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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이라 말함에도 자격이 존재하는건가?

지하조직님의 [해방이라는게 기껏 이런거 였어?] 에 관련된 글.

 

억울하고, 분노스럽고 분개할 수준의 글들이 나에게 쏟아져왔다.

그것은 내가 노동자힘 여성 활동가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노힘' 회원이기 때문이다.

 

해방연대 김광수 씨는 노동자힘을 비판하는 글 '아가씨와 건달들'에서

"우리나라 바람둥이들의 특징은 절대 쿨하지 않다는 것이다. 침실에서 현장을 들켰어도, "저 여자 누구야, 난 술먹고 필름 끊겼는데, 그 다음에 기억이 없어"라고 왕오리발을 내미는 것이 이 나라 바람둥이들의 미덕이다. 서양애들 처럼 새로운 사랑이 생겼다고 아내 눈을 보면서 이혼하자고 하는 잔인한 이야기는 안한다. 그저 몰래 바람피다가, 심지어 딴 살림 차려 놓고도 마누라한테 걸리면 좀 두둘겨 맞고 싹싹 빌다가 폭풍이 지나가면 딴 짓 할 기회를 엿보는 것이 이 나라 바람둥이들의 특징이다. 그게 가능한 것은 아내들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혼자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 그런 남편을 기꺼이 용인하기 때문이다. 바람둥이들은 그 약점을 파고들어서 가정도 지키고, 바람도 피는 양다리 작전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 "

...

 

"...우리 노힘아가씨는 미워도 다시한번을 되뇌이며, 민투위 건달을 계속 용서하고, 훈육하기를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노힘도 민투위도 권위와 믿음은 계속 추락해왔다. 그것을 본인들은 정치적 재조직화라 이르고 있다.
노힘아가씨들이 전국에서 벌이고 있는 정치적 재조직화에 얼마나 많은 건달들이 꼬이고 있는지는 확인할 도리는 없지만, 아무튼 참 수고 많으시다. "

라고 쓴 부분이 있었다.  나는 그가 또는 해방연대가, 아니 누가 되었든지간에 노동자힘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 별반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누구의 생각이든 그 자체로 존중받을 자격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글은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가 노힘을 또다시 욕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글에서 그가 보여준 여성의 모습 때문이었다.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다. 이 땅의 여성들이 남성의 바람을 용인하는 것이 '혼자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라는 그의 근거도 웃기지만, 그것이 설사 사실일지라도 그것을 그런 식으로 희화화 했기 때문이다.  아가씨라는 표현도 문제제기하면 끝이 없지만, 백번 참고 또 참는다 할지라도 적나라하게 아가씨를 성적대상화한 부분을 보고서도 참을 수 없었다.

 

그런데, 더 참을 수 없는 건 내가 문제제기 한 이후의 글들이었다. 그것들을 누가, 얼마나 다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시시껄렁한 문제를 니가 감히 들이대는거냐부터 시작해서 너의 이 문제제기의 의도는 무엇이냐, 너의 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냐,  너같이 오물이 덕지덕지 붙은 구토유발자가 무슨 입이 있다고 지껄이냐까지... 거의 손가락질을 하며 입을 틀어막으려는 온갖 공작들이 시작되었다.

 

더군다나 사과라고 쓴 김광수씨의 글은 자신이 2005년도에 쓴  '여성노동자의 꿈과 의지가 세상을 혁명으로 이끈다'라는 제목의 글을  자신의 여성관이라며 자랑이라도 하듯이 올려놨다.  그 글을 보며 그를 지지한 사람들은 나에게 좀 보고 배우라는 식이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은  별 것도 아닌 일에 성적 수치심을 느끼느니, 다른 생각을 하겠다고 자신도 "여성"임을 자랑했다.

 

내가 공식적인 문제제기를 했을 때는 다른 누군가에게 훈수를 듣기 위함도 아니었고,  나를 보지도 못한 이들에게 온갖 폭언에 가까운 말들을 참아내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내가 문제제기 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앞으로 "비유"라는 명목 하에 온갖 쓰레기와 같은 여성 비하적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쏟아낼테고, 그것을 여성들은 또 참아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너무나 아팠다.

 

내가 아팠던 건, 내가 평소에 생각해오던 활동가에 대한 의심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활동가와 일반남성마초와의 경계과 과연 있을까 늘 나는 의심해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말하는 사회주의 사회에 과연 여성이 존재할까라는 의심을 해왔다.  그리고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활동가들과 일반 남성 마초와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말이다.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해방세상에 저해가 되는 세력으로 노힘을 규정했다. 좋다.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들이 원하는 해방세상에 저해가 되는 세력을 '비판'하기 위해 여성을 아무렇지 않게 깔아뭉게버렸고, 아프다 말하는 여성활동가의 입에 주먹을 들이대며 폭언을  퍼부었다.  그리고 내가 저항하자 또다시 '닥쳐!! 너 따위가 무슨 자격이 있어?'라고 말한다.  그 따위 시시껄렁한 문제 갖고 아프다 말하지 말라 한다.

 

당신의 표현이 나빴다고, 옳지 못했다고 이야기하는데, 무슨 설명이, 무슨 자격이 그렇게 필요한 건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언제까지 또 어디까지 이런 막말들을 나한테 퍼부을 건지도 모르겠다.  분명 그 말들이 너무나 아프게 내 안에 들어오고, 또 그것이 악으로 남는다. 그렇지만, 나의 이런 감정들을 말하면, 그런 감성적인 문제는 너 혼자 입닥치고 생각하라 말한다.

 

나의 분노가, 치를 떠는 나의 이 분개가 그들에게는 들리지 않는가보다. 

 그들 중 하나가 나에게 말했다. 이럴 시간 있으면 투쟁이나 하라고.. 여성 비정규직, 여성 장애인(보통은 장애여성이라 하지만;; 그의 표현은 이러했다.), 여성 노숙자(이 또한 마찬가지다.) 투쟁에 함께하라고..  나는 그 누구보다, 그 어느때보다 여성문제에 대해 당신들과 싸우고 있다. 또 투쟁하고 있다.

 

나는 당신들의 "말"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들도 지금 나의 "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누군가에게는 정치적 의도이고, 시시껄렁한 문제, 누군가에게는 문제도 되지 않는  그 문제가 언젠가는 당신들에게도 부메랑처럼 돌아올 날이 있을 것이다.  

 

너무나 간단하고, 평범하고, 사소해 보이는 이 문제가 결코 사소하지 않고,  평범하지 않고, 간단하지 않다는 그토록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 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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