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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독립 - 그 후 1년

  • 등록일
    2007/08/16 00:00
  • 수정일
    2007/08/16 00:00
[전역증]에 관련된 글. 당신의 고양이님의 [독립기념일]에도 관련되어 있을 지도 몰라. 왜냐구? 그냥... 당고가 독립할 때, 나는 전역했으니까.ㅋㅋ 전역한 지 1년이 되었다. 이게 어느 정도 독립과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언제든지 서로를 쏴 죽일 수 있도록, 모든 경계병에게 실탄을 지급하는 곳에서 그곳을 관리하는 병사의 위치에서 전쟁을 위해, 탄약을 관리하던 곳에서 일단은 벗어났다는 사실. 며칠전에 전화기에 저장되어 있는 번호들을 좀 정리했다. 부대에서 만났던 간부들 전화번호를 다 지웠다. 간부들은 아무리 친하게 지내도 그저 병사들보다 위에 서 있는 간부일 뿐이다. 지난번에 고향 가던 길에 나보다 10개월 선임이었던 녀석한테 전화가 왔는데, 다음날 만나자고 해놓고는, 다음날 서로 연락안해서 안 만났다. 그래도 부대에서 나랑 가장 친했던 녀석이다. 그리고 내가 제대하고 난 뒤에도 종종 연락하던 녀석이다. 이번에는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사실 나는 그 녀석을 부대에서 만난 게 아니었으면, 좀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녀석 빼고는 연락하는 녀석이 두명 정도 있는데, 그냥 전화나, 메신저로만 이야기한다. 한 녀석은 공장에서 일하다가 이제 대학에 가보겠다고 수능을 준비하는 모양이고, 또 한 녀석은 입대전에 다니던 대학에 그냥 다니고 있는 모양이다. 동기들 중에 나보다 2주 먼저 제대하던 녀석들이 있었는데, 그 녀석들이 제대하면서 대형사고를 쳐놓고 나가는 바람에 내 마지막 1주일이 완전히 꼬여버렸다. 그 뒤로 그 녀석들 안본다. 2년을 같이 고생해놓고는 그 마지막 순간에 틀어졌으니...


올해 5월에 동원훈련을 다녀왔다. 부대에 있을 때, 동원훈련때만 되면, 예비군들을 위한 온갖 서식을 만들어야 했는데, 그리고 예비군들에게 온갖 서약서를 받아내야 했는데, 막상 내가 예비군이 되니까, 그런 거 없다. 그래, 내가 있던 부대에서 쓸데없는 짓을 한 게지. 학교에서 받은 훈련이라서 하루만 한 건데도, 너무 짜증났다. 국기에 대한 경례나, 대대장에 대한 경례 같은거 예비군들이 너무나 잘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부대에서 봤던 예비군들이 아니었다. 사람도 아니고, 생명도 아닌 깃발 따위에게 인사를 하는 것도 짜증나고, 생판 처음보는 대대장이라는 인간한테, '충성'을 맹세하는 것도 짜증난다. 나는 그래서 하지 않았으나, 다들 아무런 생각이 없는 듯 결코 열성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또 대부분이 경례를 하긴 하는 분위기. 그날 점심메뉴는 갈비탕(그냥 고깃국이지만, 명칭은 갈비탕)이 나왔고, 나는 갈비탕은 받지 않고, 김치와 무말랭이로 밥을 먹었다. 그때 같이 밥을 먹던 후배가, 나중에 자기 홈페이지에다가 내가 그렇게 먹고 있는 게 딱해보였다고 썼다.ㅋ 근데, 나는 기대치가 낮았기 때문에, 의외로 만족하면서 먹었다. (다른 반찬들도 안 먹는 녀석들일 줄로만 알았으니까...) 입으로 '두두두두' 소리내면서, M-16 소총을 들고 전쟁놀이를 하다가 사격훈련을 했다. 사격장에 가면, 내게 공포와 불안함이 엄습한다. 그것이 총이라서 문제가 아니다. 그 총소리. 너무 시끄럽고, 가까이서 듣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고문이다. 사격을 시작하는 순간 깜짝깜짝 놀란다. 그나마 정작 내가 사격할 때는, 내가 쏜 총소리가 잘 안들린다. 왜 그렇지? 귀를 막은 것도 아닌데 말이지... 어쨌든 앞으로 몇년동안 예비군훈련을 다녀야 할 것이고, 혹시 전쟁이라도 난다면, 동원령이 내려지겠지. 물론 나는 무조건 도망갈거야. 군대를 벗어났고, 새로운 생활을 만들 수 있는 자유가 나에게 다시 주어졌지만, 아직은 내겐 군대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이 이루어진 것은 아닌 듯 하다. 군대를 망각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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