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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방위 교육 2년차

1.

 

재작년 9월 말에 가석방으로 출소하고 난 직후에 집으로 민방위 교육 통지서가 날라왔다.

이런 XX같은 경우가~~  가석방 기간이라고 혼자 쫄면서 아무 것도 못하고 지내야 되는 처지에 민방위 통지서는 날라 오는거다.

엄마, 아빠는 '자라보고 놀란 가슴에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언능 갔다 오라하는데..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 동사무소에 연락을 했다.

 

나: "전 병역거부 해서 감옥 갔다 왔느데 지금 가석방 기간이라고 다른 건 다 안된다고 하는데 민방위 훈련은 받아야 하나요?'

 

동사무소 직원: "국가가 원래 권리는 잘 보장 안해도 의무는 꼬박꼬박 부여 합니다."

 

나:(속으로) 뭐야 이 새끼. 국가 공무원 맞어?? 너무 솔직하잖아. 은근 냉소적이삼....(실제 말로) 아니 그럼 가석방 안돼서 감옥 있음 그래도 민방위 통지서가 날라 오나요?? 감옥에 있는 사람 보고 훈련 오라는 거네요.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요??

 

동사무소 직원: 아무튼 지금 나와 있지 않습니까? 저는 잘 모르겠고 아무튼 나오세요.

 

나: 뭐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다 있데. 전 안 갑니다. 뭐 잡아 갈라면 잡아가고 맘대로 하세요.

 

동사무소 직원:  뭐 꼭 나오셔야 되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알아보겠습니다.

 

 

2.

 

그리고 나는 출소해서 대학에 복학했다. 뭐 꾸역 꾸역 민방위 통지서가 날라왔다. 병역거부자는 예비군까지 그냥 처리가 된다는 건 알았지만 민방위는 한 번도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대한민국 동원 시스템이 이렇게까지 짜증스런운지 아직도 다 몰랐다니!! 암튼 난 또 국가를 느끼고, 생각은 복잡해지고 아무튼 다 때려치고 학생이었기 때문에 못간다고 했다. 가기도 싫었다. 그런데 연말에 통장이 한 번 부르더라.

 

통장: '민방위 훈련 왜 안가세요??'

나: '아, 저 학생인데요...지금 복학해서 학교 다니고 있습니다.'

통장: '학생일 때는 훈련에 참석 안해도 됩니다. 학생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서류 하나 떼서 좀 주시죠?'

나: '아 네...조만간 떼서 드리죠.'

 

그리고 역시 안 드/렸/다/. 근데 별 탈은 없었다. 뭐 어쩔 것이여...?? 나는 참말 학생이었는디...

 

 

3. 

 

민방위 2년차 교육 통지서가 날라왔다.  엄마, 아빠는 하루가 멀다하고 물어본다. 민방위 교육 언제 가냐고? 알아봤더니 훈련 안가면 과태료 나오더라. 대략 10만원쯤. 흐미... 걍 10만원 주고 말기엔 조금 비싸다.

결국 미루고 미루다가 오늘 다녀왔다. (흐미...이게 본론인디....)

 

일단 시작을 국기에 대한 경례로 시작하더라. 사람들은 쭈뼛쭈뼛 하면서도 결국 다 일어서고 결국 다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데...나는 끝까지 가만 있었다. 요즘 한참 국기에 대한 경례 문제가 뉴스가 되기도 했지만 서도 .... 애초에 국가를 사랑하는 맘이 없고...국가주의는 세뇌된 거라고 맨날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는데....막상 사람들이 이빠이 모인 자리에서 그걸 안하려니... 신념이고 나발이고 다른 사람들 눈치가 살짝 보였는데...암튼 끝까지 혼자 앉아 있었는데...끝내 뭐라는 사람은 없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로 끝인 줄 알았더니 애국가 부르고, 그것도 모라자 민방위대의 임무를 낭독하는데 살짝 웃음이 나올라 하다가 괜히 긴장하는 내 모습에 조금 웃기기도 했다.

 

교육이 시작되었다. 4시간 교육 일정인데 처음 가니까 공무원이 나와서 한 20분 이상 설명하다가 영상물 두 개를 틀어준다. 나는 아주 어릴 적에 봤던 대한뉴스 뭐 이런 거 생각했는데... 그건 좀 오바였고 그래도 한국은 미디어 산업은 무지 발달해서 그런 지 영상물 나름대로 편집도 잘 했고 음악도 거의 영화음악 수준으로 '둥둥 두두둥''거렸다. 그리고 변화된 동북아 정세 이런 것도 참 많이 나왔다. 보는 내내 어이없게도 '어 저거 정세분석은 운동권이랑 비슷하네' 뭐 이런 생각을 참 많이 하면서...주위를 두리번 거리는데 정말 자는 사람 많았고 근데 나는 왜 잠이 안올까 생각해보니...그새 또 고걸 분석하고 있는 내 모습에 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근데 시시 때때로 들리는 교육 담당 공무원의 그 말 '여러분도 군대 갔다 와서 알겠지만...'이 나올 때마다 이거 뭐 기분이 뭐라해야 할지 참 묘한 상황이었다.

아무튼 영상물은 완전 뒤죽박죽이었다. 평화도 좋고 화해도 좋은데 전쟁의 위협은 가시지 않았고 국토방위는 중요한데 전쟁은 절대 안되고....뭐 이래저래 심란한 내용이 많이 나오더라. 그 와중에도 내내 생각이 복잡했다. 이 사람들은 다들 소극적이다. 대부분 억지로 잠을 청하려고 애를 쓸만큼 무미건조하고 무의미하고 지겨운 시간이다. 그런데 아무튼 다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적어도 그런 척 하고) 선서를 한다.

 

이런 식으로 4시간이 흘러갔다. 마냥 지루한 시간이었지만 나름 복잡한 하루였다. 국가의 존재가, 내 옆으로 성큼 다가와 말을 건다. 너 한국인이잖아. 국가안보를 위해 너는 최소한의 의무를 다해야 해. 좋건 싫건 국가는 최소한의 버팀목이야. 이 마저 없으면 넌 어떻게 살래??

 

훈련장을 나오는데 잠시 다른 세상을 다녀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 몇 시간에 왜 그렇게 지겹고 짜증스러운지. 나는 잠시 내가 평균적인 세상을 어느 정도 벗어나 있는 게 마냥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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