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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가해에 대한 고민..

반성폭력 운동을 이야기할 때마다 늘 나오는 이야기지만, 현실로 다가왔을 때는 늘 막히는 문제가 바로 2차가해문제다.

나도 사건을 겪을 때마다  나는 늘 태도가 왔다갔다 했다.

처음으로 2차 가해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 건 학교를 다닐 때 맡았던 성폭력 사건이었다.

그 때 나는 피해자 대리인이었기 때문에 단호하게 입을 다물라 이야기했다. 사건 자체도 논쟁적이지 않았을 뿐더러, 회자되어봤자 좋을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데, 논쟁적인 사건은 조금 달랐다.  의견이 달랐을 경우,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해서 사건을 '처리'하는 것은 나로서도 힘든 일이었다. 설사 사건이 논쟁적이지 않았다 할지라도 누구나 의견은 있었다. 그 때마다 그 이야기들이 피해자에게로 들어가는 것을 일일이 다 막을 수는 없었다. 피해자가 강철심장이 아닌 이상에야.. 피해자는 작은 이야기에도 흔들렸고, 무너졌다.  그리고 입을 연 사람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에 대해 양쪽에 설득을 해야 했다. 그런데 그 설득은 '너도 이해가 가고, 또 너도 이해가 가는데, 00이가 그걸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러니 조심해달라.' 수준이었다.

 

어떤 때는 내가 그 논쟁을 원하기도 했다.  사건이 논쟁적일 때 특히 그랬다. 의견이 반반일 경우 더욱 그러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이것이 맞는지 틀린지 등에 대해 사람들이 자기 고민을 의견으로 이야기할 때 나는 그것을 2차 가해라 이야기하면서도 나 또한 그런 2차 가해성 발언을 했던 거 같다.

 

최근에 겪은 '아가씨와 건달들' 에 대한 나의 문제제기 또한 그런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나의 문제제기에 수많은 댓글과 반박성 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한다며, 나를 공격하는 그 수많은 글을 바라보며 정말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글들 중에 하나도 설득력 있는 글은 없었다. 문제는, 나름 그들도 자기 의견이라고 말한 것일테고, 그것은 그 나름의 논쟁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그럴 때 나또한 같이 반박을 했지만, 종국에는 참을 수 없는 분노로 너의 그 글은 2차 가해라고 말해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에게 또다른 빌미를 주었다. 이것봐라, 별것도 아닌 글에 너는 이것을 가해라고 표현하며 너자신을 '희생자화'하는 것이냐. 논쟁을 하자는데 입다물라는게냐.

 

그런데 나의 이전 생각에는 마초와 같은 생각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그져 입다물라, 너희가 이것을 배워라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여성주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항상 여성주의가 활발하게 논쟁 중일 때는 이상하게도 성폭력 사건이 발발했을 때일뿐이고, 그럴 때 우리는 몇몇 사람들의 마초성을 확인한다는 점이다. 그들의 마초성을 확인했을 때 우리는 그들에게 가해자라고 이야기하고, 그 가해자들은 논쟁을 논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우리를 되려 욕한다. 때로는 마초가 아니더라도 이러한 논쟁이 벌어졌을 때, 2차 가해자가 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이 점에서 가해자라는 것이 현재 운동사회에서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를 이야기 해 볼 필요도 있겠으나, 그 보다는 그들이 말하는 이야기하고 싶은 자유가,  여성주의에서는 2차 가해인 이 상황에서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가 난망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사실 이것이 양립불가능하지는 않을까 의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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