 

그런 것이라면, 나는 몇번이고 도망갈 것이다.

나는 여태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이 점에서는 나는 아주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다. 누구라도 예외는 없다.

 

 

최근 며칠동안의 어떤 일들로 인하여,

그건 상처도 아니고, 누가 잘못하거나 그런 것도 아닌데,

나는 매우 심란했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몇가지의 결론을 내렸다.

 

1. 질문없이는 소통이라는 건 없다.

- 나는 이걸 긍정하는 게 참 어려운 일이었다. 일단 나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면 두렵고,

내가 무슨 말을 할 지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자기검열이라는 거 알고 있다.

나라는 사람은 이중적이라서, 피하고, 두렵고, 도망가고 그래도 또 말하고 싶은 게 있다.

자꾸 피하다보면, 어떤 게 내 생각인지조차 혼란스러워진다.

그러다보면, 나의 생각을 만들어가는 것조차 피한다. 잘하는 짓이다.

일단 피하고 보는 그 습관. 내가 고쳐야지 별 수 있겠나.

 

2. 내가 피하고 싶은 질문은 좀 더 과격하게 싫다고 말해야 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하고 싶은 질문이 있다. 그런 질문들을 피하고 싶어지는 이유는

그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타이밍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물론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지만, 역시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스타크래프트 버젼)

같은 질문에도 어떤 때에는 대답하고 싶어지고, 어떤 때에는 대답하기 싫어진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알아서 타이밍을 맞춰달라고 할 수는 없다. (내가 왕자도 아니고.)

역시 내가 싫을 때, 좀더 확실하게 싫다는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3. 그래도 같은 질문이 계속 날아온다면, 판을 바꿔야 한다.

- 판을 어떻게 바꾸느냐?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하다. 바꿔야 한다. 어떻게?

나에게 선택할 사항은 내가 도망가느냐, 좀더 공격적으로 대하느냐...

나는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질 지도 모른다. 내가 더 이상 나를 지킬 수 없게 된다면...

그때 나는 바람이 될 것이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루가 쉽지 않고, 한 시간도, 일분 일초도...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는 단 한 순간도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일은 또 올 것이다. 내일은 또 내가 모르는 누군가에게

나를 노출시키게 될 가능성이 높은 날이다.

나에겐 아직도 피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어쨌든 나는 이제 학교에 갈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