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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자리에서...잘하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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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에서...잘하자

0.

긴 정치적 왕따 생활 끝에 이건 아니다 싶어 덕후생활 출구전략으로 삼을까

싶어 진보신당에 가입한 지 좀 됐다. 그 고립이 자발적이든 아니든, 성찰의 시간이든 아니든 이젠 좀

현실 정치에 대한 욕망도 표출하고 싶었다.  '올바른 정치'(좀 오글거리지만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를

원하는 마음은 식욕과도 같더라. '청소 노동자들의 파업'이나 '군대 내 동성애자 처벌 합헌' 따위의 뉴스를

매일 보고 있자면 분노든 연대의식이든 미안함이든 표현하고 싶고 가장 가까운 수단은 관련 단체들의

활동에 함께하거나 지지해주는 것이므로 여기 저기 가입은 많이한 상태다.

그 가운데서도 정당이란 것은 최대치보다는 최소치의 욕망을, 즉 공약수를 현실화 시키는 힘이라고 생각했으므로.

 

진보신당 당원 가입 한 이후에 돌아가는 분위기 좀 파악하려고 진보신당 당게를 자주 들어갔다.

그리고는 좌절 중이시다. 거기 올라오는 글들을 읽고 있자니 화병걸릴 거 같아서 며칠 열심히 읽다가 요즘은

자주 안들어간다. 역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지나 해주는 게 최선인가 싶다.

 

1.

소위 '진보'든 '좌파'든 말이 통하지 않는 경험이 일상화되어 가다보니 이젠 인적 교류가 극도로 제한된

생활이 오히려 안락함을 주는 이 상황에 대해 갖고 있던 일말의 불안감마저 사라져가는 중이다. 이런 확인

과정을 밟으려고 진보신당 가입한 건 아닐테지만, 사춘기도 아니고 떠도는 욕망을 제어할 수 없는 유치한

상태까지는 가지 않으면 좋으려만. 분위기만 좋으면 이런 저런 모임에 나가보려 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역시 내가 마음 둘 곳이 아니었던게지...

 

며칠 전 진보신당 당게에서 성폭력에 관한 논쟁이 벌어졌다. 심상정씨의 정치적 입장을 비난하는 과정에서

언어 성폭력이 문제가 되었다. 당원들이 연서명을 받아 문제제기를 했고 이게 받아들여져 글을 게시한

사람은 게시판 접근이 제한되기는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오고간 말들이 진짜 짜증스러웠다. 그걸 여기서

굳이 말하고 싶지는 않으나 어쨌든 자칭 진보 내에서도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여성주의에 대한 혐오증만은

확실히 확인하게 되었다.

 

평등, 생태,  평화, 연대라는 슬로건이 무색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말들이 짜증났고, 말꼬리 잡으며 상대

얘기는 절대 듣지 않는 그 경직성도 짜증났지만, 제일 참기 어려운 건 당췌 스스로 변화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그 방어적 공격성이었다.  

 

2.

어이없게도 요즘은 인류 공공의 적이라는 이명박 다음으로, 소위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에게 실망한다.

실망도 참 여러번 망설이다 완곡하게 표현한거지...

 

얼마 전 세시봉에 관한 글을 쓸 때도 그런 느낌이었다. 전혀 딴 얘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오늘 또 한겨레 신문에서 '김선주 칼럼'을 읽으며 이건 뭐냐 하는 기분이 든다.

김선주씨 참 깝깝한 사람이다(고 난 이미 결론내렸다.)

 

술자리에서...잘하자

 

제목부터 불안불안하다. 신정아씨의 황색 저널리즘을 비판하는 글인데, 문제는 신정아씨가 얼마 전 발간한

책에서 술자리 이야기를 과도하게 언급한 부분을 비판한 대목이다. 당사자 글을 인용해보자.

 

....

지금 우리 사회는 대학 신입생의 비율도, 판사의 임용 비율도 여자가 많은 세상이 되었다. 좋건 싫건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함께 밥 먹고 술 먹고 노래방도 가야 하고 여행도 출장도 같이 가야 한다. 여자는 이런저런 자리가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직업상 젊은 시절부터 40년 넘도록 남자 사회에서 위에서 아래까지 온갖 술자리 경험을 한 사람으로서 신정아씨의 술회를 보면, 딱하고 분별없어 보이고 아니면 대처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거나 술자리가 대가 혹은 광범위한 로비의 자리여서 자신도 그것을 충분히 이용한 것이 아닌가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

 

여기까지는 그냥 그저 그런 도입부. 그 다음이 대박이다.

 

.....

술자리 매너에 가이드라인은 없겠지만, 최소한 다부지고 단호하게 자르면 혹은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면 어떤 사회지도층 인사도 더 이상 지분거리지 않는다. 달리는 택시 속에서 몸을 더듬으면 따귀를 때리거나 차에서 뛰어내려야 한다. 아니다 싶으면 핸드백을 포기하고 차비만 꺼내서 화장실 가는 것처럼 술자리를 떠나야 한다. 술버릇 나쁜 사람이 밤늦게 불러내면 다시는 안 나가야 한다. 대가도 포기해야 한다. 술은 발동이 걸리면 제어가 안 되니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으면 자리를 뜨는 것이 상책이다.

.....

흔히 ‘열 여자 싫다는 남자 없다’고 하는 말이 진리라면 ‘열 남자 싫어하는 여자도 없다’도 성립된다. 남녀 간의 호의와 그것의 표현은 자연스럽고 기분 좋은 일이다. 이성에 대한 관심이나 호의와 애정, 혹은 희롱과 구체적인 폭력 같은 것을 구분해야 한다.

술자리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두 도둑놈 취급을 해도 안 되고 어정쩡하게 대처함으로써 빌미를 제공해서도 안 된다. 그로 인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면 확실하게 당시에 공개해버려야 한다.

.....

 

 

푸흡. 난 읽다가 짜증을 넘어서 거의 실소가 나오더구만. 우선 한겨레는 얼렁 칼럼 필진부터 교체해라.

요새 꼴통 마초라도 이런 식으로 신문에 컬럼을 쓰지는 않는다. 월간 조선 수준이나 되면 모르겠다.

 

참 세상 살기 피곤하다. 여자로 사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냥 상상만 해본다. 달리는 택시 속에서 몸을

더듬으면 따귀를 때리거나 차에서 뛰어내리는 정도는 해줘야 제대로 된 처신이라니. 이 정도는 해줘야

상대의 성폭력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적절한 대응했다 하시니... 이건 너무나 어이가 없는 글이라

크게 비판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당사자가 쓴 글을 여기 저기 보여주는 것 자체가 그냥 비판이 된다.

글도 생각도 정말 엉망이다. 이 쯤되면 이건 뭐 기분이 나쁘지도 않다.

 

3.

그런데 이 글을 읽으면서 오버래핑된 것이 최근 진보신당 게시판의 논쟁이었다. 소위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의 사고방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것은 아닌지...

가장 열심히 투쟁하고, 가장 치열하게 사고한다는 사람들의 이런 강인한 태도(?), 그래서 절대 어떤 대화의

가능성도 변화의 가능성도 없을 것 같은 이 답답함. 그래도 내가 가장 원칙적으로 살고 있다는 그 도덕적

자기 완결성. 그러니까 이들은 너무나 많은 빈틈에도 불구하고 그 빈틈을 느끼지도 못하면서 가장 완결적인

존재로 자신을 인식하고 이렇게 자신있게 자기 이야기를 하며 산다.

이게 매력도 없고 변화가능성도 안 보이는 '진보'의 현실인가? 만약 진보의 고정 지분이라는 게 있어서

야권연대고 통합이고 다 필요없고 열심히 싸우다보면 최소한 그 고정지분을 가진 이들 만큼은 우리를

지지해줄 거라는 확신은 존중한다. 진보신당은 정체성이 없는 집단이라 여기서 흩어지면 그야말로 해산,

화학적으로 용해 되지 싶다. 진보가 지분을 가져야 협상이라도 하는거지. 그래서 우선은 진보신당 스스로가

고립을 선택해도, 경직되었다고 욕을 먹어도 당장의 선택을 지지한다. 정치공학에 매몰되어 선거

시기만 되면 민주당 당선에 목을 매는 한겨레가 '당대회 독자파 완승, 진보통합 물건너 가나?' 따위의

제목을 뽑아 기사를 써대도 말이다.(한겨레 반성 좀 해라. 보수에겐 안보 불안감을 자극하는 고유의

언어가 있듯, 한겨레에게 선거 패배감을 자극해 지지세를 확보하는 고유의 언어가 있다. 으이그...)

 

그러나 대대로 진보정당 20년 이상의 역사를 보건데 좌파는 좌파를 믿지 못한다.

자신의 존립근거를 제 식구가 아닌 옆동네에서 찾는다. 외부인을 상대로는 자기방어를 하고 정치는

자기들 안에서만 한다. 자기들 내부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투쟁을. 자기들 내부에서 가장 섬세한

방어와 공격을. 그리고 절대 말을 듣지 않으며 변화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외로움을 고고함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세상이 자기를 몰라줄 뿐이라고 생각한다.

타협을 안해서 인기가 없는 게 아니다.  김선주 씨 글을 보면 그렇다. 지금 진보가 장사가 안 되는 이유를

세상이 타락해서 사람들이 자기 먹고 사는 것 외에 관심이 없어서라고만 분석한다면 세상은 영원히

그럴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고정지분 얻는 것마저 불가능하다. 당장 나라도 표를 주고 싶지 않다.

이 고리타분함.아...정말 대화 안 통하는 사람들, 무엇보다 자기를 지지해줄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기 때문에 이 답답함은 출구가 없다. 하다 못해, 트렌드라도 따라해라. 지금은 열린 사람이 사랑받는

민주주의의 시대고, 소통의 시대고, 다양성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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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봉, 2탄

남십자성님의 [세시봉, 오독에 기초한 비판 : 과연 누가 편협한가?] 에 관련된 글.

 

이렇게 말을 주고 받는 게 오랜만이다.

토론을 한다고 옳고 그름이 판가름나고 누군가 의견을 바꾸고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미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고 그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지식과 논리를 사용한다.

토론에서 최선은 상대방의 입장을 최대한 열심히 듣는 것, 그리고 자신이 동의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꾸미거나 비틀지 않고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잘 듣고, 잘 인정할 수 있다면 이미 조금은 그 이전과 달라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찌저찌 하다보니 세시봉을 다 보게 되었고 굉장히 재밌었다. 언론에서도 호평 일색이었다.

이 때 김선주 씨와 김진숙 씨의 글이 나왔다. 세시봉을 다르게 이해하는 사람들의 언어, 충분히

예상 가능했고 어떤 부분들은 공감이 가는 지적들도 있다. 

 

그런데 남십자성님이 지적한 대로 많은 블로거들이 김선주 씨 글에 불쾌함을 표현했다.

나 역시 불쾌감까지는 아니어도 글을 읽고 난 후 찝찝했다.

왜 많은 사람들이 불쾌해할까를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자기 감정이 한마디 말로 재단당하는 느낌이 불편한거다.

나 역시 그런 느낌을 받는다. 세시봉에 열광하면 좀 철없는 애 같은.

(아 물론 철없는 애라는 표현을 들은 적은 없지만 느낌이 그렇다고...)

 

김선주씨가 '타인의 취향을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려'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생각없이 세시봉에 열광하는 다수의 감성을 혐오한다"고 말한 적도 없다.

그러나 김선주 씨 글에 그런 말이 없다고 오독이라고 말하는 건 좀 그렇다.

내 글에서 표현에 과장이 있는 건 인정한다.

남십자성님 글 앞부분은 김선주 씨를 옹호하는 내용인데 그 과정에서 '오독'이란 말이 여러번

등장한다.(이 말 들으면 굉장히 기분이 안 좋다. 그래도 냉정을 되찾고...)

내 글이 단어 하나 하나 분해돼서 타인의 글을 오독했다는 결론을 보고 있자면

기자들이 자신의 입장에 맞게 글을 재조합하는 과정과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서로 입장에 차이가 있다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글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면.

 

 

2.

남십자성님의 글 제목은 '세시봉, 오독에 기초한 비판 : 과연 누가 편협한가?'이다.

제목만으로도 전해져오는 어떤 느낌이 있다. 첨엔 대충 훑었는데 내 글에 대한 언급도 나와서

정독했다.

남십자성님은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면 안되냐고 한다. 아니 된다. 님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그럴 생각은 없다. 항상 그렇다는 게 아니고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그럴 생각이 없다는 말이다.

해석의 다양성을 말하고 싶었다. 김선주 씨 글에 동의하는 부분이 있음에도

지나치게 단선적으로 상황을 이해하는 걸 피하자고 말하고 싶었다.

사람들의 불편함은 거기서 비롯된 것이니까. 모든 의견에 동일한 무게를 두자는 말이 아니다.

그 이유는 변화의 가능성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다.

내 글은 한겨레든, 시사인이든, 김선주 씨든, 노래에도 계급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든...

그들을 옹호하고자 하는 글이다. 안타까움이 기본 감성이다. 옹호하기 위해 비판한다.

대상은 너무 명확하다.

그런데 비판의 대상이 있기나 한거냐고 지적은 또 뭔 뜸금없는 이야기인지...뭘 비판하려는건지 다 알면서...

 

남십자성 님은 홍대 상황이 여러 가지 다양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 조차도 한겨레나 시사인 같은

진보 매체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이라는 사실을 언급해주었다.

우선 그런 상황은 김여진씨 블로그를 통해서 알았다. (이게 중요한 건 아니고...)

한겨레나 시사인이 늘 그렇게 날카로운 건 아니다. 대체로는 그런 편이지만 조금 아쉬운 거고.

좋아하니까 아쉽기도 한거다. 좋아하니까 비판할 수도 있다. 

남십자성님이 진보 매체를 방어하려는 이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굳이 그런 매체의 소중함까지

각인시켜줄 필요는 없다. 한겨레나 시사인 정기구독한지 몇 년 되었고 애정은 차고 넘치니까.

병역거부로 감옥까지 다녀온 처지라 그런 매체의 소중함은 누구보다 절절한 편이다.

(근데 시사인은 정말 읽을 게 별로 없다. 진짜 편파적 애정이라고 밖에는...)

 

최근에 한겨레가 자주국방을 강조하는 맥락이 있다.

한겨레는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래서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언론이

이명박 정부보다 노무현 정부가 국방비를 더 썼고, 무기 선진화에 애를 썼다고 말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집요하게 한나라당의 약점을 파고 드는 것. 한겨레의 기본 컨셉이다.

한나라당 집권 반대라는 강력한 슬로건이 있으니 사태분석이 단선적이되고 풍부한 언어들이 실종된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세시봉 사태를 바라보는 그런 단순함이다.

분석의 도구를 계급으로 한정시키는 것은 의미가 있다.

계급적 관점(혹은 저항의 관점)에서 이 사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풍요로운 해석을 제공한다.

그러나 계급적 관점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건 다른 얘기다.

음악이나 영화같은 문화적 현상을 한가지 관점으로 가치를 매기려 하는 건 더욱 조심스럽다.

(그런 면에서 자연스럽게 김영하와 조영일의 논쟁, 그에 뒤따르는 김사과씨 글로 관심이 이어진다.)

저항의 측면에서 본다 해도 그런 해석은 오히려 잠재적 저항의 가능성들마저 반감으로 돌려세우는

효과를 가져온다. 김선주 씨와 마찬가지로 나는 무엇이 저항하게 만드는가에 관심이 많다.

늘 이 얘기를 너무 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은 고민 안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피해의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동시에 그걸 극복하기 위해 우월감도 생기고 말을 거는 방식은 늘 꾸짖게 되는 것이라고.

'나도 세시봉에 드나들었지만...'이라고 운을 떼는건 처음부터 대뜸 섭섭하다고 말하기뭐해서 그런

거겠지만 김선주 씨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정도는 알 수 있다.

 

이 정도가 내가 글을 쓴 이유고 하고 싶은 말의 전부다.

안타까움과 답답함 속에 갈등하면서도 비판의 대상을 비판함으로써 옹호하고자 하는,

그래서 늘 자기번뇌의 연속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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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월

1.

실장님에게 무한도전을 보라고 꼬시다가

확실하게 무도빠를 만들기 위해 레슬링 편을 다운받아 보여줬다.

보자마자 실장님 첫 마디가

 

"이런 사람들 왜 약먹고 무대에 오르는지 알겠다..."

 

흐흐..묘하게 마이너 감수성이 있어.

 

2.

겨울 엄청 춥구나.

위, 아래 다 내복을 입고 다녀도. 밖에 나가기가 너무 싫다.

단지 추위 때문은 아닌가?

아무튼 학원 일이 없는 날은 종일 방콕이다. 간만에 휴일이 생겨서 그런가?

뭘 어떻게 놀아야할 지 잘 모르겠다. 봄이 올 때쯤엔 뭐든 감이 잡히겠지...

황사로 가득한 봄, 미친듯이 비내리는 여름, 짧아지는 가을, 열라 추운 겨울

사계절이 아름답다는 교과서 서술을 뜯어고칠 때가 아닌지.

기후에 걸맞게 덕후가 더 늘어나지 않을까?

 

생활형 라이더가 되겠다는 다짐을 조금씩 실현해 나가자는 마음으로

어제는 간만에 자전거를 타고 집에 왔다.

진짜 진짜 춥더라. 내복에 기능성 옷 잔뜩 껴입고 등산용 겨울장갑 끼고 달렸는데도

진짜 춥더라. 엄청 싸매도 가장 취약한 곳은 엉덩이...

엉덩이 추워 디지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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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오늘의 수다

1.

진보넷 블로그에 글을 쓰면 같은 반 친구가 일기장을 엿보는 기분이 든다.

한다리 건너 건너 다 알만한 사람들이 보겠지...그런 생각이 드니까

처음엔 그게 좋았는데 싸이월드 없앨 때랑 비슷하게 어느 순간 글을 안 쓰게 된다.

그런데 조금 놀랍게도 타블로와 관련된 글에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댓글을 달았다.

진보넷 블로그에서 보기 힘든 이전과 전혀 다른 성격의 댓글.

진짜 진지하게, 타블로가 범인이라는 강력한 믿음을 갖고 나를 설득하는 글들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그 긴 댓글을 다는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하는 생각이 조금 들었고

 아...정말 이 사람들 살짝 미쳤구나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니까 타블로에게도 뭔가 구린 구석이 있나보다 생각하게 만들 정도였다.

아주 잠깐...

역시 문제는 타블로의 학력이 거짓이냐 아니냐가 핵심이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니까...설사 타블로의 학력이 거짓으로 드러나더라도 생각은 변하지 않았겠지만

 

그런데 mbc스페셜 나가고 오늘 왓비컴즈가 백기투항하는 모습을 보면서 쓴 웃음이 난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인정을 하지 않는 그 의심이란...

 

2.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가 한 말을 두고 예상대로 시끄럽다.

오늘 한겨레 신문에 실린 홍세화 씨 글을 보고 놀랐다.

개인적으로 아는 홍세화 씨는 내가 존경하는 몇 안되는 진정한 인격자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그냥 그 사람의 됨됨이가 그렇다.

그런데 홍세화 씨가 상당히 흥분해서 쓴 글임을 알겠더라.

 

시기적절하게 진보넷도 관련 글들을 블로그 대문에 내걸었는데...그 글들 읽으면서

정말 답답한 마음이 들더라.

일단 왜 그렇게들 글을 어렵게 쓰는지 모르겠다.

진보넷 블로그에 그런 글들 많은데 가끔 읽다보면 짜증난다.

흥미로운 주제를 갖고 떠드는데도 말을 섞고 싶은 생각이 싹 가시게 만든다.

누가 읽어달라고 쓰는 글이 아니라 자기가 계속 보고 보고 또 보려고 쓴 글 같다.

 

이정희 대표 발언 보고 나는 '역시나'했다.

어차피 저런 대답 밖에 안 나올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말하면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할거고, 저렇게 말하면 당내에서 폭발할테니...

민주노동당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생각했다.

열린 진보 주장하며 후보 단일화하는 거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정치니까..

근데 이정희 씨가 얻은 '유연한 진보'의 이미지가 한방에 '가장 뻣뻣하고 구린 진보'

이미지로 탈바꿈했다. 민노당 울산시당이 경향신문 절독운동을 하겠다는 말에 정말 식겁하더라.

그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걸까? 쪽수가 많아서 겁을 상실했나? 쪽수갖고 정치하는 것도

아닌데 아주 당지지율을 갉아먹으려고 작정들을 하셨나?

 

...중략하고 그냥 내 생각의 핵심은 이렇다.  

 

'남의 나라 문제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간섭할 일이 아니다.'는 주장을 할 수는 있다.

무슨 말을 하건 민주국가니까. 근데 말에 일관성이 하나도 없다.

일관성이 있다 해도 말도 안되는 발상이다.

 

미국은 물론이고 브라질, 베네수엘라, 독일, 프랑스, 영국, 버마, 이스라엘 등등 국제면에 제일

많이 나오는 기사 가운데 하나가 다른 나라 선거랑 권력구조 이야기다. 

그런 먼 나라 선거에 대해서도 다들 입장이 있다. 근데 북한의 권력구조에 대해,

그것도 '3대 세습'에 대해 남의 나라 문제니까 이러쿵 저러쿵 할 일이 아니라고??

그럼 반미라는 말 자체는 뭔 개코메디냐?

아예 미국이라는 나라를 반대한다고 슬로건으로 내걸면서 남의 나라 일에는 간섭하면 안 된다??

게다가 통일할 거라며?? 합치겠다는 나라가 3대 세습하고 있는데 입장이 없으면 대체 통일

얘기는 어떻게 하려고??

왕조국가인지 독재국가인지 분석틀이 없으니 우리의 시선으로 비판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이건 또 무슨 개뼉다구 같은 소리인가? 그래 분석가능한 틀이 없다치자. 그럼 씹으면 안 되나?

팩트만 갖고도 씹을 건 지천에 널렸다.

비판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할 순 있어도 비판할 수 없다는 지적이라니. 북한만 뭔 용가리 통뼈냐?

 

민주노동당은 정당이다. 정치를 하려면 상식적인 수준에서 사고를 해야지...

민주노동당이 북한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고 과도한 주문을 받고 있는 거 맞다.

그게 뭐가 문제인가?

부자감세, 병역비리, 강부자/고소영, 뭐 이런 말만 나오면 한나라당이 뭇매를 맞듯이

그게 정치지... 더구나 민주노동당은 충분히 그런 과도한 주문을 받을 짓을 했잖아.

 

'진보임을 인정받기 위해 한마디만 해보라구?' 민주노동당은 그럴 수 없다는거다.

물론 정치에도 지켜야할 무엇은 있다.

그러니까 그 지켜야할 무엇이 무엇인지 이럴 때 드러나는거지..

이건 냉정히 말해 진보임을 인정받기 위해 한마디만 해보라구 협박하는 게 아니라...

규정되지 않는 진보를 독점하고 있는 그 부당한 권력을 벗기기 위해 한마디만 해보라는 것이다.

그게 정치다.

정치의 주체로서 나는 어떤 정치세력의 참모습을 드러내고 싶은 당연한 욕구가 있다.

 

그 욕망이 병적인지 아닌지는 상식적으로 판단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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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블로 학력 위조 논란, 공인에 대한 이중적 잣대

1.

공인이란 공적 위치에 놓인 사람을 말한다.
공적 위치를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가령 나는 시상식에서 사회비판적인 메세지를 던지는 연예인이나,
악동처럼 과도한 행동을 일삼는 스포츠 선수에게 관대한 편이다.
관대하다는 말 자체가 좀 웃긴데, 그냥 그 선수의 개성으로 이해할 뿐이다.
그 사람과 생각이 다를 수는 있고 당연히 생각의 차이에 따라 호감/비호감이 생기지만,
그 사람이 무언가를 표현했다는 사실 자체로 '공인으로서 부적절할 행동'을 했다는 비판은 하지 않는다.
여기엔 세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표현의 자유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며(사람이면 누구나 존중받아야할)
둘째는 그들에게 과도한 공인의 지위를 부여한 것은 그들 자신이 아니라 대중들이기 때문이며
셋째는 이런 타인에 대한 병적 관심은 본인에게나 타인에게나 해롭기 때문이다.

상대를 공인의 위치에 올려놓고 사소한 부분까지 이러쿵 저러쿵 떠드는 것은 과도한 간섭이다.
한 편으로 타인을 행위를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열망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행위는 때로는 비열하다.
얼마 전 김새롬 씨가 싸이월들에 올린 글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타인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얼마나 병적 수준까지 발전했는지 알 수 있다. 
지나친  열등감(박탈감), 그래서 또 그에 비례하는 우월감이 타인을 통해 과도하게 투사될 때,
그것은 그냥 폭력이다.


2.

가장 공적 성격이 강한 직업은 정치인이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가 부여받는 공적 성격이란 사람마다 그 정도가 다른데,
아주 도식화시키면 인기가 많을수록 공적 성격도 강해진다.
인기가 많을수록 일거수 일투족이 화제거리가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공적 성격을 부여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가장 공적 성격이 강한 정치인에게 관대하고,
상대적으로 공적 성격이 약한 연예인에게 과도하게 열폭하는 한국 사회의 이중성을 보면
조금 무서운 느낌마저 든다.

가령 타블로를 보자.
타블로의 학력은 위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대중적 분노의 대상이 왜 타블로인가 하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타블로 논란이 한참일 때 진행된 국무총리/장관/경찰총장/국세청장 내정자들의 청문회를 보자.
극단적 절망+분노=무기력 그 자체.
위장전입은 이미 필수 코스가 되었고 학력 위조, 논문 조작/표절  역시 비일비재하다.
여기에 대체로 부동산 관련 비리들이 덕지덕지 붙는데
상류층이 어디에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부동산+교육, 이것이 오늘날 한국사회 상류층을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다.

그들이 아주 쉽게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가장 혐오스러운 것은 온갖 불법 수단으로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일말의 죄책감도 없으며, 양심의 동요 따윈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
더 나아가 진심으로 자신들이 한국사회를 이끌어 나가고 있으며 심지어 이바지 하고 있다는
그 오만과 위선. 강력한 자기최면이 체화되어 왠만한 충격에는 다치지 않는다.


3.

인터넷이 일상화되고, 케이블 방송으로 연예인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는 채널이 늘어가면서
연예인들의 사소한 생활 하나 하나가 모두 기사거리가 되고 있다.
O양 비디오 사건 따위의 가쉽거리를 주도하던 스포츠 신문들이 생산해내던 것과는
수준이 완전 다른 차원에서 연예인들은 거의 모든 것이 노출되고 있다.
물론 모든 사회적 현상이 일방적인 원인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연예인들은 이런 대중의 과도한 관심을 즐기기도 하며, 때로는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온갖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지금,
역설적으로 리얼과 가상의 경계가 그 어느 때보다 모호하다.
이제 연예인의 삶 역시 내 삶과 강력하게 링크되어 어디까지가 가상이고 리얼인지 불분명하다.
여기엔 분명 순기능도 있다. 팬덤이라는 독특한 사회 현상 역시 무조건적인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역시 과도하다.
정치인에게 반복되는 절망감은 무기력감으로 바뀌었다.
우습게도 사람들은 가장 더러운 부패집단을 외면한 채,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손쉽게
분노를 투사할 수 있는 대상을 찾는다. 그리고 종종 연예인들은 과도한 비난의 대상이 되어
만신창이가 되고 때로는 인생 자체가 회복 불가능한 지경에 이른다.
연예인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지난 10년간 생겨난 현상이다. 한국사회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계속되는 연예인 자살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사회는 피곤하다. 모든 것을 과도하게 요구한다.
돈과 일과 성공에 대한 과도한 열정은 어떤 이에게는 그 열정의 크기 만큼의 절망으로 바뀐다.
극단적인 경쟁은 곧 으깨질것처럼 불안불안하게 만들고
일상적인 스트레스, 열등감, 불안감, 분노, 박탈감을 극복할 통로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분노를 투사할 대상을 찾는다. 

그래서 나는 타블로에 대한 과도한 비난이 불안하다.
이것은 불안한 우리 삶의 또 다른 반영이 아닐까?
황우석 사태가 오버랩핑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난의 가장 우선 순위에 있어야 할 사람들에게 정당한 비난을 돌리자.
정당한 방향으로 분노를 표출해야 정신적으로 건강해진다. 
무엇보다 사회가 제대로 굴러간다. 그 싸움을 외면한 채
특정 개인을 대상으로 사회적 전쟁을 벌이는 것,
마녀사냥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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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자전거 교체

간만에 자전거로 기분 좀 내보려다 큰 일날 뻔했다.

 

무뎌진 허벅지 테스트도 하고, 모처럼 찾아온 봄날에 취해보려 했다.

 

언덕길을 올라가기 위해 속력을 올리는 찰나, 왼 편에서 내리막길을 내려오던 자동차와 충돌했다.

 

오래만에 자전거를 타면 항상 이런 일이 일어난다. 이젠 겁도 없고 자전거도 제법 타는 라이더라 자처하는데

 

원체 조심성이 없어서 자주 다치는 편이긴 하다. 대체로 경미한 사고들이어서 크게 신경 안썼는데

 

오늘은 좀 놀랐다. 다행히 둘 다 속력이 엄청 높은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다시 한 번, 조심성 없는 자신에게 화가 나고...

 

운전하던 아저씨도 엄청 놀라셨던데...내가 툭툭 털고 일어나니까 병원부터 가보라고 하시네..

 

그냥 됐다 했다. 자전거도 안 비싼건데 이미 또 너무 오래되었고, 자동차도 찌그러졌고,

 

아무리 생각해도 어느 쪽의 일방적인 실수는 아닌 거 같아서 그냥 서로 보상 문제는 안 하기로 했다.

 

 

 

쩝 또 이렇게 봄이 오는구나...간만에 정신차리라고 액땜 하는구나 생각하며 교훈으로 삼기로 했다.

 

 

 

몸은 괜찮은 거 같았는데, 일어나 보니 자전거 앞바퀴가 휘었다. 구겨진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찌그러진 원판처럼 많이 휘었다. 휠을 통째 갈아야 할 판인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클 거 같아서 그냥

 

폐차하기로 마음 먹었다. 페니어용 짐받이랑 렉만 챙기고 자전거는 고물상에 팔아버려야겠다.

 

계속 자전거를 새로 사고 싶어서 여기 저기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때마침 잘되었다 싶어서 그냥 새걸 바로 질러버렸다.

 

두툼한 놈으로 사서 마음 편하게 타고 다닐까(여행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요즘 대세인

 

폴딩식 미니벨로를 살까 고민하다가...생활형 라이더가 되기로 마음 먹고 폴딩되는 미니벨로를 샀다.

 

 

 

자전거 타는 시간을 늘려보자...다짐은 한다. 접어서 기차에, 지하철에 그렇게 해 볼 생각이다.

 

내 인생의 첫 자전거, 서른 다 되어 유럽여행의 소중한 추억을 선물하고 자전거 타기의 즐거움을 알려준

 

첫 자전거. 18만원짜리 아테네가 5년만에 수명을 다했다.

 

유럽/일본/강화도/양평/송정/제주도... 함께한 날들...고맙다. 수고했다.

 

늙어가는 사람처럼 관절에서 삐그덕대는 소리가 들렸는데...이제 그만 쉬거라.

(오그라드는 의인화. 그런데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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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의 말이 생각난다.

인터넷으로 뉴스를 읽다가 mbc 100분 토론이 1.8%의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심지어 주제가 요즘 가장 뜨거운 '천안함 침몰'이었는데도...

 

 

 

문득, 손석희가 광우병 사태 때 했던 말이 떠오른다.

 

'참여정부는 조/중/동과 싸웠는데 실용정부는 초/중/고와 싸우고 있다.' 고...

 

 

이 말의 의미를 곱씹어본다. 조소와 동시에 쌉싸름한 기운이 퍼진다.

 

 

실용정부의 유치한 말장난이 점입가경이다. 뭐 흥분할 가치조차 없을 정도로 저질이다.

 

그런데, 그래서, 망연자실하지만, 사실은 그래서 초/중/고에 대비되는 어른들은 이명박의 적이 되지 않는다.

 

대놓고 뻥을 치고 사발을 까도 혹여 내게 떨어질 불이익과 혹여 내게 떨어질 떡고물 사이를 저울질하는

 

어른들에게 이명박의 유치함이란 무엇인가?

 

 

친구에게 물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냉소와 분노가 장난 아니다.

 

제 2의 촛불시위가 올까?

 

안 온다.(그 친구는 군대를 다녀왔다.) 흥분의 핵심은 예비역인데 그들은 절대 나서지 않는다.

 

.......

 

광우병 때처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게 아니잖아. 아마 안 나설거다.

 

 

그런가? 그럴까? 잘 모르겠다. 근데 확실한 건 초/중/고는 안 나설거 같다. 군대 안 갔다 온 애들이

 

뭘 아냐고 떠져댈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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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원 유감을 읽고...

한겨레 신문 <세상읽기>에 실린 김종엽 씨(한신대 교수)의 '남보원 유감'을 읽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 진보정치 10년만에 이 정도 친밀감을 주는 스타 정치인이 나왔다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 보수언론도 더 이상 강기갑 의원에게 과격한 이미지를 덧씌우기 어려울 것이다.

- 그럼에도 부정적 효과가 더 강하다. 이데올로기적으로 퇴영적인데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우선, 사무직 노동자(최효종), 전통적인 민주노총 남성 조합원(황현희), 민주노동당 의원(박성호)으로
상징되는 이미지는  대중들에게 각인된 진보정치의 상투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희화화시킨다.

둘째로, 여성해방 담론을 왜곡시키고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의 오래된 불화를 부각시킨다.

 


헐...참 이 분석 보고 어지간히 깝깝했다.
 

이 분석 자체가 너무나 상투적이다.

 

문화현상이 담아내는 시대적 분위기를 읽어내려는 고민이 어째 고작 이런 수준이냐는거다.

 


이런 식의 분석은 꼴통보수 방송개혁연대라는 단체에서

<남보원>을 '특정 이데올로기 지향성을 띄고 있다'고 비판한 것 만큼이나 식상하다.

 

결국 모든 게 '보수에게 유리하냐? 진보에게 유리하냐?'는 식인데

 

이런 분석틀로 나올 수 있는 답은 뻔하다. 진보인사가 나오는 것은 좋은데 좀 더 도덕적일 것!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세요? 그저 개그일 뿐이잖아요..." 같은 저질 댓글 따위와 비교 마시라.

 

난 정말 안타까워서 쓰는 말이다. 매력없는 진보 담론에 보내는 애정표시이자 자기 고민이다.

 

권력관계를 중심에 두고 분석하니 우습게도 꼴통보수와  전통진보가 같이 흥분한다.

 

재밌지 않나? 결국 그래서 강화되는 것은 진보 VS 보수라는 구도를

 

고정시켜 재미를 보는 사람들이다. 정작 20대~30대를 주 타겟으로 한 이 개그 코드가 왜 젊은이들에게

 

큰 호응을 불러 일으키는지는 깊이 생각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 코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철없거나 사려 깊지 못한 사람이다. 나도 열라 좋아하는데......흠.....그럼 난 뭐지....

 

전통진보가 쳐놓은 기득권의 방어막만 강력해진다. 도덕성이라는 그 높은 담벼락말이다.

 

 

진보정치의 상투성은 씹히면 안되나?? 진보정치도 대중과 경합하란 말이다.

 

뭘 더 고상해지려고??

 

 

 

정작 진보의 상투성을 강화시키고, 진보란 구태의연한 것이라는 인식을 강화시키는 효과가 발생.

 

남한과 북한이 서로를 씹어대며 재미를 보듯이, 씹어대는 사람끼리 권력을 분점하게 된다.

 

 

 

그러니 소외된 자들에게는 새로운 언어가 늘 갈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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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화, 이것 저것

- 씨티홀, 히어로

 

정치를 다룬 드라마의 진화 단계를 보여주는 현주소.

 

비정함을 내세우기에는 사이즈도 작고,

 

헐리웃의 꽉 찬 스토리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에겐 이야기도 너무 헐겁고

 

권력투쟁을 앞세우기에는 너무 착하고 투박하고,

 

그래도 씨티홀은 좀 잘 만들었다. 정치 환타지라는 면에서 이 정도의 꽤감은,

 

이야기가 다소 촌스럽고 착해도 괜찮다. 착한 이야기에 대한 환타지라면, 그것도 잘 만들어진, 나는 늘 좋다.

 

반면 히어로는 좀 안타깝고 불쌍하달까? 아무리 좋게 봐줘도 시청률이 더 나올 리가 만무한.

 

김선아와 차승원 캐릭터 둘 다 매력있다. 생활에 지친 30대에게, 적당히 정직하고 그러면서 과히

 

부담스럽지도 않은 정도만 갈등하고 투쟁하는 캐릭터로서, 휴먼 코메디라는 장르에서 김선아는

 

독보적 위치에 올라섰고

(그녀가 울면 신파도 사랑스럽다. 그녀를 보며 노무현이 자꾸 생각나는 이유는 '상식'이라는 단어 때문)

 

코메디와 냉소를 버무리는, 그래서 늙어가는 남성상에 정면으로 맞서고 싶다는, 차승원의 얼굴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관심있게 지켜보는 일 흥미롭다.

 

노무현이 돼지저금통 모아 대통령이 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드라마틱해서, 씨티홀에서 온갖 찌질이들이

 

낙오자들과 정직 인간들을 모아 김선아가 시장 선거를 치루는 과정과 매치된다.

 

훨씬 더 심각하고 진지한 내용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 정치에서 무엇으로 감동을 줄 수 있을까 그게

 

고민이다. 노무현으로 대표되는 정치세력보다 적어도 감동이라는 점에서 더 큰 진정성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게 늘 아쉽다. 더 많이 싸우고, 더 많이 다치고, 더 많이 .... 더 많이....그런 게 참 많은데 말이다.

 

 

 

- 추노

 

사전 제작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영상도 스토리도 퍽이나 잘 짜여진 느낌.

 

민폐 이다해로 묘사되는, 여성 캐릭터들이 계속 어울리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게 좀 불편하다.

 

이런 근육질의 세계를 다룰 땐 차라리 여성 캐릭터들을 억지로 끼워 넣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그 험한 산길을 내달리는데 흔적 하나 남지 않는 이다해의 소복은 대체 무슨 소재로 만들었는지...

 

 

 

- 진보신당, 지방선거

 

지방선거에 대해 난생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아마도 독립 때문에 내 집, 혹은 내 동네라는 개념이

 

생겼기 때문일까? 꼭 진보신당일 필요는 없지만, 누구든 좋다-그러니 나는 누구든 관심없다, 는 자세 말고

 

어떻게든 구체적인 도움을 주고 싶어서 지방선거에서 자원봉사라도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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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

매일 매일 신문을 읽는게 치욕이다.

 

 

어지간히 예민한 사람이 아닌 이상 대체로 국가권력을 피부로 느끼며 살아가기란 힘든 일이다.

 

이익에 민감한 사람들은 정부정책이 자신에게 미칠 영향력을 저울질해보긴 하지만

 

정부정책이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이란 계급, 성, 지역, 연령 등 매우 포괄적인  범주로 묶여

 

작용하기 때문에 개개인이 구체적인 감정을 느끼지는 않는다.

 

어떤 문제에 특별히 예민한 사람들은 예비군 훈련이나 민방위, 주민등록증과 불심검문, 원천봉쇄와 강제철거

 

국기에 대한 경례와 두발제한 따위와 같은 일상적인 문제에 좀 더 예민하게 반응하겠지만

 

대다수는 그럭저럭 잘 산다.

 

 

 

또 이런 점이 권력을 가진 자들에겐 좋은 무기가 되기도 하는데 논리적으로 국가정책이 잘못되었다

 

판단하더라도 직접적으로 자신에게 심각한 불이익이 가지 않는 이상 쉽게 불만이 있더라도 쉽게

 

저항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명박은 다르다. 이 새끼는 삶의 곳곳에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며 세상을 송두리째 집어 먹으려 한다.

 

한국 우파가 가진 정체성이라고는 기득권 유지 외에 아무 것도 없다.

 

자유주의와 시장주의라는 보수의 상식에도 맞지 않고

 

오로지 기득권 유지만이 지상 최고의 목표다. 필요하면 시장을 작동시키고 필요하면 국가가 나서서

 

프레임을 다 짠다. 안보와 질서라는 전통적인 가치에는 충실하지만 최소한의 민주적 의식이 없기 때문에

 

이 또한 진정한 의미의 보수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새끼들은 진심으로 지난 10년 동안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권력을 빼앗긴 게 아니라 권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원래 자기들 거였는데 남이 가져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극장에서 대한뉴스가 부활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굴욕감을 느낀다.

 

국가권력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쪼잔하고 잔인하고 파렴치하게 삶의 곳곳에 똥칠을 하고 있다.

 

 

 

그런 싸가지들이 싸울만한 상대나 되면 이렇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을텐데...

 

무식하고 능력없고 매력없고 예의없는 것들에게 삶이 조롱당하는 것 같은 기분.

 

이들이 가진 유일한 능력이라곤 사람들 내면에 자리한 저질욕망을 부추기는 것.

 

자극하고, 겁주고, 달래고, 편가르고, 뻥치고, 뒤통수치고, 안면몰수하고...

 


 

그런 게 잘 통하고 상식이 무시당하는 세상...

 

언젠가 뭔가 터진다, 터진다, 그런 기다림 따위는 의미없다.

 

일상적으로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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