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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광장 평가와 그 투쟁의 의의 -2012년 3월작성-

 

  바야흐로 총선이다. 4년을 기다려온 정치인들과 그들의 지지자들에겐 고대하는 현실이겠지만. 정리해고 당하고 소외받는 노동자들에게 총선은 오히려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총선은 변혁운동 진영에게도 딜레마로 다가왔다. 자칫 무엇을 시도했다간 참여율 부족과 반대여론으로 실패하기 십상이고 총선은 모든 투쟁과 사안을 잠식시키는 블랙홀과 같았다. 그러한. 가운데 희망버스에서 희망뚜벅이로. 이젠 희망광장으로 발전된 10여개 장기투쟁 사업장(쌍용자동차. 재능교육. 유성기업, 콜트콜텍, KEC ,코오롱 정투위, 기아차해복투, 현대차 비정규직, 대우차 비정규직. 기륭전자, 전북고속등) 의 연대 상경투쟁은 총선에 잠식당하지 않고 총선을 돌파하는 유일한 투쟁이었다.

 

  8월에 시행될 예정인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야권연대를 지지하기 위한 형식적인 총파업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민주노총의 10대 요구에 관한 입법투쟁은 부르조아 의회의 한계 속에서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며. 사실상 실현될 그 가능성마저 희박하다. 야권연대에 기대는 총파업은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야권연대의 입지만을 강화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이 투쟁이 부르조아 의회의 제한적인 한계나 형식적인 공문구, 수정안에 머무르지않고 노동자계급의 실질적인 요구인 정리해고 일체금지. 비정규직 철폐. 야간노동철폐등이 실제로 쟁취될 수 있는 총파업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총파업을 가능하게 하려면 민노총 상층부의 관료주의와 기회주의를 폭로하고 실제적인 총파업이 가능하도록 전체적인 흐름을 추동하고 평조합원 위주의 아래로부터의 총파업을 조직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총파업은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각자 처해있는 단위나 역량을 통하여? 아쉽게도 좌파진영 전체를 통틀어서라도 총파업을 조직화할 수 있는 역량이 되지 않는다. 정치폭로와 병행하여. 전국의 해고사업장과 투쟁사업장 위주의 투쟁을 지원하고 연대하고 조직화하면서 이들을 총파업 대열에 합류시키거나. 이들의 투쟁이 확산되어 희망버스처럼 사회적인 의제로 확대될 수 있도록 투쟁의 파고를 높이는 것이 그 시작이다. 3차 희망텐트의 참여독려를 위해 전국을 순회하였던 노동자 참가단. 한진정투위, 유성. 재능동지들의 전국순례와 연대가 향후에도 계속적으로 이어져. 희망텐트의 참여독려 뿐만이 아니라. 전국적인 연대투쟁으로까지 이어져야 한다.

 

 지난, 3차 희망텐트에서 쌍차의 투쟁은 아직 충분히 고양되지 않았다. 3차 희망텐트에서의 공장진입시도는 금속노조 상층부 관료의 저지로 인해 중단 되었다.

 

 투쟁은 상대적으로 독립되어 스스로 성장, 전화한다. 단사의 투쟁이 연대투쟁이 되고 연대투쟁이 총파업 투쟁이 된다. 경제투쟁이 적들의 탄압에 의해 정치투쟁으로 급변하기도 한다. 투쟁은 스스로 살아서 움직이는 운동체이다.-로자 룩셈부르크-

 

 지난 희망버스의 예를 들면. 희망버스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촉발된 것은 2차 희망버스에서부터였다. 비록. 한진중공업의 담장을 넘지는 못하였지만 진입시도를 하였기에 물대포와 공권력의 폭력이 자행됨에 따라 대중들의 분노가 SNS를 장악했고. 그것이 또한 매스컴에 대서특필 되었으며, 정리해고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인 의제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3차 희망버스의 참가인원은 2차때 만여명보다 두배 가까이 늘어났다. 3차 이후. 투쟁을 조금 더 고양시키지 못한 것은 3차부터 민노총이 주관함에 따라. 투쟁을 야권연대를 부각시키기 위한 문화제 위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투쟁은 다시 소강국면에 접어들었다.

 

 희망광장의 투쟁은, 3차 희망텐트에서 미처 고양되지 못한 투쟁을 고양시키는 연속선상에 와 있다. 그들의 투쟁은 총선에서도 민노총에서도 소외받는 투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들의 투쟁은 더 이상 단사에 갇혀있는 외로운 투쟁만은 아니다. 희망광장에서 태동된 투쟁속에서 맺어진 피로 맺은 것 보다 더 끈끈한 연대정신은 이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얼마전, 스물한명, 아니 이제 스물두명의 죽음을 몰고 온 2009년 쌍용자동차 살인진압이 경찰청 우수사례 5위에 선정되었다. 이에 격분한 쌍차 노동자들은 경찰청 담을 뛰어 넘었다. 연행되는 과정에서 쌍용자동차 김정우 지부장은 “우리는 죽기보다 살기가 더 힘든 사람들” 이라며 절규하였다.

 

 

 

  

콜트콜텍의 한 동지는 분홍조끼(희망광장조끼)를 입었다는 이유로 경찰로부터 감금당하고 경찰들한테 폭행당해서 엠블런스에 실려갔다.

 

 

 

 

 

청와대에 항의서한을 전달하러간 일곱명의 동지는 모두 연행되었다.

 

 

 

 핵안보를 핑계로 경찰의 침탈과 불법약탈(엠프. 마이크. 감자탕. 텐트. 피켓. 손자보등 압수)과 탄압은 강화되었지만. 희망광장의 숫자는 여전히 줄지 않았다. 연행된 동지 대신 다른 동지들이 연대해서 그 빈자리를 메꾸었다. 희망광장의 불씨는 총선정국하 에서도 결코 꺼지지 않았다. 바야흐로. 한국판 점령운동의 시작이다. 희망광장의 투쟁은 이제 단지 장투사업장의 연대 투쟁 뿐만이 아니라. 전국 해고자 투쟁으로 그리고 전국 총파업 투쟁으로 가는 교두보로 성장 하였다.

 

 물론, 희망광장의 투쟁은 총선을 돌파하는 유일한 투쟁이었으나 아직까지 부르조아 정치세력(야권연대)에 대항하고 총파업을 주도하는 정치적인 대안세력으로 부르기엔 자생적인 한계점을 노정하고 있다. 이들이 결사의 투쟁의 의지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정치의식은 다양하고 천차만별하며. 일부는 부르조아 의회의 환상이 가져다주는 개량적인 한계속에 갇혀있다. 민노총의 기회주의를 싫어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들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고 있다. 통진당의 이정희를 싫어 하면서도 한편으론. 이번 이정희 파문에 대해서 측은지심을 느끼기도 한다. 노동자계급이 스스로 사회주의적인 정치전망을 갖기란 쉽지 않다. 노동자계급 스스로 정치적인 전망을 갖거나 독립적인 대안세력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반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하지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레닌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말했던 것처럼. 사회주의는 노동자계급의 태내에서 생성되었지만. 외부로 부터 도입되는 것이다. 그 외부가 바로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는 사회주의당임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노동자 계급 스스로 정치적인 전망을 가질 수 있도록 운동의 조력자로써(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지도라는 말 대신 여기선 조력자란 말을 사용하기로 했다. 아직까지 사회주의 정당건설은 요원하며 맹아적인 수준을 답보하고 있다. 당이 존재하지 않는 남한운동에서 정치조직이 운동을 제대로 지도한 예는 아직까지 전무하다.) 사회주의 정치조직이나 정치세력의 적극적인 연대와 결합이 절실히 필요했다. 지난 희망텐트에서 노동자 참가단의 정치 집담회가 가능했던 것은 사회주의 정치조직이 그 집답회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정치적인 전망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지금 가장 절실한 선진노동자들의 것으로 전취해내지 못한다면 그 전망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다들 가장 가깝고 절실한 곳을 등한시하고 총파업이라는 대명제아래 너무 먼 곳에서 총파업을 찾는 것은 아닌지?

 

 아쉬웠다. 모든 것이. 총선 때문에 많은 것이 묻히고, 희망광장의 동지들은 모든 어려움과 위험을 감수하고 결사의 투쟁을 전개하는데 보다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결합하지 못해서 미안했다. 하지만. 그 열정과 결사의 의지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희망광장의 투쟁은 다시금 가열찬 투쟁과 연대투쟁으로 이어져 4차 희망텐트는 더욱 더 고양될 것이고 현차투쟁등 전국의 투쟁또한 다시금 불붙어 2012년 정국을 주도할 불화살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 단지 시작일 뿐이다!!!

 

 

 

 

 

 

 어디도 취직할 수 없다는 빨갱이라는 사회적인 낙인과 자본가 세상이 만들어 놓은 암묵적인 비정한 블랙리스트와 절박한 생활고가 또 다시 쌍용노동자 스물두번째 죽음을 불러왔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슬퍼만 할 수 는 없다. 또 다시 이어질지 모르는 이 죽음의 행렬을 반드시 멈춰야만 한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도 도망갈 곳도 없는 벼랑 끝에 와 있다. 투쟁으로, 이 피할 수 없는 비정한 현실에 종지부를 찍어야만 한다.

(자본가 계급의 주구이며 출세에 환장한 남대문서 또라이 경비과장 최성영은 처음엔 집시법을 들먹이며 대한문 분향소를 막더니 관혼상제가 집시법 대상이 아니란 것을 알고 이젠 도로교통법, 선거위반법을 들먹이며 수시로 침탈해서. 쌍용노동자들을 폭행하고 현수막을 찢으며 현수막에 과도한 집착증세를 보인다. 그가 흔히 말하는 경찰모욕죄는 법적인 근거 어디에도 없다. 물론. 경비과장이 제아무리 또라이라도 단독으로 법위에 군림하며 불법적인 일을 자행할 수는 없다. 쌍용노동자 살해주범인 자본가계급과 이명박정권이 사주한 것이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쌍용노동자 죽음의 사회적인 확산이다. 이 사회적인 확산을 위해서 대한문 분향소는 반드시 지켜져야 되고 널리 알려져야만 한다. 동지들의 적극적인 연대와 투쟁만이 분향소를 지키고 그 사회적인 확산을 이어갈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정리해고와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에서 고이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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