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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1/30
    너가 좋음 나도 좋아
    jee
  2. 2009/01/30
    am 1_3
    jee
  3. 2009/01/29
    2009/01/29
    jee
  4. 2009/01/29
    쇼팽파워
    jee
  5. 2009/01/29
    가라앉는다가라앉는
    jee
  6. 2009/01/29
    2월 4일부터가
    jee
  7. 2009/01/24
    2009/01/24
    jee
  8. 2009/01/22
    자경언니,나의(1)
    jee
  9. 2009/01/22
    2009/01/22
    jee
  10. 2009/01/22
    2009/01/22
    jee

너가 좋음 나도 좋아

 

 너는 내게 너무 소중하다.    

 

 글자가 반짝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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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1_3

 

  목소리가 참지못하고 경련을 일으켰다.

  내가 그렇게나 안좋았었나.

 신기한것은 알아차리듯 5분후에 전화하겠다며 진정하라는 t의 말.

 사실상 그 서운함, 서글픔 이제는 다 까먹어간다고 생각했는데

 못내 나는 서운하고 서글프다고 이야기했다.

 

목소리는 차츰 가라앉고, 더이상 할말이 없게 됐을때에도 끊지 못했다.

 나는 그럴수 없었던건데 t는어땠을까. 

 이어진 대화는 약간의 침묵과 숨소리. 나 아직 여기 있어.

 나는 꺼지듯 계속되는 그 소리에 거의 매달리는 기분이 되었다 .

 그것은 애착의 것일까, 피로의 것일까.

 

...  

 

 "맥주나 먹고 잠 청해보자"

 

마지막은 피로하였고

 나는 그 때문에  바로 잠들수 없었다.

 내가 기대했던 말은 전혀 다른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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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9

 친구들 사이에서

 서로 침묵함은 아름답도다,

 서로 미소지음은 더욱 아름답도다, -

 비단의 하늘 아래

 이끼와 밤나무에 몸을 기대며

 친구와 더불어 즐거이 웃음 터뜨리고

 흰 치아를 내보임은.

 나 잘할때 침묵하도록 하자,

 나 못할때 - 웃어버리자

 그러면 더 못하고

 더 못할수록 더 심하게 웃어대자,

 우리 무덤에 이를때까지

 친구여! 그래! 그러면 될까? -

 아멘! 그리고 안녕!

 

 변명도 없어! 용서도 없어!

 그대들 쾌활한 자, 자유로운 마음들이여 허락해다오

 이 어리석은 책에

 귀와 마음과 은신처를!
 

 나를 믿게, 친구여, 내 어리석음이

 내게 욕이 되지 않음을!
 

 <내가> 찾는 것, <내가> 구하는 것 -

 그것이 언제 책 속에 있었던가?

 내 속의 어리석은 족속을 칭찬하라!
 이 어리석은 자의 책에서 배우라,

 어떻게 이성이- <이성으로> 나아가는 지를!

 자, 친구여, 괜찮을까?
 아멘! 그리고 안녕!

                                          ,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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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파워

 

 오늘 연구실에 머리를 오렌지색으로 물들인 소년이 왔다.

 이번 아시아 쇼팽콩쿨 1등한 천재소년

 독일에서 살아 한국말을 잘못하고 연구실에 오게된 계기도 근처 독일문화원에 왔다 이모인 이희경

 선생님의 손길에 흘러들었다.

 연구실까페에 있는 피아노는 그랜드아닌 영창, 소년은 영창치곤 좋은 피아노라고 중얼거렸고, 소년의 이모는  그 것을 큰소리로 한번 더 읊어주셨다.

 나는 비창2악장만을 저리게 들을줄 아는 클래식 무뇌아이지만,  수줍지만 두들기듯 피아노를 치는

 그아이는 예술의 전당 백건우보다  멋졌다.

 나는 그 이유를 응시에서 찾는다. 과장하면 오감으로 느끼는 음악과 비슷한 맥락일지도 모르겠다.

 코앞에서 피아노를 치는 소년의 작은 손, 나는 줄곧 복잡한 악보와 손을 교차 응시하며 그아이와

 베토벤과 쇼팽을 만났다. 단조로운 선율일까 싶으면 어느새 멜로디는 거친 노이즈를 뿜고, 느려지는

구나 하면 소년의 손이 미친듯이 빨라졌다.  누군가 그순간 나의 눈을 보았다면... 하는 괜한 기대와 안타까움이 은밀하게 뒤섞인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은  보는 이를 참으로 겸손하게 만든다. 

    나와 만나게 될 기철과 선목에게 오늘하루 나는 참 좋은 사람이 될수 있을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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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는다가라앉는

 기운이 하나도 없다. 잘 살피니 기분탓은 아닌것 같고, 역시 건강인건가.

며칠동안 집안 온돌매트에 쳐박혀 있었다. 

이틀쯤되니 티비를 좀더 편히보기위해 머리를 살짝 쳐드는 것조차 마음이 불편했다.

살고있음을 의식하는건 안타깝게도 이런순간이다.

마음이 아프다

  쉰다고 쉰건데, 이렇게 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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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4일부터가

새해란다. 음력으로는

왜일까, 한결 편해지는 이가슴은.

아직까지 나는 새해나 연말에 자유롭지 못하다.

22년 그냥 스쳐보낸 것이 새해인데, 뒤늦게는 왜 늘 꽉 조이는 기분일까.

역시 내 가슴은 아주 비좁다. 말은 태평양처럼 느긋하게 하고 있어도.

비좁은 마음이 켜켜이 좁혀져 지금처럼 생각조차 편히 할수 없을때

이렇게 글을 쓰면 될것 같다.

 

머리를 빡빡밀고 제목없는 음반을 낸 이소라처럼

마음을 빡빡밀고 제목없는 뭔가를 만들고싶다. 

내 손으로,

내 마음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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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4

 2시-6시

 까페지기 하는날,

 

 -대학신문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직까지는 도저히 정치나 경제를 스치듯 읽는 것이 최선이지만,

  뭐 신형철같은 저널리스트 한명 나오면 혹시 또 아나,

  사설 스크랩하는 것이 취미가 될지.

  역시 이해(의 노력)는 애정의 차원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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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경언니,나의

 

 언젠가 들었던 한마디.

 

     모든 인간관계를 너로 축소하고 싶어

이제는 예전처럼 무턱대고 순진하지 않아서 ,

 

그런말을 선뜻 할순 없게 됐지만

 

언니를 앞에두고 나는 다시 그 말을 떠올리고 있어. 조금 다르게.

 

  모든 인간관계를 언니로 축소할수 있다면 그러고 싶어

 

 

 

언니 말대로,  어쩌면 나는 우정을 좀 달리 생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

 

 

 

                                                                                집에 돌아갈 생각에 아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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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2

  눈과 눈 사이의 소통은 타락한 말들의 난장 속에서 얼마나 순정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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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2

당신이 끝내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나는 문병을 미루고 있었지. 두려워서였어. 당신의 아픔이 내게로 건너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나도 슬프지 않으면 어쩌나. 그런 적 많았지. 하나도 슬프지 않은 내가 슬펐던 때. 나는 나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인(囚人), 당신에게로 전향할 줄 모르는 장기수. 그래서 문병 가는 일은 늘 두려워. 문병(問病)은 ‘병을 묻는’ 일이지. 어디가 어떻게 아프신가. 때로는 물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니까. 그러나 진짜 문병은 그런 것이 아니지.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문병은 이런 것.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가재미’ 부분)

물어볼 힘도 대답할 힘도 없지. 그럴 때는 그냥 옆에 누우면 돼. 가재미처럼 누워 있는 그녀 옆에 나 역시 가재미가 되어 눕는 문병. 그리고 그녀의 파랑 같은 삶을 힘껏 생각해보는 것이지. 이 문병의 끝은 이렇지.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읽을 때마다 눈물을 참아야 하는 구절. 건강한 내가 아픈 그녀를 적셔주는 게 아니라 그 반대지. 지독해. 진짜 서정이란 이런 것이지. 마지막 사랑의 몸짓조차 그녀에게 양보하는 것, 나는 늘 받기만 했다고 생각하는 것.

“그대는 엎질러진 물처럼 살았지/ 나는 보슬비가 다녀갔다고 말했지/ 나는 제비가 돌아왔다고 말했지/ 초롱꽃 핀 바깥을 말하려다 나는 그만두었지/ 그대는 병석에 누워 살았지/ 그것은 수국(水國)에 사는 일/ 그대는 잠시 웃었지/ 나는 자세히 보았지/ 먹다 흘린 밥알 몇 개를/ 개미 몇이 와 마저 먹는 것을/ 나는 어렵게 웃으며 보았지/ 그대가 나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으므로/ 그대의 입가에 아주 가까이 온/ 작은 개미들을 바라보았지”(‘문병’ 전문)

새로 나온 시집 <그늘의 발달>(문태준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2008)을 읽어나가다가 이 시 때문에 잠깐 책을 덮어야 했지. 어쩌면 이 시는 ‘가재미’의 이전 이야기를 다룬 속편일까. 이 아름다운 시에는 문병의 모든 것이 들어 있지. 나의 마음, 그대의 마음, 그리고 죽음의 마음. 나는 그대에게 보슬비와 제비를 말했으나 초롱꽃에 대해선 말하려다 말지. 아름다운 세상으로 빨리 나가자는 말이었는데, 그대 없이도 세상은 아름답다는 말이 돼버린 건 아닐까 싶어 나는 멈추었겠지. 그대는 나를 다 알고 있지. 그래서 웃어주는 거지. 이제 이 시는 침묵에 잠기고, 마치 “아주 가까이 온” 죽음의 마음인 듯 개미들, 개미들만 있네.

나는 ‘문병시’(問病詩)라는 시의 한 갈래가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해보았지. 이 시인처럼 문병시를 잘 쓰는 이도 드물다는 생각도 해보았지. 막스 피카르는 오늘날 진정한 침묵은 병실에만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침묵의 세계>), 아마도 문병시는 바로 그 침묵을 담아내야 하는 것일 테지. 사람의 말로는 다 잴 수 없는 그 침묵 속에 이 세상의 모든 아픈 사람들을 보는 시인의 마음이 묵묵히 흘러야 하지. “내가 그대에게 하는 말은 다 건네지 못한 후략의 말.”(‘백년’ 부분) 그리고 이 ‘후략의 말’들이 나중에 저런 아름다운 시가 되는 것이지.

아니지. 존 버거는 시의 일은 부상당한 이를 돌보는 일이라고 했는데(<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그렇다면 문병시라는 게 따로 있을 이유가 없는 거지. 그래서 나는, 시인의 직업은 문병이라는, 그런 엉성한 생각을 해보았지. 나는 시인이 아니지만, 미루고 미룬 문병을, 당신이 다 낫기 전에, 이제는 가보아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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