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나도 수치스러우면 좋겠다. 한번쯤은 얼굴이 화끈거려도 좋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인 척 피하고 싶어 잔걸음으로 돌아서다가도, 길모퉁이에서 따끈한 호빵이라도 사놓고 기다리고 싶은 사람들이면 좋겠다. 절차적 민주주의? 다수결의 원칙? 그런 것들이 아쉬운 게 아니라 그렇게 치고박고 싸울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누구 잘못이냐를 따지기 전에, 억울하고 서러워서 호빵에 눈물 뚝뚝 떨어지면 좋겠다.

 



소식 전해듣고 큰일났네, 언론에서 실컷 울궈먹겠네, 그런 생각밖에 안 들더라. 별로 놀랍지도 않더라.

 

그리고 예상했듯, 현상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현재를 통찰하고 미래를 도모하는 -빼어난- 글들이 적지 않게 올라왔다.

 

지금 부족한 것은 민주주의나 도덕성이 아니다. 민주적이지 못한, 도덕적이지 못한 노동운동이 세상을 바꿀 수 없는 것은 분명하지만 민주적이고 도덕적이기만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 역시 명백하다.

마찬가지. 사회적 합의주의에 순응하는 노동운동이 우리의 전망이 될 수 없는 것은 분명하지만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라는 정치적 선언이 미래를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다.

 

'조금' 부족한 전망과 실천. 그 몫이 오로지 당신들 것이라 생각했기에 수치스러울 수가 없었다. 어지러운 논쟁들은 제쳐두고 당면한 비정규직 투쟁의 계획을, 전망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할 때조차, 바램일 뿐이다.

 

그/녀들을 아직 '우리'라고 부르지 못하는 것은 다분히 의도된 거부 혹은 회피. 하지만 끝내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우리'이고픈 욕심을 숨길 수 없기 때문. 비정규직 개악안 저지가, 사회적 합의주의 분쇄가 노동자운동의 과제가 아니라, 민주노총만의 몫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고 싶은 우리의 싸움이라는 것을 못본 척할 수는 있어도,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

 

'우리'가 되어 만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제 기대를 숨기지는 말아야겠다. 아주 작은 것일지언정, 그냥 기다리지만은 말자. 하다못해 '노동자' 아닌 친구들에게 문자메시지 한 번을 보내더라도 총파업이 흐지부지 끝나면 수치스러울 만큼, 억울하고 배신감 느낄 만큼의 진정성을, 그렇게 시작해야겠다.  

 

나도 비아냥거리면 좋겠다. 언론이 호들갑떨면서 그 따위밖에 안되냐고 비웃을 때, 때를 놓칠새라 사회적 합의를 협박할 때, '국회 패러디 사건'이라고 비아냥거릴 때, 지나가는 개가 짖나보다 하고 흘려넘기면 좋겠다. 단상에서 벌어진 '소란'이 이제 전국적인 소요가 될 날이 멀지 않았으니 2월 되기 전에 카메라 렌즈나 잘 닦아두라고 쏘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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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5 13:31 2005/02/05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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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가 바라는 현실은

    2005/02/09 08:19

    * 이 글은 미류님의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글을 읽고 나는 어째서 그렇게 사회적 교섭을 반대하였나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내가 좌파적 지향을 갖고 있어서, 아니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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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anjang_gongjang 2005/02/06 08:4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미류가 보는 시작이 진정한 시작인 것 같습니다.
    노동운동ㅤㅎㅘㅎ동가들이 초심으로부터 다시금 시작하여야 한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