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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모임 후기 (Written by nadong)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행사 장소나 행사 방식을 생각했을 때 가장 적절한 규모로 모임이 진행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3시간 가까이 진행된 행사였는데 쉬는 시간도 필요없을 만큼 참가자 모두 진지했고 재미도 있었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던 자리였습니다.
우선 문승숙, 박노자 씨가 30분씩 돌아가면서 군사주의를 주제로 각자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
문승숙 씨는 주로 군사주의와 여성성을 주제로 이야기했습니다. 군대가 남성성의 형성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데, 남성성이라는 것은 여성성의 상대적 개념이기 때문에 결국 군대가 여성성의 형성에도 엄청난 영향을 주는 것이다는 주장. 이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KBS '신고합니다'란 프로그램을 예로 들었습니다. 군대가 상징화시키는 여성의 이미지란 딱 두 종류, 즉 어머니와 창녀로 나뉜다는 것이죠. 성적으로 완전히 무성화된 어미니는 국가=가족=지켜야 할 대상이란 등식을 성립시킵니다. 어머니를 대할 때 군인은 의젓하고 늠름한 모습입니다. 이와는 정반대로 또 다른 여성의 역할을 상징하는 애인이 등장할 때는 극단적으로 성적 이미지를 집중적으로 강조(실루엣 뒤에 숨어 등장하는 여자친구, 몸매를 강조하는 도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징적인 이미지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군대가 고정적인 여성성의 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박노자 씨는 주로 군대가 남성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영향력이 모두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장소, 특히 계급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고 말했습니다. 역사학자답게 엄청나게 풍부한 사례들을 들어가면서 설명해서 사람들이 무척 즐거워했습니다.(박노자 씨 유머 감각이 탁월하다는 사실 처음 알았네요) 한국의 군대는 매우 특수한 위치에 놓여 있는데 일반적으로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군사적 역할이 일부 계층(주로 하층계급)에게 몰리는 모병제 같은 구조로 가는데 반해 한국은 형식상으로나마 국민개병제, 즉 군대에 관한 한 모두가 평등하다는 관념이 여전히 강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군사주의 척도를 단일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단적으로 미국은 군사적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지만 군사주의가 약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국민 전체의 의식이란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은 서구 자본주의에 비해 말할 수 없이 군사주의가 일상화된 나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60~70년대 군사독재의 산물로 오히려 군대가 자본의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힘의 역학 관계가 정상적인 자본주의 구조로 돌아왔지만 자본가 계급은 절대로 징병제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에서는 모두 우울. 어쨌거나 한국 군대도 이제 자본주의적 계급관계가 그대로 군대 질서에 투영되고 있으며 군대가 형성시키는 남성성이란 것도 계급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뒤로 두 분이 서로 질문을 하나씩 주고 받았는데 비슷한 의견을 공유하고 있는 탓인지 질의 응답 같지 않았어요.
마지막으로 쉬는 시간 없이 곧바로 청중과의 토론에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요. 다 적고 싶지만 여기서부터 필기를 포기했습니다. 사회자라 적절히 흐름을 잡아줄 필요도 있었고, 결정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아무튼 시종일관 생각이 많았는데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개인적으로 고민했던 몇가지 주제를 요약해볼께요.
1. 한국식 자본주의가 시장질서를 강화하면서 미국식 자본주의처럼 기업정신, 창조성, 도전정신을 강조하면서 경쟁이 격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 문화도 위계적인 구조에서 점차 팀제와 같은 수평적인 구조로 바뀌어 갈텐데 자본주의의 발전이 징병제에 어떤 영향을 줄 가능성은 없는가?
이에 대해 사람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 한국 자본의 구조상 미국, 중국, 일본, 유럽의 자본과 비교했을 때 유일한 강점은 잘 숙련되고 순종적이며 노동중독이 심한 전문인력들이다. 한국 자본은 절대 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군 내부 복지 문제를 중심으로 외형상 변화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려 애
쓰겠지만 본질적인 내용은 바뀌지 않을 것.
2. 한미관계가 변화할 여지는 없는지?? 이 과정에서 한국 군대 역시 새로운 역할을 모색할 수 없는지??
국방개혁안 비전 2030을 봤을 때 노무현은 모병제로 가려는 의지가 전혀 없다. 초기에 동북아 균형자 이야기가 나왔지만 결국 굴복하고 급격히 한미동맹으로 우선회했다. 한국 자본주의 구조상 죽었다 깨어나도 한국의 보수파가 대미종속적인 관계를 끝내지 못할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도 잠재적인 적은 중국이기 때문에 중국과의 전면전이 불가피할 경우 엄청난 수의 한국 군인은 총알받이로 매우 유용할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한국이 현재와 같은 징병제를 유지하는 것이 크게 나쁠 것이 없다.
3. '그나마 군입대는 계급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부여된 임무'라는 평등의 신화가 반군사주의 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여성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대체복무제 입법운동에 대해 이런 저런 한계가 지적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어쨌든 국방의 의무는 모두가 동등하게 져야 한다는 이 원칙 때문에 대체복무제도가 오히려 여성징병제 논의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 쉽게 말해 군제도도 다양해졌으니 어떤 식으로든 여성도 의무를 수행하라는 논리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모병제를 주장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 역시 쉽지 않다. 참가자 중 한 명은 그래서 모병제냐, 대체복무제가 존재하는 징병제냐가 아니라 절대적인 군인수를 줄여나가는 '감군운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서 눈길을 끌었다.
지금 노무현이 주장하는 사회복무제(혼혈인, 장애인 등등도 군복무 가능)는 오히려 군의무를 통해 시민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관점을 강화시키고 있다. 대체복무제도 주장을 역이용해 군사주의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이런 왜곡된 평등주의가 끊임없이 여성운동에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여성운동 진영에서는 군대 관련 담론에서는 적극적인 주장을 펴지 못하고 매우 조심스러운 상황.
4. 그렇다면 평화운동이 무엇을 해야할까?
냉정한 현실인식 때문일까. 사회를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것 참, 한국사회의 현실이 만만치 않군. 그래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역학을 고려해볼 때 어떤 대안을 내기가 쉽지 않고 다들 조심스럽다.
분명한 것은 정치인들에게 맡겨서는 발전주의-군사주의의 양대 축으로 설정된 한국사회의 진로를 조금도 바꿀 수 없을 것이란 점이다. 노무현이 그 한계를 절실히 보여줬다. 결국 피플 파워만이 조금이라도 한국사회의 진로를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또 하나는 일상적인 군사주의를 해체해나가는 운동이 전부 평화운동이란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는 강력한 군사주의를 원하고, 그것이 일상 속에 뿌리내려 가족, 직장, 학교 등 모든 공간을 지배하고 있다. 인간관계 역시 군대식 위계질서에 기초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 거부하는 모든 운동이 다 평화운동이다. 일상적인 위계질서를 거부하고 순응을 요구하는 관성에 저항하는 것이 다 평화운동이다. 청소년 인권찾기, 국기경례 거부, 대안 생리대, 자전거 타기, 채식... 이런 게 모두 평화운동이다. 이 운동이 확산되어 '순응형 인간'에서 창조적이고 평화적인 소통형 인간으로 거듭나는 사람이 늘어나면 그게 가장 강력한 평화운동이다. 아, 참 할 게 많구나!!
이상 책읽기 모임 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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