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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색'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 등록일
    2007/02/27 11:10
  • 수정일
    2007/02/27 11:10
개토님의 [보편타당] 에 관련된 글. 리우스님의 [있긴 있는 거 같은디...] 에 관련된 글. 어렸을 때부터, 지방에서 한 가지의 색만을 살색으로 알고 살아왔던 나였는데, 대학에 들어온 이후의 어느 날, 지하철 열차 안에 있는 공익광고 비슷한 것에 여러가지 색깔을 가져다 놓고, "모두가 살색입니다"라고 써 놓은 것을 봤다. 그 때의 충격이란...ㅋ 어렸을 때부터, 내가 가지고 있던 살색의 개념은 어떻게 발생했던 것일까? 그냥, "주입식 교육의 문제였다"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 한가지의 색만을 살색으로 인정하고 있었다고 본다. 만약에 보편성이 존재한다면, 그게 살색의 개념이 가진 보편성이 아니었을까? 그 색깔만이 살색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당시의 살색의 보편성(만약에 보편타당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에 위배되는 주장이었다. 여기는 엄연히 대한민국이고, 대한민국에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색깔과 비슷한 살색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겠지. 이걸 어떻게 봐야할까?


보편성은 '살색'과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살색'은 한 가지의 색만을 의미했고, 그 색이 아닌 사람들의 피부색은 결코 존중받을 수 없었다. 이것을 바꾸어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을 거라고 믿는다. 나는 여기서 두가지 문제의식을 느꼈는데, 그 중에 하나는, "만약에 한가지로만 된 살색이 과거에 보편적이었다고 한다면, 보편성이 운동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된다."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만약에 한가지로만 된 살색이 과거에 보편적이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 언어가 의미하던 것이 명확했음에도, 그게 보편적이지 않았다면, 도대체 무엇을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었다. 내가 주장하는 것이 보편성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 말고,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보편성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를 논하는 것이 중요하지, 보편성이 어디에는 있고, 어디에는 없다를 선언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공존, 소통, 연대 등등...을 위해서는, 자기가 보편적이라고 생각한 것들이 깨어질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누가봐도 맞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라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단 한 사람과의 소통을 생각한다면, "이미 보편적"이라고 선언해서는 곤란하다. 보편성을 계속적으로 생각하는, 어떻게든 보편성의 존재를 믿는 이유는 보편성이 다른 운동, 주장, 생각 등등...의 가장 명확한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는 믿지 않는다. 보편성의 실체가 보이기 때문이다. 보편성도 보편성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다른 것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보편성이 합의되지 않는다면, 소통과 연대가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이런 구조다.) 보편성은 결국 다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는, 배제하기 위한 권력을 의미할 뿐이었다. 보편성은 소통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보편성은 단절을 위한 수단이다. 살인을 해서 안되는 것이 보편성을 가져야 하는 것은 살인을 하는 사람들과 단절을 하기 위한 것이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되는 것이 보편성을 가져야 하는 것은 타인을 침해하는 사람들과 단절을 하기 위한 것이다. 채식이 보편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채식에 대한 선을 긋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공존, 소통, 연대에 대하여 마음을 열고 있다면, 보편성은 없어야 한다. 반대로, 누구에게 적절한 수준의 단절이 필요하다면, 그만큼 보편성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이 주장도 보편타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절에 대한 가치판단은 논외로 한다.) 보편성이 합의되지 않는다면, 연대가 불가능하다는 것에 대하여... 나는 과연 언제부터 보편성을 합의하고 연대를 해왔는지 전혀 모르겠다. '연대'라는 말이 그렇게 거창하고 무게있는 것이었는지도, 연대할 때마다 보편성을 생각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연대의 주체들끼리만 보편성을 합의한다고 그게 보편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기들끼리 생각에 합의를 끌어낼 수 있으면, (보편성과는 무관하게) 연대가 가능하고, 그렇지 않다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 좋을 것 같다. 보편성이 합의되지 않았을 때 연대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바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과는 연대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보편성은 '단절', 혹은 '단절의 대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내 앞에 열려 있는 수많은 연대의 가능성들을 보편성에 합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차단당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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