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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은 말장난 같은 거.ㅋ

  • 등록일
    2007/02/28 12:48
  • 수정일
    2007/02/28 12:48
"보편타당한 것은 있다."라는 말은 보편타당한가? " '보편타당한 것은 있다'라는 말이 보편타당하므로, 보편타당한 것은 있다." 라고 하면, 이건 명제의 결론을 전제로 이용했기 때문에, 증명이 아니다. 즉, 보편타당한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보편타당한 것은 있다"라는 말이 증명될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는 증명이 가능한 지는 잘 모르겠다.ㅋ 다른 한편으로는, "보편타당한 것은 없다"라는 말은 보편타당할 수는 없다. 이 말이 보편타당하다고 가정하면, 이것은 "보편타당한 것은 없다"라는 전제에 또 모순이다. 그런데, 보편타당한 것은 있지 않으면 없는 거다. "보편타당한 것은 있다"와 "보편타당한 것은 없다"는 여사건이다. 즉, 보편타당한 것은 있거나, 없다. 또 이 말은 보편타당한가? 여기서 이 말이 보편타당하다면, '보편타당한 것은 있다'가 정답일 것이고, 이 말이 보편타당하지 않다면, 제 3의 길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ㅋㅋ 이건 어디까지나 말장난이고, 관념일 뿐이다.ㅋㅋ 그러나, 보편타당한 것이 있긴 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어떤 두개의 사건이 여사건임을 증명해 놓고, 둘중에 하나는 반드시 성립한다라고 한다면, 그건 보편타당할 것 같다. 물론, 그래도 영원히 보편타당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 누군가가 여사건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제 3의 길을 밝혀낼 지도 모르니까... 문제는 여사건임을 증명한다는 것 자체에 있다. 여사건을 증명하려면,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실제로 하나도 없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관념속에서 포함되지 않아야 한다고 외쳐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보편타당성"을 논할라면,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하나도 없음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성립함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여전히 증명하지 않고, "보편타당하다"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반례의 위치에 있는 생각들을 배제하기 위한 것 뿐이다.


남성이 여성을 좋아하고, 여성이 남성을 좋아한다는 이성애주의적인 이야기들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당연한 거 아니냐?"라고 하지만, 거창하게 이야기하자면, 그게 보편타당한 것이고,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기 때문에, "보편타당성"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고기와 채소를 같이 먹는 잡식성 동물이라고 하는 이야기들을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배워왔고, 또 그렇게 먹어왔기 때문에 당연한 거라고 하지만, 다들 그게 보편타당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기 때문에, 이 경우에도 "보편타당성"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들 쉽게 말합니다. 운동은 보편타당성이 근거가 되어야 한다고... 그리고 보편타당성이 성립하지 않는 것은 운동이 아니지만, 존중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존중받아야 하는 내용은 제 주장과는 상관없이 자기가 보편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들로 바뀝니다. (채식을 취향으로 배려받을 권리를 주장해야한다고 한 점을 지적하는 겁니다.) 저는 채식을 하면서, 인간이 고기를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음을 증명하려고 합니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 것이 보편타당하다는 생각을 뒤집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채식은 보편타당하지 않으므로, 운동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저에게는 육식의 보편성을 해체하는 것이 목표인데, 바로 그 육식의 보편성으로 채식은 의미없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논쟁이 끝났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쯤에서 대강 정리해보죠. 하지만, 저는 곱게 정리하지는 못합니다. 저는 아직 제가 생각한 지점들에 대해서 최소한의 공감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 주장의 보편성이 운동의 근거가 되는 것은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운동에서 배제하게 되는 논리다. 2. 보편성이 소통과 연대의 근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통과 연대를 통해 보편성(혹은 보편성에 대한 합의)을 추구하는 것이다. 3. 보편성은 그것이 자신한테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 앞에서는 해체되어야 한다. 보편성이 있다, 없다의 결론이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세 가지의 지점이 더 중요할 뿐입니다. 다른 부분들은 공감하지 않더라도, 그건 어쩔 수 없으나, 최소한 이 세 가지만큼은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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