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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적이고 날카로운 여름

산업혁명 시대 런던이 이럴까 생각했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책을 통해 접한 런던은 일 년 내내 구름이 끼어있는 우중충한 이미지다. 여기에 산업혁명의 어두운 기운이 겹쳐진다. 생각만 해도 뇌에 스모그가 끼는 기분이다. 21세기 디스토피아. 산업혁명 시대 런던을 오늘 서울에서 만나는 느낌.

연일 예고 없이 내리는 비와 한 번도 밝은 얼굴을 내밀지 않는 하늘과 밤마다 계속되는 열대야로 나는 여름 내내 악몽 속에서 헤맸다. 꿈을 꾸듯 몽롱한 일상은 현실과 꿈의 경계를 헤맸다. 늘 꿈을 꿨다. 일어나면 지워지는 꿈. 

종일 공사장에서 들리는 굉음으로 정신병에 걸릴 지경이었다. 쇠파이프를 자르는 전기톱 소리. 아침 6시부터 공사가 시작되면 그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고 조건반사적으로 입에서 욕부터 튀어나온다. 집 밖으로 연결된 구명이란 구멍은 죄 막아놔도 그 소리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그리고 계속되는 엄마의 날카로운 비명소리, 고함소리, 울부짖음. 그렇게 새벽에도 몇 번 씩 깨기를 반복하면서 주기성을 잃고 때때로 자고 때때로 깼다.

금속 조각처럼 날카롭고 예민해진 감각은 조금만 건드려도 엄청난 크기로 폭발할 것 같았다. 누군가를 만나는게 미안하고, 두렵고, 불안했다. 내 모든 감정이 쏟아져 버릴 거 같아서. 그 어느 때보다 공격적인 마음으로 상대를 할퀼 거 같아서.

내 집은 고대 후문 쪽에 위치한다. 어릴 적 다녔던 초등학교와 인접해 있어 방과 후 자주 놀던 곳이었다. 그때 여기는 공터가 많았다. 지금은 하숙생들을 받으려고 빌라가 줄지어 서 있다. 아파트도 꽤 많이 들어 서 있다. 집값은 오르고 동네는 사시사철 공사 중이다. 지겹다. 지겹다. 나는 여름 내내 이 말만 내뱉었다. 시끄러운 굉음을 법적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집을 짓는 것은 합법이다. 소음은 견뎌야 한다.

그래서 그랬나? 아마도 그래서 그랬다. 여름이어서. 파란 하늘이 안 보여서. 밤마다 너무 더워서.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가서. 공사장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짜증이 나서. 엄마의 고통과 변덕을 이겨낼 길이 없어서.

밤에 누나 동생이랑 술을 먹는데 조금 신이 났다. 그래서 시끄러웠는지 주인집에서 올라왔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정색을 하면서 왜 이렇게 시끄럽냐고 화를 낸다. 공사 중인 건물은 주인집 소유다. 그냥 나오는 대로 질러버렸다. ‘공사장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는 안 들리세요?’

주인집은 2층, 우리 집은 3층이다. 아래층에 울린다고 옥상에 올라가 마늘을 빻는 아빠를 보면 화가 난다. 어차피 또 계약기간이 끝나면 올라간 전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이사 가야 할 집. 역시나. 며칠 있다 방을 빼달라고 말하는 집주인. 또 다시 이사철. 아무 것도, 정말 아무 것도,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그저 멍하다.

 

여름 내내 내 일상에 평화는 없었다. 반성은 하지 않는다.

다만 무엇이 이 악순환을 끝내줄지 생각한다. 현명해져야 한다.

현명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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