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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05
    진보신당에 대한 비난, 미래를 고민하는 자의 언어일까?(11)
    칸나일파
  2. 2010/05/20
    진보정치, 지방선거 생각 2(6)
    칸나일파
  3. 2010/05/19
    진보정치, 지방선거 생각 1(3)
    칸나일파
  4. 2010/02/14
    세대론(9)
    칸나일파
  5. 2009/05/29
    노무현(5)
    칸나일파
  6. 2008/07/08
    이명박 정부, 대체복무 시행 뒤집나?(2)
    칸나일파
  7. 2008/07/07
    유엔 조약도 안 지키는 한국
    칸나일파
  8. 2008/06/13
    촛불집회 참가 후기(1)
    칸나일파
  9. 2007/06/14
    책읽기 모임 후기(1)
    칸나일파
  10. 2007/06/14
    민방위 교육 2년차(3)
    칸나일파

진보신당에 대한 비난, 미래를 고민하는 자의 언어일까?

1. 우리는 꿈을 꾸기에, 진보정당을 만들었다.

노회찬 후보가 거의 집단 매도에 가까운 비난을 받고 있다.
진보신당 당원으로서 나는 이 돌팔매를 그냥 얻어 맞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진정성을 보여주는 출발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도를 넘었다.

사람들이 왜 진보정당이냐고 자꾸 묻는다. 나는 왜 진보정당을 안 만드냐고 묻고 싶다. 이건희 같은 범죄자가 떵떵거리고 사는 나라, 유엔에서도 금지한 동절기 강제철거가 자행되고 무슨 테러리스트처럼 집단 매도되고 급기야 죽음에 이르는 나라, 개발과 기업의 논리가 사방팔방 다 지배해버려서 그저 돈이면 뭐든 단 된다는 물신주의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나라, OECD 국가 중 출산율 최저에 노동시간 최고인 그래도 경쟁의 무한질주가 멈추지 않는 나라. 내 집 한 칸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이자와 원금을 20년 넘게 갚고 늙어 고부라질 때쯤 내 집 하나 장만한 기쁨으로 노년을 맞이하는 나라. 그래서 젊은 시절의 그 고통을 돌려받고 싶은 심정에 너도 나도 집투기를 하고 부동산 가격이 오르기만 기다리고 뉴타운이라는 환타지에 모든 인생을 거는 나라.

왜 이런 나라에서 진보정당을 안 만드냐고 묻고 싶다.

단계적으로 가라고 한다. 난 이 말을 20년째 듣고 있다.
저 위에 있는 질문으로 돌아가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10년 동안에도 왜 저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았는지, 아니 오히려 더 강화되었는지 진지한 고민을 던졌다면 우리는 왜 제자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정당이 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좋은 세상 만들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누구도 위에 적힌 문제들에 대해 진지한 해결을 모색하지 않는다.
단언컨데, 저런 문제들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당/국참당도 해결 못한다.
아니 그럴 의지가 없다. 동네에 나오는 대다수 민주당 의원들을 봐라...
대부분 먹고 살만 해지니까 자리 하나 차지하려고 나와서 1-가, 1-나, 2-가, 2-나 후보들끼리 지역개발 공약 내세우기 바쁘다. 민주당만 해도 돈이나 권력이 걸리지 않으면 지역 조직들이 움직이질 않는다.

'4년만 더 하겠습니다.' '상구라면 ok'(민주당 후보 이름이 박상구였다.)
이런 슬로건을 내세운다. 그냥 보면 한나라당인지 민주당인지 구분도 안간다.

그런 정당들에 왜 우리가 미래를 맡겨야 하나?
물론 정책연대 할 수 있다. 사안별로. 그리고 선거전술 잘못짜면 혼날수도 있고 진보정당 뜻이 좋아도 대중과 괴리되고 대중의 말을 못 알아들으면 혼나야 한다.
진보신당에 화난 마음 이해한다. 애정이 없다면 화도 안난다.
그러나 지금 비난은 그런 수준이 아니다.

그래서 다시 초심으로 가려 한다. 내 삶에 진보정당이 왜 이리 절실했던가?
나만이 정답이라는 생각은 버리고...


2. 뼈 아픈, 너무나 뼈 아픈 기억들.

난 96학번이다. 학생운동 내내 김대중, 노무현 욕 많이 했다. 우리는 시작부터가 민주정권하고 싸웠다.
지금 생각해보니 많은 부분 과도했다. 객기도 있었다.
졸업하고 나서보니 역시 학생 때는 시야가 좁았다는 생각도 든다.
노무현 전 대통령 죽었을 때는 울기도 많이 울었고 생각도 많았다.

그럼에도 모두 진지했다. 그냥 지나가는 한 때의 반항은 아니었다.
학생운동 내내 철거민들하고 싸우다 두들겨맞던 기억들.
구속도 됐었고 국가보안법으로 수배 생활도 1년 넘게 했다.
수도 없이 닭장차에 실려가고 두드려 맞아서 머리 찢어지고...
소위 민주정권 10년 동안 강제철거로 돌아가신 분이 내 기억에만 10명이 넘는데...

민주정부가 10년을 집권했다.
그러다가 정권 놓치고 궁해지니까 용산에 와서 함께 싸우겠다고 떠들던 소위 민주투사들.
난 정동영이 용산에 올 때 거의 토나올뻔 했다.

난 그 역겨움을 넘어서는 방법은 진보정당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늘 비판적 지지를 내어주는 것, 그래서 당선되고 무시당하고 떨어지면 와서 또 빌붙고, 이 아니꼽고 치사한 역사를 끝내는 것 그것은 비판적 지지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주투사들로 바글거리는 170석 거대 여당,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 하나 개정조차 못 시키고, 부자들 이익을 대변하다 지리멸렬 해가고 개발공약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강제철거/정리해고 서민들 고통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것을...너무나 오래 보아왔다.

없는 사람들이 대접받는 유일한 자리가 선거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이 선거 결과에 제일 허탈해하고 그 아쉬운 마음을 여기 와서 분노로 표출하고 그런 마음을 이해한다. 되는 사람 밀어줘서 저 악마같은 한나라당 밀어내야 한다는 그 심정 이해한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제자리를 돈다. 보수정당들이 궁할 때 이용당하고 그 사람들에게 대접받다가 자기들 살만해지면 외면받으며 그렇게 계속 산다.


3. 진보신당의 아픔, 진보의 아픔

며칠째 욕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나는 그 욕을 먹는다. 내 기분이 그렇다. 그 욕이 내가 먹는 욕이라고...
성의껏 이야기하는 사람 열명보다 막말하는 사람 한 명을 찾아 백사람이 막말에 막말을 달고...서로 그런다.
그래서 이제는 집단을 매도하고...
평론가들도 많고, 화풀이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소위 민주주의자, 진보주의자 자처하는 사람들이 무한 복수의 막말을 되풀이한다. 

그것은 진보신당이 어지간히 고립되었다는 뜻이기도 할테고
그 만큼 이번 선거에 대한 외부 평가가 좋지 않다는 뜻이기도 할테다.

겸허히 받아들인다. 그러나 나는 이토록 진보의 문제를 남의 이야기하듯 헐뜻는 사람들이 왜 민주주의를 자처하고 나서는지 모르겠다. 그냥 내가 이기는 게 최고고, 내 편을 안들면 패대기를 치고, 그런게 민주주의인가? 나는 그래도 진심으로 토론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향해 며칠째 계속 썼다. 반성의 글도 쓰고, 그러면서 조금씩 내 주장도 했다.
내 주장을 많이는 안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분노를 읽었고, 이해했고 거기에 이기려들어봐야 상대방 감정만 상할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제 진보정당 운동 자체를 통으로 부정하려 한다.
내가 진보신당에 가입했던 이유, 이런 저런거 다 떠나서 진보정당 자체가 필요하다는 그 믿음 하나. 보수 양당제로는 절대 고단한 이들의 삶이 바뀌지도 않을 것이며, 언제나 고단한 노력을 고스란히 남에게 갖다 바치게 된다는 그 뼈아픈 교훈을 넘어서자는 그 이유. 그런 것들을 통으로 부정하려 한다.

이런 건 진보가 아니다. 이런 건 민주주의도 아니다.
난 사실 선거 끝나고 이런 현상을 예상하고 가슴이 떨려서 며칠을 제대로 못 잤다.
진보정당의 실험에서 숱하게 벌어졌던 일들이다. 대학 때 참 좋은 정당 하나 만들어보자고 열심히 했던 친구들 열에 아홉이 사라졌다. 그들 대다수가 한명숙 씨를 찍고 비례를 진보신당을 찍었다.
진보정당이 필요하긴 한데, 당장 한나라당도 막아야겠고. 그런 고민 속에서 그냥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들로 남는다.

나는 선거운동을 하는 내내 그 친구들과 함께했었던 기억들을 떠올린다.
5명, 6명이 고작인 선거운동원들을 보며...저 친구들이 단 하루만이라도 자원활동을 나와주면 참 즐거울텐데...
진보고 나발이고 즐겁다면 힘들지 않다.

진보는 언제나 가슴 아프지만 마이너스의 정치를 한다.
아주 예민한 일에도 서로 가장 격렬하게 반응을 하고 상처를 준다.

이번 선거가 끝나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진보신당의 깃발을 내릴 수 없다.
더 열린 마음으로, 더 열린 자세로 경청할 것이며 토론할 것이다. 그러나 일방적 매도는 참을 수 없다.

진보신당의 아픔은 진보의 아픔이다.
생각이 너무 많은 밤이다. 그 만큼 더욱 자신을 곧추세우게 되는 그런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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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치, 지방선거 생각 2

1 당연한 분석, 당연한 귀결

 

진보신당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비판적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이 자주 보인 반응.

 

"진보신당을 구성하는 당원들은 훌륭한데 왜 진보신당은 그렇지 않은가?"

 

여기서 훌륭하다는 말은 대략 '열심히 한다', '생각이 건전하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런 착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당이 잘 안된다면 분명 안타까운 일이다.

 

선전전 나가고 자보 붙이고 집회 나가고 그래서 쉼 없이 몸을 굴리는 것이 성실성의 기준이라면, 현실에서는 장렬히 깨지더라도 운동의 대의와 선명한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이 건전함의 기준이 되어 왔고, 지금도 대다수 당원들의 마인드는 그렇다.

인격적으로 구성원들을 높게 평가하고 나서 단체는 그렇지 못하다고 진단하면 나올 수 있는 결론이 뻔하다. 단체의 운영방식을 포함해서 지도부가 당원들의 능력을 모아낼 능력이 부족하고(혹은 의지가 없거나) 이것이 당내 민주주의를 왜곡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결론.

 

이건 너무 식상한 분석구조다. 언제나 뻔한 말은 뼈 속 깊은 반성과 성찰을 방해하고 결국은 또 뻔한 해결책들. 가령 당원들이 평가안을 조직해서 지도부를 성토한다던지, 당원의 역할 확대를 내세운 어떤 새로운 지도부로 교체하는 수순으로 흐른다. 진보정치가 기성정치와 다른 자신만의 매력을 이끌어내지 못한다고 분석을 했는데, 해결책은 언제나 권력구조를 교체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2. 진보정당에게 필요한 것

 

진보정당이 일찍부터 지방선거에 주목한 이유가 무엇인가? ‘생활진보’의 가능성에 주목했기 때문이며, 한 편으로는 기초의회 선거가 기성정치의 벽을 넘어 다수의 당선자를 다수 배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은 선거로 갈수록 양자구도가 약해지니까 그 빈틈을 노려보자는 것이다.

진보신당의 이런 움직임은 개인적인 고민과도 맞닿았다. 사회 진출할 때 쯤 한 번은 느끼는 죄책감은 자신이 도피했다는 되도 않는 설정에서부터 온다. 100아니면 0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무기력. 그런데 이런 낡은 구도를 깬 것은 학생으로부터 시작된 촛불시위였다. 무엇이 더 진보적인가? 혹은 진보적인 삶인가에 대한 환상들이 깨졌고 체질전환을 필요로 했다. 되도 않는 적을 설정하고 혼자 싸우는 사이, 사람들은 그저 피켓을 들고 공연하고 행진하며 마음껏 상상력을 펼친다.

그냥 자기 삶의 조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 것을 쓸 데 없는 죄책감 때문에 모든 것을 손을 놓는 상황. 그러는 사이 세상은 계속 흐르고 진화한다. 10년 전 무상의료, 무상교육 내세웠을 때 ‘이 무슨 유토피아적 발상이냐?’고 비웃던 세상에서 지금은 무상복지를 너도 나도 정책으로 걸고 있다. 무상복지의 원조는 진보정당이다.

 

지금 진보신당에게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하려면, 가장 먼저 생활진보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도 그걸 소화해내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먼저 반성해야 한다. 권력 구조에 대한 고전적 분석만으로 진보신당은 한걸음도 못 나간다. 항상 진보정치에 대한 갈망을 토론하면서, 해결책은 내부정치 공학에서 찾는 이런 사고방식이야말로 가장 손쉬운 길이다.

생활진보는 단순히 선거용 구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반성과 노력 가운데 나온 진보의 새로운 실험이라고 생각하며, 적어도 10년 이상은 이것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으로 활동이 전개되어야 한다고 본다.

생활진보의 구체적인 정책과 대안 역시도 중앙에서 나오지 않으면 스스로 자립하기 힘든 지역위원회와 지구당들. 아주 냉정히 말해 지역을 사고하는 우리의 수준에서는 당선자가 나오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진보신당의 현 상황에서 권력의 집중이 문제가 될 수는 없다. 누구라도 1년만 열심히 하면 지구당 위원장 할 수 있을 만큼, 사람이 절실한 당이고 진짜 아래로부터 민주주의해서 권력구조 바꾸겠다면 그것도 불가능할 리는 없다. 단, 없는 권력을 놓고 아웅다웅하다 판이 통째로 깨지는 게 문제지만...평당원들이 힘을 합쳐 당을 장악해야 된다는 논리는 그래서 지극히 옳은 말이고, 그래서 사실 아무 말도 안하는 말이다.

 

3. 여전히 남는 우리 모두의 고민

 

당내 활력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민해본다. 민주노동당과의 분당 이후 계속된 감정싸움과 소모적 갈등?? 이건 적어도 이 번 선거를 기점으로 거의 사라질 것이다. 민주노총의 지지 문제를 비롯한 노동운동의 약화?? 이 문제 역시 단시일 내에 뭘 어쩔 수 있는 문제도 아닐뿐더러 애초에 진보진영이 단체들의 지지에 힘입어 얻은 표는 거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중앙정치의 실패?? 이건 논란이 좀 있을 거 같은데, 비판할 부분이 있긴 하지만 크게 보면 이 역시 핵심은 아니다.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아예 안 들어갈 수는 없었다. 처음부터 야권연대 안 들어갔어도 욕먹고 들어갔어도 욕먹고, 선거 닥칠수록 광역단체장의 경우는 지지율이 계속 떨어졌을 것이다. 그걸 만회하려고 애쓰는 노력들이 남은 선거 기간 동안 필요하다. 그런데 그 회의 자체에서 뭔 말들이 오갔는지, 진보신당은 어떤 주장을 내세웠는지도 투명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어쨌거나 협상과정에서 지지자들이 불만을 품고 내부 역량마저 떨어진 것은 문제다. 양당구조의 고착화. 이게 우리가 생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그러니까 더 절실히 살아남아야 한다. 새로운 가능성을 남겨두려면.

 

당원들에게 에너지가 없는 게 근본적인 문제다. 나는 그 원인을 여전히 찾는 중이다. 이건 절박한 내 삶의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권력구조에 빠삭하고 언제나 권력구조에서 해결책을 찾는 습성. 먼저 책임을 지고 장렬히 쓰러지는 건 능하지만, 같이 알콩 달콩 사는 건 힘들어하는 내 모습과 진보정치의 현실이 겹친다.

지금 지도부에 대한 성토, 중앙정치에 대한 불신. 사실 이런 것은 대다수 진보신당 응원자들의 관심사항이 아니다. 경험도 많고 머리도 똑똑한데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훌륭한 당원들이 많은데 당은 잘 안되는 게 아니라 훌륭한 당원이 뭔지를 잘 모르겠다. 훌륭한 중간간부들은 많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라, 잠들어 있는 가능성을 깨어줄 사람들이 필요하다. 능력 있는 1인보다 함께 잘사는 다수가 필요하다. 생활진보에 대한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이 필요하다. 노무현과 유시민이란 아이콘 하나로 열광하는 사람들의 엄청난 에너지만큼이나 변화에 대한 열망으로 즐겁고 설레이는 무엇. 하다못해 함께 무언가를 도모하고 있다는 모종의 음모적 연대의식이라도. 그 갈증이 모여 변화를 이끌고, 작은 거 하나부터 손수 계획하고 실천해서 욕도 먹고 기쁨도 먹는 경험이 쌓인다면 그렇게 조금씩 달라지겠지. 여전히 해결은 각자의 열정으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열정을 일으켜 세우려면 고정된 프레임에 매달리는 의식구조의 흐름에서부터 냉정한 성찰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진보신당 게시판을 종종 찾아가서 초기화면을 본다. 35세 이하 솔로에게 전세자금 대출. 보는 순간 ‘야...기발한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좋은 정책을 우리 힘으로 설득할 능력이 없으니 슬픈 일이다. 최소한 그걸 알리기라도 해야할텐데. 그런데 살아서 계속 떠들면 조금씩 된다는 생각도, 요새는 조금 한다.

TV토론 보니까 노회찬 씨가 제일 말 잘한다. 말만 잘하는 게 아니라 준비가 잘 되어 있다. 구체적이고 치밀하다. 그런데 MBC에만 나온다. 그런 절실함, 안타까움, 노원구에서 떨어졌을 때 ‘지못미’를 외치던 그 사람들의 마음. 그걸 움직이는 노력. 노회찬/심상정만 바라보는 건 정말 문제다. 노회찬/심상정씨도 그걸 원하지 않을테다. (심상정씨는 잘 모르겠고 노회찬 씨는 개인적으로 조금 믿는 구석이 있다. 내가 아는 한 훌륭한 정치인이다.) 당원들이 나대면 너도 나도 다 즐거워 할 일이다.

 

최근 사회당이 지지선언을 한 것도 어떤 위기 의식 + 변화의 노력 때문이다. 가치 지향, 이념 지향에서 구체적 정책과 대안으로 돌아선 것.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생활진보를 전면에 내세운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거기서 답을 조금씩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나마 지역운동을 많이 겪어본 사람들은 생활진보의 실체를 더 잘 알고,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후보로 나서는 것. 그게 나에게도 자극이 되고 기쁨도 된다. 때로는 생활 속에서 느끼는 어려움 하나, 역겨움 하나 그런 것과 싸워나가는 게 충분히 혁명적일 수 있다는 생각. 보통 사람들의 보통 욕망 속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끌어내는 노력. 그것이 정치의 유일한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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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치, 지방선거 생각 1

나는 진보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주 절실하게...전제는 여기서 출발한다.

따라서 진보정당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패쓰. 그런 입장에 대해서도 할 말은 있지만

여기서는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1.

나는 진보신당을 지지한다. 진보신당의 어떤 정책이나 어떤 후보를 지지하는 게 아니라,

진보신당을 지지한다는 말은

사소한 실수에도 불구하고 당을 지지하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내 입장은 편파적이다.

비판을 해도 애정을 전제로 깔고, 욕을 해도 변화에 대한 열망을 담는다.

냉소보다는 관찰이,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참여가 더 낫다고 생각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그런 상태다.

 

사적인 이야기로 시작을 하는 것은 입장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치중립성 따위의 말장난은 싫어할 것이다. 그런데 유독 선거나 정당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관조적이다. 남 이야기 하듯 한다. 대다수 사람들이 민주당과 한나라당 사이에서 중립놀이를 하는

것처럼 진보정당들 사이에서 중립놀이를 하고, 심하게는 그 전체를 대상으로 무관심을 표한다.

 

"진보정당이 정신차리고 잘 했으면 좋겠지만 아님 말고..."

 

대체로 이런 식이다. 선거나 정당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의식적인 무효표

행사라든가, 선거에 대한 보이콧이라든가, 정당정치에 대한 거부 역시 그 나름의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말하는 건 말을 거는 태도다. 삶에 영향을 주는 사소한 일들에도 뜨겁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선거와 정당에 보이는 무관심과 시크한 태도는 어디에 기인하는가? 정말 고민스런 주제다.

 

시크한 척 한다면 그것은 상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실망과 좌절을 나름의 내공으로 극복한

방식. 정말 시크한 것이라면 매력없다.

이런 시크함은 정치라면 다 관심없다고 말하는 태도 만큼이나 무지하고 비겁하다.

"깨어 있는 시민이 민주주의의 힘이다."는 노무현의 말에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며,

냉소할 게 아니라 왜 그 이상의 설득력을 갖춘 언어가 없는지를 고민할 일이다.

정당으로 얻을 게 별로 없다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 얻을 게 있긴 있다는 뜻인데...

딱 그만큼만 지지하고 선택하고 관심을 가지면 될 일이다. 정당이 아예 무용하다고 말한다면

그런 비판은 어디에서 뜬구름 잡는 소리쯤으로 흘려넘기고 말 일이다.

 

2.

 

그래서 당원이 되었고 지방선거에서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었다.

그런데 아는 사람이 있어야지...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많을텐데, 강서구에도 진보신당 후보가 거의

없다. 강서구 비례대표 서울시의원 후보 한 명과 방화동 기초의원 후보 한 명, 도합 2명이 전부다.

내가 사는 곳은 까치산역, 화곡8동이다. 이 동네 사람들은 진보신당을 거의 접해본 적이 없다. 민주노동당

플랭카드는 종종 보인다.

 

지방선거 때 명함이라도 같이 돌려주려면 인사라도 터야 할 거 같아서 방화동 기초의원 후보 박현숙씨

선거 사무소 개소식에 갔다. 그 곳은 박현숙 씨가 활동을 해오던 공간이기도 한데 여기 저기 널부러져

있는 선전물, 개소식에 참석한 사람들의 면면을 통해 박현숙 씨가 그간 활동해 온 궤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지역에서 학부모 운동과 환경 운동을 열심히 해 온 거 같았고 선거 전략 역시 그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런데 안타까운 점은 선거 이미지와는 달리 개소식 내내 느꼈던 후보의 이미지는 체 게바라처럼 강한

혁명 전사였다. 흡사 대학생 때 메이데이 티셔츠를 방불시키는 단체티(체게바라와 박현숙씨 사진을

합성한 이미지가 전면에 박혀 있고, 뒷면에는 무슨 공산당 선언급의 무시무시한 말들로 도배가 되어

있어서 다 읽기도 벅찼다. 다행히 선거티는 아니고 예전에 찍은 티셔츠인듯)도 그랬고, 영상물에

나오는 후보의 이미지도 그랬고, '박게바라'라고 굳어진 후보의 별칭이 그랬다.

 

친구가 영등포 당원인데 그 친구의 말을 들어보면 영등포 구청장 후보도 따뜻한 생활정치의 이미지를

강조하는데 정작 후보는 웃는 얼굴이 영 어색하다고 한다. 그나마 포스터에 나온 얼굴이 제일 밝은

얼굴이라고...

 
그런데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서 가능성을 본다.

 

3.

 

이것이 현실적인 진보정당의 고민이다.

 

 

"야권연대와 진보대연합 사이에서 오락가락 하는 사이, 진보신당만 피봤다. 선거전략이 없다."는 비판에

공감한다.

 

그러나 지지율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이건 언제나 결과적인 이야기다. 야권연대에 참여했다가

양자 대결구도에 묻히고, 그나마 진보정당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줬다는 말에

공감한다. 그러나 그것이 지지율과 어떤 밀접한 연관이 있는지 분석하는 건 내 능력 밖이다.

진보정당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동시에 야권연대에 엄청난 기대를 갖고 있다.

대대로 진보후보가 받은 표들을 생각하면, 지역에선 어떨지 몰라도 중앙 정치판에서는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한다. 주위에 아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이런거다.

 

"한명숙과 유시민이 당선되는 동시에 노회찬이나 심상정이 10%쯤 나오면 좋겠다."

 

한나라당이 졌으면 좋겠고, 진보정당도 조금 컸으면 좋겠고 이런 이중적인 심리를 가진 사람이 많은데

현실에서 진보정당이 표를 너무 많이 가져가서 한나라당이 되면 어쩌나 하는 이중적인 고민을 한다.

그래서 이해하는 면이 없지는 않다.

그래도 이게 20년간 반복된 레퍼토리인데 이제는 분명한 선택을 할 때가 아닐까?

선거는 어차피 표싸움이고 현실정치의 최고 이벤트다. 현실이 암담하고  우리가 힘이 부족하니 봐달라는

말은 정당이 할 말은 아니다.

 

그런데 협상 테이블에 나간 것 자체를 욕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예 정치 자체를 하지 말자는 이야기에는 동감할 수 없다. 여론이 그럴 상황이 아니지 않았나?

여론과 무관하게 갈 길을 가는 것도 정도껏이지...

오직 선명한 입장만이 선이라는 엄숙한 도덕주의는 사실상 현실정치는 똥통이라 나는 관심없어

라고 말하는 거랑 똑같다. 그래서 현실정치에서, 현실적인 정치세력이 되지 말라는 말과 같다.

진보정당은 언제까지 이상만 먹고 살아야 하나? 현실 정치에서 한 일도 많고 할 수 있는 일은 더 많은데...

 

 

 

"선거 이후가 중요하다. 진보신당이 노심당을 넘어서려면 평당원 민주주의가 회복되어야 한다."

어느 정도 애정이 담긴 비판이고 건강한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비판엔 문제가 많다. 노회찬/심상정 VS 일반당원 이라는 대립구도는 너무 불편하다.

조선일보 기념식 참가건, 야권연대 참가/불참 등  노회찬 후보에 대한 말이 많은 건 사실이다.

근데 그건 게시판에서 떠드는 얘기고 내 심정은 노회찬에게 과도한 권력이 주어져서 문제인 게

아니라 노회찬 마저 무너지면 어쩌나 하는 심정이다.

 

존재감도 별로 없는 진보신당이 여전히 언론에 나오는 건

노회찬, 심상정이란 자산 때문이다. 그들이 잘했다 못했다 평가와 별개로 스타 정치인이 평당원

민주주를 막고 있는 게 전혀 아니다. 평당원 민주주의가 활성화 되어야 하는 건 맞는데

그게 대립항이 없다는 게 더 골치아픈 문제다. 촛불시위 때처럼 데모 아니면 활력이 살아나지 않는

이 관성은 대체 뭘로 극복해야 하는 건가? 이건 내 문제이기도 하다.

 

덧붙여 스타 정치 시스템 자체에 혐오를 갖는 건 이해하지만 너무 답답하다. 노회찬, 심상정, 강기갑

같은 스타 정치인이 생긴 것은 진보정당의 성과다. 그래서 스타 정치 시스템이 뭔가를 왜곡하면 그 점을

비판해야지 왜 그들이 유명해지는 것 자체가 문제인가? 이건 마치 강기갑이 개그 소재로 쓰인 것

자체를 불편해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개념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으나

뭔 별나라 존재처럼만 여겨지던 진보정치인을 일상의 영역으로 끌어내려서...

오히려 대다수 당원보다 가장 앞서 있는 건 노회찬이 아닐까 하는 이 기분 씁쓸하다.

 
4.


노회찬과 진보신당은 진보정치 전체의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진보신당이 잘 되면 좋은데 아님 말자는

식으로 나는 편하게 생각할 수가 없다. 진보신당이 맛이 가고, 그 진보신당에서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이

맛이 가고, 진보신당을 열심히 지켜보던 사람들이 맛이 가는 그런 상황은 생각만해도 갑갑하다.

그 소중한 자산들이 다 사라지고 나면 이 척박한 상황에서 누가 또 그 많은 일들을 해내나?

그 소중한 에너지와 열정들이 안타깝다.

 
보수 정치인들도 싸움을 한다. 그리고 치고 박는 와중에 누군가는 쓰러지고 누군가는 성장한다.

그러나 보수 정치 전체의 이해관계를 뒤엎지는 않는다.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해야지...

진보신당이 공공의 자산이란 생각에 변함이 없다.

 

 진보정치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완전무결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도덕적 엄숙함으로 무장한

비판을 받아들일 수 없다. 오지 않는 미래를 끌어다 현실을 비판하는 것은 결국 현실에서 아무 것도

하지 말자는 말이다. 그러니까 늘 이 세상의 속물성이 역겹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 순간 자신은

천상의 세계로 올라가서 그들을 내려다볼 수 있겠지만 그 현실은 영원히 시궁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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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론

1.

 

나이를 가지고 평가당하는 것은 싫어도 남을 비판할 때는 나이를 들먹이는 게 꽤나

 

효율적이다. 으레 상상하는 30대의 모습, 그렇게 되어가는 게 너무 싫었던지 나는 무던히도

 

관습에 저항했다. 그러나 한 편으로 남을 씹을 때는 나이를 자주 들먹였다.

 

성인 포비즘 같은 게 있는 나로서는 쉽게 고치기 어려운 언어 습관 가운데 하나다.

 

아주 작은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강의실 들어가서 진보정당을 홍보할 때마다 쓰던 말이,

 

'이제 낡은 정치는 몰아내야 한다. 나이든 사람들이 말하는 고리타분한 이야기 말고 우리가 직접

 

정치를 해야 한다.' 뭐 이런 내용이었는데... 마침 내 말을 듣고 있던 한 사람에게, '나이로 사람을

 

평가하는 건 옳지 못하다. 나이든 사람도 사상이 모두 다르다.' 는 맥락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때 난 기분이 상했지만 한마디도 못했다. 맞는 말이니까...

 

그 뒤로 나는 어법을 조금 바꾸었다.

 

 

2.

 

학자들도 세대론을 좋아하는데  [88만원 세대]에서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까지 우석훈씨도 그렇다.

 

젊은 세대에게 희망을 주고자 하는 진정성은 십분 이해하나 내용은 그닥 새롭지 않은 느낌이었다.

 

누군가의 지적처럼 30~40대가 바라보는 20대란 "아직 투쟁 수단을 찾지 못한 채 파편화된 개인"

 

이거나 "정치에 무관심한 채 소외된 삶의 동기를 된장 지향으로 채우려는 소비자"일 뿐이다.

 

이런 계몽적인, 즉 그들을 외부에서 훈계하려는 태도가 다분히 반감을 불러 일으키기는 하지만...

 

그러나 나 역시 이런 분석의 도구가 너무나 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확실히 이런 분석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타인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마음 편한 해석

 

방식이긴 하다. 그 분석은 무엇보다 해석의 언어를 찾지 못해 불안해하는 자신을 위로한다.

 

"아직 진실을 모르는 것이야...진실을 안다면 저들도 일어설 것이야."

 

이런 식의 자위를 도처에서 목격한다. 한겨레, 시사인, 오마이, 프레시앙, 진보넷 등등... 글읽기가

 

지나치게 편협한 것도 이런 식상함을 더한다.

 

"....4대강, 세종시, 미디어법, 용산, 반값 등록금, ...입만 열면 뻥인데 언제까지 사람들을 속일 수 있나

 

보자. 언젠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스스로 무덤을 판 꼴이 될 것이다. 6월에 (지방선거에서) 보자..."

 

이런 식이다. 자기 위로의 어법은 비교적 단순한 메커니즘을 따라 작동한다.

 

지배세력이 뻥을 치고 있다. -> 사람들은 사탕발림에 속고 있다. -> 그러나 곧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 각성한 사람들이 지방선거에서 복수할 것이다. ->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의는 그렇게 단순한 거 같지 않다. 아니 정의는 단순한데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이해관계가 그렇게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선거가 정의를 배신한 경험을 한 두 번

 

겪었는가? 그런데도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저런 단순한 자기 최면에 기대고 있는걸까?

 

이해가 간다. 아주 가끔은, 나도 정신분열을 일으킬까 걱정스럽다. 그러나 선거는 여전히 권력을 둘러싼

 

게임의 요소가 너무 강하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아주 단기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표를 행사한다.

 

 

3.

 

학원강사를 하고 나서 수많은 어른들을 만난다. 대치동 엄마로 표상되는 그 세계는 어느덧 성큼

 

내 일상이 되어 있다. 그들을 만나며 나는 일상적인 분열을 겪는다.

 

대놓고 대치동 엄마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보다,

 

"보수 부모는 아이가 일류대 학생이 되길 소망한다. 진보 부모는 아이가 진보적인 일류대 학생이 되길

 

소망한다."고 김규항이 지적했던 그 진보 부모들이 분열을 더한다.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모순적인 가치들 사이에서 이들의 뇌구조는 난맥상을 이룬다.

 

이것은 도덕이나 상식 수준 문제 이전에, 권력의 문제이며 경제의 문제이다.

 

넘쳐나는 20대 분석에 대한 반감까지(20대 분석의 주체는 20대가 아니므로) 더해 그들을  욕하고 싶을

 

때가 있으나, 어쨌든 나이로 일반화시킬 수 없다는 '세대론'에 대한 거부감이 늘 생각의 진전을 막는다.

 

한나라당에 대한 극도의 반감, 20대(아마도 나도 크게 보면 그 부류로 인식이 되는 것 같다. 혹은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존재쯤.)에 대한 우월감. 유기농 식단과 높은 경제력.

 

왕성한 지적 소비. 자녀에 대한 엄청난 교육열. 예민한 정치의식과 각성. 권력욕과 학력.

 

"그래도 우리 때보다는 쉽게 운동했어. 우리 땐 학내에 경찰이 상주했으니까.."

 

이런 말을 들을 때는 마음이 조금 썼다. 냉소수치 급상승.

 

불꺼진 건물에서 밤새도록 혼자 수백장의 선전물을 만들고, 백명도 되지 않는 사람들로 도로에 나섰다가

 

대열 사이를 쓩쓩 지나가는 차들에 목숨이 위태롭기까지. 무엇이 더 힘든 일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옛날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는 또 다른 추억을 만들고, 자기합리화를 위한 좋은

 

도구가 될 뿐이다. 현재는 현재의 삶을 고민해야 한다.

 

 

그 모든 언어가 과거에 대한 향수일 뿐이라 공감이 안 갈 뿐이다. 20대에 대한 시선이 자신의 문제가

 

아닌 남의 문제를 대하는 외부인의 시선이기에 공감이 안 간다. 

 

완성된 자신은 더 이상 분열하지 않는데 남더러 분열하라고 자꾸 주문한다. 도덕적 우월감 따위도 우습다.

 

무엇일까?? 비판하되 계몽하지 않고...분열하되 냉소하지 않고...바라보되 저울질하지 않는 시선이란...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을 존중한다. 그들 만큼은 아니어도 항상 그 마음과 시선을 느껴보고자 노력한다.

 

동시에 어떤 삶이든 희생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이며 즐거움과 분열과 고민의 원천이라 믿는다.

 

세상 모든 이에게 저마다의 사연이 있음을 알고, 그러나 그럼에도 평가는 해야 하고 비판도 해야 하고

 

그 모든 게 상대적으로 등가의 삶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떤 완성된 밑그림보다는, 그냥 자신의 욕구에 충실한 그런 한 해가 되기를.

 

그래서 머리도, 몸도 좀 더 가벼워지고 바쁘게 움직이는 한 해가 되기를.

 

 

한 살 더 먹으며 든 생각이다.

 

역시 애는 절대 갖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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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1.

2002년 대선 때 난 구치소에 있었다. 대선 당시까지는 재판 중이었기 때문에 구치소에서 부재자 투표를 했다.

그 때 나는 사회당 당원이었고 사회당 후보를 찍었다.

득표율 0.1%였던가? 땡중보다 표가 안 나온다며 방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샀고 차라리 민노당 후보를

찍으라며 여기저기서 권하던 분위기였다. 머리 속은 다른 일로 복잡했던데다 구치소 안에서는 대선의

열기를 느낄 수가 없었다. 그래도 기억나는 것 하나는 노무현의 대선 광고였다. 존 레넌의 이매진 노래에

맞춰 나오는 그 광고에 눈물을 훔쳤다. 그 뒤 5년 지금 말고는 노무현이 내게 주는 의미는 크지 않다.



2.

학생운동을 할 때 후배가 물었다.

"운동권들은 김대중을 자본가의 하수인처럼 묘사하는데 정말 그런 거냐고?"

대답했다.

"김대중 개인은 아마 매우 멋있는 사람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반할 수도 있다. 사형까지 받은

사람인데 어지간한 사람보다 엄청난 내공과 깊이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노무현도 그랬을 것이다. 매우 강하고 매력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었다.

돼지저금통으로 선거자금을 모으고, 행사장을 점거한 시위대에게 '너무 서두르지 마시고

천천히 얘기하세요. 다 들어 드리겠습니다.'라고 배려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전례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는 말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은 그 밖에 없을 것이다.

''70년대 후반부터 북한보다 많은 군비를 썼는데 여태까지 자기 나라 작전권도 없으니 여태까지

이 나라 군대는 뭐했냐...이건 직무유기 아니냐?' 고 기득권을 정면으로 면박주고 그래서 적으로

돌리는 행위도 서슴치 않는 대통령은 그 밖에 없을 것이다. 분명 이명박과는 차원이 다른 정치인이다.

그래서 노무현의 죽음 앞에서, 새삼 반추할 그 무엇이 내게는 없다. 원래부터 환타지도 없었고

그렇다고 그를 몰라본 것도 아니다.

노무현과 노무현으로 대표되는 정치는 다른 것이다. 당시 이게 내 생각이었고 그래서 멋진 사람

이전에 멋진 이념과 멋진 정치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3.

사회당은 가진 자원이 너무 적어서 언젠가는 나도 후보를 하겠지 생각했었다.

당시 내가 가진 환타지는 당당하게 돈없는 자들의 정치를 이야기하며 하고 싶은 얘기 다하고 처절하게

낙선하는 거였다. 내가 가진 약점, 내가 가진 정체성으로 정치를 하는 것. 그것이 가장 덜 비겁하고 정직한

정치였다.

노무현은 감동을 아는  사람이다. 자신이 경상도에서 민주당의 간판을 달고 지역주의 타파를

외쳤다는 것. 그는 그가 가진 가장 큰 약점을 자신의 언어로, 정치로 발전시킬 줄 아는 몇 안 되는

착하게 영리했던 정치인이다. 사람들은 그런 패배자를 좋아한다. 그리고 끝내 그가 당선되었으니...



평화주의를 자신의 언어로 선거에 출마하는 장면을 몇 번 상상한 적이 있다. 이것은 정치적 죽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평화주의는 일상적인 정치 영역의 언어로는 해결할 길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고... 현실 정치에 대한 무력과 환멸은 도를 넘어서 때로 자신을 공격한다.

사회당의 분열 이후 내 인생에서는 '정치'라는 단어가 실종됐다. 5년간 모든 선거에서 투표를 하지

않았고 '정치=비겁합=냉소'라는 코드가 너무 강력하게 작동해서 한 동안 신문 정치면조차 보질 않았다.

병역거부는 이런 냉소를 더욱 부채질했다.

그래서 반국가, 비국가적인 사고들이 자라났고 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 앞에서 늘 도피만 꿈꿀 수는 없었지만. 점점 오타꾸화 되어가는 생활.



4.

학원 강사들끼리 모여서 점심을 먹고 수다를 떤다. 몇몇은 사람들의 분노가 언제 터질지 그것밖에

관심이 없다. 조문행렬 속에서 이명박에 대한 분노 밖에 읽어내지 못한다. 또 한 사람은 수업 내내

근조 리본을 달고 다녔다. 남은 한 명은 한국인들에게 여전히 임금님을 모시는 듯한 권력의식이

남아 있어 불편하다고 한다.

저마다 생각이 다르고 조문에 나서는 이유는 다르지만 나는 그 거대한 행렬 속에서 끝없는 자기 고백을

본다.

내가 볼 때 저 행렬은 온전한 자기치유과정이다. 자책감, 미안함, 분노, 그리움, 애틋함...그 모든 자기

감정을 스스로 주어삼키고자 조문에 나선다.



그리고, 이것은 내 고백이다. 


이런 국면이 올 때마다 자신의 언어를 갖지 못하고 방황하는 진보진영. 광우병 사태 때도 그랬고.

노무현 관련 기사를 클릭. 울면서 속으로는 냉소하고 있는 자기분열.

이 분열이 내 안에도 있다. 나는 이 상황을 받아들일만한 내 언어가 없다. 언어 이전에 감정이 먼저 온다.

그 감정을 인정한다. 사람은 정당정치의 부품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죽음은, 그것도 자살은 너무 애틋하다.

노무현은 그나마 정치인 중에 내 정서에 가장 잘 맞는 사람이기도 하다. 솔직하고 화끈하고 정이 많고...


그러나 남는 자에게 냉혹한 내일이.  일시적인 거품은 걷힐 것이고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손익계산서를 따져볼 것이다. 지역주의 타파, 전국정당화, 휴머니즘과 민주주의. 이런 것에 대해

사람들은 좀 더 생각해보게 될 것이고 민주당의 지지율이 올라가고 이명박의 지지율이 조금 떨어지고

다음 총선과 대선에 미칠 변수가 어쩌고 저쩌고...그러나 여전히 가장 심각한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을 것이다. 자기분열 양상을 보이는 30, 40대가 이명박을 지지했던 이유. 경제적 욕망은

늘 사람들을 분열적인 양상으로 몰아갈 것이고....우리 안의 이명박은 또 다시 작동할 것이다.

술자리에서 '노무현씨는 아마도 파병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위의 관심법으로

그를 향수하면서 아파트 값이 오르기를 바라는 분열 양상은 계속될 것이다. 




남는 건 결국 내 문제다. 나의 언어. 나의 정치. 나의 일상.

이제부터는 그 문제를 생각해봐야겠다. 그리고 아주 작은 시작으로 나도 이제 냉소를 걷어치우고

한 사람의 몫을 해야겠다.

냉소도 지겹다. 상처입은 자들의 피난처는 그 나름대로 안락함을 제공하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자기연민이 도가 지나쳐 상처를 추억하고 지난 이야기를 각색하기 시작하는 순간.'  지금이 여기를

빠져나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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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대체복무 시행 뒤집나?

**오마이 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이명박 정부, 대체복무 시행 뒤집나?

 

 지난 2007년 9월, 국방부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게 사회복무제를 허용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방인력 개선안을 발표했다. 당

 

시 병역거부 문제가 워낙 뜨거운 논란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에 국방부의 발표가 느닷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써왔던 병역거부자들과 그 지지자들 및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열린우리당의 탄생에 기대를 모았던 진보적 지지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노무현 정부가 퇴임 전 마지막으로 쏟아낸 유일한 성과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유일한 성과마저 위기에 처했다. 지난 4일(금) 정부 관계자의 “종교적인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기피하는 사람들에게 대체복무를 허용하는 문제는 아직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어 앞으로 국민적 여론을 수렴하기 위한 절차가 필요하다”는 발언이 연합뉴스에 오르자 관계자들은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분주했다.

 이명박 정부는 병역거부에 대한 공식적 견해를 밝힌 바가 없는데다 사회복무제도는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사회복무제도 시행을 알리는 공익광고가 이미 극장에 올랐다. 이명박 정부가 보여준 지난 4달의 행보를 볼 때 대체복무 시행을 뒤짚을 가능성은 충분했지만 모두 설마설마 했다. 

 그런데 그 우려가 드디어 현실로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6년간 어렵게 시민들을 설득하여 제도적으로 정착되기 직전에 이른 대체복무를 본격적으로 흔들기 시작했다. 정부 관계자는 “국방부가 작년 9월 대체복무 허용 방침을 발표했을 때도 사실상 국민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면서 "국민 여론이 수렴되지 않으면 대체복무 자체를 시행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은 사실상 이명박 정부와 국방부가 시간을 질질 끌며 여론을 악화시킨 뒤에 대체복무 시행을 부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수정하겠다는 암시로 들린다.

 

UN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 유엔 권고마저 무시하고 막 나가나??

 

 유엔인권이사회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가장 기본적인 시민의 권리 가운데 하나로 못 박고 있으며, 지난 2006년 12월에는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라고 한국 정부에 권고한 바 있다. 이어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이어졌다. 노무현 정부가 사회복무제를 도입한 배경에는 이와 같은 국제사회의 압력이 크게 작용했다. 이 같은 맥락을 고려할 때 대체복무제도의 재검토를 시사하는 발언이 나온 시점이 절묘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한국을 방문 중이었으니 말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6일 안병욱 국가인권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국가별 인권검토(이하 UPR)'의 이행을 촉구했다. 당연히 여기에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보장과 대체복무제도 도입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지난 5월 제네바에서 열린 UPR에서 한국 정부를 대표해 출석한 국방부 인권팀장은 대체복무 관련한 슬로베니아 대표의 질문에 “한국 정부는 작년 9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시민 대체복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이 새 계획을 시행하기 위해서 한국 정부는 현 병역법을 개정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한국 정부는 올해 국회에 개정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답변하였다.

 결국 정황상 이명박 정부가 국제사회와 유엔, 그리고 한국 시민들을 상대로 말도 안되는 사기를 치며 눈치를 살피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당연히 이와 같은 한국 정부의 이중적 태도는 반 총장을 당혹스럽게 한다. 반 총장은 지난 6일, “한국의 국가인권위가 현재 아시아태평양국가인권기구포럼(APF)과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부의장을 맡고 있는 등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UPR 실행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인권을 선도하는 모범국가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UN사무총장을 배출했다고 자랑스러워 하면서도 UN이 정한 기본권을 무시하고 권고사항조차 이행하지 않는 한국 정부의 부끄러운 현실이다.

 

 

 

 

시민사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명박 정부에 대한 실낱같은 기대가 배신감과 분노로 바뀐 지난 주말, 시민사회도 한국 정부의 이중적 태도를 발빠르게 비판하고 나섰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지지자하는 시민들은 지난 6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안병욱 국가인권위원장이 만난 하얏트 호텔 주변에서 침묵 시위를 전개했다. 참가자들은 UN사무총장을 배출한 한국에서 이명박 정부는 UN권고도 안 지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근조 인권'을 상징하는 국화꽃과 검은 옷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이어 지난 7일(월요일) 참여연대 지하 1층 기자회견실에서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 주최로 정부의 입장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

 첫 발언으로 나선 임종인 전 국회의원(대체복무법안 발의자)은 지난 시절 힘겹게 쌓아온 노력이 한 순간에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며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이어 두번째 발언자로 나선 나동혁(병역거부자, 1년6개월형 선고 후 2005년 9월 출소) 씨는 '자신이 재판을 받던 2003년처럼 상황이 불안정해졌다.'며 대체복무에 기대를 걸고 재판을 연기 중인 수많은 청년들이 또 다시 '감옥에 가야하는 위기에 처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으며, 이어진 발언에서 김수정 변호사(민변, 병역거부자 다수 변론)는 '이제 더 이상 내 손으로 변론한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가지 않을 줄 알았는데 또 다시 수감자를 만들어야 하느냐?'며 'UN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의 정부다운 태도를 취하라.'고 주문했다.

  이어진 종교계의 발언에서 김정대 신부(천주교, 한국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는 '천주교 교리상 천주교 신자가 병역거부를 선택할 수 있으며 이 경우 대체복무제도가 주어져야 한다.'면서 이 문제가 비단 특정 종교인들의 문제가 아님을 강조했다. 또한 천주교 자체의 노력을 통해 내부에서 병역거부에 대한 인식이 크게 개선되었음을 강조했다. 다음 발언자로 나선 정진우 목사(한국기독교 장로회, 서울제일교회)는 '이명박 정부가 실용을 강조하는데 해마다 수백명의 젊은이를 감옥에 보내는 게 실용이냐, 대체복무를 시키는 게 실용이냐?'며 이명박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끝으로 발언한 이석태 변호사(연대회의 공동집행위원장)는 '국제사회의 압력 때문에 절대 대체복무를 되돌리지는 못할 것'이라며 이는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물론 사법부까지도 곤경에 처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민주주의와 인권 외면하는 이명박, 과연 대체복무 철회라는 악수를 둘 것인가?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관측으로 이명박 정부가 대체복무를 철회할 가능성은 반반이다. 국제사회의 압력도 압력이지만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향하는 한국 정부가 대놓고 계속해서 병역거부 문제를 외면하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그 동안 보여온 행태를 볼 때 시민들로부터 고립을 자초하면서까지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기 때문에 대체복무 역시도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다는 불안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과연 이명박 정부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로부터 독재정권이라는 오명가지 뒤집어쓴 이 정부에 대한 비판은 다방면으로 끊임없이 확대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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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조약도 안 지키는 한국

노무현을 그나마 좋게 생각했던 유일한 업적. 병역거부자에게 대체복무제를 허용하겠다는 약속.


물론 이 마저도 징벌적 성격이 너무 강한데다가(복무기간 3년+고강도 노동+내무반 생활) 표현이 애매해


종교적 병역거부자만 차별적으로 인정해줄지도 몰라 내심 불안하던 판국에...


역시나 얼굴만 봐도 토가 나올 거 같은 이명박이 또 일을 치나 싶다.

대체복무제도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래서 가만 있을 수 없어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7월 6일 일욜오전 국가인권위 인권홍보대사들과의 간담회를 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현장을 급습했다(??) 그냥 조용히 가서 침묵 시위했다.

 

 

남산 하얏트호텔 건물 앞으로 들어가는 길.

 

 

우리의 컨셉은 장례식. 인권은 죽었다.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 그러면서도 유엔의 권고는 지키지 않는 이중적인 나라.

반기문이 한국이라 자랑스럽냐? 한국이 UN규약도 안 지키는 건 어떠냐?

 

 

 

병역거부를 하고 실형을 선고받은 후 감옥에 다녀온 병역거부자들. 흠...의민씨는 감옥 생각하기 싫다고 해서  저 피켓을 줘야 하나 고민했다. 그래서 뒷면에 다른 구호를 적었으나...고맙게스리...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한 것은 대체복무제도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다.

 

 

 

 

 

 침묵시위를 하는동안 경찰과의 협상을 담당했던 나. 왜 혼자 웃고 있었을까??

 

호텔측과 경찰은 사유지에서 하면 안된다고 나가라고 그랬다. 어차피 반기문은 안에 들어가있어서 보지도 만나지도 못하기 때문에 정문 밖으로 이동 중. 정문 밖으로 나오자 마자 역시나 이번에는 집시법 위반이라고 해산하라고 하고...최대한 버티는 게 컨셉이었는데 그렇다고 연행은 안 될 거 같고. 처음보는 사람들도 있었던데다 미리 토론하고 준비된 집회가 아니었기에 최대한 시간 끌다 끝냈다. 열심히 경찰과 시간을 끌다가 여러 차례 해산 경고가 있고 메가폰까지 뽑아들자 그 때 자발적으로 해산했다. 덕분에 형사들의 집시법 강좌만 신나게 들었다. 계속 떠들라구요~~ㅋㅋㅋ 개무시...개무시...

 

 

침묵 시위는 마치고 돌아가며 일인시위 하고 마무리했다.

 

이 문제 얼마든지 정부가 악용할 수도 있고 자기들에게 여론을 유리하게 몰아갈 수 있다. 그 만큼 여전히 대한민국 사람들은 군대 문제에 민감하고 병역거부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 강하다.
그러니까 노무현 정부 때 미진 하나마 여론을 50 대 50까지 끌어내기 위해 대체복무제도가 미흡해도 긍정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은 좀 불안하다. 개념없는 대가리에 이런 어려운 문제를 이해할 수 있을런지...80%가 반대를 해도 소고기 협상은 밀어부치시는 그 추진력. 대체복무는 어찌하여 국민여론을 봐가며 하겠다고 바로 꼬리를 내리시는지...에라 씹탱구리...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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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참가 후기

 >> 촛불시위의 방향을 두고 말들이 많다. 성공이냐 실패냐는 저마다 판단이 다를 것이다. 내 생각에 고등학생들이

조중동의 적이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미래는 조금 밝아졌다.

 

 

>> 촛불집회에 가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깃발을 먼저 보게 된다. 여전히 깃발은 가장 단순명료한 정체성의 표현처럼

느껴진다. 아고라의 깃발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 번 촛불시위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깃발이다.

 

>> 허허...보기만 해도 든든하구리.... 

 

 

>> 요건 조금 심정을 복잡하게 만든다. 군인이 우리를 지켜준다는 발상...그닥 맘에 들지 않는다.  

 

 

>> 시사인답다. 정기구독한 게 아깝지 않다. 이 번 촛불시위 덕분에 한겨레는 5배, 경향은 15배 정기구독자가 늘었다고

한다. 시사인도 많이 늘어야 할텐데...그것으로도 촛불시위 의미는 충분하다. 조중동/문화/SBS 완전 박멸. 

 

 

>> 국민대책위가 걸어놓은 사진. 물대포를 맞으면서도 팔짱을 풀지 않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울컥...감정이 받쳐오른다. 

 

>>촛불시위 반대 1인 시위자들을 둘러싼 사람들. 야유와 조롱이 계속된다. 돈 얼마 받고 나오는 거냐면서 조롱의 뜻으로

동전을 던진다. 한 고등학생이 곧바로 받아친다. 이들을 비판하는 글을 즉석에서 작성 중이다. 자기 생각을 바로 바로

표현할 줄 아는 용기와 능력. 멋져부러~~

 

>> 쇠고기 협상과 광우병을 풍자하는 만화들. 늘 소를 괴물로 묘사하는 그림이 좀 불편하다.

 

 

>> 딱봐도 강풀만화라는 게 티가 난다. 손을 자른 그림은 조금 끔찍하다.

 

 

 >> 촛불집회에 참가한 민주당 국회의원들. 참 깝깝하겠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등신들.

 

 

>> 다양한 텐트. 대운하도 꼭 막아야할텐데...

 

 

 

>> ㅋㅋㅋ...쥐랑 소가 좀 불쌍하기 하지만 증말 웃겼다. 촛불시위에서 많이 웃었다. 그래서 집회가 즐거웟다.  

 

 

>> '소통=소와 통하였다' 는 2행시에 또 한 번 웃었다.  

 

 

 >> 이 번 촛불시위 때 제대로 뜬 칼라TV. 최현숙 씨와 정태인 씨가 시청 광장에 부스를 차리고 생방송 진행 중.

 

 

>> 이 번 촛불시위를 보면서 놀란 게 여러 가지 있지만 조중동 광고 업체 불매운동에 가장 놀랐다. 늘 주장하지만 한 번도

실현될거라 믿어본 적이 없는 그냥 구호같은 거였는데...현실이 될 줄이야. 내 머리로 이해하는 세상은 늘 한계로 가득 차

있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 조중동이 당황해 하는 꼴을 상상하면 즐겁다.

 

 

>> 에휴...전경버스랑 컨테이너 박스를 보면 이명박을 보는 듯 답답하다.

 

 

>> 너무 유명해진 패러디 포스터들.

 

 

이 번 촛불집회에 몇 번 참여하긴 했지만 대부분 지켜만 보았다.

다 찬성하는 것도 아니고 더러 비판적인 면도 있지만 역시 촛불집회를 긍정하고 있다.

 

1. 너무 재밌다. 집회장 자체가 역동성 그 자체다.

2. 맨날 내가 하면서도 실현 가능성을 믿지 않았던 일들이 실현되는 모습을 보았다.

3. 많은 사람들이 조중동의 적이 되었다.

4. 많은 사람들이 한나라당의 적이 되었다.

5. 진보정치의 가능성이 열렸다.

6. 직접행동과 비폭력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 보여주었다.

7. 수많은 청소년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8. 집회장에서 누나랑 동생과 난생 처음 한자리에서 만났다. 끈끈한 연대의식 형성.

 

이 외에도 너무 할 말이 많지만 여기까지...자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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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모임 후기

책읽기 모임 후기 (Written by nadong)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행사 장소나 행사 방식을 생각했을 때 가장 적절한 규모로 모임이 진행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3시간 가까이 진행된 행사였는데 쉬는 시간도 필요없을 만큼 참가자 모두 진지했고 재미도 있었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던 자리였습니다.

 

우선 문승숙, 박노자 씨가 30분씩 돌아가면서 군사주의를 주제로 각자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

문승숙 씨는 주로 군사주의와 여성성을 주제로 이야기했습니다. 군대가 남성성의 형성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데, 남성성이라는 것은  여성성의 상대적 개념이기 때문에 결국 군대가 여성성의 형성에도 엄청난 영향을 주는 것이다는 주장. 이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KBS '신고합니다'란 프로그램을 예로 들었습니다. 군대가 상징화시키는 여성의 이미지란 딱 두 종류, 즉 어머니와 창녀로 나뉜다는 것이죠. 성적으로 완전히 무성화된 어미니는 국가=가족=지켜야 할 대상이란 등식을 성립시킵니다. 어머니를 대할 때 군인은 의젓하고 늠름한 모습입니다. 이와는 정반대로 또 다른 여성의 역할을 상징하는 애인이 등장할 때는 극단적으로 성적 이미지를 집중적으로 강조(실루엣 뒤에 숨어 등장하는 여자친구, 몸매를 강조하는 도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징적인 이미지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군대가 고정적인 여성성의 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박노자 씨는 주로 군대가 남성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영향력이 모두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장소, 특히 계급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고 말했습니다. 역사학자답게  엄청나게 풍부한 사례들을 들어가면서 설명해서 사람들이 무척 즐거워했습니다.(박노자 씨 유머 감각이 탁월하다는 사실 처음 알았네요) 한국의 군대는 매우 특수한 위치에 놓여 있는데 일반적으로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군사적 역할이 일부 계층(주로 하층계급)에게 몰리는 모병제 같은 구조로 가는데 반해 한국은 형식상으로나마 국민개병제, 즉 군대에 관한 한 모두가 평등하다는 관념이 여전히 강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군사주의 척도를 단일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단적으로 미국은 군사적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지만 군사주의가 약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국민 전체의 의식이란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은 서구 자본주의에 비해 말할 수 없이 군사주의가 일상화된 나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60~70년대 군사독재의 산물로 오히려 군대가 자본의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힘의 역학 관계가 정상적인 자본주의 구조로 돌아왔지만 자본가 계급은 절대로 징병제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에서는 모두 우울. 어쨌거나 한국 군대도 이제 자본주의적 계급관계가 그대로 군대 질서에 투영되고 있으며 군대가 형성시키는 남성성이란 것도 계급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뒤로 두 분이 서로 질문을 하나씩 주고 받았는데 비슷한 의견을 공유하고 있는 탓인지 질의 응답 같지 않았어요.

 

마지막으로 쉬는 시간 없이 곧바로 청중과의 토론에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요. 다 적고 싶지만 여기서부터 필기를 포기했습니다. 사회자라 적절히 흐름을 잡아줄 필요도 있었고, 결정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아무튼 시종일관 생각이 많았는데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개인적으로 고민했던 몇가지 주제를 요약해볼께요.

 

 

 

1.  한국식 자본주의가 시장질서를 강화하면서 미국식 자본주의처럼 기업정신, 창조성, 도전정신을 강조하면서 경쟁이 격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 문화도 위계적인 구조에서 점차 팀제와 같은 수평적인 구조로 바뀌어 갈텐데 자본주의의 발전이 징병제에 어떤 영향을 줄 가능성은 없는가?
 
이에 대해 사람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 한국 자본의 구조상 미국, 중국, 일본, 유럽의 자본과 비교했을 때 유일한 강점은 잘 숙련되고 순종적이며 노동중독이 심한  전문인력들이다. 한국 자본은 절대 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군 내부 복지 문제를 중심으로 외형상 변화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려 애
쓰겠지만 본질적인 내용은 바뀌지 않을 것.

 

 

2. 한미관계가 변화할 여지는 없는지?? 이 과정에서 한국 군대 역시 새로운 역할을 모색할 수 없는지??

 

국방개혁안 비전 2030을 봤을 때 노무현은 모병제로 가려는 의지가 전혀 없다. 초기에 동북아 균형자 이야기가 나왔지만 결국 굴복하고 급격히 한미동맹으로 우선회했다. 한국 자본주의 구조상 죽었다 깨어나도 한국의 보수파가 대미종속적인 관계를 끝내지 못할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도 잠재적인 적은 중국이기 때문에 중국과의 전면전이 불가피할 경우 엄청난 수의 한국 군인은 총알받이로 매우 유용할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한국이 현재와 같은 징병제를 유지하는 것이 크게 나쁠 것이 없다.

 

 

 

3. '그나마 군입대는 계급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부여된 임무'라는 평등의 신화가 반군사주의 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여성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대체복무제 입법운동에 대해 이런 저런 한계가 지적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어쨌든 국방의 의무는 모두가 동등하게 져야 한다는 이 원칙 때문에 대체복무제도가 오히려 여성징병제 논의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 쉽게 말해 군제도도 다양해졌으니 어떤 식으로든 여성도 의무를 수행하라는 논리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모병제를 주장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 역시 쉽지 않다. 참가자 중 한 명은 그래서 모병제냐, 대체복무제가 존재하는 징병제냐가 아니라 절대적인 군인수를 줄여나가는 '감군운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서 눈길을 끌었다.
지금 노무현이 주장하는 사회복무제(혼혈인, 장애인 등등도 군복무 가능)는  오히려 군의무를 통해 시민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관점을 강화시키고 있다. 대체복무제도 주장을 역이용해 군사주의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이런 왜곡된 평등주의가 끊임없이 여성운동에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여성운동 진영에서는 군대 관련 담론에서는 적극적인 주장을 펴지 못하고 매우 조심스러운 상황.

 

 

 

4. 그렇다면 평화운동이 무엇을 해야할까?

 

냉정한 현실인식 때문일까. 사회를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것 참, 한국사회의 현실이 만만치 않군. 그래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역학을 고려해볼 때 어떤 대안을 내기가 쉽지 않고 다들 조심스럽다.
분명한 것은 정치인들에게 맡겨서는 발전주의-군사주의의 양대 축으로 설정된 한국사회의 진로를 조금도 바꿀 수 없을 것이란 점이다. 노무현이 그 한계를 절실히 보여줬다. 결국 피플 파워만이 조금이라도 한국사회의 진로를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또 하나는 일상적인 군사주의를 해체해나가는 운동이 전부 평화운동이란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는 강력한 군사주의를 원하고, 그것이 일상 속에 뿌리내려 가족, 직장, 학교 등 모든 공간을 지배하고 있다. 인간관계 역시 군대식 위계질서에 기초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 거부하는 모든 운동이 다 평화운동이다. 일상적인 위계질서를 거부하고 순응을 요구하는 관성에 저항하는 것이 다 평화운동이다. 청소년 인권찾기, 국기경례 거부, 대안 생리대, 자전거 타기, 채식... 이런 게 모두 평화운동이다. 이 운동이 확산되어 '순응형 인간'에서 창조적이고 평화적인 소통형 인간으로 거듭나는 사람이 늘어나면 그게 가장 강력한 평화운동이다. 아, 참 할 게 많구나!!


이상 책읽기 모임 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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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방위 교육 2년차

1.

 

재작년 9월 말에 가석방으로 출소하고 난 직후에 집으로 민방위 교육 통지서가 날라왔다.

이런 XX같은 경우가~~  가석방 기간이라고 혼자 쫄면서 아무 것도 못하고 지내야 되는 처지에 민방위 통지서는 날라 오는거다.

엄마, 아빠는 '자라보고 놀란 가슴에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언능 갔다 오라하는데..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 동사무소에 연락을 했다.

 

나: "전 병역거부 해서 감옥 갔다 왔느데 지금 가석방 기간이라고 다른 건 다 안된다고 하는데 민방위 훈련은 받아야 하나요?'

 

동사무소 직원: "국가가 원래 권리는 잘 보장 안해도 의무는 꼬박꼬박 부여 합니다."

 

나:(속으로) 뭐야 이 새끼. 국가 공무원 맞어?? 너무 솔직하잖아. 은근 냉소적이삼....(실제 말로) 아니 그럼 가석방 안돼서 감옥 있음 그래도 민방위 통지서가 날라 오나요?? 감옥에 있는 사람 보고 훈련 오라는 거네요.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요??

 

동사무소 직원: 아무튼 지금 나와 있지 않습니까? 저는 잘 모르겠고 아무튼 나오세요.

 

나: 뭐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다 있데. 전 안 갑니다. 뭐 잡아 갈라면 잡아가고 맘대로 하세요.

 

동사무소 직원:  뭐 꼭 나오셔야 되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알아보겠습니다.

 

 

2.

 

그리고 나는 출소해서 대학에 복학했다. 뭐 꾸역 꾸역 민방위 통지서가 날라왔다. 병역거부자는 예비군까지 그냥 처리가 된다는 건 알았지만 민방위는 한 번도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대한민국 동원 시스템이 이렇게까지 짜증스런운지 아직도 다 몰랐다니!! 암튼 난 또 국가를 느끼고, 생각은 복잡해지고 아무튼 다 때려치고 학생이었기 때문에 못간다고 했다. 가기도 싫었다. 그런데 연말에 통장이 한 번 부르더라.

 

통장: '민방위 훈련 왜 안가세요??'

나: '아, 저 학생인데요...지금 복학해서 학교 다니고 있습니다.'

통장: '학생일 때는 훈련에 참석 안해도 됩니다. 학생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서류 하나 떼서 좀 주시죠?'

나: '아 네...조만간 떼서 드리죠.'

 

그리고 역시 안 드/렸/다/. 근데 별 탈은 없었다. 뭐 어쩔 것이여...?? 나는 참말 학생이었는디...

 

 

3. 

 

민방위 2년차 교육 통지서가 날라왔다.  엄마, 아빠는 하루가 멀다하고 물어본다. 민방위 교육 언제 가냐고? 알아봤더니 훈련 안가면 과태료 나오더라. 대략 10만원쯤. 흐미... 걍 10만원 주고 말기엔 조금 비싸다.

결국 미루고 미루다가 오늘 다녀왔다. (흐미...이게 본론인디....)

 

일단 시작을 국기에 대한 경례로 시작하더라. 사람들은 쭈뼛쭈뼛 하면서도 결국 다 일어서고 결국 다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데...나는 끝까지 가만 있었다. 요즘 한참 국기에 대한 경례 문제가 뉴스가 되기도 했지만 서도 .... 애초에 국가를 사랑하는 맘이 없고...국가주의는 세뇌된 거라고 맨날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는데....막상 사람들이 이빠이 모인 자리에서 그걸 안하려니... 신념이고 나발이고 다른 사람들 눈치가 살짝 보였는데...암튼 끝까지 혼자 앉아 있었는데...끝내 뭐라는 사람은 없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로 끝인 줄 알았더니 애국가 부르고, 그것도 모라자 민방위대의 임무를 낭독하는데 살짝 웃음이 나올라 하다가 괜히 긴장하는 내 모습에 조금 웃기기도 했다.

 

교육이 시작되었다. 4시간 교육 일정인데 처음 가니까 공무원이 나와서 한 20분 이상 설명하다가 영상물 두 개를 틀어준다. 나는 아주 어릴 적에 봤던 대한뉴스 뭐 이런 거 생각했는데... 그건 좀 오바였고 그래도 한국은 미디어 산업은 무지 발달해서 그런 지 영상물 나름대로 편집도 잘 했고 음악도 거의 영화음악 수준으로 '둥둥 두두둥''거렸다. 그리고 변화된 동북아 정세 이런 것도 참 많이 나왔다. 보는 내내 어이없게도 '어 저거 정세분석은 운동권이랑 비슷하네' 뭐 이런 생각을 참 많이 하면서...주위를 두리번 거리는데 정말 자는 사람 많았고 근데 나는 왜 잠이 안올까 생각해보니...그새 또 고걸 분석하고 있는 내 모습에 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근데 시시 때때로 들리는 교육 담당 공무원의 그 말 '여러분도 군대 갔다 와서 알겠지만...'이 나올 때마다 이거 뭐 기분이 뭐라해야 할지 참 묘한 상황이었다.

아무튼 영상물은 완전 뒤죽박죽이었다. 평화도 좋고 화해도 좋은데 전쟁의 위협은 가시지 않았고 국토방위는 중요한데 전쟁은 절대 안되고....뭐 이래저래 심란한 내용이 많이 나오더라. 그 와중에도 내내 생각이 복잡했다. 이 사람들은 다들 소극적이다. 대부분 억지로 잠을 청하려고 애를 쓸만큼 무미건조하고 무의미하고 지겨운 시간이다. 그런데 아무튼 다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적어도 그런 척 하고) 선서를 한다.

 

이런 식으로 4시간이 흘러갔다. 마냥 지루한 시간이었지만 나름 복잡한 하루였다. 국가의 존재가, 내 옆으로 성큼 다가와 말을 건다. 너 한국인이잖아. 국가안보를 위해 너는 최소한의 의무를 다해야 해. 좋건 싫건 국가는 최소한의 버팀목이야. 이 마저 없으면 넌 어떻게 살래??

 

훈련장을 나오는데 잠시 다른 세상을 다녀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 몇 시간에 왜 그렇게 지겹고 짜증스러운지. 나는 잠시 내가 평균적인 세상을 어느 정도 벗어나 있는 게 마냥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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