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지역차별주의자 김규항의 자가당착

[비평] 오마이뉴스 김규항의 지역문제 단상 
  

 
오마이뉴스 "[김규항 칼럼] 지역문제 단상  진보정치 성장과 전국민적 성찰이 해결책"에 대한 비평이다.

 

김규항기자(이하 경칭 생략)는 칼럼에서 "박정희 파시즘에서 비롯된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의 지역문제는 주류보수독재세력(박정희-경상도)이 기획하고 비주류보수민주세력(김대중-전라도)이 (결과적)동의라는 연대로 피지배층을 이간질하는등 지역적으로 분열시켜 차례로 지배하기 위한 (최대수혜자가 김대중인) 고전적 지배전략이었는데 작금의 노무현의 연정제안은 수구보수와 개혁보수가 화해할테니 얼싸안고 춤을 추라는 꼴인 맹랑한 발상으로 지역문제의 신(neo)기획이다.

 

보수정치세력에 의해 세뇌되었던 피해자인 인민들은 지역문제의 얼개가 밝혀진 지 오래인 지금 졸이 아닌 인민은 냉정한 계산에 의해 자율적 지역주의자로 전이되었으므로 참회와 전국민적 성찰이 필요하며 숫적 우세에 있는 중간층이하의 이해를 대변하는 진보정치세력대 (수구+개혁)보수세력의 대등한 경쟁구도화가 근본적인 해법이다."라고 말한다.

 

 

양비론적 역사 왜곡과 국민을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김규항

 

독재 혹은 파시즘세력과 민주세력이 시차를 두고 권력을 분점했다는 부분은 결과론적 관점에서 정당의 속성상 수긍할 부분이라 할지라도 '결과적 동의나 결과적 연대'라는 수사를 써 가며 지역문제가 마치 독재세력과 민주세력의 작품인 듯 재단하는 김규항은 그 스스로 독재자 박정희의 파시즘에서 지역문제가 비롯됐다고 얘기하면서도 주권자로서 정치적 선택을 하는 자주적 유권자들을 무차별하게 뭉뚱그려 모욕하며 보수정치에 의한 피해자적 지위를 부여하는 한편, 결과적으로 독재세력(박정희)과 민주세력(김대중)을 똑같은 가해자로 등치시키는 가치전도적 행태를 보여준다.

 

이는 분별력과 시비지심이 실종된 몰역사적. 몰가치적 현상재단으로서 예를 들면 '기자이므로 김규항은 수구언론인이거나 수구 사이비 언론인도 기자이므로 바람직한 언론인이다'라는 말과 흡사한 논리다. 이런식의 관점은 문제가 있음은 명백하다.

 

또 박정희이래 이어진 대권의 주인공들과 보수정당의 지배전략으로서의 지역문제라는 주장은 그 피해자인 국민들이 그들의 꼭두각시가 되어 만들어 준 정치지형이라는 주장인 셈인데, 독재체제하에서도 의연히 민주세력을 지지한 유권자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간과하는 몰역사적 현상재단이며 정형근을 선택한 유권자들의 행태를 비난할 도덕적 근거마저도 상실하게되는 자가당착적 인식임에도 그것마저 자각하지 못하는 무지한 주장일 뿐이다.

아울러 김규항식 지역문제 진단이라면 지역문제의 해결책은 명약관화이다.

 

피해자로서의 국민들의 시민정치의식을 각성하는 일이 궁극적이며 근본적인 해법인 것이다. 더 정확히 지적하자면 국민대부분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좌파) 진보주의 (민주노동당)도 여타정당과 꼭 같은 가치로 진열된 (잠재적 가능) 상품이었고 국민이 이러한 진보주의의 선택을 외면해 왔다는 괴상(?)한 현실에 대한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여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적절한 노력을 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 원인은 내적 원인과 외적 원인으로 나뉠 수 있겠고, 이른 바 '레드 컴플렉스'라는 외적 원인 중 하나는 해소된 듯 보여지므로 내적 원인및 유권자의 정치적 선택의 보수우호적인 편식에 대한 해소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할 것이다.


 

지역차별주의자 김규항의 빨갱이 사냥식 부당한 책임전가

 

모든 일터에 잠재적 지지 조직 기반을 가지고 있음에도 보수정치인들의 기획 혹은 연대에 의해 세뇌된 유권자가 만들어 준 정치지형이라는 자의적인 김규항식 보수정치권에 대한 책임전가는 한국 민주역사의  점진적 발전의 원동력인 바람직한 유권자들의 주체적인 정치적 선택을 공개적으로 모욕하는, 저항적 지역주의의 연장선상에서 민주와 개혁을 지지한 지역유권자에 대한 과거 수구냉전독재세력의 빨갱이 사냥과 질적으로 다르지 않는 몰역사적이며 비양심적 평가로서 그 행태가 공공연하게 자행된다는 점에서 그 해악의 정도가 심각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평가는 영호남지역과 비영호남지역 유권자들 그리고 영호남기반의 정치인들과 비영호남기반의 정치인들을 차별하는 지역차별주의자적 관점인 것이다. 

아울러 김규항은 노무현의 대연정제안을 지역문제를 유지하려는 신(neo)기획으로서 국민을 졸로 아는 맹랑한 발상이라고 비난하면서도 그러한 자신의 부정적 평가를 까맣게 잊었는지 "진보정치세력대 (수구+개혁)보수세력의 대등한 경쟁구도화가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괴상한 당위론을 도출함으로써 어느 덧 노무현의 연정 당위성(?)을 결과적으로 수긍하는 자가당착적 결과를 보이고 만다.

 

--------------------------------------------------------------------------------


이하 김규항 컬럼 전문
한국 역사에서 지역문제는 두가지 차원으로 존재해왔다. 하나는 풍습이나 문화의 차원에서, 다른 하나는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에서. 오늘 우리가 심각하게 말하는 지역문제는 물론 뒤의 것이다. 풍습이나 문화의 차원에서 지역문제는 전통시대부터 있어왔다. 역사 속에서 그 흔적은 아주 오래 전부터 발견된다.

지역문제가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으로 변한 건 박정희 파시즘 시절부터다. 텔레비전 정치비화 식으로 묘사한다면 "박정희가 라이벌인 김대중을 꺾기 위해 만들었다" 쯤 될 것이다. 김대중씨의 첫번째 대선 출마에서 경상도 표가 아주 많았다는 사실은 그 근거가 된다.

그러나 오늘 시점에서 냉정하게 정리해본다면, 지역문제는 '지배세력의 분할지배 전략'으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지역문제는 보수정치세력의 주류(박정희-경상도)가 기획하고 비주류(김대중-전라도)가 동의 혹은 결과적 동의를 하면서 만들어졌다.

인민 쪼개는 것은 고전적 지배수법... 그러나 인민도 피해자만은 아니다

인민들이 제 고단한 삶의 원인을 지배세력에게서 찾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인민들을 인종이나 종교, 지역 따위로 쪼개어 서로 적대하게 만드는 건 고전적인 지배수법의 하나다. 지역문제는 보수정치 세력끼리의 연대 혹은 결과적 연대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 수익은 시차를 두고 분배된 것이다. (김대중씨는 지역문제의 최대 수혜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보수정치 세력의 연대로 만들어진 지역문제를 다시 두 세력을 이어받은 오늘의 보수정치 세력(수구보수와 개혁보수)의 연대(혹은 연정?)로 해결하겠다는 건 몹시 맹랑한 발상이다. 터무니없는 이간질로 싸움을 붙여 감정의 골을 있는 대로 다 파놓은 놈들이 이제 와서 지들끼리 화해할 테니 다들 얼싸안고 춤을 추라는 꼴이랄까?

인민을 줄에 달린 인형으로, 장기판의 졸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오늘 지역문제 해법을 말하는 사람들은 수십년 전 지역문제를 기획하던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

이젠 인민들 역시 지역문제의 순전한 피해자는 아니다. 지역문제가 기획되고 진행되던 초기에는 어쩔 수 없었다손 치더라도 그 문제의 얼개가 적어도 텔레비전 정치비화 수준으로는 밝혀진 지 오래인 지금도 여전히 "전라도 놈들은 원래 나쁜 놈들" 따위의 말을 내뱉는 사람들은 지역문제의 피해자이긴커녕 선봉대일 뿐이다.

그들의 뒤틀린 의식은 본디 지배세력에게서 주입된 것이었지만 지금은 냉정한 계산에 의해 지속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부산사람들이 정형근에게 몰표를 준 건 "전라도 놈들이 잡으면 우리는 망한다"라는 계산 때문인 것이다.

이간질해놓고 이제 와서 지들끼리 화해한다고?

결국 지역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두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할 수 있다.

첫째는 그 출발이 지배세력의 지배전략(보수정치 세력의 연대)이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예나 지금이나 보수정치 일변도인 한국의 정치(독재와 민주에서 수구와 개혁으로 바뀌긴 했지만)를 바꾸어야 한다.

중간 이하 계급, 숫자로는 한국인의 대부분인 사람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진보정치(민주노동당뿐 아니라, 아직 제도정치에 편입되지 않은 좀 더 급진적인 정치세력을 아우르는 말이다)가 수구와 개혁을 합한 보수정치와 대등한 긴장을 이룰 수 있을 때 지역문제도 비로소 근본적인 균열을 낼 수 있다.

둘째는 지역문제의 얼개가 드러난 후에 여전히 지속되는, 뒤틀린 이기심에서 나오는 지역적 적대 행위는 정당한 사회적 비판을 받아야 한다.

이를테면 정형근에게 몰표를 준 부산 사람들은 모든 한국 인민들 앞에서 반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과거에 잘 몰라서 저지른 일이라 해도 이제 알게 되었다면 역시 반성해야 한다. 이를테면 수십년 전 군대 시절에 '깽깽이(전라도 사람)' 졸병을 괴롭혔던 사람은 한번이라도 진지한 참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자신은 진작 잊은 일이라 해도 당한 사람의 상처는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아무는 게 아니다.

지역문제는 그렇게 진보정치의 성장과 '전국민적 성찰'이 동시에 진행될 때 비로소 균열을 내고 해결될 수 있다.

정형근에게 몰표준 사람들 참회해야

덧붙이자면, 풍습이나 문화의 차원에서 지역문제는 세계 어디에나 있다.

우리 사회와 늘 비교의 대상이 되곤 하는 유럽도 지역문제 없는 나라는 없다. 중요한 건 공정한 사회체제가 만들어내는 이성적 견제와 인민들의 성숙한 사회의식을 통해 지역문제를 풍습이나 문화적 차원으로 머물게 하는 것이다.

그런 차원의 지역문제도 물론 바람직하고 권장할 일은 아니지만 반드시 해결해야할 사회 문제도 아니다. 이를테면 나는 경상도 남자들의 불퉁거리는 말투를 좋아하지 않는데 그걸 사내답다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싫어하든 좋아하든 그걸 사회적으로 주장하거나 적대하지 않는 한 그건 그저 개인의 취향에 머문다. 


 
2005/09/21 [08:59] ⓒ브레이크뉴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