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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띤 슴님의
[지하철 괴담]에 관련된 글.
신문을 읽는 남자 두명이 있었다.
여기는 지하철 ○호선 어떤 열차다.
우리 칸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80% 정도의 사람이 앉을 수 있다.
(20% 정도는 서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남들도 앉아 있다.
한 남자는 7칸짜리 좌석의 맨 오른쪽 자리에서
자신의 왼쪽다리를 오른쪽 다리 위에 얹어놓고 앉아있다.
보통 다리를 꼬고 앉는다고 하는 자세는
위에 올린 다리의 종아리가 그래도 세워져 있는 건데,
이 남자의 종아리는 가로로 뉘여져 있다.
왼쪽다리의 복숭아뼈쯤 되는 곳이 오른쪽 다리 위에 있으니까.
그 상태에서 신문을 양쪽면을 다 펼친 채로 보고 있다.
그 남자의 바로 옆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고,
한칸 떨어져서 또 다른 남자가 앉아 있었다.
이 남자는 그냥 다리를 많이 벌린 자세였다.
그리고 상체를 의자 등받이에 완전히 붙인채로
그러나 신문을 들고 있는 팔은 옆구리에 전혀 붙이지 않은 채로
다행히도 신문을 반은 접어놓고 보고 있다.
내가 열차에 탔다
나는 그 상황을 한눈에 알아보고,
매우 고의적으로 그남들의 사이에 끼어들어가 앉아버렸다.
또 내 덩치도 결코 작은 게 아니잖아.
내 오른쪽 남자는 오른쪽 다리위에 있던 왼쪽 다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다리를 매우 벌려놓은 상태다.
그리고는 신문을 보기 위해, 약간 고개를 숙였다.
내 왼쪽 남자는 내가 앉은 뒤에도 기존의 자세를 그대로 유지했다.
싸움이 시작되었다.
나는 일단 내가 그 자리에 앉을 때는 그남들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앉았다.
무사히 앉게 되자마자 오른쪽 남자를 겨냥해서,
내 오른발로 오른쪽 남자의 왼발을 매우 기습적으로 밀어버렸다.
이런 경우 보통 무릎이 닿는 것때문에 문제가 되지만,
무릎만 밀어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무릎이 내 영역을 침범할 수 있도록 지탱하고 있는 그남의 발을 밀어버려야 한다.
무게중심을 이동시키는 방법이랄까...
왼쪽 남자는 무릎이 내쪽으로 침범하고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다만 신문을 보고 있는 자세때문에 그남의 팔꿈치가 나의 상체를 밀어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팔짱을 끼고, 나의 상체를 의자 등받이에 붙여버렸다.
팔꿈치끼리의 대결이다. 나는 내 자세를 계속 유지했다.
나의 팔꿈치가 그남의 팔꿈치보다 더 높은 곳에 있으니,
이 싸움은 신체적 조건(앉은키)때문에 이미 내가 유리한 것이었다.
결국, 그남이 신문보기를 포기했다.
아니, 그 자세가 아니면 신문 못보나? 나 같으면 얼마든지 보겠구만.
나도 항상 이러는 건 아니지만, 이번처럼,
누군가는 서있는데, 쩍벌남들이 다른 사람도 못 앉도록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정말 화가 난다. 그럴때는 나는 종종 이렇게 은밀하면서도 강력하게 대응한다.
곰곰히 생각해봤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남자들은 종종 다리를 쫙 벌리고 앉는다.
나는 그남들이 왜 그러는지 알 것 같다.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기가 편한 자세를 취하고 싶을 것이고,
다리를 오므리는 자세는 매우 불편하다.
그래도 버스에서는 그게 그렇게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지하철에서는 정말 심하다.
근데 오늘 어떤 생각이 스치고 갔다.
지하철에서 다리 벌리고 앉아 있는 남자들과
내무반에서 다리 벌리고 앉아 있던 상병,병장들.
그 둘 사이에 뭔가 상관관계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
늦은 시각에 지하철을 타면,
좌석에 아예 누워서 자버리는 남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로인해, 다른 사람들이 서있든 말든 신경 안쓰더라.
이게 바로 말년병장의 마인드와 같은 게 아닐까.
이 두 집단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남들을 다리 벌리고 앉아 있을 수 있게 하는 생각은
'다른 사람이 뭐라고 못한다는 자신감'이다.
열띤 슴님의 글을 보면, 그남이
"아, 학생이 뭘 몰라서 그런가 본데
남자들은 원래 이렇게 다리를 벌리고 가야 건강이 안상하거든."
라고 했다는 부분이 있다.
그남의 주장은 물론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만약에 이게 사실이라고 가정한다고 해도, 문제가 있다.
왜 군대에서 일,이병들은 다리를 오므리고 앉아 있어야 하는 거지?
왜 다른 사람들은 당신으로 인해 다리를 오므리고 있어야 하는 거지?
일,이병들도 건강을 신경써야 하는데,
왜 일,이병들의 다리는 벌어지면 자세가 불량한 거고,
다른 승객들은 당신으로 인해 다리를 오므리고 있어야 하는데,
당신의 다리는 벌어져 있어야 건강에 좋은 것이 되느냐는 이야기다.
결국 일,이병들은 자신들의 처지때문에, 다리를 벌리고 앉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남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리를 벌리고 앉는 것이지.
특히 자신의 옆에 여성이 앉는다면 더욱 그렇겠지. 만만하다고 생각할테니까...
지하철에서 군대를 보는 것 같아서, 매우 짜증났다.
댓글 목록
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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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_- 읽다가 짜증났다. 병신들부가 정보
오징어땅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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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지하철에서 옆에 앉은 아저씨들이 다리 벌리고 앉아있으면 아주 조심스럽게 조금씩 마치 저절로 그런것처럼 다리로 밀어줘요. 그러다보면 결국 내가 자리 더 많이 차지하고 있다는ㅋ부가 정보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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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은 탱고도 잘추지 않을까.-_-부가 정보
알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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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어요 스캔! 딴 얘긴데 어제 아기낳고 처음 버스를 탔는데 노약자석이 비어있어서 얼른 노약자석에 갔다가...더이상 내 배속에 아기가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엄청 황당해했다는....부가 정보
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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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군대에서 일,이병들이 다리를 벌리고 앉으면 혼난다니 그것 참 신기하군요. 쩍벌남에 대처하는 저의 비법은 오징어땅콩님과 비슷하긴 한데, 다리로 밀면서 닿는게 너무 싫다는 단점이 있죠. 그래서 저는 닿았다 싶으면 다리를 떨어줍니다 ㅡㅡ; 버릇도 아니면서 일부러 다리떠는 건 다소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너도 싫지?' 하는 생각으로 열심히... ^^;;; 그럼 대부분 슬그머니 다리를 모으더군요. 아마 '뭐 이런 게 다있어' 하는 생각으로 그러는 걸 거예요. 치사해 정말.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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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 // 아이구. 여행가는 날 아침부터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글을 써서 미안하구랴.오징어땅콩 // 맞아요. 저도 때로는 저절로 그런것처럼 밀어주기도 해요. 물론 때로는 고의적으로 밀어주고.ㅋㅋ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다른 거 같아요~
홍 // 탱고는 춰 본 적 없는데, 소질이 있는지는 배워봐야 알 수 있을 듯.ㅋㅋ
알엠 // 히히. 잘했다니까 좋군요~ 저는 버스의 노약자석은 비어 있으면 무조건 앉아요.ㅋ 나중에 양보를 하더라도 일단은 앉고 보는 거죠. 대신 노약자석에 앉으면 절대 졸지 않으려고 해요. 양보할 상황을 못보게 될까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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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 뭐 부대마다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차렷도 다리는 오므린 자세죠. 뭐 자기보다 높은 사람 앞에서 다리를 벌리고 앉아있으면 안되는 건데, 일,이병들은 그러므로 당연히 안되고, 상병, 병장들은 대충 되는 분위기죠. 다리를 떨어주는 방법이 있었군요.ㅋㅋ 저는 가끔 무의식적으로 다리를 떠는 경우도 있던데, 그걸 적절히 써먹어봐야겠네요.ㅋ부가 정보
넝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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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_-; 난 다리 닿는게 너무 싫어서 내가 쪼그라드는 편이예요-_-;대신 표정이 왁 하고 일그러져 있죠-_-;; 쩝; 왜 그런 용기는 없나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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넝쿨 // 맞아요. 다리 닿는 거 싫을 수 있어요. (사실 나는 별 느낌 없거든요.) 자기 몸이 닿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싫어할 수 있다는 것을 왜 머리로라도 알 지 못할까요.ㅋ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