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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대체복무 시행 뒤집나?

**오마이 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이명박 정부, 대체복무 시행 뒤집나?

 

 지난 2007년 9월, 국방부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게 사회복무제를 허용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방인력 개선안을 발표했다. 당

 

시 병역거부 문제가 워낙 뜨거운 논란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에 국방부의 발표가 느닷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써왔던 병역거부자들과 그 지지자들 및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열린우리당의 탄생에 기대를 모았던 진보적 지지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노무현 정부가 퇴임 전 마지막으로 쏟아낸 유일한 성과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유일한 성과마저 위기에 처했다. 지난 4일(금) 정부 관계자의 “종교적인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기피하는 사람들에게 대체복무를 허용하는 문제는 아직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어 앞으로 국민적 여론을 수렴하기 위한 절차가 필요하다”는 발언이 연합뉴스에 오르자 관계자들은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분주했다.

 이명박 정부는 병역거부에 대한 공식적 견해를 밝힌 바가 없는데다 사회복무제도는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사회복무제도 시행을 알리는 공익광고가 이미 극장에 올랐다. 이명박 정부가 보여준 지난 4달의 행보를 볼 때 대체복무 시행을 뒤짚을 가능성은 충분했지만 모두 설마설마 했다. 

 그런데 그 우려가 드디어 현실로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6년간 어렵게 시민들을 설득하여 제도적으로 정착되기 직전에 이른 대체복무를 본격적으로 흔들기 시작했다. 정부 관계자는 “국방부가 작년 9월 대체복무 허용 방침을 발표했을 때도 사실상 국민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면서 "국민 여론이 수렴되지 않으면 대체복무 자체를 시행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은 사실상 이명박 정부와 국방부가 시간을 질질 끌며 여론을 악화시킨 뒤에 대체복무 시행을 부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수정하겠다는 암시로 들린다.

 

UN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 유엔 권고마저 무시하고 막 나가나??

 

 유엔인권이사회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가장 기본적인 시민의 권리 가운데 하나로 못 박고 있으며, 지난 2006년 12월에는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라고 한국 정부에 권고한 바 있다. 이어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이어졌다. 노무현 정부가 사회복무제를 도입한 배경에는 이와 같은 국제사회의 압력이 크게 작용했다. 이 같은 맥락을 고려할 때 대체복무제도의 재검토를 시사하는 발언이 나온 시점이 절묘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한국을 방문 중이었으니 말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6일 안병욱 국가인권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국가별 인권검토(이하 UPR)'의 이행을 촉구했다. 당연히 여기에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보장과 대체복무제도 도입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지난 5월 제네바에서 열린 UPR에서 한국 정부를 대표해 출석한 국방부 인권팀장은 대체복무 관련한 슬로베니아 대표의 질문에 “한국 정부는 작년 9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시민 대체복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이 새 계획을 시행하기 위해서 한국 정부는 현 병역법을 개정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한국 정부는 올해 국회에 개정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답변하였다.

 결국 정황상 이명박 정부가 국제사회와 유엔, 그리고 한국 시민들을 상대로 말도 안되는 사기를 치며 눈치를 살피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당연히 이와 같은 한국 정부의 이중적 태도는 반 총장을 당혹스럽게 한다. 반 총장은 지난 6일, “한국의 국가인권위가 현재 아시아태평양국가인권기구포럼(APF)과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부의장을 맡고 있는 등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UPR 실행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인권을 선도하는 모범국가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UN사무총장을 배출했다고 자랑스러워 하면서도 UN이 정한 기본권을 무시하고 권고사항조차 이행하지 않는 한국 정부의 부끄러운 현실이다.

 

 

 

 

시민사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명박 정부에 대한 실낱같은 기대가 배신감과 분노로 바뀐 지난 주말, 시민사회도 한국 정부의 이중적 태도를 발빠르게 비판하고 나섰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지지자하는 시민들은 지난 6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안병욱 국가인권위원장이 만난 하얏트 호텔 주변에서 침묵 시위를 전개했다. 참가자들은 UN사무총장을 배출한 한국에서 이명박 정부는 UN권고도 안 지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근조 인권'을 상징하는 국화꽃과 검은 옷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이어 지난 7일(월요일) 참여연대 지하 1층 기자회견실에서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 주최로 정부의 입장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

 첫 발언으로 나선 임종인 전 국회의원(대체복무법안 발의자)은 지난 시절 힘겹게 쌓아온 노력이 한 순간에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며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이어 두번째 발언자로 나선 나동혁(병역거부자, 1년6개월형 선고 후 2005년 9월 출소) 씨는 '자신이 재판을 받던 2003년처럼 상황이 불안정해졌다.'며 대체복무에 기대를 걸고 재판을 연기 중인 수많은 청년들이 또 다시 '감옥에 가야하는 위기에 처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으며, 이어진 발언에서 김수정 변호사(민변, 병역거부자 다수 변론)는 '이제 더 이상 내 손으로 변론한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가지 않을 줄 알았는데 또 다시 수감자를 만들어야 하느냐?'며 'UN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의 정부다운 태도를 취하라.'고 주문했다.

  이어진 종교계의 발언에서 김정대 신부(천주교, 한국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는 '천주교 교리상 천주교 신자가 병역거부를 선택할 수 있으며 이 경우 대체복무제도가 주어져야 한다.'면서 이 문제가 비단 특정 종교인들의 문제가 아님을 강조했다. 또한 천주교 자체의 노력을 통해 내부에서 병역거부에 대한 인식이 크게 개선되었음을 강조했다. 다음 발언자로 나선 정진우 목사(한국기독교 장로회, 서울제일교회)는 '이명박 정부가 실용을 강조하는데 해마다 수백명의 젊은이를 감옥에 보내는 게 실용이냐, 대체복무를 시키는 게 실용이냐?'며 이명박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끝으로 발언한 이석태 변호사(연대회의 공동집행위원장)는 '국제사회의 압력 때문에 절대 대체복무를 되돌리지는 못할 것'이라며 이는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물론 사법부까지도 곤경에 처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민주주의와 인권 외면하는 이명박, 과연 대체복무 철회라는 악수를 둘 것인가?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관측으로 이명박 정부가 대체복무를 철회할 가능성은 반반이다. 국제사회의 압력도 압력이지만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향하는 한국 정부가 대놓고 계속해서 병역거부 문제를 외면하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그 동안 보여온 행태를 볼 때 시민들로부터 고립을 자초하면서까지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기 때문에 대체복무 역시도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다는 불안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과연 이명박 정부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로부터 독재정권이라는 오명가지 뒤집어쓴 이 정부에 대한 비판은 다방면으로 끊임없이 확대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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