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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진당 사태를 바라보며-NL 비판- (2012년 5월 작성)

  자민통 통진당계열의 부르주아계급과 결탁한 의회정치는, 결국은 그 추악한 본질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그들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그들의 패권주의, 당권파의 조폭을 방불케 하는 집단행동등이 전혀 낯선 것이 아니다. 이미 그들은 오래 전부터 그래왔다.

 

 자민통이  남한사회에 처음 뿌리 내리던 전대협시절에도 그랬다. 수많은 학자투 에서도 그들은 대학측과 타협하며 투쟁을 진행했다. 투쟁은 당연히 평화적이고 타협적인 투쟁이 되어버렸다. 미리 각본을 짠 것처럼, 투쟁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전경들은 미리 철수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때의 집행부는 전경이 철수 하자마자 투쟁을 정리하고 있었다. 집회나 투쟁이 모두 사전에 합의되고 각본에 짜여져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그들은 학교측과의 타협으로 (그들은 장학금이라고 말한다.) 끊임없이 투쟁 없이 자신들의 조직을 키워왔다. 무엇인가 투쟁하고자 하면. 그 당시 NL계 이론의 지침서였던 ‘강철서신’(강철서신은 80년대 후반에. “지금은 역량이 일천한 시기에 놓여있소~” 라고 주장하며 전위정당 건설을 반대 하였으며 대중 추수주의인 산개전을 주장하였다. 그 저자 김영환은 현재 뉴라이트 소속이다.) 의 예를 들며 ‘역량이 안 된다며’ 투쟁을 회피하였다. 그리고. 자민통을 비판하면 대자보를 찢거나 총학생회로 끌고 가 뭇매를 때리기도 하였다.

 

 전대협과 한총련이 사멸의 길을 걸은 것은. 그들이 과격해서가 아니다. 반대로 너무 온건해서 이다. 후반부에 그들은 너무나 안이하고 평화적인 투쟁만을 지향해 왔다. (전투를 하게 되면 보통 학우대중의 20%가 모이고 그것이 급격해지면 50% 이상이 모인다. 평화적인 투쟁은 전체대중의 10% 밖에 모이지 않는다. 평화적인 투쟁은 형식적이고 절박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들의 조직원 숫자는 늘어갔을지 몰라도 전체 대중들의 신뢰는 급속하게 떨어져갔다. 노동운동도 마찬가지였다. 대학과 똑같은 패권주의와 역량타령이 노동운동에도 벌어졌다. 노동자들이 무엇인가 투쟁 하고자 하면. 자민통 계열의 운동권이 역량을 들먹이며 때를 기다리자고 하며 노동자계급의 투쟁의지를 막아왔으며. 그것을 비판하면 분열주의자. 종파주의자. 품성이 안 좋은 자로 몰려 매도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다시 2008년 광우병대책위의 비겁한 행동을 보며. 아직도 그들 NL이 지배하는 운동판은 변함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FTA 범국본도 마찬가지였다. 투쟁보다는 선거나 정치인의 연설에 집중 되었다.)

 

 뿐만 아니라. 술만 먹고 투쟁하지 않는 민주노총 결의대회. 기륭에 사수대를 보내겠다는. 시청광장을 탈환 하겠다는, 무수히 미사여구만 남발하며 뻥파업을 주도하였던 민주노총 상층부 관료들도 자민통 계열이 장악하였다. 그것 때문에 이번 총파업도 사실은 의심스럽다. 그들이 적어도 총파업의 의지가 있다면. 아무리 선거기간이라 할지라도 희망광장의 동지들과 대한문 쌍용자동차 희생자 분향소를 외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5월11일에도 당연히 재능투쟁과 결합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투쟁하지 않는 자들이 만드는 총파업이 과연 얼마나 자본가 계급을 타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가 아는 NL은 마치 암세포 같았다. 미리 그 싹을 잘라냈어야 했는데 그 싹을 제대로 비판해내지 못하고 그 싹을 키운데 대해 일말의 역사적 책임을 통감한다.

 

  모든 이론과 실천은 통일되어 있다. 그들의 지금 실천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들의 이론 전체가 잘못 되었기 때문이다. (NL에도 주사가 있고. 비주사가 있고 여러가지 분파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들의 실천을 관통하는 중심이론은 계급이 없는 상명하달식 패권주의 주체사상이다.) 그들의 이론에는 계급이 없다. 주체사상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누구나 갖고 있는 인간의 본성일 뿐이다. 계급성이 아니다. 또한 그것에서부터 이어지는 품성론. 인간학 개론은 결국엔 김일성 일가를 숭배하는 혈통론 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람이 세계의 주인이다.’ 로부터 시작해서 결론은 영도자의 순수한 혈통으로 끝이 난다. 결국. 주체사상의 인간학개론은 자신들의 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이론이다.

 

 또한. 혁명을 포기한 일국사회주의는 민족주의로 귀결된다. 민족을 외치면서 어느 틈엔가 우리는 계급투쟁. 반 자본가 투쟁보다 민족투쟁이 우선시 되어왔고 미제가 축출되어야 모든 모순이 해결 된다는 논리가 정식화 되고 말았다. 미제국주의를 축출하려면 그들과 결탁하고 있는 자본가 계급을 우선적으로 축출해야만 가능하다. 민족 일변도의 투쟁은 현실의 계급투쟁을 회피하기 위한 것에 다름 아니다. 수미일관되게 자본주의를 관통하는 기본모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적대적인 모순인 생산의 사회적인 성격과 사적소유‘ 자본가 계급을 철폐하지 않는 한 자본주의의 모순은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생산의 담지자이고 혁명의 원동력인 노동자계급의 입장에 섰을 때만이, 노동자계급이 자본가계급을 철폐하고 다른 계급마저 철폐 하였을 때만이 비로소 계급은 철폐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계급이 철폐 되었는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부르조아 계급을 철폐하기 위한 노동자계급의 독재이지 어느 한 집단이나 관료의 독재가 아니다. 독재라고 해서 내부의 민주주의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철저하게 노동자계급 대중의 민주주의와 이해에 기반해야만 한다. 시대를 초월한 3대 세습은 북한에서 내부의 민주주의가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북한이 고도로 폐쇄되어 있고 착취사회라는 것을 입증하는 단적인 예이다. 소련과 마찬가지로 북한에서의 공산주의자는 모두 숙청되었다. 혁명은 패배하였다. 아니 존재하지도 않았다. 북한은 엄연히 노동자 계급에 대한 고도의 착취가 존재하는 사회이다. 그러하기에. 북한에서의 계급은 소멸되지 않았다. 주체사상은 계급관계를 은폐하고 노동자 계급에 대한 착취를 은폐하는 철학이다. 북한을 짝사랑 하였던 80년대 방북 인사들에게 북한이 했던 말은 이미 구전되어 유명하다. 남한의 혁명을 도와달라는 그 말에. 북한은 일언지하에 “자력갱생 하시오” 라는 말을 하며 거절 했다는 것이다. 세계혁명을 포기하고. 자국의 혁명은 자국의 민중이 자체적으로 알아서 하는 것이 일국사회주의 이론이다. 북한의 사상과 현실은 남한에 어떠한 도움조차 되지 못한다. 그 사회 자체가 남한과 마찬가지로 계급사회이고 타도 되어야할 착취 사회이기 때문이다.

 

  NL의 이론은 계급이 없기에. 그들의 이론은 필연적으로 계급이 없는 민족주의로 흐르게 되고. 그들의 실천은 현상적으로 자본가계급과의 계급협조 또는 자본가계급과의 결탁으로 이어진다. 또한. 계급적인 관점이 결여 되어 있기에 운동에서는 필연적으로 대중추수주의. 대중영합주의로 나타난다. 낮은 대중의 의식수준에 맞추어 대중의 후미를 쫓아다니는 운동은 목적의식적인 운동의 발전에 아무런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운동의 암세포라는 것이다. 그들이 10년 동안 만들어 놓은 조합주의. 관료주의의 대명사 민주노총. 투쟁하지 않고 자본가 계급과 타협하고 협조하는 민주노총과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만신창이로 만들어 버린 이번의 3자통합. 그리고 이어지는 부정들, 또한. 북한과 마찬가지로 내부의 민주주의가 전혀 없는 상명하달식 구조.. 도저히 바꿀래야 바꿀 수 없는 암세포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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