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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1.

2002년 대선 때 난 구치소에 있었다. 대선 당시까지는 재판 중이었기 때문에 구치소에서 부재자 투표를 했다.

그 때 나는 사회당 당원이었고 사회당 후보를 찍었다.

득표율 0.1%였던가? 땡중보다 표가 안 나온다며 방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샀고 차라리 민노당 후보를

찍으라며 여기저기서 권하던 분위기였다. 머리 속은 다른 일로 복잡했던데다 구치소 안에서는 대선의

열기를 느낄 수가 없었다. 그래도 기억나는 것 하나는 노무현의 대선 광고였다. 존 레넌의 이매진 노래에

맞춰 나오는 그 광고에 눈물을 훔쳤다. 그 뒤 5년 지금 말고는 노무현이 내게 주는 의미는 크지 않다.



2.

학생운동을 할 때 후배가 물었다.

"운동권들은 김대중을 자본가의 하수인처럼 묘사하는데 정말 그런 거냐고?"

대답했다.

"김대중 개인은 아마 매우 멋있는 사람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반할 수도 있다. 사형까지 받은

사람인데 어지간한 사람보다 엄청난 내공과 깊이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노무현도 그랬을 것이다. 매우 강하고 매력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었다.

돼지저금통으로 선거자금을 모으고, 행사장을 점거한 시위대에게 '너무 서두르지 마시고

천천히 얘기하세요. 다 들어 드리겠습니다.'라고 배려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전례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는 말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은 그 밖에 없을 것이다.

''70년대 후반부터 북한보다 많은 군비를 썼는데 여태까지 자기 나라 작전권도 없으니 여태까지

이 나라 군대는 뭐했냐...이건 직무유기 아니냐?' 고 기득권을 정면으로 면박주고 그래서 적으로

돌리는 행위도 서슴치 않는 대통령은 그 밖에 없을 것이다. 분명 이명박과는 차원이 다른 정치인이다.

그래서 노무현의 죽음 앞에서, 새삼 반추할 그 무엇이 내게는 없다. 원래부터 환타지도 없었고

그렇다고 그를 몰라본 것도 아니다.

노무현과 노무현으로 대표되는 정치는 다른 것이다. 당시 이게 내 생각이었고 그래서 멋진 사람

이전에 멋진 이념과 멋진 정치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3.

사회당은 가진 자원이 너무 적어서 언젠가는 나도 후보를 하겠지 생각했었다.

당시 내가 가진 환타지는 당당하게 돈없는 자들의 정치를 이야기하며 하고 싶은 얘기 다하고 처절하게

낙선하는 거였다. 내가 가진 약점, 내가 가진 정체성으로 정치를 하는 것. 그것이 가장 덜 비겁하고 정직한

정치였다.

노무현은 감동을 아는  사람이다. 자신이 경상도에서 민주당의 간판을 달고 지역주의 타파를

외쳤다는 것. 그는 그가 가진 가장 큰 약점을 자신의 언어로, 정치로 발전시킬 줄 아는 몇 안 되는

착하게 영리했던 정치인이다. 사람들은 그런 패배자를 좋아한다. 그리고 끝내 그가 당선되었으니...



평화주의를 자신의 언어로 선거에 출마하는 장면을 몇 번 상상한 적이 있다. 이것은 정치적 죽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평화주의는 일상적인 정치 영역의 언어로는 해결할 길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고... 현실 정치에 대한 무력과 환멸은 도를 넘어서 때로 자신을 공격한다.

사회당의 분열 이후 내 인생에서는 '정치'라는 단어가 실종됐다. 5년간 모든 선거에서 투표를 하지

않았고 '정치=비겁합=냉소'라는 코드가 너무 강력하게 작동해서 한 동안 신문 정치면조차 보질 않았다.

병역거부는 이런 냉소를 더욱 부채질했다.

그래서 반국가, 비국가적인 사고들이 자라났고 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 앞에서 늘 도피만 꿈꿀 수는 없었지만. 점점 오타꾸화 되어가는 생활.



4.

학원 강사들끼리 모여서 점심을 먹고 수다를 떤다. 몇몇은 사람들의 분노가 언제 터질지 그것밖에

관심이 없다. 조문행렬 속에서 이명박에 대한 분노 밖에 읽어내지 못한다. 또 한 사람은 수업 내내

근조 리본을 달고 다녔다. 남은 한 명은 한국인들에게 여전히 임금님을 모시는 듯한 권력의식이

남아 있어 불편하다고 한다.

저마다 생각이 다르고 조문에 나서는 이유는 다르지만 나는 그 거대한 행렬 속에서 끝없는 자기 고백을

본다.

내가 볼 때 저 행렬은 온전한 자기치유과정이다. 자책감, 미안함, 분노, 그리움, 애틋함...그 모든 자기

감정을 스스로 주어삼키고자 조문에 나선다.



그리고, 이것은 내 고백이다. 


이런 국면이 올 때마다 자신의 언어를 갖지 못하고 방황하는 진보진영. 광우병 사태 때도 그랬고.

노무현 관련 기사를 클릭. 울면서 속으로는 냉소하고 있는 자기분열.

이 분열이 내 안에도 있다. 나는 이 상황을 받아들일만한 내 언어가 없다. 언어 이전에 감정이 먼저 온다.

그 감정을 인정한다. 사람은 정당정치의 부품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죽음은, 그것도 자살은 너무 애틋하다.

노무현은 그나마 정치인 중에 내 정서에 가장 잘 맞는 사람이기도 하다. 솔직하고 화끈하고 정이 많고...


그러나 남는 자에게 냉혹한 내일이.  일시적인 거품은 걷힐 것이고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손익계산서를 따져볼 것이다. 지역주의 타파, 전국정당화, 휴머니즘과 민주주의. 이런 것에 대해

사람들은 좀 더 생각해보게 될 것이고 민주당의 지지율이 올라가고 이명박의 지지율이 조금 떨어지고

다음 총선과 대선에 미칠 변수가 어쩌고 저쩌고...그러나 여전히 가장 심각한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을 것이다. 자기분열 양상을 보이는 30, 40대가 이명박을 지지했던 이유. 경제적 욕망은

늘 사람들을 분열적인 양상으로 몰아갈 것이고....우리 안의 이명박은 또 다시 작동할 것이다.

술자리에서 '노무현씨는 아마도 파병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위의 관심법으로

그를 향수하면서 아파트 값이 오르기를 바라는 분열 양상은 계속될 것이다. 




남는 건 결국 내 문제다. 나의 언어. 나의 정치. 나의 일상.

이제부터는 그 문제를 생각해봐야겠다. 그리고 아주 작은 시작으로 나도 이제 냉소를 걷어치우고

한 사람의 몫을 해야겠다.

냉소도 지겹다. 상처입은 자들의 피난처는 그 나름대로 안락함을 제공하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자기연민이 도가 지나쳐 상처를 추억하고 지난 이야기를 각색하기 시작하는 순간.'  지금이 여기를

빠져나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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