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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 반대론의 견강부회와 자가당착

[비평] 복거일의 무지와 자가당착 
 
『철학과 현실』2002년 여름호에 실린 소설가 복거일씨의 친일문제에 대한 합리적 접근에 대한 비평이다.  친일청산에 부정적인 관점들을 총망라하고 있는 글이라 비평의 가치는 크다고 판단된다.

 

반세기가 넘는 혹독한 식민통치로부터 온전히 우리의 힘으로 독립을 일궈내지 못했지만 부당한 처지에서의 해방은 절대적으로 우리에게 다행한 일이다.

 

복거일은 반세기가 넘는 일제의 식민통치가 공식적이었고,  실질적이었고, 철저했고, 혹독했고 무엇보다도 길었으며 당시는 국제적 식민지시대였다는 것은 거듭 강조한다.

 

 그리고 친일문제에 대해 '합리적'이라는 단어를 방패삼아 작금의 친일청산운동에 매우 비판적이며 부정적인 결론을 도출한다.

 

 복거일의 글 제목의 “합리적 접근”에서 우리는 합리를 약간 규명해 볼 필요가 있다. 합리란 논리나 이치에 합당함을 가리키며  하나의 저작물이 합리적이라고 평가받으려면 저작물의 전체 내용을 통틀어 수미일관된 철학적 토대 위에서 작자의 의도가 설파될 때 비로소 합리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하나의 저작 내 상충된 입장들이 공존한다면 체계적인 철학이나 가치관의 정립이 결여된 작자의 졸작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친일행위는 본질이 무엇이며 왜 우리는 그것을 운위하는가를 일별할 필요가 있다.

 

 親日이라는 단어에서 日은 제국주의 일본을 나타내며 親은 일제의 식민통치에 迎合하는 행태를 지칭한다. 그 본질을 규명하기 위해  제국주의를 살펴보고 친일청산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일별하도록 하자.

 

 제국주의란 군사적·경제적으로 다른 나라를 정복하여 영토나 권력을 넓히려는 한 시대를 풍미한 경향이며 Lenin은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최후의 단계이며, 그것은 사회주의에 의하여 극복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고,  Schumpeter는 《제국주의의 사회학》에서 절대주의가 완전히 청산되지 못하여 발생한 것이며,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사회는 합리화되고 제국주의는 소멸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데올로기 극한 대립인 냉전체제하에서의 양 극단의 입장을 대표하는 두 인물의 본질론을 현 싯점에서 본다면 공통적인 합치점은 제국주의는 소멸해야 할   반가치적이라는 이구동성이다.

 

 이러한 역사적 인물의 권위를 차용하여 제국주의의 본질을 규명하기보다는 오늘 날 보편적인 기준으로 제국주의의 본질을 규명하는 것이 합리적인 자세가 될 것이다.

 

 제국주의란 평등한 국가관계를 부정하는 국수주의적 관점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약소국을 침략 그 주권을 유린하고 인적.물적 자원을 약탈, 착취하는 구조로서 이러한 일련의 과정의 배경에는 집단적 선민주의와 집단적 이기주의및 미개한 야만적인 약육강식원리가 기초하고 있다.

 

 그리하여 인류보편적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 평등 자유와 인도주의 및 국가주권을 유린하는 실질을 띤다.

 

 따라서 제국주의 일제의 식민통치에 영합하는 행위인 친일행위는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비인도주의적인 것이며 인류보편적 가치에 반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이처럼 인간의 존엄성에 반하며 평등을 유린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비인도주의적 양상은 비난(가능성)의 양의 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질적으로는 똑같아 시간의 경과에 의해 비난가능성이 감쇄 될 그것이 아님은 명백히 알 수 있다.

 

 이러한 본질을 갖는 친일의 과정에서 일제에 영합한 조선인의 심리구조는 현실순응적 패배주의와 기회주의 그리고 극단적 이기주의의 모습으로 구체화된다.

 

 따라서 복거일이 단죄의 대상으로서의 친일을 “독립 운동을 한 조선인들에 대한 고문과 여자들을 속이거나 납치해서 정신대로 만든 행위 정도다.”라며 반인류적 행태를 매우 부정적인 양태로 제한하는 태도는 합리적이 아니다.  또한 그것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어떤 (합법적) 권위나 도덕적 정당성의 유무가 시비거리가 될 수 없다.

 

반가치적 반인류적인 부정적 사회행태에 상대적평가기준을 도입하게 된다면 최고로 도덕적인 사람 이외에는 그것을 다룰 수 없게 될 것이며, 비난의 대상이 되는 당사자는 더욱 비난의 대상이 되는 그것들을 방패삼아 자신의 입지를 정당화할 수 있게 될 불합리를 노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친체제(파) 혹은 친일(파)로 개념을 구별하며 이것이 훨씬 논리적이며 정확할 것이라는 논리는 一理는 있지만 친일을 결과적으로 옹호하려는 견강부회라는 혐의를 벗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복거일식 논리는 그 스스로 비인도주의적 친일행태를 부정하지 않는 인식지평과 상충하며 부당한 침략자의 통치행위의 형식적 합법성만을 우선한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복거일의 글 전체에 일관되게 흐르는 불합리한 논조는 친일단죄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으로 점철돼 있다.

 

 친일파가 동시에 사회발전에 업적을 남긴 경우 예를 들면 복거일은 박정희에 대해 “…대통령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꼽히는 이는 박정희이다. 군부 정변으로 정당한 정권을 무너뜨렸고, 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하고 권위주의 질서를 도입했으며, 갖가지 방식으로 시민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반대파를 혹독하게 탄압했다. 그는 가난한 나라가 경제 발전을 지속적으로 이룰 바탕을 마련했다.”라고 평가한다.

 

 이 논리의 저변에는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가치전도적 사고방식이 개재돼 있다. 

 

 복거일의 박정희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합리적이라고 주장하려면 아래의 몇 가지 질문에 대해 명쾌한 대답이 가능해야 한다.

 

일제가 식민통치하에서 괄목할 경제발전을 일궈냈다면 그것이 정당화 될 수도 있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만족한 돼지를 택하겠다. 대통령 지위를 부당하게 독점하여 경제정책을 실행한 결과가 최선임을  보증한다. 절대적 빈곤 타파는 박정희만의 전매특허이고 다른 주체는 그  능력이 없다. 차후에도 유사한 형태로 정권을 찬탈하여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다면 괜찮다.

 

복거일이 판단능력이 부분적일망정 합리적이라면  필자는 위에 나열한 질문에 모두 부정적인  답변을 할 것이라 단언한다.

 

 복거일은 “우리가 그 사람들을 단죄할 법적, 도덕적 권위를 지녔는가?”라며 “대부분 당시에는 합법적이었다. 형벌 불소급의 원칙은 법의 가장 근본적 원칙들 가운데 하나며, 어떤 이유로도 훼손되어선 안 된다. 인류에 대한 범죄라고 불리는 행위들은, 설령 당시의 법으로는 허용되었을지라도, 당연히 처벌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위 문단을 분석해 보면 “당시에는 합법적이었다.”라고 할 때의 합법에서의  법은 형식적의미의 법이다. 반면 형벌불소급 관련에서는 실질적 법 파악으로 나아간다. (형벌불소급의 원칙이란 법규정 이면에 배태된 법이념인 법적 안정성과 관련된 것이므로 실질적 법개념이다.) 그리고는 실질적으로 반인류적 범죄는 형식적 법에 합치되는 적법이라 할 지라도 당연히 처벌대상이라고 얘기할 때 실질적 법(예를 들어 자연법)개념을 다시 도입하고  있다. 또한 소급처벌은 절대로 안 된다고 하면서 반인류적 범죄는 단죄할 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복거일이 하나의 일관된 관점에서 위와 같은 관계를 서술한다면 다음과 같아야  수미일관된 주장이라 할 것이다.

가) 당시의 형식적 법에 비추어 합법적인 친체제 행위였으므로 단죄는 부당하다.
나) 친일이라는 반인류적범죄는 그 위법성이 시간의 경과에 의해 감쇄되지 않으므로 처벌해야 한다.
다) 반인류적이란 실질적 법개념에 비추어 비난가능한 친일의 단죄는 합당하다.

그리고 친일청산에 부정적 태도의 근거로 분류될 수 있는 가)  의 경우에도 복거일이 형식적 법이 항상 정의롭다는 형식적 법절대론자가 아니면 불가능한 주장이다.  또한 복거일은 그런 자가 아님을 스스로 인정했다.

 

 이렇듯 좌충우돌 상충되는 관점을 도입하는 저의는 친일청산을 방해하기 위한 의도이거나 복거일 스스로 이런 상충된 주장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복거일은 “…일본군이 저항하는 조선인들에게 한 행위들은 역사상 가장 악독한 만행들 가운데 하나였다. 지금 자유로운 사회에서 사는 우리가 무슨 도덕적 권위로 그런 지옥 속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을 기소하고 재판하고 처벌할 수 있는가? 정권의 협력 요구를 거절해서 받을 피해가 아마도 직장을 잃는 것이었을 시절에 용비어천가를 지어바치기를 감히 거부했던 언론인들이 그리 많지 않았던 우리 세대가 어떻게 비난할 수 있는가,”

 

 이러한 복거일의 논리가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불의한 역사는 자체로 종식될 필연적 운명을 내재하고 있음을 역사가 가르치고 있다. 정의로운 심판이 가능한 상황은 소수의 선도 세력이 주도하여 그것이 보편화되었을 때 일응 완성된다.  정의는 부정의에 비해 숫적 열세라는 점으로 인해 불의한 것으로 변질될 수 없으며 부정의함을 일깨울 선도세력이 없는 탓으로 부정의가 정의롭게 될 리는 없다. 혹독한 일제치하나 독재정권하에서 명백하게 선도세력(독립투사나 민주투사)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따라서 옳은 것을 외롭게 관철하기 위해 투쟁한 그 선도세력에 대한 죄의식에서라도 때 늦었지만 친일청산의 정서가 보편화된 지금이라도 가능한 수단을 동원하여 민족정기를 바로세워야 하며 자타가 긍정하는 혹독한 야만의 반인류적 제2의 유사 식민통치를 다시 경험하지 않기 위한 미래전향적인 우리의 각오를 다짐하려는 몸부림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사정에서 유사한 경험을 참고하기 위해 비교사학적 교훈을 참고하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그것을 절대적으로 참고해야 한다는 식의 복거일의 주장은 억지이다.  친일이 명백하게 반인류적인인 행태이고 단죄측면에서 역사적으로 합당한  교훈적 선례를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주체적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낙관한다.

 

복거일의 말처럼 사회적 응징차원이라든가 역사적 맥락을 고려함이 없이 다룬다거나 정략적 목적으로 작업이 이루어진다거나 하는 바람직하지 않는 친일청산은 지양되어야 하고 미래전향적 자세로 부끄러운 친일 행위들을 끝끝내 파헤치고  반인류적 범죄를 기초로 치부한 수치스러운 경제적 유산을 되찾고자 하는 후안무치한 후손들의 부끄러운 작태를 차단하는 한 편, 일제의 식민통치의 혹독한 고문에도 불구하고 조국의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친 투사들의 업적을 빛내어 가치로운 것이 무엇인가를 환기시킴으로써 민족정기를 곧추세우는 친일청산작업이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민족문제연구소가 자의로 혹자를 친일파에서 제외하거나 정치권에서 일정직위로 친일부역자를 한정한 것은 친일청산을 위한 올바른 태도가 아님을 지적한다.

 

대상자료 URL : 철학과 현실』2002년 여름호 친일문제에 대한 합리적 접근
 

*대자보에도 송고했습니다. 
2005/09/19 [04:15] ⓒ브레이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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