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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식당’(오가와 이토 저)

 달팽이 식당’(오가와 이토 저)

2013. 5.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책장을 넘겨 첫 줄을 읽다보니 ! 이거 영화로 봤던 건데.’ 제목조차 기억 못한 것을 스스로 한심하게 생각하다가 이 영화감독은 참 편히 영화를 만들었구나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1973년생인 작가는 마치 영화 한 편을 보여주는 듯이 세밀한 묘사를 하고 있었다.

참 가슴 따뜻해지는 소설, ‘달팽이 식당이다.

 

2.

여주인공 린코는 애인과 함께 식당을 차리고자 모았던 돈을 애인이 들고 도망가자 15살에 집을 나온 이후, 1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녀의 외할머니가 남겨주신 겨된장 단지와 함께. 그녀는 자신이 불륜으로 태어난 자식이라고 믿고 어머니와 갈등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고향에 정착한 그녀는 어머니에게 고리의 돈을 빌려 창고를 개조해서 달팽이 식당을 열기로 한다.

애인까지 포함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처는 헤아릴 수 없이 컸지만, 그래도 그것을 계기로 인생이 크게 한 걸음 전진했다.”

그녀는 그녀의 오랜 꿈이었던 이 식당을 초등학생의 가방처럼 등에 짊어지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달팽이 식당이라 이름 지었다. 하루 한 팀만 받기로 한 달팽이 식당은 온전히 한 손님()에게 주어지는 정찬인 것이다. 달팽이 식당에서 식사를 한 손님들은 소원이 이루어지는 기적 같은 경험들을 하게 되고, 주인공은 자연 속에서 행복한 성장을 만들어 간다.

지금까지는 내가 모든 요리를 만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 나는 단순히 소재와 소재를 조합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더 나아가서 본다면 농민들도 채소를 키울 수는 있어도 채소의 씨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주인공 린코도, 외국인 신부가 도망간 구마씨도, 애인의 죽음 이후 몇 십 년을 상복을 입고 지낸 첩 할머니도, 거식증에 걸린 토끼도, 린코의 어머니도 모두 관계에 상처받은 이들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립고, 그이의 손길이 목말라 있는 이들이다.

그 아픔을 이겨내는 것은 주인공의 요리 솜씨가 아니라 온전히 그들을 바라보는 마음과 정성이다. 만드는 이의 온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요리가 몸과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3.

스무 두 살, 세 살 무렵에 1년 가까이 토스트 장사를 한 적이 있다. 중간에 쉬다 하니 두 번의 겨울을 어묵 국물을 내고, 계란을 부치는 일로 났었다. 알바보다 더 벌 듯 하여 시작한 일이었지만 장사는 손님과의 약속이라는 형님의 엄명에 정기 휴일을 제외하고 매일같이 리어카를 끌고 거리로 나섰다.

퇴근 무렵, 길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면 삶이 하나같이 피곤해 보였다. 처음에는 손님들이 다 돈으로 보이더니 단골도 생기고, 500원 짜리 토스트에 어묵 국물을 그냥 먹어도 되냐 말해주는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돈이 없던 시절, 그래도 말 벗해준다고 찾아오는 친구들과 몇 달을 무뚝뚝하게 대하시다 단속반에 걸려 리어카는 뺏기고 음식 재료는 땅바닥에 내버려져 겁먹고 실망한 나에게 다가와 위로해주시던 호두과자 형님, 단속반에 나대신 맞서 항의하던 옷가게 아가씨들. 지금, 그 모두가 그립고 고맙다.

내 생의 첫 조카 녀석은 요리사가 꿈이다. 고등학교부터 군대, 대학까지 한 길로 가고 있는 녀석은 아마도 내 토스트를 먹어 본 유일한 조카이다. 나야 본격적인 경험을 한 것은 아니지만, 요리는 불을 다루는 일이라 항상 위험이 숨어있다. 군에서 조리 중 화상을 입었던 조카는 요리라는 직업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였다.

하지만, 세상에 달기만 한 직업이 어디 있으랴? 힘들지 않은 일만 할 수 없지 않겠는가? 나는 그 녀석이 좋은 결정을 할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어떤 결정이든 나는 녀석을 응원할 것이다.

살다보면 견디기 힘든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누구는 쉽게 훌훌 털고 일어나는데, 누구는 오랜 시간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각자 훌륭한 요리사도, 성실한 농부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씨앗’을 가지고 있다.

그 씨앗의 싹을 틔우는 일은 내 마음에 달린 일이며, 실천하는 행동의 결과이다. 또한 봄비처럼 주변 사람들이 보내는 연대의 응원에 달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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