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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읽는 남자 두명 사이에

  • 등록일
    2007/08/17 02:24
  • 수정일
    2007/08/17 02:24
열띤 슴님의 [지하철 괴담]에 관련된 글. 신문을 읽는 남자 두명이 있었다. 여기는 지하철 ○호선 어떤 열차다. 우리 칸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80% 정도의 사람이 앉을 수 있다. (20% 정도는 서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남들도 앉아 있다. 한 남자는 7칸짜리 좌석의 맨 오른쪽 자리에서 자신의 왼쪽다리를 오른쪽 다리 위에 얹어놓고 앉아있다. 보통 다리를 꼬고 앉는다고 하는 자세는 위에 올린 다리의 종아리가 그래도 세워져 있는 건데, 이 남자의 종아리는 가로로 뉘여져 있다. 왼쪽다리의 복숭아뼈쯤 되는 곳이 오른쪽 다리 위에 있으니까. 그 상태에서 신문을 양쪽면을 다 펼친 채로 보고 있다. 그 남자의 바로 옆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고, 한칸 떨어져서 또 다른 남자가 앉아 있었다. 이 남자는 그냥 다리를 많이 벌린 자세였다. 그리고 상체를 의자 등받이에 완전히 붙인채로 그러나 신문을 들고 있는 팔은 옆구리에 전혀 붙이지 않은 채로 다행히도 신문을 반은 접어놓고 보고 있다. 내가 열차에 탔다 나는 그 상황을 한눈에 알아보고, 매우 고의적으로 그남들의 사이에 끼어들어가 앉아버렸다. 또 내 덩치도 결코 작은 게 아니잖아. 내 오른쪽 남자는 오른쪽 다리위에 있던 왼쪽 다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다리를 매우 벌려놓은 상태다. 그리고는 신문을 보기 위해, 약간 고개를 숙였다. 내 왼쪽 남자는 내가 앉은 뒤에도 기존의 자세를 그대로 유지했다. 싸움이 시작되었다. 나는 일단 내가 그 자리에 앉을 때는 그남들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앉았다. 무사히 앉게 되자마자 오른쪽 남자를 겨냥해서, 내 오른발로 오른쪽 남자의 왼발을 매우 기습적으로 밀어버렸다. 이런 경우 보통 무릎이 닿는 것때문에 문제가 되지만, 무릎만 밀어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무릎이 내 영역을 침범할 수 있도록 지탱하고 있는 그남의 발을 밀어버려야 한다. 무게중심을 이동시키는 방법이랄까... 왼쪽 남자는 무릎이 내쪽으로 침범하고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다만 신문을 보고 있는 자세때문에 그남의 팔꿈치가 나의 상체를 밀어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팔짱을 끼고, 나의 상체를 의자 등받이에 붙여버렸다. 팔꿈치끼리의 대결이다. 나는 내 자세를 계속 유지했다. 나의 팔꿈치가 그남의 팔꿈치보다 더 높은 곳에 있으니, 이 싸움은 신체적 조건(앉은키)때문에 이미 내가 유리한 것이었다. 결국, 그남이 신문보기를 포기했다. 아니, 그 자세가 아니면 신문 못보나? 나 같으면 얼마든지 보겠구만. 나도 항상 이러는 건 아니지만, 이번처럼, 누군가는 서있는데, 쩍벌남들이 다른 사람도 못 앉도록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정말 화가 난다. 그럴때는 나는 종종 이렇게 은밀하면서도 강력하게 대응한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남자들은 종종 다리를 쫙 벌리고 앉는다. 나는 그남들이 왜 그러는지 알 것 같다.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기가 편한 자세를 취하고 싶을 것이고, 다리를 오므리는 자세는 매우 불편하다. 그래도 버스에서는 그게 그렇게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지하철에서는 정말 심하다. 근데 오늘 어떤 생각이 스치고 갔다. 지하철에서 다리 벌리고 앉아 있는 남자들과 내무반에서 다리 벌리고 앉아 있던 상병,병장들. 그 둘 사이에 뭔가 상관관계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 늦은 시각에 지하철을 타면, 좌석에 아예 누워서 자버리는 남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로인해, 다른 사람들이 서있든 말든 신경 안쓰더라. 이게 바로 말년병장의 마인드와 같은 게 아닐까. 이 두 집단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남들을 다리 벌리고 앉아 있을 수 있게 하는 생각은 '다른 사람이 뭐라고 못한다는 자신감'이다. 열띤 슴님의 글을 보면, 그남이 "아, 학생이 뭘 몰라서 그런가 본데 남자들은 원래 이렇게 다리를 벌리고 가야 건강이 안상하거든." 라고 했다는 부분이 있다. 그남의 주장은 물론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만약에 이게 사실이라고 가정한다고 해도, 문제가 있다. 왜 군대에서 일,이병들은 다리를 오므리고 앉아 있어야 하는 거지? 왜 다른 사람들은 당신으로 인해 다리를 오므리고 있어야 하는 거지? 일,이병들도 건강을 신경써야 하는데, 왜 일,이병들의 다리는 벌어지면 자세가 불량한 거고, 다른 승객들은 당신으로 인해 다리를 오므리고 있어야 하는데, 당신의 다리는 벌어져 있어야 건강에 좋은 것이 되느냐는 이야기다. 결국 일,이병들은 자신들의 처지때문에, 다리를 벌리고 앉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남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리를 벌리고 앉는 것이지. 특히 자신의 옆에 여성이 앉는다면 더욱 그렇겠지. 만만하다고 생각할테니까... 지하철에서 군대를 보는 것 같아서, 매우 짜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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