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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가 아닌 이야기를 담고 싶다

작년에 발생한 성폭력 사건은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했다.

관련된 사람들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은 사람 하나 없었다.

이제서야 나는 사무실에 출근했을 때 사무처 사람들 사이에 있던 나에 대한 알지못할 긴장감과 적대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그들이 누구의 편이어서라기보다는 성폭력 사건의 대가로 들어오게 된 나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긴장감과 적대감이었다.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에 대해 듣고는 있었지만 진정으로 듣지 않았다. 그것은 단하나, 이렇든 저렇든 당신들의 고통은 피해자의 고통과 동급일 수 없으며, 당신들은 책임자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또하나의 사실, 진정으로 듣는 순간 내가 너무 다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점점 모든것들이 나를 지치게 했다.

이미 종료된 사건인 줄 알았던 것들이 재생되기 시작했고,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수많은 말들이 나왔고, 모든 이야기는 다시 나를 통해 정리되어야만 하는 상황이었지만, 그 누구도 나에게 진정 정리를 바라지는 않았다.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너는 JSA의 이영애 역할을 맡은 것 같다고... 너는 정리를 하러 왔다지만, 누구도 너에게 정리나 종료를 진정으로 바라지 않았다고.. 그저 너는 거기 있어주기만 하면 되는거였다고...

 

그래서 사람들이 나에게 말했다. 적당히 하라고... 다치지 않을만큼.. 그래야만 니가 살 수 있다고.. 니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그러면...

왜 나에게 이 일을 맡긴걸까..

왜 나는 여기 있는 걸까...

 

책임을 지어야하는 사람들이 이제부터 책임지겠다고 그만두지 말라고 한다.

나도 알았다고 믿어보겠다고 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다시 전화기가 울린다.

온갖 민원들이 다시 시작되고, 나는 또다시 듣고 있지만 또 듣지 않고 있다. 그런데 누군가 말한다. 니가 겪었던 일들, 다 토해내라고... 또 누군가는 말한다. 이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정리될거라고. 그러니 참으라고.

 

이 많은 민원과 이야기들 속에 문득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난, 정말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가 자리잡은 이 공간에서 지금까지 겪었던 그 모든 이야기들... 그것들을 다 토해내고 싶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지극히 감정적인 나의 이야기들을 말이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풀리지 않은 나의 억울함을 말이다.

 

그렇게 하고 나면, 나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내가 운동의 저 끝에서 다시 살고자 나를 붙잡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이 곳에 들어왔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 보통은 대단한 운동적 결의와 경력, 인맥 등을 배경으로 이 곳에 들어오지만 나는 아무것도 없이 그냥 운동과 이별하고 싶지 않아 이 곳에 들어왔다.

 

그래서, 아무 정파없이 아무 인맥없이, 아무 경력없이, 무식하게 욕먹어가며 이 자리를 지켰고 배운것은 단한가지, 진정성이다. 그리고 그 진정성이 나를 더 힘들게 하고 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통하지 않은 나의 진정성... 자신의 입장과 다르다면 그것은 쉽게 무시되고, 삭제된다.  단 몇프로의 실수라도 용납되지 않았던 지난날들... 그것들은 나를 미치게 만들었고, 나를 잃어버리게 했다.

 

살고 싶어 들어온 이 곳에서 나는 점점 없어지고, 성폭력사건의 끝은 저 멀리만치 가 있었다.

그만두고 싶은 순간에 아버지가 그 보수꼴통같은 우리 아버지가 내가 자랑스럽다하셨고, 현장의 조합원들이 많이 배웠다했고, 사업이 어느정도 순조롭게 풀리기 시작했다.

괴롭히는 인간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만두고 싶었다. 나를 새벽까지 괴롭히는 이 사건의 머나먼 종결때문에... 온갖 억울함들이 뭉쳐 떠도는 이 상황속에서 사건의 올바른 해결과 피해자치유는 문구로만 남아있다.

 

묻고 싶다. 올바른 사건의 해결 케이스가 있는지...

언제까지 여성사업 담당자들이 이 질곡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어야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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