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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의 세상

빨간나라와 파란나라의 괴물들의 세상이 있습니다.

처음의 거의 모든 아이들은 파란 나라에서 태어납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선택을 하게 됩니다. 파란나라에서 살 것인가? 빨간 나라에서 살 것인가? 괴물로 변태할 것인가? 사람으로 살 것인가? 사실 그 선택이라는게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에만 달려있는 건 아닙니다. 여러가지 상황과 조건들도 큰 변수이지요.

 

아리도 그 아이 중 하나였습니다. 아리는 파란나라가 너무나 싫어서 빨간나라에서 살고 싶어했습니다. 그리고 빨간 나라의 아주아주 멋진 괴물이 되어 다른 괴물들과 함께 파란나라의 괴물들을 무찌르고 싶어했습니다. 아리는, 사람으로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괴물은 딱딱하게 굳은 심장과 거북이등껍질처럼 갈라져있는 갑옷같은 피부, 누구든 꿰뚫어볼 것 같은 날카로운 눈을 지녔지만 사람은 그저 괴물의 먹잇감일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빨간 나라에 갔을 때 아리는 갑옷같은 피부와 바위같이 크고  단단한 머리를 가진 괴물들의 모습에 반해 빨리 괴물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났습니다. 더군다나 괴물들은 아리가 괴물이 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려는 듯했고, 사람보다도 더 따뜻한 가슴을 지닌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아리는 결국에 알았습니다. 괴물의 피부가 갑옷같은 건 다른 괴물들과의 싸움으로부터 얻은 상처가 굳고 굳어서 결국 타자와의 스킨십이 불가능하다는 것, 괴물의 발톱이 날카로운 건 파란나라의 괴물을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고 동족과 빨간 나라에 들어온 사람들을 잡아먹기 위함이라는 것, 괴물의 심장이 딱딱하게 굳은 건 그 어떤 것에도 무엇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

 

아리는 너무나 놀라 괴물들을 피해 풀숲으로 들어가 숨을 죽이고 다시 괴물들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파란나라로 돌아가야 하나? 아니다. 파란나라로 돌아가는 건 너무 위험해. 파란나라의 괴물들은 들어가자마자 목에 줄을 걸고 죽일지도 몰라. 방법은 하나야. 빨리 괴물이 되는 것.'

아리는 다시 나와 빨간 나라 괴물들 중 가장 지독한 괴물들이 산다는 성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성은 생각보다 으리으리했고, 정말로 성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아리가 지금까지 본 것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거대하고 무서운 괴물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악취를 풍기며 날카로운 발톱은 물론 언제라도 물어뜯을 것 같은 이빨들.. 침을 뚝뚝 흘리며 돌아다니는 괴물들은 아리를 언제든 한 입에 집어 삼킬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이미 성안으로 들어가기 전의 악명을 익히 들었던 아리는 경계를 힘껏 하고 언제든 방어할 수 있도록 자세를 취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성안의 괴물들 중 가장 거대하고 우두머리 격이라 할 수 있는 덩치큰 괴물들이 우르르 몰려와 아리를 몰아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아리를 물어뜯기라도 할 기세였고 실제 위협까지 했습니다. 아직 아무런 대비를 하지 못했던 아리는 눈물을 흘리며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도망가는 아리를 갑자기 누군가 붙잡았습니다. 그건 악명높은 수컷 괴물이었습니다. 수컷 괴물들, 특히 괴물이 된지 오랜 세월이 지난 괴물들 중에는 간혹 아직 미성숙한 아리와 같은 것들을 잔혹하게 죽여버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 아리는 숨이 멎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수컷 괴물은 무언가 달랐습니다. 가면을 벗으며 사실 자신은 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며, 괴물들의 세상에서는 어쩔 수 없다며, 우는 아리를 달래주었습니다. 나이든 아저씨인 수컷 괴물은 아리에게 이것저것을 알려주며 사람이어도 괜찮다고 꼭 괴물일 필요는 없다고 격려까지 해주었습니다. 아리가 고쳐야 할 점들, 성안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떤 것을 해야 할지 등을 아주 상세히 알려주었습니다. 아리는 갑자기 든든해졌습니다. 괴물이 아닌 사람을 만나 너무나 행복하기까지 했습니다. 

 

꼭 괴물이 아니어도, 나이든 아저씨가 계시니 나는 좀 괜찮을지도 몰라. 물어뜯기지 않을지도 몰라라고 안심하며 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순간이었습니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아리의 한쪽 팔과 다리가 잘려나갔고, 심장 한 쪽이 베어져나갔습니다. 사람인 줄 알았던 마음씨 좋은 나이든 아저씨는 아리가 들었던 성안의 악명높은 수컷 괴물이었던 겁니다. 심장은 수컷괴물이 한쪽 팔은 수컷 괴물의 파트너인 암컷 괴물이.. 한쪽 다리는 수컷과 암컷이 사이좋게 나누어 먹고 있었습니다.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아리는 마지막까지 수컷괴물이 마음씨좋은 아저씨일지도 모른다는, 아니 혹시 착한 괴물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팔다리만이라도 돌려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이렇게 피를 흘리며 성에 방치되었다가는 다른 괴물들에게 잡아먹히거나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란 생각에 너무나 절박하게 수컷괴물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바보 같은 아리는 혹시라도 도와주지는 않을까 애처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괴물들은 그저 무심하게 지나갈뿐이었습니다. 아리의 팔과 다리, 그리고 심장 한 쪽을 뜯어먹은 수컷괴물은 침을 뚝뚝 흘리며 입맛을 다시더니 아리가 언제 죽을지를 기다렸습니다.  죽기직전의 미성숙한 생물체는 마지막으로 발악을 하는데, 그 때의 맛이 너무나 좋다는 걸 수컷괴물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컷괴물은 또다른 암컷 괴물을 데리고 와서 주위를 뱅뱅 돌며 아리를 괴롭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잘려나갔던 팔과 다리가, 잘려나간 심장한쪽도 다시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리는 이 사실을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자라기도 전에 다시 잘려나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다시자라나는 팔과 다리, 심장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비늘로 덮여 있는 팔과 다리, 더이상 뛰지 않는 새로 돋아난 심장 한쪽... 괴물로 서서히 변해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아리는 혹시라도 다른 괴물들이 알게 될까봐 두려웠습니다. 자라나는 괴물들을 아무이유없이 물어다 죽여버리는 경우는 너무나 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괴물들은 자신과 같은 괴물들이 또다시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져 자신들의 먹잇감인 사람을 기다릴뿐이지요. 그건 빨간 나라의 괴물도, 파란나라의 괴물도 모두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미성숙한 생물체들은 악착같이 도망다니며 때로는 괴물들과 싸우며 사람이 되거나 괴물이 되는 겁니다. 아리는 그토록 되고 싶었던 괴물의 모습이 이제는 너무나 끔찍해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침을 질질 흘리며 아리의 주변을 돌아다니는 수컷 괴물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마당에 또다른 팔다리마져 뜯겨버린다면 정말 괴물이 되거나 아니면 죽임을 당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아리는 궁금합니다. 어떻게 해야 이 난관을 헤쳐나올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도망갈 수 있을지. 정말 괴물이 되는 방법밖에 없는건지. 혹시 이러다 죽는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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