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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치, 지방선거 생각 2

1 당연한 분석, 당연한 귀결

 

진보신당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비판적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이 자주 보인 반응.

 

"진보신당을 구성하는 당원들은 훌륭한데 왜 진보신당은 그렇지 않은가?"

 

여기서 훌륭하다는 말은 대략 '열심히 한다', '생각이 건전하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런 착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당이 잘 안된다면 분명 안타까운 일이다.

 

선전전 나가고 자보 붙이고 집회 나가고 그래서 쉼 없이 몸을 굴리는 것이 성실성의 기준이라면, 현실에서는 장렬히 깨지더라도 운동의 대의와 선명한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이 건전함의 기준이 되어 왔고, 지금도 대다수 당원들의 마인드는 그렇다.

인격적으로 구성원들을 높게 평가하고 나서 단체는 그렇지 못하다고 진단하면 나올 수 있는 결론이 뻔하다. 단체의 운영방식을 포함해서 지도부가 당원들의 능력을 모아낼 능력이 부족하고(혹은 의지가 없거나) 이것이 당내 민주주의를 왜곡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결론.

 

이건 너무 식상한 분석구조다. 언제나 뻔한 말은 뼈 속 깊은 반성과 성찰을 방해하고 결국은 또 뻔한 해결책들. 가령 당원들이 평가안을 조직해서 지도부를 성토한다던지, 당원의 역할 확대를 내세운 어떤 새로운 지도부로 교체하는 수순으로 흐른다. 진보정치가 기성정치와 다른 자신만의 매력을 이끌어내지 못한다고 분석을 했는데, 해결책은 언제나 권력구조를 교체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2. 진보정당에게 필요한 것

 

진보정당이 일찍부터 지방선거에 주목한 이유가 무엇인가? ‘생활진보’의 가능성에 주목했기 때문이며, 한 편으로는 기초의회 선거가 기성정치의 벽을 넘어 다수의 당선자를 다수 배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은 선거로 갈수록 양자구도가 약해지니까 그 빈틈을 노려보자는 것이다.

진보신당의 이런 움직임은 개인적인 고민과도 맞닿았다. 사회 진출할 때 쯤 한 번은 느끼는 죄책감은 자신이 도피했다는 되도 않는 설정에서부터 온다. 100아니면 0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무기력. 그런데 이런 낡은 구도를 깬 것은 학생으로부터 시작된 촛불시위였다. 무엇이 더 진보적인가? 혹은 진보적인 삶인가에 대한 환상들이 깨졌고 체질전환을 필요로 했다. 되도 않는 적을 설정하고 혼자 싸우는 사이, 사람들은 그저 피켓을 들고 공연하고 행진하며 마음껏 상상력을 펼친다.

그냥 자기 삶의 조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 것을 쓸 데 없는 죄책감 때문에 모든 것을 손을 놓는 상황. 그러는 사이 세상은 계속 흐르고 진화한다. 10년 전 무상의료, 무상교육 내세웠을 때 ‘이 무슨 유토피아적 발상이냐?’고 비웃던 세상에서 지금은 무상복지를 너도 나도 정책으로 걸고 있다. 무상복지의 원조는 진보정당이다.

 

지금 진보신당에게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하려면, 가장 먼저 생활진보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도 그걸 소화해내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먼저 반성해야 한다. 권력 구조에 대한 고전적 분석만으로 진보신당은 한걸음도 못 나간다. 항상 진보정치에 대한 갈망을 토론하면서, 해결책은 내부정치 공학에서 찾는 이런 사고방식이야말로 가장 손쉬운 길이다.

생활진보는 단순히 선거용 구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반성과 노력 가운데 나온 진보의 새로운 실험이라고 생각하며, 적어도 10년 이상은 이것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으로 활동이 전개되어야 한다고 본다.

생활진보의 구체적인 정책과 대안 역시도 중앙에서 나오지 않으면 스스로 자립하기 힘든 지역위원회와 지구당들. 아주 냉정히 말해 지역을 사고하는 우리의 수준에서는 당선자가 나오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진보신당의 현 상황에서 권력의 집중이 문제가 될 수는 없다. 누구라도 1년만 열심히 하면 지구당 위원장 할 수 있을 만큼, 사람이 절실한 당이고 진짜 아래로부터 민주주의해서 권력구조 바꾸겠다면 그것도 불가능할 리는 없다. 단, 없는 권력을 놓고 아웅다웅하다 판이 통째로 깨지는 게 문제지만...평당원들이 힘을 합쳐 당을 장악해야 된다는 논리는 그래서 지극히 옳은 말이고, 그래서 사실 아무 말도 안하는 말이다.

 

3. 여전히 남는 우리 모두의 고민

 

당내 활력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민해본다. 민주노동당과의 분당 이후 계속된 감정싸움과 소모적 갈등?? 이건 적어도 이 번 선거를 기점으로 거의 사라질 것이다. 민주노총의 지지 문제를 비롯한 노동운동의 약화?? 이 문제 역시 단시일 내에 뭘 어쩔 수 있는 문제도 아닐뿐더러 애초에 진보진영이 단체들의 지지에 힘입어 얻은 표는 거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중앙정치의 실패?? 이건 논란이 좀 있을 거 같은데, 비판할 부분이 있긴 하지만 크게 보면 이 역시 핵심은 아니다.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아예 안 들어갈 수는 없었다. 처음부터 야권연대 안 들어갔어도 욕먹고 들어갔어도 욕먹고, 선거 닥칠수록 광역단체장의 경우는 지지율이 계속 떨어졌을 것이다. 그걸 만회하려고 애쓰는 노력들이 남은 선거 기간 동안 필요하다. 그런데 그 회의 자체에서 뭔 말들이 오갔는지, 진보신당은 어떤 주장을 내세웠는지도 투명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어쨌거나 협상과정에서 지지자들이 불만을 품고 내부 역량마저 떨어진 것은 문제다. 양당구조의 고착화. 이게 우리가 생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그러니까 더 절실히 살아남아야 한다. 새로운 가능성을 남겨두려면.

 

당원들에게 에너지가 없는 게 근본적인 문제다. 나는 그 원인을 여전히 찾는 중이다. 이건 절박한 내 삶의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권력구조에 빠삭하고 언제나 권력구조에서 해결책을 찾는 습성. 먼저 책임을 지고 장렬히 쓰러지는 건 능하지만, 같이 알콩 달콩 사는 건 힘들어하는 내 모습과 진보정치의 현실이 겹친다.

지금 지도부에 대한 성토, 중앙정치에 대한 불신. 사실 이런 것은 대다수 진보신당 응원자들의 관심사항이 아니다. 경험도 많고 머리도 똑똑한데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훌륭한 당원들이 많은데 당은 잘 안되는 게 아니라 훌륭한 당원이 뭔지를 잘 모르겠다. 훌륭한 중간간부들은 많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라, 잠들어 있는 가능성을 깨어줄 사람들이 필요하다. 능력 있는 1인보다 함께 잘사는 다수가 필요하다. 생활진보에 대한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이 필요하다. 노무현과 유시민이란 아이콘 하나로 열광하는 사람들의 엄청난 에너지만큼이나 변화에 대한 열망으로 즐겁고 설레이는 무엇. 하다못해 함께 무언가를 도모하고 있다는 모종의 음모적 연대의식이라도. 그 갈증이 모여 변화를 이끌고, 작은 거 하나부터 손수 계획하고 실천해서 욕도 먹고 기쁨도 먹는 경험이 쌓인다면 그렇게 조금씩 달라지겠지. 여전히 해결은 각자의 열정으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열정을 일으켜 세우려면 고정된 프레임에 매달리는 의식구조의 흐름에서부터 냉정한 성찰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진보신당 게시판을 종종 찾아가서 초기화면을 본다. 35세 이하 솔로에게 전세자금 대출. 보는 순간 ‘야...기발한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좋은 정책을 우리 힘으로 설득할 능력이 없으니 슬픈 일이다. 최소한 그걸 알리기라도 해야할텐데. 그런데 살아서 계속 떠들면 조금씩 된다는 생각도, 요새는 조금 한다.

TV토론 보니까 노회찬 씨가 제일 말 잘한다. 말만 잘하는 게 아니라 준비가 잘 되어 있다. 구체적이고 치밀하다. 그런데 MBC에만 나온다. 그런 절실함, 안타까움, 노원구에서 떨어졌을 때 ‘지못미’를 외치던 그 사람들의 마음. 그걸 움직이는 노력. 노회찬/심상정만 바라보는 건 정말 문제다. 노회찬/심상정씨도 그걸 원하지 않을테다. (심상정씨는 잘 모르겠고 노회찬 씨는 개인적으로 조금 믿는 구석이 있다. 내가 아는 한 훌륭한 정치인이다.) 당원들이 나대면 너도 나도 다 즐거워 할 일이다.

 

최근 사회당이 지지선언을 한 것도 어떤 위기 의식 + 변화의 노력 때문이다. 가치 지향, 이념 지향에서 구체적 정책과 대안으로 돌아선 것.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생활진보를 전면에 내세운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거기서 답을 조금씩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나마 지역운동을 많이 겪어본 사람들은 생활진보의 실체를 더 잘 알고,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후보로 나서는 것. 그게 나에게도 자극이 되고 기쁨도 된다. 때로는 생활 속에서 느끼는 어려움 하나, 역겨움 하나 그런 것과 싸워나가는 게 충분히 혁명적일 수 있다는 생각. 보통 사람들의 보통 욕망 속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끌어내는 노력. 그것이 정치의 유일한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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